추월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11. 19(토)
ㅇ 코스 : 추월산정류소-제1등산로-보리암-상봉-추월산-수리봉-제5등산로-복리암(약3시간40분)
ㅇ 찾아간길 : 호남고속도로-태인I.C-순창방면(대전에서 2시간 20여분 소요)
ㅇ 누구와 : 안내산악회 따라 혼자

  

 

   가을과 겨울 사이의 계절인 11월. 떠나갈 철새는 아직 출발을 하지 못하였고, 날아올 철새는 아직 바이칼호 어느 호숫가를 맴돌고 있을 계절 11월. 가을걷이가 완전히 끝난 들녘은 텅 텅 비어서 황량하기만 한데, 머리카락을 온통  풀어헤친 갈대들 몇몇만은 이제 완연한 제 계절인양 빈 논두렁에서 너풀대며, 애잔한 들녘을 더욱 쓸쓸하게 만들어 가고 있다. 가을의 단풍도, 한겨울의 눈꽃도, 그 어느 것 하나 갖지 못한 채, 그저 드러나는 속살을 부끄러이 내보이며 겨울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추월산.  11월의 어느 날, 불현듯 그 산을 찾아간다. 

  

   추월산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조금은 가파른 길을 오르다보니, 땀이 한 숨 베어날 쯤 되어 바로 담양호가 보이기 시작한다. 호수 바로 건너 보이는 강천산의 줄기들과 담양호, 수직을 이루고 있는 추월산 보리암의 절벽이 만들어 내는 아름다움. 아--하고 가느다란 하게 신음처럼 탄성이 흘러나온다. 암봉 하나를 돌아 오르면 다시 그 풍경, 또 하나를 오르면 조금 바뀐 그 풍경. 오름길 내내 가능한 조망에 가파른 길을 힘든지 모르게 오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보리암. 암자의 명성과 유구성에 비추어 보면 초라하기만 한 모습이지만, 몇 번의 소실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커다란 나무 위 새둥지처럼,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보리암의 모습. 그 모습만으로도, 아니 그 존재만으로도 보리암은 충분히 아름답기만 하다.

  

   저 절망 같은 절벽. 햇살도 잘 들지 않는 응지. 저런 곳에서 이승에서 얻은 몸을 맡기고, 바람처럼 지나가는 세월을 가슴에 쓸어 담고 살았을 사람들. 그들이 본 세상은 어떠하였으며, 그들이 찾은 진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요즘 들어 답답하기만 한 세상일들과 함께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보지만, 그저 고요하기만 한 담양호가 그림처럼 아름답게 떠 있을 뿐. 보리암에서 느끼는 애잔함은 차가운 바람이 되어 가슴을 후벼 팔 뿐이다.

  

   보리암에서 잘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이제 상봉에 오른다. 주차장을 출발한지 1시간이 조금 넘은 시간이다. 그런데 상봉에서 보는 담양호와 주변의 높고 낮은 산들이 다도해의 무수한 섬들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오름길에 강천산과 어우러진 담양호가 일품이었다면, 이곳에서는 너른 평야와 무수한 산들의 물결. 그 사이의 담양호가 일품이다. 마치 사량도의 한 봉우리를 보고 있는 느낌이 들게 한다.

  

   이 풍광을 놓고 어떻게 바로 능선길로 들어서랴.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으며, 소주를 한 잔 담양호에게 권한다. 그러자 담양호도 얼른 나에게 잔을 건네며 어깨를 툭 친다. '힘내 툭툭 털어 버리고---' '---그래, 툭툭 털어 버리자, 나를 힘들게 했던 세상일들아, 건배!'

  

   산에 오면 누가 이런 용기를 주고, 마음을 쓰다듬어 주는 것인지. 참 알 수 없는 힘을 산은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제 터벅터벅 능선길을 걷는다. 산행 시작 전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 가벼워진 발걸음이다.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며,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고, 가야할 능선을 바라보며, 살아가야 할 날들을 생각한다. 희미하지만 끊이지 않는 외길. 멀리서는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가보면 분명히 있는 길. 그 길을 따라 가다 보니 어느새 추월산 정상을 지나고, 오늘 산행의 마지막 봉우리 수리봉이 보인다.

  

   수리봉. 참 몇 진 암봉이다. 나의 인생길 마지막 봉우리도 저처럼 아름다우면 얼마나 좋을까! 이제 수리봉에 올라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니 쓸쓸했지만 따뜻했던 산줄기가 아름답고 길게 늘어서 있다. 저 아래에는 내가 다시 돌아가야 할 세상이 외줄로 길게 늘어 서 있고---'난 내가 있어야 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간다 추월산아, 오늘 고마웠구나'
   
  

(오름길에 본 담양호와 강천산)

 

(오름길에 본 담양호와 강천산)

 

(오름길에 본 담양호)

 

(오름길에 본 담양호)

 

(오름길, 보리암을 촬영하고 있는 모습)

 

(보리암과 절벽)

 

(보리암 전경)

 

(보리암)

 

(보리암에서 본 담양호와 강천산)

 

(상봉 오름길에 본 하늘)

 

(상봉 오름길에 본 보리암)

 

(상봉에서 본 담양호)

 

(상봉 바로 앞의 암봉)

 

(상봉에서 본 담양호)

 

(상봉에서 본 가야할 능선)

 

(정상에서 본 지나온 능선)

 

(수리봉 가는 길의 암벽)

 

(수리봉)

 

(수리봉 암봉, 줌 촬영)

 

(수리봉에서 본 지나온 능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