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포암산을 넘어 대미산으로

 


  마의태자의 전설이 얽힌 하늘재

 

  2005년 11월 13일 일요일 아침, 40명의 등산객을 태운 산악회버스(G산악회 주관)가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인터체인지를 빠져 나와 지방도로를 타고 산행들머리인 하늘재에 도착합니다(09:48). 


  오늘은 백두대간 제15구간(하늘재∼벌재) 제29소구간(하늘재∼포암산∼대미산∼여우목)을 산행하는 날이라 산행코스가 만만치 않은 데도 불구하고 낯선 얼굴들이 많이 참가하여 버스가 만원(滿員)이 되었습니다.


  태초에 하늘이 열린 곳이라는 하늘재는 2주전 탄항산과 마패봉 구간 산행 당시 들머리로 이용했던 곳이라 눈에 익습니다.


  한편, 하늘재는 고려에 의해 멸망한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麻衣太子)가 이 고개를 넘어 고난의 길을 떠났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늘재를 넘는 마의태자와 덕주공주 일행은 왕조의 부활을 꿈꾸지만 고려의 호족들에 의해 마의태자는 미륵리에 있는 미륵사에,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있는 덕주사로 헤어져 머무르게 됩니다.  


  나라가 망해 정처 없는 떠돌이가 된 오누이의 생이별한 고통과  사무치는 그리움은 끝내 미륵리에 미륵불을, 덕주사지에 마애불을 세워 마주보게 했다고 합니다.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오누이불상은 서로 마주 본 채 그렇게 서 있다고 하네요(자료 : 문경명산 가이드).

 


 

                           하늘재의 포암산 안내도

 


  하늘재∼포암산

 

  이화령에서 조령산과 부봉을 거쳐오다 하늘재에서 깊이 가라앉은 백두대간은 포암산에 이르러 높이 치솟았다가 평균 고도 800∼ 900m를 유지하며 대미산으로 이어집니다. 


  다른 산악회버스 한 대가 도착해서 등산객을 내려놓는 것을 목격한 우리는 신속하게 포암산 등산로 안내도 옆의 호젓한 길을 따라 산 속으로 들어갑니다. 삼국시대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옛 석성(石城)을 지나 초라하게 보이는 하늘샘에 이릅니다. 이 샘은 목마른 산꾼들의 갈증을 해소시켜 준다지만 산행초입이라 물을 마시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냥 지나칩니다. 부드러울 것 같은 등산로는 여기서부터 이내 본색을 드러내 가팔라지기 시작합니다. 바위전망대와 돌탑을 지나 절리의 형태로 서 있는 큰 바위 옆을 거쳐 깔딱 오르막을 통과하여 능선에 붙습니다.  

   
  군데군데 미모를 자랑하는 노송들이 바위틈에 늘어져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데, 재빠른 사람들은 노송의 둥지를 딛고서 기념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능선에서 뒤돌아보면 주흘산의 스카이라인이 선명하고, 탄항산 너머 백두대간으로 이어진 능선 뒤로 부봉(釜峰)의 여러 봉우리가 살짝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그 오른쪽에 봉긋 솟은 마패봉도 자신의 존재가치를 알립니다.


  주변의 조망을 감상하면서 발걸음을 옮기니 바위구간이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바라보는 조망이 압권입니다. 허연 바위를 드러낸 만수봉(983m)너머 월악산의 영봉(1,094m)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말이 바위구간이지 매여진 로프를 잡고 오르기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48분만에 포함산에 도착합니다(10:36).

 


 

                                        멋진 줄기를 뻗은 노송

 


 

                                뒤돌아본 하늘재 


 

                        뒤돌아본 주흘산(왼쪽은 주봉, 가운데는영봉)과 탄항산(앞쪽)


 

                               부봉(중앙)과 마패봉(맨 오른쪽)


 

                                    만수봉 뒤로 보이는 월악산


 


  포암산 정상

 

  충북 충주시와 경북 문경시의 사이에 위치한 포암산(布巖山, 962m)은 속칭 베바우산으로 불리어지는데, 이는 베(布)를 짜서 펼쳐놓은 것 같이 암벽이 펼쳐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정상에는 꼭 대포알처럼 생긴 표석 뒤로 돌무덤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주흘산과 하늘재로 이어지는 계곡이 잘 보이지만 북쪽의 월악산은 잡목으로 인해 조망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포암산 정상표석



 

                              정상에서 뒤돌아본 주흘산

 

 

  포암산∼만수봉 갈림길

 

  포암산에서 급경사 길을 내려와 안부에 도착한 후부터 등산로는 오르내림이 거의 없는 부드러운 길로 오랫동안 이어집니다. 여기서 홀로 백두대간을 답사하는 젊은이를 만났는데 부산에서 승용차를 타고 와 하루 전 문경새재∼하늘재 구간답사를 마치고 오늘은 필자와 같은 구간인 하늘재에서 대미산 구간 산행을 한다고 합니다.


  그는 백두대간 산행에 늦게 동참하여 빠진 구간을 홀로 답사하고 있는데, 주말을 맞아 2구간을 연속 산행하는 중이라고 하네요. 이 사람은 산행을 시작한지 약 4년이 되었다고 하면서 그 전에는 골프에 미쳐 돌아다니다가 산을 좋아한 이후에는 거의 골프를 잊고 산을 찾는다고 하니 여러모로 필자와 닮은 점이 많습니다.

 

  필자도 한때는 일반대중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기 위해 새벽 세시에 집을 나서 줄서기를 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었지만 그 당시는 그것이 최선인 줄로 착각했으며, 맹장염 수술 후 3주만에 친구의 권유로 필드에 나갔다가 행운의 홀인원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산행보다 더 좋은 운동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푹신한 낙엽이 쌓인 부드러운 능선을 한동안 걸어가 만난 백두대간 이정표(11:19)에는 남으로는 한라산, 북으로는 백두산이라고 씌어져 있어 남북으로 길게 뻗은 우리국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여기서 위 사람과 서로 기념사진을 찍어 준 후 작별인사를 하고는 먼저 길을 재촉합니다. 양탄자를 깔아 놓은 것 같은 부드러운 길을 가자 드디어 만수봉으로 분기되는 사거리 갈림길(해발 880m)에 도착합니다(11:34). 필자는 지난해 8월 하늘재에서 포암산을 거쳐 만수봉으로 산행을 하였기에 오늘 지나온 구간은 복습한 셈입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만수봉(983m)으로 이어지는데, 만수봉정상에서 바라본 월악산의 웅장한 모습이 지금도 뇌리에 생생합니다. 왜냐하면 만수봉은 월악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이기 때문입니다.

 


 

                                        지리산과 백두산을 알리는 이정표


 

                             만수봉 사거리 이정표


 

                              만수봉 정상에서 바라본 월악산의 장엄한 위용(2004.8.8)

 

 

  사거리 갈림길∼대미산

 

  갈림길에서 90도 각도로 오른쪽으로 꺾여진 대간 길은 다시금 오르막으로 이어집니다. 능선을 따라 한참 동안 진행하니 지나온 산세와 가야할 산줄기를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는 봉우리에 도달합니다(11:50).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이정표가 없어 산행 개념도를 보아도 현재의 위치를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합니다. 이 산행기를 쓰면서 지도를 살펴보니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938봉인 것 같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급경사 내리막 길목의 산죽밭을 통과한 후 안부를 지나 다시금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데 바위 봉우리에는 보기에도 좋은 노송 한 그루가 잠시동안 발걸음을 멈추게 합니다.


  노송을 뒤로한 채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길이 만만치 않은데 오르면서 뒤돌아보니 지나온 조망바위가 우뚝 서 있고 그 뒤로는  포함산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 봉우리에서 다시 급경사 내리막으로 진행되던 등산로는 안부에 이르러 한동안 긴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노송군락지를 지나자 또 다시 내리막길입니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오르내림을 반복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짓는 순간 앞쪽에서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이들은 제법 넓은 바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식사를 하고 있는 산악회 선두그룹입니다(12:53).


  주흘산의 스카이라인과 지나온 전망대바위가 잘 조망되는 이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요기를 합니다. 모여 있는 인원이 필자를 포함하여 모두 16명이군요.


  잠시 쉬었다가 선두조를 따라 일어섭니다. 그러나 필자는 사진도 찍어야하고 또 체력도 달리므로 일부러 맨 뒤로 쳐졌는데, 준족을 자랑하는 선두조는 어느새 시야에서 사라지고 2∼3명만이 동행을 하게 됩니다. 


  능선에 올라 가야할 방향의 산줄기를 바라보며 저 높은 산이 대미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착오였음을 나중에 확인합니다. 급경사 내리막에 설치되어 있는 보조로프의 도움으로 안부로 내려서 밋밋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노라니 별로 특징이 없는 길이 죽 이어집니다. 등산로 좌측 뒤로는 월악산의 영봉이 모서리만 뾰족하게 보일 뿐입니다.


  빤히 보이는 봉우리(1,032봉으로 추정)에 올랐지만(14:00) 아직도 갈 길이 많이 남아 있는데 다리가 무겁습니다. 근래에 산행을 하면서 이렇게 다리가 천근만근이 되는 일은 경험하지 못한 사실입니다. 어제 불과 3시간의 산행을 했는데 이토록 체력이 바닥이 났을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지난 10월 초 설악의 공룡능선을 넘을 때보다 더 다리가 무거우니까 하는 말이지요.


  해발 1천 미터가 넘는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다가 안부에 도착합니다(14:40). 이정표가 없어 산행개념도를 보니 '부리기재'를 같은데, 마침 옆에서 지도를 열심히 들여다보며 쉬고 있는 남녀등산객에게 위치를 물어보니 그렇다고 합니다.


  여기서 깔딱 오르막을 지나가니 정말로 '부리기재'라는 이정표(해발 900m)가 세워져 있습니다. 산의 정상을 오르며 이렇게 밋밋한 길은 처음 경험해 봅니다. 걷고 또 걸어도 끝이 없어 보이던 대미산의 정상이 드디어 눈앞에 모습을 드러냅니다(15:21).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본 포암산(우측)과 주흘산의 스카이라인(뒤)

 


 

                              지나온 능선


 

                            가야할 능선
 


 

                              등로의 아름다운 노송
           


 

                             점심식사 장소에서 바라본 주흘산

 


 

                              하늘재로 연결되는 계곡


 

                            가야할 능선

 


뽀족하게 보이는 월악산 영봉



 


  눈썹처럼 부드러운 대미산

 

  정상에는 아담한 표석이 세워져 있는데, 먼저 도착해 쉬고 있는 선두그룹을 만나 서로 격려를 합니다. 모두들 정상까지 오는 길이 정말 길고도 먼 길이었음을 인정하는군요.


  크게 아름다운 산이라는 이름의 대미산(大美山)은 문경시를 지나는 백두대간 상에 위치한 큰산으로 문경지역 모든 산의 주맥(主脈)입니다. 문경시 문경읍 중평리와 동로면 생달리에 속한 대미산은 조선 영·정조 때 발간된 문경현지(聞慶縣誌)에는 대미산을 문경제산지조(聞慶諸山之祖)라 적고 있습니다. 이는 대미산에서부터 문경구간의 백두대간이 시작된다는 의미와 함께 문경의 산들 중에서 높이로도 가장 높다는 뜻입니다.


 「산경표」나 문경현지에 적힌 지명은 黛眉山(대미산) 즉,‘검은 눈썹의 산’인데, 어디에서 보거나 크게 두드러져 뽐내는 모양이 아닌 그저 있는 둥 마는 둥 부드러운 능선이 흐르며, 정상부에 꼭 눈썹만큼의 봉우리를 돋아 놓았을 뿐입니다(자료 : 문경명산 가이드).


  대미산의 정상에 서면 북쪽에는 문수봉(1,161m), 동쪽에는 백두대간 길의 황장산(1,077m), 동남쪽으로는 공덕산(913m)과 천주산(824m), 남쪽에는 운달산(1,097m)과 성주봉(891m)이 잘 조망됩니다. 
 


 

                           대미산 정상표석

 


 

                         대미산 정상의 조망(1)

 


 

                             대미산 정상의 조망(2)

 

 

 

  대미산∼여우목성지

 

  많은 사연을 간직한 산꾼들의 표지기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곳은 백두대간 길이라 이 길을 따라 가면 차갓재에 이르지만 그곳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오른쪽 길로 하산합니다. 경사가 급한 내리막을 지나 한 동안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지던 등산로는 여우목마을에 도착할 때까지 급경사 내리막입니다.


  등산로에는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어 길바닥의 상태를 알 수 가 없으므로 발걸음이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산악경주를 하는 것처럼 민첩하게 내려가니 그 실력에 존경심이 절로 나옵니다.


  낯선 이방인을 맞이한 개 몇 마리가 짖다가는 잦아들 즈음 마을 오른쪽 과수원 안쪽에 큰 노송 한 그루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서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다시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을 몇 장 찍었는데 구도가 생각보다는 좋지 않아 그저 평범한 사진을 얻고 맙니다. 도로입구에는 대미산 등산안내도와 여우목 성지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증평리소재 '여우목 성지'는 충북 단양과 경계를 이루는 문경 지방의 동북쪽인 대미산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천주교 순교자들의 성지입니다. 여우목 고개는 경상도 동쪽 지방의 사람들이 서울로 갈 때 문경새재로 향하던 길목이었으며, 문경읍과 동로면의 경계에 재가 있어 그 모양이 여우 목덜미와 비슷하고 또 여우가 많이 다니는 길목이라고 하여 여우목이라고 했다는 말이 전해집니다.


  여우목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600년경이었고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에 살기 시작한 것은 1839년 기해박해 전후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자료 : 카톨릭정보 홈페이지). 


  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커브 길에 여우목성지를 알리는 대형 표석이 도로 옆에 세워져 있습니다. 개천에 도착하여 찌든 땀을 씻으니 하루의 산행이 끝나는 순간입니다(16:30). 오늘 산행에 6시간 4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등산코스는 하늘재/포암산/만수봉갈림길/부리기재/대미산/여우목성지/주차장입니다.

 


 

                                             크고 아름다운 노송

 


 

                                       여우목 마을 입구의 대미산 등산안내도

 


 

                             도로변의 여우목 성지표석



  지독한 교통정체  
 
  산악회에서 끓인 따끈한 찌개로 허기를 달래고 후미그룹이 하산할 때를 기다려 버스가 출발합니다(18:00). 일부 등산객들은 중간에서 탈출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무런 사고 없이 산행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평소에는 소통이 잘 되던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오늘은 주차장으로 변해 있어 차량이 움직일 줄을 모릅니다. 아침에는 3시간이 걸린 거리가 귀경 시에는 6시간이 넘게 소요되어 집에 도착한 시각은 자정이 지나서입니다.


  교통체증에 시달린 누군가 독백처럼 내뱉은 한마디가 정말 실감나는 하루였습니다.
  "겨울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날씨가 추워지면 차를 끌고 나오는 사람이 적어져 소통이 잘 될 테니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