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산-운문산 : 야영과 운무의 산행기

 

2004년 9월 4일 저녁부터 5일 한낮까지

산거북이 그리고 산친구 H와 C

 

운문령-귀바위-상운산-쌀바위(비박)

아랫재-운문산-상운암-석골사

 

 

 

<약속 이행>

 

작년 가을의 억새산행 때. 취서-신불-간월-배내로 이어지는 영남알프스 구경을 하면서 산친구들과 소망을 하나 품었다.

일년이 채 안되어 두어번의 연기 끝에 마침내 시간을 맞추어 가지산릉에서 이른 가을밤을 지내고 아침산행을 하자하였

다. 그러니까 그건 내가 시도해보고 있는 야영의 범주에 속한다.

 

비록 나를 포함해 세 사람이지만, 나는 개인용 비박텐트를 준 비했고 모든 준비는 각자 알아서 하는 식이다. 근무시간을

줄이고 접선장소에 나가보니 짐들이 보통 아니다. 내 키보다 높이 솟구치는 배낭을 메고 온 나를 무색케 한다. 오늘도 할

수 없이 운송담당을 맡은 집사람의 수고 덕에 예정 보다 30분 빠르게 운문령에 도착하니 저녁 5시 30분.

 

01 아래사진 : map으로 본 이번 산행로

 

<귀바위와 상운산>

 

운문령-가지산 구간은 초보시절부터 자주 다녔으나 귀바위와 상운산을 잇는 능선을 타지 아니하고 쌀바위까지는 임도만 다

녔으니 이즈음에야 그 이력이 한심스러워진다. 어두워지기 전에 귀바위와 상운산에 올라 조망이나 즐기자며 서두른다. 석남

사 초입에서 가지산릉을 바라보면 거대한 병풍 처럼 북쪽 벽을 이루는데, 운문령 쪽으로는 급경사로 뚝 떨어 지는 양상이다.

 

그러니 그 경사면을 계속 올라서야 귀바위 -상운산 능선에 다 다르게 되는 셈이니 초입부터 땀을 제법 흘린다. 하지만 별로

힘들지 않다. 즐거움과 설레임이 앞서서일까. 귀바위는 아래서 보는 것보다 위용이 있고 바위로서 솟은 멋 이 제법이다.

 

오던 중에 벌건 해가 서쪽에서 지고 있는 느낌을 받았으므로 일몰 후의 어둠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는 느낌이 다. 게다가 저

녁 운무가 가득하여 조망이 좋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 채 이내 상운산으로 향한다.

 

02 아래사진 : 귀바위에서 본 가지산릉의 일몰

 

상운산은 산 아래서 보기에는 능선의 일부 같지만 생각보다 고봉이다. 임도와의 표고 차도 제법 날 뿐더러 주변 시야도 꽤

괜찮다. 날씨가 흐려 일몰의 장관도 없이 이미 어두워진 사위 덕에 플래쉬를 터뜨려서야 비로소 두 친구가 사진으로 기록

된다.

 

03 아래사진 : 상운산에서의 두 친구

 

<유쾌한 농담 같은 알바>

 

상운산에서 잠시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표지목을 만나게 된다. 우리가 선 방향에서 직진하면 운문사로 향하는 방향이고 왼편

아래로 향하면 쌀바위-가지산 방향으로 친절히 표시되어 있다. 친절한 방향으로 10미터 쯤 내려섰더니 다시금 갈림길이 생긴

다.

 

리번이 뚜렷하고 길도 반질반질한 오른쪽 방향으로 거침없 이 내달린다. 어? 바로 내려서는 길도 있는데... 그러나 내리막의

가속도도 있고 어차피 안내판도 없는 곳이므로 둘 다 틀린 방향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계속 진행을 한다. 기억은 해두고. 하지

만 그 길은 운문사 가는 길로 다시금 이어지는 사잇길이었다.

 

점차 어두워 마음은 바빠지고 틀린 길일까하면 너무나 또렷해지는 길. 방향이 아닌 것 같다 싶으면 내리막길이라 조금만 더

가보자 싶고. 헤드랜튼도 없이 20여분을 숨가삐 진행하니 드디어 숲이 거두 어 지고 공터가 드러난다. 헬기장이다 싶은 생각

이 들자마자 앞이 훤한게 아니다~! 싶은 탄식이 새어난다.

 

앞을 가로막아야 할 쌀바위나 가지산릉의 그림자 없이 텅텅 빈 허공 뿐. 좌측으로 산줄기가 우뚝하니 이곳이 상운산-쌍두봉

잇는 능선의 첫 번째 헬기장이다. 나침반을 확인하니 우리가 북쪽으로 계속 달려온 것이다.

 

야밤의 실책!!

셋이서 허탈하게 웃는다. 숨을 고른 다음, 헤드랜튼을 착용하 고 슬슬 되돌아간다. 어둠과 그에 따른 조급함이 제공한 유쾌

한 농담이었다. 

 

<밤이슬과 운무 그리고 별빛과 주홍빛 달>

 

쌀바위 대피소(주막)는 토요일 밤인데 뜻밖에 영업 중이다. 우리의 기척에 주인이 인사를 했는데 다음날 아침까지 대면하지

못해서 종내 마음이 쓰였다. 쌀바위 샘터의 물은 잘 나오고 있었다. 쌀 이상으로 요긴한 곳 의 석간수라고 생각 든다.

 

서둘러 막영준비를 시작한다. 두 친구는 2인용 텐트에 동침을 하기 위해 바로 옆에 이웃집을 세웠다. 두 집 사이로 양측 집의

은박매트와 나오기 때문에 거기 에 저녁과 술자리가 근사하게 마련이 된다.

 

밤 안개가 짙어지고 운무가 내려 앉는다. 별은 이따금씩 영롱히 운무 사이로 빛나고 11시 쯤되니 동쪽하늘에 주홍빛 달이 뜬

다. 주홍빛 반달은 잠시 후 검은 하늘에 휘영청 떠 올라 은색 달빛 을 교교히 비추일 것이다.

 

술잔이 오가고 주량체급이 다른 산거북이는 홀로 잠을 청한다. 두 친구는 이어질 중국 황산 등반에 관한 얘기로 두런두런거

린다. 히말리야 트래킹 세 번에 몽고여행도 다녀오더니 이번에 는 중국황산이다. 두 산꾼들의 이야기는 자장가가 되고......

 

이따금씩 잠을 깨어 하늘을 보았다. 윗 장막만 손을 뻗쳐 거두 면 검푸른 하늘과 빠르게 움직이며 습기를 뿌려대는 운무의 흐

름도 보인다. 이토록 편하게 누워 별빛을 바라본 것이 얼마만인 가? 이번 산행을 위해 이것저것 물어보느라 “한울타리”님을 많

이도 귀찮게 하였다. 무탈산행으로 귀향선물으로 삼아야겠는데....

 

“푸르뫼”님은 왜 종적을 숨기셨는지... 영남알프스 곳곳을 다니시던 그 분의 근황이 궁금하다. 그 외 그물과도 같은 사적 인연

관계 속 에 저 별빛 같은 존재들....

 

04 아래사진 : 새벽녘의 잠자리

 

<가지산의 아침>

 

야영의 모든 아침은 제 각각 색다를 것이다.

야영의 모든 밤은 비슷한 느낌일 수 있어도.

 

눈을 뜨니 새벽인데 여명도 없다. 이미 1000 고지가 넘는 이곳은 완벽히 운무에 가리워진 듯하다. 두터운 운무여서 아침에 운

해가 가라앉는 모습이나 장엄한 일출을 기대하긴 틀렸다. 그래도 아침이 되니 쌀바위 까지는 코 앞이라 잘 보인다. 잠시 가지

산까지 구름이 걷혀 때 맞추어 귀중한 한컷을 얻지만 이 각도에서야 올 때마다 찍는 장면이라 시들하다.... 잠자리로 들어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아 침낭으로 몸을 밀어 넣고 옆집으로 신호를 보낸다.

 

 -오늘 아침의 주제는 늦잠이야! 늦잠이라구!.

한사람은 예!하고, 한사람은 계속 코를 곤다.

 

 

05 아래사진 : 아침녁의 쌀바위

 

06 아래사진 : 아침녁의 가지산릉

 

 

30여분 온몸으로 습기를 느끼며 뒤척이다 완전히 잠을 깬다. 지난 밤새 침낭 속에 들지 않고 그냥 덮고 잤는데, 이따금 살이

비박텐트에 닿으면 찐한 습기를 느꼈다. 별을 보느라 그물망 텐 트를 열면 구름 속의 습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무릇 생명의 태동은 습기 속에서 이루어진다. 태초의 생명이 그렇게 유추되듯, 물은 빛과 아울러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원래 고체 액체 기체의 구분은 인간의 관념일 뿐, 매질의 밀도를 개념으로 구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물고기는 밀도가 높은

물 속에서 살 뿐이고 나는 지금 밀도가 덜한 물 속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밤의 산중은 그런 생명의 물이 뒤덮고 있는 것이다.

 

뽀송뽀송하고 쾌적하게 지내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문명적인 것이며 또한 비자연적인가를 느낀다. 그러나 짧은 시간의 축

축함을 견디지 못하고 쾌적함이 그리워진다.

 

일곱 시에 모두 깨었으니 가히 산중의 늦잠인 셈이다. 아침 식사 후 채비를 차려 다시금 산행을 시작하니 나는 몸이 가벼운데

두 친구는 술기운에 몸이 무겁다.

 

 

<운무 속의 가지산정상과 능선>

 

가지산 정상에 오르니 우유빛 운무 속이다. 시원한 바람에 막영 노숙의 피로와 주독을 씻어 내고나니 속이 하얗게 된다. 이대

로 운문산 쪽 아랫재로 나아간다.

 

07 아래사진 : 운무에 휩싸인 가지산 정상

 

아쉽다. 이 능선을 시원한 조망과 함께 촉촉한 기분으로 걸을 목 적이었는데..... 어쩔 수 없다. 운무와 함께 하나가 되자. 마음

을 비 우니 이따금씩 조망이 터진다.  가지산 머리와 언뜻언뜻 보이는 건 너편 재약산 사자봉의 머리도 구름에 덮혀 삼푸하는

머리를 하고 있다.

 

백운산 갈림길까지는 너무나 평온한 길이다. 재작년 가을에는 이곳 이 팍팍해 풀먼지가 싫었는데 그에 비하면 촉촉하기가 그

지없이 좋다. 이 부근에서 운무는 시원하게 걷힌다. 아니 운무에서 빠져 나온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백운산 갈림길에서

조금 더 진행하기 까지 해발 고도 1000 미터이 상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수직 낙하하 듯 경사가 지기 시작하는데 아랫재로 내

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08 아래사진 : 가지산-운문산 쪽 능선의 운무가 잠시 걷히는 순간

 

09 아래사진 : 갑자기 운문산이 운문의 밖으로 드러나다.

 

10 아래사진 : 무제

 

11 아래사진 : 백운산이 아래로 뿌옇고 그 뒤로 재약산 사자봉이 구름에 덮혔다

 

12 아래사진 : 무제

 

13 아래사진 : 지나온 가지산 쪽

 

15 아래사진 : 운무에서 빠져나와 가을 햇살 아래로 거닐다.

 

 

<아랫재에서 운문산 정상으로>

 

되오를 경사를 생각하며 묵묵히 경사를 내려서니 어느듯 아랫재. 아랫재에서 부터는 한낮의 뙤약볕이다. 초가을의 땡볕은

여름 못지 않게 강렬하다. 거기에 수백미터의 오름이 버티고 있으니 선선 했던 오전의 운무산행이 찜통이 되고 만다.

 

 

16 아래사진 : 아랫재

 

아랫재에서 운문령 오름은 오늘의 하이라이트. 50분 걸려 오르니 반가운 운문령 정상. 조망은 그리 좋지 못해 사진 맛도 없다.

딱밭재-팔풍재 가늠되고 억산이 뚜렷하다.

 

두 친구들의 의사를 묻는다.

 

... 계속할까...?

...지금부터 뙤약볕인데요... ...그만 하죠... 천천히 내려가면 두 시간이니 오전산행으로 마무리 하죠.

 

두 고수들이 점잖은 의견을 내시니 구태여 억산까지 가자고 깃발을 세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상운암으로 내려서는 발걸음만

가벼워 진다.

 

17 아래사진 : 운문산 정상에서 가지산 보기

 

 

18 아래사진 : 운문산 정상(이전사진)

 

 

<상운암의 법문과 석골사 석골폭포>

상운암의 스님은 여여하시다. 산객들을 새처럼 나비처럼 맞이하는 품새가 매번 한 모습이다. 운문산에서 제일 좋은 것 하나

꼽으라 치면 주저않고 “상운암 샘물”이라 하는데 오늘도 반갑고 맛있다.

 

이게 바로 부처님 법문이라.... 크으~ 씨원한 거.....

 

 

19 아래사진 : 상운암. 한사람의 검소한 수행처의 살림살이도 이러한데 우리네 삶은 얼마나 많은 잡동사니 속에 파묻혀 있을꼬.

 

 

20. 아래사진 : 상운암에서 본 억산. 그리고 고지 앞뒤로 팔풍재와 딱밭재가 가늠된다.

 

21 아랫사진 

 

 

22 아래사진 :석골 폭포의 옛 모습

 

불사가 진행중인 석골사에 다다르면서 따로이 억산행을 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석골폭포는 물줄기가 많이 줄었지만 작년 여름

사진 맛을 간직하 고 있기에 내 마음 속에는 언제나 그때와 같이 우렁차게 흐르고 있다.

 

세 번 와 본 입구라 집사람은 정확히 적절한 장소에 대기하고 있 다. 함께 밀양 쪽 도로변 산장에 들러 부실한 점심 보충 겸 시

원 한 맥주로 산행의 여독을 푸는데, 금새 소주병으로 바뀌더니 훌러 덩 비운다. 못 말린다. 나도 한때는 저렇게 마셔댔던 적이

있었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