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유년 한해가 또 속절없이 흘러 갔다.
상갓재 개로 불리던 운현궁의 파락호 흥선군이 세모를 당하면 늘상
긴한숨 짜른 탄식 끝에 내뱉었다는 말.
'그려.  그래도 세월은 가는구먼..'
얘기가 나온김에  대원군의 은혜갚음 일화 한편을 볼작시면  대원군이
득세하기전  안김의  서슬을 피해 목숨을 구할 요량으로 스스로 궁도령
상갓집 개로 행세하며 휘하의 무뢰배 천하장안을 이끌고 장안을 힁행
했는데  그 오만불손 방자함이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기탄이 없었다니
가히 위장술엔 육갑자의 내공을 지닌  천재적 카멜레온 이였나보다.


이런 대원군이 연말을 맞아 굶주림에 허덕이는 식구들을 보다못해 홍종응
대감댁에 구걸을 갔었는데  동냥은 커녕  되려 하인놈에게 폭행까지 당하는
수모를 겪은 겄이다. 
아무리 실세에서 밀려나 숨죽이는 거지 신세이기는 하나 명색이 왕족인데
하인놈에게 매타작을 흠씬 대접 받았으니 그 비분함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별수없이 전에도 여러번 신세진 적이 있는 서강 쌀장수 이천일을 찾았는데
이천일은 불알 두쪽만 데그럭 거리는 불상놈이였으나 치부에 탁월한 재능이
있어 홍경래의 군자금을 담당한 가산 거부 이희저 만큼이나 엄청남 부를
이룬 자였다.


이천일은 홍대감 하인놈에게 당한 폭행으로 피가 흐르는 흥선군을 손수
더운물로 씻겨 약을 바르고는 상처를 처매었다. 
민망한 흥선이 더듬더듬,
"내 세모를  당하매 또 살길이 막연하여  염치불구 찾았으이."
"아따, 그러면 물건을 보내라는 패지 한장이면 족하지 이렇듯 봉변 당하며
 오신단 말입니까?"
천일이 파락호의 비참한 심정을 덮어주며 위로한후 다음날 일년은 족히
행세할 양식이며 남초(담배) 땔감을 바리바리  운현궁으로 보내주니
당시 대원군은 한참이나 혼잣말로 중얼거렸다한다.
'하늘이 나를도와 성공한다면 제일 먼저 천일의 은혜를 생갈할겄이다'


불과 일년뒤 개똥이가 소년왕으로 등극하자 대원군은 천일에게 경상감사
보다 수입이 좋다는 선혜청 고직에 임명함으로써 은혜 갚음을 하고있다.
또 기생집에서 술먹고 주정하다 당시 금군별장 이장렴에게 왕실의 체통을
훼손했다하여 뺨까지 맞은일이 있는데 그러나 대원군은 장렴의 기개를
사랑하여 금위대장으로  삼으니 세상 사람들이 대원군의 통큰 처세에
모두들 할말을 잃었다 전한다.
작금에 서민들의 시세가 삼청 냉돌방에 게트림하는 득세전의 대원군의
신세와 유사해  우리 서민들에게도 새해는 희망과  빛이 와 닿길 바라는
염원 간절하여 두어마디 주절거려 보았다.


구랍 31일.  양력 섣달 그믐..
제발 올해는 술좀 작작하고 아이들과 신년 타종에 희망도 빌고  새해
아침엔 자빠지면 코깨지는 황매산에 해맞이나 가자는 곁의 서슬퍼런
닥달에  끽소리 못하고 찌그러진다.
까짓거 미운놈 떡하나 더주고 죽은놈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사람 소원이야
싶어 그러마 하고 선선히 응낙을 한다.
내친김에 아예 화로에 붙은 엿처럼 방구들에 끈끈히 박힐 요량으로 미모의
비디오 이모가 골라주는 야시시 두어편도 챙겨 놓았것다.


구들막에 뜨끈 뜨끈  *알을 녹이며 모처럼 가장 꼴값을 하느라 같잖은
고달이 제법 준수한데 무얼 기대하는지 곁또한 피둥피둥한 궁둥이를 두르며
정줏간을 들락 거리는 품이 산해진미 십이첩 반상은 따놓은 당상이렸다.
석식후에 퇴침에 기대어 째보 엿가락 물디끼 장죽  비스듬히 끼고는 무주공산에
만산편야한 설경을 감상하며 희짜를 뽑는데 덕진풍이 몸을꼬며 콧소리로
쌍급주를 아뢴다.
때마침 곁은 설겆이 중이고 두예삐는 지들방에서 무슨  작당을 하는지 종적이
묘연해 별수없이 객이 게트림을 물고는 화색을 곱게하여 폰을 드니 거지 쪽박
깨지는 소리가 귓청을 파고든다.


"행님인교?"
점소 시리즈로 유명한 후배 점*이 놈이다.
"우얀일고"
" 자세히 알라카지 말고 여 홀딱 벗고 주점인디 퍼뜩 오소마 '  철커덕..
벌써 목소리에 주기가 확연해  전작이 만만찮음을 어렵잖이 짐작케한다.
갑자기 쏟아지는 시름과 고민하다 입가심으로 딱 한잔만 하고 오자는데
스스로 합의를 보고는 메기 잔등에 뱀장어 타 넘디끼  홀딱 벗고로  장달음을
놓는다.


일체 유심조 ..  그러나,
딱 한잔만 하겠다는 일념은 스스로 제몸을 태워 죽이는 부나방처럼  끝간데
없이 수렁으로 빠져들고, 비몽사몽 겨우 정신을 차리니 다들 어디가고 객혼자
'그대 떠난 술집에 서서'  외로이 떨고있다.  이런 젠장할..
노둔한 말이 콩을 더 밝히고 개가 똥을 마다하랴 만은,과유불급의 악성
죄질은 곁의 용서가 힘들어 당분간은 냉기 썰렁한 집안에서 상추밭에 똥싼
개가되어  눈치밥을 부지하세월로 죽여야 되니,아니 그래도 혹독한 추위에
가일층 한심한 처지가 아닐수 없더라.


신년 마지막 휴일만은 방콕에서 구들막 장군으로 보낼수 없어, 곁의 서릿발
이는 시선에 압기되어 겨우겨우 김밥 두어줄에 물한병 달랑 챙겨 무망 선배가
오신다는 매화산으로 줄행랑을 놓는다.
늙은들에서  무망 선배님과  조우해 오랜만의 해후를 서로 반기며 한다리로
청량사로 몰려간다.
이번 산행에는 달구벌의 산사사 회원님들 중 최고의 재원들이 함께 해 더욱이나
빛이난다.


전라 충청엔 하늘에서 눈보따리가 터져 그 막심한 피해로 아니그래도 갈곳
잃은 농민들의 피를 말린다는데  여기 경상도앤 어쩐 일인지 흔한 싸락눈
한방울 나리지 않아 날씨 조차 요즘 한창 줒가가 올라 회자되고있는 부익부
빈익빈의 논리 적용이 과히 유쾌하지만은 않다.
청량사를 오른편으로 두고 오르는 길은 동안의 가뭄을 말해 주듯 먼지가
풀썩 풀썩 일어 자연 소죽은 귀신 씌인놈 마냥 자연 걸음이 늦어진다.
계곡을 깊숙히 따라 오르는 길은 오른편 사면으로 급각히 꺾어들며 나무
계단이 잘 정비된 된비알로 이어져 제법 땀품을 들이게 한다.


기십번을 오르던 길인지라 눈감고도 밟을 수 있는 정겨운 등로이지만 워낙이
코스가 짧은 탓에 칼바람을 친구 삼아 애끼고 애끼며 걷는다.
또한 같이 산행하는 달구벌의 산사사 님들의 팀칼러도 번갯불에 콩궈먹듯
독보적인 주력을 자랑하는 철각들의 모임이 아니라 완월장취에 느림의 미학을
강조하는 여유로운 팀이다보니 객과도 죽이 잘 맞아  과부 문고리에 끼인
홀애비 뭐 처럼 유유상종이다.
달포나 산행이 전무했던 터수인지라 금새 당학 두어죽을 앓는 놈처럼 숨이
가빠오고 다리가 뻐근해져 뒤꽁무니에  쳐져서는 저혼자 씨근벌떡이며
천방지축 헉헉대는 발길이 점입가경으로 가관이다.


난체하기 좋아하는 객이 자신도 잘 모르는 즐비한  기암괴석에 일련 번호가
있어 절대 반출이 안된다며 정색을 하고  말도 안되는 사기를 치자 산사사님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애매한 염화미소로 답할 뿐이더라.
절경 한구비를 올라서니 먼첨 가야산이 중중함이 거대하고  두구비를 올라서니
단지,수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또한 아름다워 보기에 좋다
갈수록 험해지는 길에 흰비단을 찢어 서로 동여 매고는 정상으로  동아리져
나서니 덕유의 새하얀 설경이 폐부를 가르며 시원히 와 닿는다.


모다들 정상주를 표주박에 나눠 마시며 신년을 서로서로 하례하며 즐기는데
티끌하나 없는 하늘은 무한한 축복을 내려주듯 사방 수백리의 막힘없는 조망을
선사해  찬탄이 절로 일더라.
문득  두에삐들과 집에 있을 곁이 생각나 덕진풍을 뽑았으나 통화권 이탈이란
게으른 대답만이 공허하다.
올 한해에도 곁과 두예삐의 건강을 빌고는 내려서는 산님들의 뒤를 따라 병술년
신년 산행을  가름한다.   
천천히 걷노라 하였건만 해는 아직 중천이고  되시근하게 여기는 산님들의 웃음
소리는  돼지골을 타고 골짜기로 메아리쳐 가더라.


한국의 산하 가족및 산바위 회워님들의  가정에 행복과  건강 깃들기를 바라며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2006년 1월 3일.    난테    진맹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