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바쁨으로 락산님과 함께 계획한 지리산 종주계획이 무산되어지고
    락산님 홀로 지리산의 뱀사골산장과 장터목 산장을 거쳐 중산리로 하산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고 덕유산 종주계획이 남아 있음을 알기에 마음이 절로 바빠진다.

     

    무진장이라는 단어를 탄생케한 덕유산,
    남부 내륙에 속해 있음에도 서해의 습한 기온으로 폭설이 잦던 무주.진안.장수의
    지명이 탄생시킨 단어가 무진장의 어원이다.

     

    함양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기도 전에 창밖에서 손 흔드는 락산님의 표정이 해맑다.
    해맑다..나이 어린 놈이 어른에게 표현하기엔 욕먹을 말이지만
    나는 감히 환갑을 맞이한 락산형님을 이리 표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일행을 맞이하며 손흔드는 락산형님의 표정은
    어떤 사심도 모르는 어린아이들의 해맑은 반가움 그 자체이다.

     

    영각사로 향하는 시골 완행버스에 13:00에 오른다.
    심산의 주변에서 땅을 갈구는 전형적인 농촌의 전경과
    깊이 패인 촌로들의 주름살이 다감하게 건네오는 말속에 가슴 깊이 박혀온다.

     

    영각사매표소에서 산행준비를 마치니 14:30분,
    덕유종주..그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어 본다.

     

    12월 년말에 덕유의 설산을 사진찍기위해 사진작가 몇과 동행하여
    곤도라를 이용해 가벼운 산행을 하였지만 내가 바라는 산행은 아니었다.
    그랬기에 오늘 내딛는 이 발걸음에 더욱 마음 설레이는지 모른다.

     

    눈밭이다.
    년말 이후로 눈이 온바 없는데도 설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덕유가 가진 그대로의 모습이다.

     

    남덕유정상을 향한 공포의 철계단이 나타나니 칼바람 또한 거세다
    철계단 중턱에 거대 콘크리트 교각이 있는거로 보아 구름다리를 설치하려다가
    덕유의 거센 칼바람에 구름다리를 포기하고 철계단으로 대체한 듯하다.

     

    남덕유산 정상에 있는 참샘은 내 고향 진주에 있는 남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남덕유산은 남강 뿐만 아니라 금강, 낙동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거센 칼바람을 뚫고 올라선 남덕유정상에서 바라본 조망은
    사방 막힘 없이 시원하다.
    멀리 지리산 천왕봉과 반야봉 가야산의 산그리메
    가까이는 금원.기백.황석.거망.월봉.할미.깃대.백운.운장등
    지리산, 설악산에서 바라보는 산그리메와는 또 다른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이다.
    이 산그리메는 향적봉에 도달하는 그 순간까지
    스스로 숨쉬고 스스로 성장.변화하며 일행들의 탄성을 자아내게 할 것이다.

     

    남덕유를 지나 월성재로 향하니
    육십령에서 할미봉.서봉을 거치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합류되어진다.

     

    삿갓봉으로 향하는 산길 또한 온통 눈밭이다.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온 락산님의 발걸음이 그 언제보다 경쾌하다.
    백두대간을 종주한 찔레님이야 그러하다 하더라도 예린님이 이런 속보로
    일행을 따라 붙히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가끔 뒤돌아 보노라면 조금의 지침도 없이 꼭 그만큼의 거리를 유지하며
    산행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삿갓봉을 지나 삿갓재대피소로 향하며 오랫만에 종주산행에 나서서
    베냥을 꽉채운 그 무게감과 11월,12월 들어 일상의 바쁨으로 산행을 게을리한
    탓인지 일행중 내가 제일 먼저 지침을 느낀다.


    해는 이미 심산을 벗어나 렌턴을 밝힌지 오래..
    덕유의 칼바람과 어둠에 맞서 눈길을 걷는 뽀~드득 거리는 소리에 의지하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피곤함이 엄습해오는 순간, 삿갓재대피소의 불빛이 아른거린다.
    가파른 경사길을 걸어 내려서다가 일순 주저 앉아 버렸다
    눈썰매를 타기에는 안성마춤이다.
    야~~~~~호..... 신명이 난다.

     

    삿갓재대피소..산천 명산을 두루 답사하신 락산님의 말씀에 따르면
    삿갓재대피소만큼 좋은 여건을 갖춘 산장은 없다고 칭찬이 대단하시다.
    산장에 도달하니 19:30분경을 지나고 있었다.

     

    산에서 만나지는 이들은 정겹다.
    산장에 도착하기 까지 약 두어시간을 매서운 칼바람과 맞서며 야간산행으로
    달려온지라 온몸이 얼은 상태에서 산장의 취사실로 들어서니 식사중이던
    한무리의 산객들이 뜨거운 국물과 고기를 아낌없이 나눈다.
    우리 일행 또한 산에서 만나지는 산객들에게 그런 배려를 아끼지 않을 이들이기에
    그들이 건네주는 그 배려를 사양없이 그저 감사함으로 받아든다.
    사람과 사람이 자연앞에서 만나졌을때 겸허하고 순수함을 잃지 않는다는 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중의 하나가 아닐까 싶다.

     

    산길을 걷던중 분실한 찔레님의 휴대폰..
    그 휴대폰을 찾아 22:00를 넘겨 눈썰매를 타고 내려왔던 길을 더듬어본다.
    비록 분실한 휴대폰을 찾진 못했지만 또 한번 눈썰매를 타며 동심의 세계로 빠져본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은 몇개나 될까..
    일상에서 보이지 않던 별들이 여기선 더욱 유난스럽게 반짝인다.
    모두 잠든 새벽 04:20분경에 잠에서 깨어 산장 주위를 어슬렁거려본다.
    덕유의 밤하늘에 그 빛을 발하고 있는 별들을 한참의 시간을 헤아려보다가
    다시 모포속으로 몸을 감추며 상념의 시간을 가진다.

     

    무룡산에서 일출을 보리라던 계획을 뒤로 접고 아침식사 시간을
    느긋하게 가지며 삿갓재대피소를 벗어나니 08:00를 알리고 있다.

     

    눈밭길의 뽀드득임, 아침 햇살에 반사되어져 눈부시게 하는 눈꽃의 장관
    능선 사면엔 맑은 아침햇살이 황금빛으로 비치고 있다.
    나아가야할 길, 지나온 길 어디를 둘러보아도 너울거리며 스스로 살아움직이는
    능선들이 춤을 춘다. 달리 표현할 단어를 찾질 못한다. 장관이다.

     

    오늘이 소한이건만...
    날씨가 또 왜 이리 쾌청한 것인지요.
    땅엔 순백한 하이얀 백설
    하늘엔 청명하기 그지 없는 파아란 물감을 칠해 놓은 듯 하고
    눈부신 햇살에 부딪는 설화들..


    동엽령을 지나니 여럿무리의 단체 산객들을 만나게된다.
    덕유산을 당일로 찾는 산객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인지라 지나온 길에서는
    거의 산객들을 만나지 못했는데 이젠 제법 시끌법적하다.

     

    덕유평전을 지나 중봉을 오른다.
    남덕유산에서는 동남으로 뻗은 월봉, 금원, 기백산이 조망되면서
    전망은 호방하고 능선의 경관은 수려하더니
    중봉이 가까워지자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도 기름진 산간평야로 주목한
    무주군 안성면 일대와 장계면일대의 평야지대와 거창군 위천면의 평야지대가
    조망되어지면서 편안함을 안겨준다.
    중봉서 덕유평전-동엽령-무룡산-남덕유를 잇는 덕유산 능선을 바라보면
    가슴이 트이는 듯한 너무도 넓은 조망앞에 말문이 막혀버린다.
    덕유평전의 드넓은 초원이 있어 더욱 덕유의 능선이 아름다운거 아닐까 싶다.
    평전에서 퍼진 능선은 다시 누에처럼 구불거리며 마치
    천왕봉-반야봉 능선을 향하여 서서히 움직여 가는 것 같다.

     

     

    누에의 꿈을 꾸며,
    아~~ ! 어찌 시 한수 터지지 않어랴..

     

     

    허물..


    살면서
    각인된 기억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은

     

    아물지 않는 상처 하나가
    늘었다는 것.


    구더기 처럼도 살고
    때로는 하루살이 처럼도 살고..


    존재는 그런 것이다.


    나비가 되는 꿈을 꾸는
    구더기 같은 것이다.


    허물을 벗는 순간에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임을 자각하는
    구더기 같은 것이다.


    존재는 그런 것이다.

     

     

    향적봉을 향해 중봉을 내려서면 고산지대의 아름다움이 한껏 빛을 발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한다는 구상나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산다는 주목..
    눈덮힌 설산에서 철쭉 만발하는 옷으로 갈아 입을 무렵
    내 어찌 너를 그리워 하며 몸살 앓지 않어랴..

     

    남덕유에서 계속되어 조망되던 향적봉이 드디어 손에 잡힌다.
    영각사에서부터 20키로여를 달려온 덕유종주는 향적봉 너가 있기에,
    너를 안는 순간 그 모든 피곤함이 씻어지기에..
    비록 문명의 이기로 인해 너의 머리가 벌거숭이 되어버렸지만
    너를 찾아주는 산객들을 안아주는 너의 마음은
    산맥이 형성되던 그 순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또 닳고 닳아 평야가 되는 그 순간까지 변함없기에..

     


    산은,
    내게 있어서 산은,
    비움이다.

     

    구지 애써서 비워려 하지 않아도

    산에 들어 산길을 따르다보면
    절로 비워진다.

     

    산은,
    내게 있어서 산은,
    채움이다.

     

    모든걸 비웠다고 믿었는데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산을 내려서면

    나도 알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나를 가득채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그것을

    산이 주는 선물이라고 믿고 있다.
    나는 비우고 비워진 내게

    산은 채우고...

     


    향적봉을 내려서서 백련사로 향한다.
    백련사에서 삼공리매표소까지의 지루한 길임을 알고 있지만
    종주산행의 의미를 문명의 이기인 곤도라에 의지하여 퇴색시킬 순 없다.

     

    백련사를 지나 삼공리매표소를 향하는 길은
    무주구천동계곡의 가장 상류지역에서의 탐방이 되는 것이다.


    구천동이 가진 33경..
    향적봉은 그 33경의 마지막 절경인 33경으로 이름하고 있다.
    33으로 숫자를 맞춘 것은 3*3=9이니 구천동이요,
    수리상으로 33은 길한 수이기 때문이라 한다.

     

    삼공리 매표소에 도착하니 16:00
    영각사에서 시작한 덕유종주산행은 삼공리매표소에서 마침을 한 것이다.

     


    약 27키로미터, 13시간에 걸친 덕유종주산행,

     


    새해 1월 1일 지리산 반석에서 출발하여 2박3일의 일정으로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함양에서 합류하여 덕유산 종주산행을
    인도하신 락산님,

     

    그 어떤 훌륭한 미사려구를 사용한다 하더라도 그 인품에는
    미치지 못하는 오히려 칭찬이 더 어색할 것 같은 찔레님,

     

    종주내내 한치의 발걸음도 흩어짐없이 철저한 자기관리로
    자신감 넘치는 자신의 독특한 향내를 물씬 풍겨내던 예린님,

     


    그들이 있어,
    나의 산행길은 너무도 행.복.했.습.니.다.

     

     


    백련사에서 삼공리매표소로 향하는 무주구천동계곡의 맨 상류 계곡입니다.
    이 길을 따라 약 27키로미터 13시간의 종주산행을 마감하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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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ONT color=green>Dana Winner <B> ' Hopeloos En Verlo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