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성산 새해맞이 산행기 (060101)

                  

   오늘은 2006년 1월 1일, 새해 첫날이다. 요즘에는 음력 1월 1일인 설날을 명절이라 하지만 역시 태양력을 중심으로 교육받고 자란 우리들에게는 양력 1월 1일이 새해로 느껴진다. 어제 천안에 있는 태조산에서 세밑 산행을 한 우리는 새해 첫날을 맞이하여 나라와 민족의 무궁한 발전과 남북이 하나 되고 개인의 소망을 기원하는 제2회 독립기념관 해맞이 행사가 흑성산(黑城山) 정상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듣고 이 행사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흑성산은 차령산맥의 줄기를 이루는 충남 천안시 목천면에 있는 높이 519m의 구릉성 산이다. 본래 이름은 검은성(儉銀城)으로 산정에는 둘레 739보(步)인 흑성산성터가 있고, 6·25전쟁 때 산정까지 군용도로를 개설한 이래 정상에는 군사시설과 방송시설, 텔레비전 중계소 등이 들어서 있다.


   산성 바로 아래 기슭에 1983년 8월 15일 독립기념관이 건립되었는데, 이는 동쪽의 병천면에 3·1운동의 한 본거지였던 유관순 기념사당이 있어 독립운동과 관계된 곳이라는 점과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고 지형이 평탄한 넓은 땅이 있다는 입지조건을 고려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새벽 4시에 어젯밤 각자 맞춰놓고 잠들었던 핸드폰 소리에 잠이 깬다. 대충 준비를 마친 다음, 겹겹이 중무장을 한 채 집을 나선 시간이 새벽 4시 30분이다. 출발할 때 잠깐 하늘에 별들이 반짝반짝하여 오늘은 진정한 해(年)맞이와 해(日)맞이를 함께 할 수 있겠다는 기대로 설레인다. 차에 올라타 출발하는 순간 졸음이 쏟아져 잠 속에 빠져 들었다가 깨어보니 벌써 독립기념관 주차장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새벽 5시 25분쯤 되었을까? 사방은 여전히 어둠에 잠겨 있는데 독립기념관에는 군데군데 불이 밝혀져 있고, 벌써 도착한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서있는 것이 보인다. 대전에서 출발할 때는 별들이 반짝이던 하늘인데 어느 샌가 별들이 사라지고 없다. 혹여 맑은 곳에서 흐린 곳을 찾아 이동해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실망감이 엄습한다. 

  

   어쨌든 우리는 집결장소인 매표소 앞으로 갔다. 집결시간인 5시 40분이 다가왔지만 참석인원은 100여명 정도로 그다지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 주최 측에서 나온 분께서 작년에는 1,000여명이나 참석하여 올해는 행사가 끝나면 참석자들에게 주려고 떡국을 600인분이나 마련해 두었는데 날씨 탓인지 인원이 적다면서 걱정을 하신다. 그런 걱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곧 식전 행사인 풍물놀이가 시작된다. 제법 탁월한 실력을 갖춘 풍물패로 여러 가지 고난이도의 풍물놀이를 차례로 보여준다. 날씨가 추워 제대로 호응을 못해주는 것이 사뭇 미안할 정도로 열심히, 그리고 신명나게 놀이를 한다.


  (새해 첫날 독립기념관 입구에서 본 신명난 풍물놀이)

  

   풍물놀이가 끝나고 놀이패와 함께 안내인을 따라 독립기념관을 지나 흑성산 정상에서 깜박이는 TV 중계소의 불빛을 향해 산행을 시작한다. 한참을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타고 걸어 올라간다. 사위는 깜깜하지만 사람들이 들고 있는 랜턴 불빛과 간혹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이 쌓인 눈에 반사되어 그다지 어둡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른 해 같으면 이불 속에서 여전히 꿈나라를 헤매고 있었던 이 시간에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낯모르는 산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이 충만감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풍물패는 사람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조용한 가운데 사람들 발자국 소리만 들으면서 1km쯤 갔을까? 정상의 불빛이 어느 정도 가까워졌다고 느껴질 즈음 어떤 분이 이제 아이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안내를 한다. 아마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산길로 접어드는 모양이다. 모두 아이젠을 하고 산길로 접어드니 처음에는 눈이 없어 공연히 아이젠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어느덧 갑자기 제법 눈이 많이 쌓인 길이 나타난다. 밤이고, 사람들이 줄지어 가는 터라 그 경사도를 잘 알지 못하겠지만 속도가 꽤 준 것을 보아서 제법 경사가 있는 길인 것 같다.


   그렇게 또 눈길을 500여m 올라가니 이제 눈은 없어지고 흙길인데, 갑자기 허벅지가 천근만근처럼 무겁게 느껴진다. 한걸음 한걸음이 정말 고통이다. 경사가 더욱 급해진 것이다. 참을 수 없어 아이젠을 벗어들고 올라가 보지만 속도는 여전히 느리고 숨은 걷잡을 수 없이 거칠어만 진다. 그렇게 300여m를 가니 다시 아스팔트길이 나타난다. 그 아스팔트길은 눈으로 가득하지만 다행이 그다지 미끄럽지는 않아 아이젠 없이 올라가는 데 무리가 없다.


   벌써 정상 부근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방송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음악소리까지 들려온다. 하늘은 흐릿하지만 혹시 그 사이에 구름이 걷혀 일출이라도 있게 되면 이를 놓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밀려온다. 마음은 바빠도 다리는 무거워 겨우겨우 한 걸음씩 걸어 드디어 정상의 흑성문에 도착한다. 흑성문은 독립기념관의 위용과 어울리게 수원화성을 본 따 만들었다고 하며 흑성산의 이름과 맞추기 위하여 제주도에서 검은 돌을 운반하여 그 재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평소에는 출입금지 지역이라 닫혀져 있다는 흑성문이 오늘은 활짝 열려 있다. 정상에 있는 방송국 시설들도 모두 조선시대 풍으로 예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담장도 성벽의 형상을 하고 있고, 노대 등의 옛 군사시설의 모습도 보인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산 아래에 펼쳐진 독립기념관이 새벽빛에 깨어나는 모습도 관망한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 웅장한 독립기념관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오면서 민족의 웅비를 기원하는 마음이 저절로 솟아난다.

  

 (흑성산 정상)

 

   이곳에서 바라보니 독립기념관 자리가 정말 명당인 것을 알겠다. 원래 이곳은 금계포란형(金鷄包卵形), 즉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명당의 길지라 하였고, 그래서 암행어사로 유명한 박문수가 돌아가셨을 때에도 자손들이 그 묘를 이곳 흑성산에 모시려고 하였는데 지관이 이곳은 200년~300년 쯤 후에 따로 크게 쓰일 자리이고 그렇게 되면 이장을 해야 하니 차라리 가까운 은석산에 모시라고 하여 박문수의 묘를 은석산에 모셨다는 이야기까지 전해오고 있다. 또한 이 부근에서 명당의 기운을 받았는지 유관순, 김시민, 박문수, 김좌진, 이동녕, 이범석 등 많은 구국열사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정상에 올라보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사람들이 서너 배는 늘어나 있다. 커피도 무료로 한 잔씩 나누어 주고, 소원성취라고 적혀있는 풍선도 하나씩 나누어 준다. 정상에는 돼지 머리와 과일 등을 갖춘 제상이 차려져 있고, 사모관대를 갖추어 입은 한국산악회 천안지부 임원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국태민안 등의 말들이 귀에 들어온다. 독립기념관 관장 등의 축사가 이어지고, 만세삼창을 한 다음, 풍선날리기를 하였다. 우리는 끝없이 미망의 세계에 빠져 있는 우리 큰아들을 위하여 소원을 빌었다. 부디 새해에는 정신 차려서 제대로 공부에 정진하기를, 한 번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는 학생시절에 정말 나중에 후회 없이 공부해 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공부에 집중하기를. 이것은 단순히 뛰어난 성적을 발휘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기 할 일을 열심히 하기를 기원하는 것일 뿐.


   한 쪽 하늘에서는 이 새벽에 패러글라이더 하나가 유유히 날면서 새해를 축복하고 있다. 그러나 하늘은 끝내 낮게 내려앉은 구름으로 우리에게 해를 보여주지 않는다.

  

   행사가 끝나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온다. 올라갈 때는 깜깜해서 잘 모르겠더니 경사가 굉장하다. 우리가 이런 길을 올라왔다니. 남편은 그래서 야간 산행이 덜 어렵다고 한다. 잘 안보여서. 덜덜 떨면서 경사진 눈길을 돌아 내려온다. 그리고 아스팔트길. 이곳에서 정상까지 1,050m라는,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던 안내판이 보인다. 아스팔트길 중간쯤에서 안내인이 중앙식당으로 가서 떡국을 먹고 가라고 안내를 한다. 겨레의 집을 지나 중앙식당으로 가니 넓은 식당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한 자리 차지하고 떡국 한 그릇을 먹는다. 이렇게 많은 사람과 떡국을 나누어 먹었으니 복도 많이 나누어 받을 것 같다.

 

 (흑성산과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독립기념관을 걸어 나오면서 뒤돌아보니 이름처럼 검게 보이는 흑성산의 정중앙을 차지하고 앉은 겨레의 집이 보인다. 저 웅장한 집처럼 우리 민족이 웅비하기를 빌면서, 비록 오늘 일출을 보지 못하였지만 어쩐지 올해 신년은 개인적이고 사소하지 않은 거시적이고 민족적인 출발을 한 듯하여 마음이 뿌듯하기만 하다.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소망을 이루고, 항상 행복이 가득하기를 다시 한 번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