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31

당신과 만남은 내 생애 최고의 선물이었다오.

 


 


 

  당신은 나의 동반자, 영원한 나의 동반자,

  내 생에 최고의 선물, 당신과 만남이었어,
 

  잘살고 못사는 건, 타고난 팔자지만,

  당신만을 사랑해요, 영원한 동반자여.
 

 가수 태진아의 ‘동반자’ 노랫말이다. 재작년 아웃사이드를 맴돌면서 일년 동안 연수(硏修)를 받을 때는 ‘바보’라는 노래를 좋아했었다. 그러나 직장에 복귀하여 제자리를 잡아가니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유행가처럼 마음의 변화가 있었는지 근래에는 이 노래를 무척 좋아하게 되었다. 가사가 단순하지만 의미가 있고 쉽게 부를 수 있기 때문일까? 아무튼 회식이 끝나고 간혹 뒤풀이로 노래방에 가면 십팔번이 동반자다.
 

 얼마 전, 모처럼 아내와 동행하려던 동유럽 여행을 여러 가지 이유로 어쩔 수 없이 혼자서 다녀왔다. 함께하지 못한 미안스러움을 달려주려고 노래방에 가서 손을 꼭 잡고 이 노래를 불러주었더니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 큰돈들이지 않고 반려자에게 점수를 딸 수 있는 비결이 바로 이것이구나 뒤늦게야 알아차렸다.
 

 자신의 여정을 꾸려가면서 보다 값진 삶의 가치를 일궈내려면 누군가와 동반자적 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한다. 그 대상이 사람이거나 아니면 절대 권능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신(神)이거나 사람마다 생김새가 다르듯 각양각색일 것이다. 이런 파트너가 없다면 세상살이가 얼마나 공허하고 팍팍할까 생각만 해도 끔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 동반자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누가 뭐래도 나의 동반자는 아내와 산(山)이라고 생각한다. 한반도 끄트머리에 자리한 두륜산자락에서 태어나 뒷동산을 놀이터 삼아 자라왔기에, 산에 대한 애착심이 어릴 적부터 싹텄는지 철이 들어서도 늘 산을 곁에 두고 지내오면서 그 품에 안기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래서 산에 대한 집념이 누구보다 강한지 모르겠다.
 

 산은 언제나 듬직하게 큰 품으로 감싸줘 지친 마음을 추슬러 편안함을 안겨주고, 오만에 사로잡혀 겸손함을 잃어버리고 잘난 채 우쭐댈 때는 지엄하게 꾸짖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설 수 있는 지혜를 길러주었다. 그러므로 항상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숙연한 자세로 산행에 임하고 있다.
 

 요즘 골프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흔희들 너무 재밌어 그것이 문제라고 말할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다. 이런 세태에 낙오되지 않으려고 연습에 치중해 왔지만 운동신경이 둔해서 그런지 산행처럼 가슴에 와 닿지 않아 자꾸만 산으로 쏘다니므로 지인들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산이 좋을걸 어찌하란 말인가.
 

 오늘이 을유년 구랍(舊臘)이다. 지난 일을 반추하면서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려는 다짐의 시각이 서서히 다가온다. 참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던 다사다난했던 한해였다. 아쉬움도 무척 많았지만 서울에서 외톨이로 나뒹구는 아들놈을 짝지어주는 인륜대사를 치러내는 뜻 깊은 일도 있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볼 수 없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해넘이로 마무리하려고 느지막하게 무등산으로 간다. 한 달 동안 오락가락한 폭설로 아직도 설원을 이루고 있다. 이런 풍취를 쉽게 느낄 수 없기에 벅찬 희열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이렇게 산과의 만남은 심화(心火)를 다스리는데 더할 나위 없는 처방이기에 그 품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입석대에 올라서 가슴에 쌓인 응어리를 훌훌 털어버리니 한결 후련해진다. 우람한 돌기둥들은 언제나 의연함을 잃지 않고 서기(瑞氣)를 뿜어내기에 이곳에 서면 알 수 없는 힘이 솟구쳐 오른다. 억겁의 혼으로 다져진 바윗돌처럼 변치 않는 믿음이 동반자적 관계를 지탱하는 버팀목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신뢰를 쌓아가는 것은 많은 노력과 상당한 시일이 요구되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므로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뽐내기보다는 똑바로 바라보려고 애쓰고, 말하기보다는 들으려고 귀를 기울이고,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뭔가를 배우려고 노력하고, 성가시게 굴어 귀찮게 하기보다는 자상하게 대해 안온함으로 감싸주고, 잘못을 꼬집기보다는 칭찬에 인식하지 않는 처신(處身)들이 동반자와 동행을 지속할 수 있는 요소(要素)일 것이다.
 

 서석대에 올라가보니 그토록 신비스럽던 상고대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앙상한 나목들의 신음소리만이 적막감을 일깨워준다. 머지않아 또 다른 계절의 향연을 멋들어지게 펼쳐내기 위해 인고의 나날을 벌거숭이로 버텨내면서 삭풍에 떨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에서 희망의 싹을 찾는다.
 

 중봉을 거쳐 동화사터에 다다르니 올해를 마감하는 저녁놀을 펼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아쉬움 속으로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러나 지는 해는 반드시 떠오르는 것이 자연의 섭리다. 그러므로 오늘은 울지만 내일은 웃으리라는 희망의 불씨를 지피려면 동반자적 관계를 굳건하게 다져나가야 할 것이다.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는 동반자가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흐뭇해지기 때문이다.
 

 맨 나중이지만 맨 처음의 시발점인 섣달그믐이다. 떠나보내는 서운함보다 다가오는 희망에 더 많은 기대를 걸기 때문일까? 적지 않은 시간을 산과의 만남을 이뤘음에도 지치지 않고 오히려 흥에 겨워 콧노래가 흥얼거려진다. 병술년(丙戌年)에는 동반자와 더불어 더 알차고 보람찬 나날을 엮어나가리라 각오를 다지면서 점점 어둠이 밀려오는 산길을 내려온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