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녀봉, 동강(해협)과  하도( 아랫섬)
                                                     

                                                                           바짝 다가가서

                                  대항, 고동산 (맨 왼쪽 끝), 대항으로 내려오는 길, 가마봉, 옥녀봉 그뒤 오른쪽으로 하도와 해협이

                                                                        금평항이 정면 봉우리 넘어에

                                                                             

사량도 지리산으 옥녀는 지금...

 

사량도 지리망산 (397.8m): 경상남도 통영시 사량면

일자: 2005/11/13(일) 안내산악회 버스 2대 (90명)

날씨: 맑음

산행방향: 내지항(13:00) -내지.지리산.돈지 3거리(13:45) - 지리산 (397.8m; 14:05) - 달바위 (불모산:400m;15:00) - 가마봉(303m;15:45) - 연자봉 - 옥녀봉(261m;16:20) -대항 (16:50) - 집(다음날 00:35)

유람선: 삼천포 선착장- 사량도 내지항 (40분)

 

 

종려나무가 서 있는 삼천포로

 

조망하며 즐기는 산행은 힘들지 않을까 할 정도로 천호동 지하철을 빠져나오니 하늘이 무겁게 짓누른다. 경부고속도로도 꽤 밀린다. 그런데 망향휴게소에서 보니 해가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무박코스를 당일코스로 만든 공신인 대전-진주고속도로를 들어서자 차가 듬성듬성해진다. 남으로 내려갈수록 창밖에 보이는 산촌은 따스한 햇살에 한가롭고 논은 푸릇 푸릇 봄기운이 돈다. 산에는 참나무, 낙엽송, 은행나무, 생강나무가 가을이 끝자락에 와 있음을 알려준다.

 

사량도는 통영을 통해서만 가는 줄 알았는데 진주지나 사천 IC에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삼천포로 방향을 바꾼다. 삼천포에서 오히려 더 가깝단다. 삼천포-창선 연육교가 서쪽으로 위용을 드러내고, 동쪽으로는 우뚝 선 와룡산 (799m)이 시야를 가로 막는다. 시내로 들어가니 아열대 기후인 제주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어깨 정도 되는 종려나무가 도로가에 늘어 서 있다.

 

선착장에 30분 늦게 도착

 

예정보다 30분 늦은 12시 유람선 선착장에 도착. 전국 각 시도에서 온 관광버스가 주차장을 꽉 메우고 있다. 통영 도산면 가오치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정기 여객선과 달리 이 곳에는 머리 수만 맞으면 아무 때나 떠나는 모양이다. 승선하는데 등뒤에서 내 이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회사 선배였던 분이 어부인과 함께 오셨다. 산에 조금만 다녀 본 사람은 사량도 지리망산에 대한 이야기는 직접 듣거나 산행기를 통해 너무 잘 안다. 나와 마찬가지로 선배님도 처음이란다. 이 산악회도 차를 2대나 동원하지 않았는가.

 

98명 정원의 유람선. 45인석 버스 2대가 왔으니 한팀으로 적정한 유람선이다. 조수가 구명동의 입는법 등 주의사항을 설명한다. 40분 걸려 사량도 내지선착장에 도착하고 4:30분까지는 다시 승선해야 한다며 3가지 옵션을 말해준다. A: 지리망산-불모산-옥녀봉 완주 코스. B: 옥녀봉 가기 전 하산 코스. C: 우리가 승선할 대항까지 1시간 정도 걸리는 해안선 따라 하는 산보 코스.

 

유람선은 하얀 포말을 뒤로 하며 남으로 사량도를 향해 힘차게 물을 가른다. 4시간 30분을 달려 와 모처럼 바다를 미끄러져가는 맛이 일반 산행과 또 다르다. 탁 트인 잔잔하고 짓푸른 바다, 주위에 떠 있는 크고 작은 섬들. 한려수도의 중간 길목에 있다. 창선면과 그사이 자그마한 섬들을 연결한 삼천포 연육교가 바다 높이 걸쳐 있는 모습 역시 시원스럽다. 날씨도 이정도면 그만이다. 카메라를 가져 온 사람들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 선실밖으로 나가 각도를 바꿔가며 손놀림이 부산하다.

 

사량도 서쪽 지도상에 나오는 유인도 수우도가 조그만 무인도와 시야에 들어 온다. 개발년대에 혁혁한 공로자였던 삼천포 화력 발전소의 굴뚝 3기가 삼천포항 부두곁에 우뚝 서 있다.


 

                                                                             유인도인  수우도가 서쪽 정면에

3시간 반만에 산행 완주 요구

 

보통 4시간 이상을 필요로 한다는데 3시간 반만에 완주를 해야 하니 시간을 아껴야 한다. 우리 둘은 선실에 들어 와 김밥을 게눈 감추듯 치웠다. 거의 다 왔으니 말이다. 이내 아담한 어촌 내지(內池)에 닿는다. 아늑하게 들어간 포구 주위 산자락 끝에 평화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배를 내려 왼쪽(산책)으로 가는 사람은 없다. 똑 같은 마음이라 90명이 쏜살같이 오른쪽 씨멘트길을 따라 산속으로 꼬리를 감춘다. 산행객들이 드나든 흔적도 있다.

 


 

                                                                       내지포구, 왼쪽 끝이 산행 들머리

                                                                        돈지 마을


 

                                                                               대항


 

                                                                  일찍  멀리서 잡은 대항 

만추의 대표 과실수 감나무의 감이…

 

만추의 대표적인 정경인 감나무. 두어 그루가 산속 집 뒤에서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린다. 겨울 준비를 위해 잎은 스스로가 이미 떨구었지만 종족을 멀리 퍼뜨려야 하는 씨가 들어있는 먹음직한 감은 사람의 손이든, 새 든, 다람쥐든 움직이는 것들의 처분만 바라고 있다. 그렇게 종족 본능과 스스로 추운 겨울나기를 구분해서 처신하는 감나무를 보면 동물 못지 않게 치밀한 계산하에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맹감나무 (청미래 덩굴)도 꽤 많이 보인다. 이것 역시 멀리 보내달라며 새에게 눈에 띄게 앵두 같은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나 있을 것 같은 상록수 관목이 보이기도 한다.

 

몇 분도 채  올라가지도 못하고 따사한 가을 볕에 일행들이 한겹 한겹 허물을 벗기 시작한다. 숲사이 오솔길을 조금 올라가니 바다와 섬 그리고 북쪽 뭍의 산들이 근경 내지포구와 함께 한 폭의 수채화로 들어 온다.

 

지리산의 이름은

 

출발 후 45분 후 산너머 남쪽 돈지(敦池) 어촌 마을이 시야에 들어오면서 수채화는 더욱 커지고 웅장하기까지 하다. 돈지리와 내지리 두 마을 사이에 있다고 해서 공통분모인 지리(池里)에 산을 붙여 지리산(池里山)이 됐단다.  양쪽 마을에 연못 (池)이 있었다는 것은  이름에서 읽을 수 있다. 전설속의 이야기처럼 지금은 흔적도 없단다.


 


뭍에 있는 지리산을 우러러보는[望] 산이라 하여 붙인 지리망산(地離望山)이 더 재미있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맑은 날에는 노고단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지리능선이 잡힌다해서 연유했다는데 한려수도에는 섬도 많고 섬마다 산들도 많은데 하필 이 사량도의 최고봉도 아닌 둘째 봉우리에 이 같은 재미있는 이름을 만들었을까. 한 개그 코너에서 처럼 “이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풀어야 할 때(?)”인 것 같다. 지금은 망(望)자를 빼고 바로 지리산이라고 하니 처음 듣는 사람들은 섬에 무슨 지리산이냐고 깜짝 놀랄 것이다. 내가 1년 반 전에 그랬던 것처럼…

 

사량도의 사랑 이야기

 

섬 이름도 예사롭지 않다. 사량도 (蛇梁島). 뱀이 많아 붙은 이름이라니 짐작만 해 볼 뿐이다. 덧붙인 이야기가 더욱 구미를 땡긴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뱀처럼 꿈틀 꿈틀 하는 모습 같아서 붙였단다. 이야기는 한 술 더 뜬다. 상도 (윗섬)의 뱀과 하도(아랫섬)의 뱀이 이 해협[이 곳 주민들은 강 같다 해서 오동나무동(桐)자를 붙여 동강이라고 부른다]을 사이에 두고 밀애를 나누고 있단다. 뭍의 지리산 정기를 받아 헤엄쳐 내려온 수컷 백사(바위산)와 바다에서 올라온 암컷이라면 더 구체적일까? 명량(鳴梁)과 사량의 “량(梁)”자가 대들보가 아닌 해협을 뜻한다니 사량의 의미가 쉽게 들어 온다.

 

정말 꿈틀거리는 지리산-불모산-옥녀봉 능선은 충천하는 봉우리마다 기로 가득해 보인다. 뱀의 진한 사랑으로 사람들은 이 섬을 사랑도 (the island of love)라고 발전시켜 이곳에서 사랑을 하면 사랑의 끈이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를 만들어 놓았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이 곳에 들러 비단같은 경관을 즐기면서 사랑의 끈을 질끈 잡아맬 수 있을 테니 이래 저래 한번은 꼭 와 봄직한 섬이다.

 

돈지포구 마을은 평화로움 그 자체

 

남쪽 돈지 마을은 천혜의 포구로 평화로움 그 자체다. 항아리처럼 움푹 들어 앉아 그렇지 않아도 물이 잔잔한 한려수도인데 이 포구를 더욱 잔잔하게 만들어 놓았다. 도시의 각박한 삶에 짓눌린 사람들이 아니라도 엄마 품같이 포근하게 느껴질 것이다.

 

20여분을 오르락 내리락 능선을 따라가다 보면 타이틀 롤을 하는 지리망산 정상이다. 뭍에 있는 지리산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동쪽에 있는 통영보다 가까운 삼천포의 산능선이 북쪽으로 더 가까이 보인다.



 

                                                                         조망이 탁 트인 편안한 능선길

 



 


 



지리망산과 고성 앞바다

                                  
 

 

사량도는 동화의 세계

 

잔잔하고 짓푸른 바다, 그 위에 크고 작은 섬들, 한가로이 떠 있거나 허연 말갈기를 길게 늘어뜨리면서 내외하는 듯한 배들, 흰돌만 놓여있는 바둑판처럼 청정해역 자란만에 펼쳐진 숱한 양식장들. 해안을 따라 움푹 들어간 천혜의 포구마다 그림같이 들어선 깨끗한 어촌 마을들, 곡선미 풍부한 계단식 논, 늦은 가을색으로 덮인 이 곳 산자락... 김위원은 “동화의 세계” 같단다.

 

이 같은 풍경에서 자란 사람들은 상상력이 얼마나 풍부하고 마음이 얼마나 고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망백(望百:91)의 연세에 현재 통영 풍경화로 개인전을 열고 있는 전혁림화백이나, 한우, 김용주 화백들, 음악의 윤이상, 문학의 김춘수, 유치진, 유치환, 김상옥 등의 인물들이 통영 출신이라면 쉽게 짐작이 갈 것 같다. 여러 사람들이 이 망산에서 먹거리를 풀고 있다.


 

                                                            고성군 앞바다의 자란만 양식장

 

최고봉 불모산을 바라보며

 

그러나 우리는 옥녀봉까지 서둘러 가야만 되기 때문에 증명사진을 찍고 바로 일어섰다. 그렇지 않아도 진행방향으로 우뚝우뚝 솟은 달바위(불모산), 가마봉, 옥녀봉, 마지막의 고동산이 시간이 부족하다며 어서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남쪽으로는 동강을 넘어 하도의 산들이 역시 절경으로 마주 보고 있다. 아랫섬 포구의 덕동 마을도 한가롭기는 매 한가지다.

 

600여m 내려가니 남쪽의 성지암을 거쳐 옥녀가 살았다는 옥동 마을로 가는 길과 우리가 출발한 내지로의 갈림길이 있고 음료를 파는 아저씨가 기다린다. 김위원이 맥주 한 캔 하겠단다. 막걸리였으면 더 좋았을 걸 이미 떨어졌단다. 중간 가이드님이 무전기를 들고 서 있다. 3시 이후에 오는 사람들에게는 바로 하산하도록 하겠단다. (2시 45분)

 


 

                                                                        맥주 한캔 마시고

 

우리는 발길을 다시 재촉했다. 최고봉 불모산 (달바위)에 오니 역시 흔하게 나뒹구는 돌로 조그만 돌탑을 만들어 놓았다. 망산에서부터 오르락 내리락 한시간 가량을 하고 난 후다. 산이름을 아우에게 빼앗기고도 불평이 없다.  제일 높으니 조망은 좋을 수 밖에... 똑같은 포구, 바다, 산세도 진행함에 따라 달라지니 변하는 모습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최고봉이면서 동생에 산이름내준  불모산(달바위)


판상(板狀), 주상(柱狀) 절리 명품 암릉과 암봉 오르내리기 재미 배가 돼

 

특히 이곳 등로는 7-80도로 세운 칼날 같은 등로가 많아 발에 군기가 들어가게 한다. 북한산의 칼바위 능선, 소요산의 일주 능선, 월출산, 내장산 능선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곳 능선과 암봉은 판상 및 주상으로 잘라지는 퇴적 사암이 아주 잘 발달되어 있다. 지나는 길 어떤 곳은 금강산의 귀면암에서 신선대를 오르면서 동쪽에 보이는 만물상 능선의 샘플처럼 보이기도 한다. 산을 많이 다녀보지는 않았지만 이 산처럼 얇은 판석, 크고 작은 각목처럼 절리가 잘 발달된 곳을 아직 보지 못했다. 어떤 길목에는 단체로 흘러내려 시위라도 하는 것 같다.

 

수천만년전 퇴적된 세모래가 암석(사암)이 되고 난 후 흙이 씻겨나면서 노출돼 물을 먹고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만들어낸 특이한 암석과 암봉들. 산행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기암괴석을 만들어낸 바탕이 되었다. 달갑지 않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밟고 지나는 게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그렇게 날을 세우고 있지만 걸려들지 않고 균형을 잡을 수 있고 오르내리는데는 신발이 달라붙어 좋다.


 


유격 훈련하듯 암릉을 통과하며 옥녀봉으로

 

10여분을 내려서니 대항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이 곳 지리망산의 하이라이트인 옥녀봉 가는 길이 험해 담력이 부족한 사람들을 위한 갈림길이다. 자일 두개가 늘어져 있는 곳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심호흡도 하고 충전도 필요할 것 같아 배낭을 내려 놓고 감을 하나 깎아 나눴다. 무섭지 않을까 은근히 걱정도 됐다.

 



                                                                  가마봉으로 올라가는  밧줄 한쌍이


 

 

그런데 다가가 보니 의외로 주상절리 덕에 틈이 잘 나 발을 디디기 좋게 되어 있어 스파이더맨이 된 기분이다. 올라서니 이내 가마봉(303m). 여기에도 사암의 흔한 파편으로  탑 모습의 돌무더기가 옆에 있다. 증명사진 한 컷 재빨리 담고 100여m 서두르니 밧줄로 엮어 늘어뜨린 나무사다리가 나온다. 망설이는 사람들도 있다. 수직에 가까운 철사다리를 다시 한번 내려가야 한다. 암벽 등반 연습하라고 한켠에는 밧줄이 두개 내려뜨려져 있다. 이 사다리가 없었을 때 하강 내지 등반 수단이었을 것이다. 물론 안전한 우회로는 있다.



 


 


                                                         연자봉의 줄사다리
 




가마봉의 철계단
가까이서 본 철계단






                                                            직벽 옥녀봉을 올라오는 즐거움

 

마지막으로 엎어 놓은 주발이나 봉덕사의 종 같은 그런 암봉을 올라야 한다. 옥녀봉. 밧줄 두개가 거의 직각으로 내려져 있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 읊는다고 나도 이제는 밧줄만 있으면 무서움은 없다. 그래도 위험해 보인다. 산악회 회장님께서 지난번에 사고가 있었다며 자신 없으면 우회하라고 주의를 당부한 터다. 이 곳 밧줄을 타거나, 늘어뜨려 놓은 나무사다리, 철계단 등이 있는 이 암릉 지대는 수시로 사고가 나는 곳이란다. 기본적인 유격 훈련의 일부라고 보면 딱 맞는 재미있는 암릉코스다.

 

근친상간의 희생녀 옥녀 전설이

 

드디어 슬픈 옥녀 전설이 서린 암봉 정상이다. 여기는 더 큰 돌무덤을 해 놓고 조그만 나무 안내판을 꽂아 놓았다. “ 이 곳은 옥녀의 전설로 유명한 옥녀봉입니다. 철 또는 석재 표시판을 설치해서는 안된다는 주민의 뜻에 따라 안내판을 설치 했으니 파손하지 마십시오. 부천복사골 관광 산우회”라고 씌여있다. 이유는 모르겠다.


 

 돌무덤속  안내판만 꽂혀있는 초라한 옥녀봉


◎사량도 옥녀봉 설화 :통영과 사천의 바다 중간에 있는 사량도는 옛날부터 혼례식에 대례(大禮)를 하지 않는 관습이 있었는데, 대례를 하면 반드시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 온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옛날 이 섬에는 홀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는데, 딸은 차츰 예쁘게 자라서 아름다운 미모를 지닌 처녀가 되어, 사람들은 그녀를 모두 옥녀(玉女)라고 불렀다. 그런데 딸을 키워 오던 홀아비가 아름다운 딸에게 욕정을 품게 되었다.

 

옥녀는 이러한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좋은 말로 진정시키며 미남을 만나기를 기다리며 하루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비바람이 몹시 쳤다. 욕정에 눈이 뒤집힌 아버지가 딸의 방으로 뛰어 들어가니, 옥녀는 놀라 비명을 지르면서 눈물로써 호소하며 말하기를, "아버지, 사람이라면 이러실 수가 없습니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습니까? 차라리 소녀를 죽여주십시오." 하면서 항거하였으나 아버지의 욕정은 쉽게 가라안지 않는다.

 

참다못한 옥녀는 한 가지 꾀를 내었다. "아버지, 사람의 탈을 쓰고 어찌 이러실 수가 있습니까? 소녀도 사람이라면 아버지께 어찌 몸을 바치겠습니까? 정히 아버지가 이러하시면 소녀가 저 산위에 있겠느니 아버지는 등에 소덕석을 쓰고 기어 올라오시면 소가 된 마음으로 소원을 들어 드리겠습니다." 라고 울면서 말했다.

 

딸이 허락한다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 아버지는 딸을 산 위로 보내고 자신은 소덕석을 쓰고 엉금엉금 소처럼 기어 산에 올랐다. "소처럼 기어서까지 나를 탐내시지는 않겠지'라는 일말의 희망으로 산위에 서 있던 옥녀는 엉금엉금 기어오는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하자 더 이상 어쩔 수 없음을 깨닫고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예쁜 옥녀의 모습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싸늘하게 죽고 말았으니,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버지는 울면서 용서를 빌었으나, 죽은 옥녀는 살아나지 않았다. 이후에 이 곳 사람들은 대례를 치러 보지 못하고 죽은 옥녀를 위로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행해지는 혼례식에는 대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으며, 옥녀가 죽은 산을 옥녀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김편국-사량도 구게시판-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는 옥녀로 다시 태어나

 

옥녀가 부친이 올라오시나 하고 조바심하고 서 있음직한 곳에 이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건가. 옥녀가 떨어졌을 법한 곳은 위험하다며 하산을 금지시켜 놓았다. 청계산을 비롯한 여러 산들이 옥녀라는 봉우리를 갖고 있다. 어떤 옥녀봉은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와 놀았다는 등 아름다운 일화들로 이루어졌는데 이 곳은 그렇게 애절하니 말이다. 바다가 검게 보인다. 마음따라 색도 변하는 모양이다.

 

뱀에 얽힌 사랑이 있고 이를 두고 사람들이 이 곳에서 사랑을 하면 끈이 끊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로 발전한 마당에 하필 욕정에 사로잡힌 부친 때문에 사랑도에서 사랑을 해보지도 못하고 지고 말았으니 더욱 아이러니칼한 사량도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사량도는 한편으로 옥녀(옥녀봉)가 다소곳이 앉아서 (금평 및 덕동 마을) 오동나무(동강의 桐)로 만든 칠현금 (하도의 칠현산:七弦山)을 타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단다. 그래서 비록 피지 못하고 진 옥녀는 지금도  미모의 모습에 현을 켜고 있어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단다. 그래서 계속 늘어나는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는 옥녀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옥동마을(앞) 뒤는 하도의 전경. 해협 건너에 덕동마을, 맨 왼쪽 입구에 금평리(지리망산의 주된 들머리) 

 

  황금색 낙조를 보는 행운도…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부지런히 하산해 도로에 내려서니 포구 선착장에 이미 대기하고 있는 유람선에서는 메가폰으로 빨리 뛰어오라고 법석이다. 아침 30분 늦어 그것을 연장해서 쓸 뿐인데...

 


 

                                                                               나를 기다리는 대항의 유람선

 

사량도 지리망산을 뒤로 하고 유람선에 들어섰다. 낙조에 황금색으로 물든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니 이 또한 황홀경 아닌가. 선내 한켠 좁은 공간에서는 트로트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며 흥을 돋우는 일행들이 꽤 된다. 사천 (삼천포)에 되돌아오니 5시 37분. 단체 급식 장소로 공원에 모였다. 미리 마련해 둔 횟감에 소주 한잔 기울이며 한 시간 가량 밥을 먹고 이 곳을 출발 (6:45) 집에 들어선 시각은 0시 35분. 무박 2일이 되고 만셈이다.

 


                                                            황금으로 도금한 저녁 하늘과 바다 (오후5:03:22)

 

 

 

대전-통영 고속도 완공으로 더욱 가까워지는 사량도

 

대전-통영 고속도로의 진주-통영(48.8km) 구간이 마지막으로 뚫리는 12월 중순부터는 통영에 도착시각이 빨라져 통영에서 사량도를 가는 사람들은 좀 더 시간을 단축할 것 같다. 1997년 사량도를 관광지로 개발하면서 지리망산에  철계단, 로프, 철 손잡이 등 안전 장치를 많이 해 놓아 섬 인구 2,300여 명에 주말 산행 및 행락객이 5-6,000명이라니 숫자만 봐도 남쪽 끝 하고도 섬인 이 곳의 인기도가 짐작이 간다.

 

그 이전에는 전문 산악인들만 다니다, 1박 2일 코스로, 3년 전 부터는 대전-통영 고속도로 중 대전-진주 구간이 뚫려 무박코스로 탈바꿈했고 이제는 시간이 모자라는 산행객들을 위해 오늘처럼 산악회에서 당일치기로 실어 나르기도 한다. 내년 이른 봄 다시 가서 또 다른 맛을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