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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I/C를 진출할 때부터 눈발이 흩날리더만, 얌전빼는 새색씨의 조용한 숨결같은 첫 눈이 하루 종일 살포시 내리는 가운데 금년의 첫 눈산행을 조계산에서 하게 되었다.


조계산행에 있어서 대부분의 산행인들은 선암사에서 시작하여 송광사까지 또는 송광사에서 선암사까지의 산행을 하면서 두 거대사찰의 보물이나 문화재 들을 둘러 보게 되지만, 오늘 편승한 산악회에서는 산행기점을 전남 순천시 주암면의 접치로 색다른 계획(입장료 절약 등)을 잡은 모양이다.
호남정맥 구간인 접치에서 산행을 시작할려면 승주I/C에 진출하여 광주 방면의 22번 국도를 10분 정도 타고 가면 된다.
선암사에서 선암굴목재(큰굴목재)를 경유하여 송광사까지는 여러번 산행을 해 본 경험이 있기에 또 다른 코스는 내게 약간의 흥미를 더 해 준다.

접치에서 장박골몬당까지는 약 7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고, 조계산 정상인 장군봉까지는 약 10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조계산도립공원

면적 27.4㎢. 조계산(884m)을 중심으로 선암사(仙巖寺)·송광사(松廣寺) 등을 포함하며, 1979년 12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노령산맥에서 갈라져나온 산줄기에 속하며, 산세가 수려하고 해양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따뜻하다. 관광의 중심인 송광사는 승보사찰(僧寶寺刹)로 유명하며 가람의 규모도 국내 유수이고, 뛰어난 문화재가 많아 문화재의 보고를 이룬다. 송광사의 개산 당시에는 송광산이라 하였는데 그 후의 개창(開創)과 더불어 조계종(曹溪宗)의 중흥 도량(道場)으로 삼으면서 조계산으로 바뀐 것이다.


 


 


 

조계산 정상에서 배바위까지는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고, 작은굴목재까지는 느린 걸음으로도 약 20분 정도이면 도달하게 된다.

도중에 쉬지않는다면 선암굴목이재(큰굴목재)까지는 여유있는 걸음으로 약 4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선암굴목이재(큰굴목재)에서 보리밥집까지는 약 10분 정도의 거리이다.

 


 


 


 

보리밥집이 있는 곳에서 송광굴목이재까지는 약 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고, 송광사까지는 약 9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송광굴목이재에서 송광사까지는 약 6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송광사 일주문[松廣寺一株門]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송광사가 소유·관리한다. 원기둥 2개에 보조기둥 2개를 세웠으며, 다포집 구조의 맞배지붕 형식을 취한다. 조선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균형이 잘 이루어져 있다. 원기둥은 민흘림기둥이며, 보조기둥에는 연화무늬가 조각되었으며, 외목도리(外目道里)를 받치고 있다.
주초는 덤벙주초이며, 기둥 위에는 창방(昌枋:대청 위 장여 밑에 대는 넓적한 도리)과 평방(平枋) 위에 공포를 두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기둥 앞뒤 면의 3출목과 앙설(仰舌)이 매우 화려하다. 원래의 위치는 현재의 위치에서 약 3㎞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1814년(순조 14) 송광사 앞 조계교(曹溪橋)가 있던 자리로 옮겼다. 이후 1944년 해광(海光)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의 현판은 1953년 주지 서암(瑞岩)이 세운 것이다. 현판에 적힌 사찰 이름을 ‘종남산 송광사(終南山松廣寺)’라 부르는 이유는 도의(道義)가 절터를 구하기 위해 남쪽으로 내려오다가 이곳에서 영천수(靈泉水)를 발견하고 큰 절을 세울 것을 결정한 후 더이상 남쪽으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에서 유래한다. 영천수를 받아둔 돌구유는 지금도 관음전 뒤편의 논 귀퉁이에 있다.


 


 


송광사[松廣寺]-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번지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잡은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양산 통도사(佛寶)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불리고 있다. 신라 말엽 혜린선사(慧璘禪師)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것을 시작으로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도, 참선의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승보사찰이 되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비롯한 16국사를 배출했다.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이 있고, 16 국사의 진영을  봉안하는 국사전 등의 국보3점을 비롯하여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 보물 13점, 천연기념물인 쌍 향수 등 국가문화재 17점과 지정 국사사리합 등 지방문화재 10점을 포함, 모두 27점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 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어 장엄한 기상을 나타내며,  각 전마다 피어오르는 향과 은은한 목탁 소리,  낭랑한 독경, 찬란한 고찰의 승맥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
그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비사리구시

비사리구시는 우선 크기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1742년 남원 세전골에 있었던 큰싸리나무가 쓰러지자 이것을 가공하여 만들었다고 전해지며 송광사 대중의 밥을 담아 두었던 것으로 쌀 7가마분(4천명분)의 밥을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조계산행에서 금년 겨울의 첫 눈을 맞이하게 되었었고, 그 소곤거리 듯이 예쁘게 내리던 눈들이 최근에 인연들을 멀리 해 버린 홀가분한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것만 같아서 더 할 수 없는 마음의 평온함을 느끼게 된 산행이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