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단산에서 남한산성까지 가로지르며...
 
(1) 산행계획
2009/2/21(토) 별러오던
[검단산-남한산성]行을 결행키 위해
나 홀로 집을 나서다.
대충 루트를 점검해 보니
[하남 창우동-검단산-고추봉-용마산-은고개-
남한산성외성-벌봉-동장대지-북문-서문-마천동마천역]으로
22km라 하며 대략 8시간 정도 소요 된다 한다.
사실 다음 주부터 새로운 會社로 출근하기에 앞서
장거리 산행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해보자는 바람이 있기도 하였다.
오래 전 서울 살 때 남한산성에는 가 봤지만 검단산은 가보지 못했었다.
지나가면서 雄壯한 山勢에 압도되기도 했지만
당시엔 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동서울 강변역에서 물어물어 하남 가는 시내버스에 오르니
신혼시절 살던 명일동 골목골목을 누비며
정거장마다 정차하다보니 하남 땅으로 들어가는데 1시간여 걸린다.
 
(2) 창우동-유길준묘소 (09:30-10:10, +40=40분, +1.95=1.95km)
산행기에서 본대로 애니메이션고교 앞에 도착하니
많은 山客들이 모여 있다.
그들의 뒤를 따라 애니메이션 고교 오른쪽으로 가니
커다란 산행안내판이 반겨준다.
그런데..... 살펴보니 길을 잘못 들었다.
이 길은 계곡으로 들어가는 길이고
유길준 묘소로 오르는 길은 애니메이션고교에서
왼편으로 가야함을 안내판은 말해주고 있었다.
알바15분,
다시 내려와 왼편 길로 가니
베트남참전기념비가 서 있고 널찍한 들머리가 반겨준다.
한참을 편안하게 오르니 유씨 묘지가 나타나는데
입간판을 보니 “西遊見聞”의 저자 유길준의 묘지도 뒷줄에 있는데
碑文을 보니 부인을 둘 거느렸던 것 같다.
하기사 부인 둘이 흠이 되던 때가 아니었으니까...
 
(3) 유길준묘소-큰고개(10:10-10:15, +55=45분)
***유길준 [兪吉濬, 1856~1914] 본관 기계(杞溪). 자 성무(聖武). 호 구당(矩堂). 서울 출생. 1881년(고종 18) 일본에 건너가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 입학했다가 1882년 귀국, 1883년 외무랑관(外務郞官)에 임명되었으나 사퇴한 뒤 주미 전권대사 민영익(閔泳翊)을 수행하여 도미(渡美), 보스턴대학을 다녔다. 1885년 유럽 여러 나라를 시찰하고 돌아온 뒤 개화당으로 몰려 구금되었다. 구금기간에 《서유견문(西遊見聞)》을 집필하기 시작하여 1895년에 탈고했다. 1894년 갑오개혁 때 외무참의(外務參議) 등을 지내고, 1895년 김홍집(金弘集) 내각의 내무협판(內務協辦)을 역임, 1896년 내부대신에 올랐으나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내각이 해산되자 일본에 망명했다가 1907년 순종황제의 특사로 귀국했다. 그 후 흥사단(興士團)에 참여하여 활동했고 국민경제회(國民經濟會)를 설립했으며 계산학교(桂山學校)를 설립했다. 1910년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훈1등 태극대수장(勳一等太極大綬章)을 받았다. 국권피탈 후 일본정부에서 남작(男爵)을 주었으나 거절했다. 저서에 《보로사국 후례대익 대왕 7년전사(普魯士國厚禮大益大王七年戰史)》 《영법로토 제국 가리미아전사(英法露土諸國哥利米亞戰史)》 《노동야학독본(勞動夜學讀本)》 《대한문전(大韓文典)》 《구당시초(矩堂詩鈔)》 《구당선생집(矩堂先生集)》 《세계대세편(世界大勢編)》 《정치학(政治學)》 《평화광복책(平和光復策)》 《이태리 독립전사(伊太利獨立戰史)》 《파란쇠망전사(波蘭衰亡戰史)》 《구당서간집(矩堂書簡集)》이 있다.
혼란한 시절을 치열하게 살다간
유길준선생을 생각하며 조금 오르니
안부가 나타나며 검단 능선에 올라설 수 있었다.
 
(4) 큰고개-서봉(585m, 10:15-10:50, +35=80분)
가며 뒤돌아보니
암사대교와 팔당대교가 가로지른
파아란 물결의 한강이 悠長하게 출렁인다.
또한 에봉산으로 짐작되는 북쪽의 산줄기 아래
두물머리의 합수지점으로 봄의 기운을 머금은 나뭇가지가 솜털을 반짝인다.
고지대의 북사면에는 아직 눈이 제법 쌓여있다.
문득 한 봉우리가 나타나는데 동쪽으로 팔당호 조망이 훌륭하다.
서봉인데 동봉(검단산)이 바로 앞에 당겨온다.
 
(5) 서봉-검단산(휴식)
(10:50-11:00-11:15, +25=105분, +1.57=3.52km)
이어 나타난 상봉 검단산. 수많은 인파로 인산인해.
 ***검단산 (657m)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산. 높이 650m이다. 하남시 동쪽 한강변에 솟아 있으며, 한강을 사이에 두고 운길산(雲吉山), 예봉산(禮峰山)과 이웃해 있다. 백제 때 검단선사(黔丹禪師)가 이곳에 은거하였다 하여 검단산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서울 근교에 있고 교통도 편리하지만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높이는 관악산(冠岳山:629m)과 비슷하지만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서 광주목의 진산(鎭山)이라고 일컬을 정도로 산세가 특이하다. 가파른 경사를 지나 능선에 올라서면 사방의 전경이 시원하게 열리고, 서서히 정상에 이르는 길이 매우 다채롭다. 산행은 하산곡동의 산곡초등학교 쪽과 팔당댐 건너 아래배알미쪽 두 길이 있으나 전자가 교통이 더 편리하다. 하산곡동에서 출발하는 산행은 처음에는 경사가 매우 가파르나 능선을 타고 정상을 향해 올라가면 능선 곳곳을 가득 덮은 억새풀밭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모습이 장관을 이루고, 산 중턱에는 노송이 길을 덮어 쉬어가기 좋다. 계속해서 북쪽으로 가다보면 넓고 평평한 정상에 서게 되는데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 줄기가 한눈에 보이고, 북한강 너머에는 예봉산과 운길산이 있다. 동쪽 팔당댐에서는 하얀 물거품을 힘차게 토해내고 있고, 남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용마산(龍馬山)이 솟아 있으며, 서쪽으로는 중부고속도로가 힘차게 달린다. 본래 세종대왕의 능을 이곳에 쓰려다 여주로 옮겨가게 되어 닦아 놓은 능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 역사를 말해주고 있으며,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兪吉濬)의 묘가 있다
 
(6) 검단산(휴식)-산곡초교갈림길 (657m, 11:15-11:30, +15=120분)
여기에 다다르니
대부분 산님들은 산곡초교 방향으로 하산.
고추봉으로 향하는 분들은 많지 않다.
 
(7) 산곡초교갈림길-고추봉 (555m, 11:30-12:00, +30=150분)
고추봉으로 가는 길은
대전의 [만인-식장]능선길 같은 느낌이다.
평탄하고 길고 긴 낙엽 푹신한 오솔길은
끊어질락말락 계속 이어지고
약간의 오름을 견디면 이내 평탄한 길이 계속된다.
뾰족한 고추봉엔 숲이 우거져 조망이 별로이다.
 
(8) 고추봉-용마산(휴식)
(596m, 12:00-12:45-12:55, +55=205분)
고추봉에서 용마산으로 가는 길은
흡사 육십령에서 영취산으로 가는 느낌이다.
전형적인 肉山. 푹신한 육산이다.
 
(9) 용마산(휴식)-은고개갈림길(12:55-13:15, +20=225분)
용마산에 오른 분들께 은고개 방향을 물어도 잘 모른다.
사실은 남한산성으로 가려한다하니 너무 멀다 하시며 만류까지 하신다.
그러나 벼르고 별러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절대 없는 일.
마침내 다다른 은고개로 내려가는 갈림길.
直進하면 중부면사무소로 떨어지며
거기서 노적봉에 올라 남한산성으로 이어진단다.
 
***용마산 (596m) 용마산은 검단산 남쪽에 솟아있는 산으로 검단산과 능선으로 연결되어있다. 이 능선은 광주읍을 돌아 백마봉, 태화산으로 연결된다. 육산인 용마산은 경안천을 향하여 깊이 파고든 팔당호수로 하여 호수 주변의 조망이 좋다. 용마산은 전체적으로 보아 육산이며 숲이 울창한 편이다. 높이는 600m에 조금 못 미치지만 주위에 높은 산이라고는 검단산밖에 없어 상당히 높아 보인다. 산으로 가는 길은 광주군 광주읍에서 팔당호로 빠지는 45번 도로를 따라 퇴촌면 갈림길에서 팔당 쪽으로 조금가면 나오는 남종면 과학동에서 오르는 길과 하남시에서 광주읍으로 가는 43번 도로변에서 하남시 남쪽인 산곡초등학교에서 검단산에 올랐다가 정상에서 고추봉을 거쳐 용마산으로 오는 길이 있다. 검단산에 올라 용마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바라보면 꽤 꾸불꾸불 하며 멀리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능선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으나 최근에 광주군으로 연결된 교통편이 좋아 종주산행을 하기에 적합한 산이라고 할 수 있다.
 
(10) 은고개갈림길-은고개(13:15-13:45, +30=255분)
은고개로 내려가다 보니 “竹林苑”이란 표석이 보인다.
불교의 사찰이 있었던 자리인가 보다.
죽림정사는 부처가 大覺을 하고 내려오다
최초로 도를 說한 장소인데
여기를 죽림원이라 한 까닭은 뭘까?
죽림원을 내려오니 산양산삼 농장이 나타난다.
산양산삼 농장 울타리 너머로
드디어 남한산성으로 향하는 첩첩산중의 산줄기가 파도쳐간다.
 
(11) 은고개-노적산갈래길(13:45-15:00, +75=330분)
43번 도로를 가로질러 은고개 계곡길로 접어드니
천운사 입구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그런데 천운사로 들어가면 너무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
은고개 방향으로 향하다 그것도 아니다 싶어
무조건 왼편 산자락에 달라붙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무릎까지 빠지는 낙엽과 막상 다가서니
예상외로 가파른 경사도로 인하여 장거리 산행 뒤의 피로가 겹쳐 기진맥진.
그러나 벼르고 별러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할 수는 절대 없는 일.
30여분 사투하다 능선에 오르니 그제야 희미한 오솔길이 보인다.
멀리서 두런거리며 한 쌍의 산님이 나타나 여짜오니
검단산에서 온 내가 대단하다 하시며
그러나 여기서 남한산성까지 3시간은 걸릴 거라고 하시며 下山을 권유하신다.
하지만 모처럼 마음먹은 산행길을 포기할 수는 없는 일.
가다보니 岩峯이 나타났는데 제법 가파르다.
무슨 이름이 있을 것 같은 가파른 암봉을 내려와
오솔길을 따라가니 중부면 노적봉에서
올라오는 길과 마주치는 삼거리에 이정목이 서 있다.
 
(12) 노적산갈래길-송전탑(15:00-15:05, +5=335분)
이어 송전탑이 나타난다.
송전탑 밑을 허리를 구부리고 지나니
끝없는 육산길이 가물가물 이어진다.
 
(13) 송전탑-검복리갈림길(15:05-15:35, +30=365분)
편안하기만 한 육산길이지만
몸은 지칠 대로 지치고 방한복을 입었음에도
오슬오슬하니 한기가 스미는 것이 감기에 노출된 것은 아닌지 겁이 난다.
오르내리는 안부에 내려서면
한결같이 오른편은 엄미리 방향이고
왼편은 오전리, 검복리 방향이다.
 
(14) 검복리갈림길-남한산성외성(15:35-16:05, +30=395분)
그렇게 지친 질질 끌다시피 하며 가는 모습이
흡사 현재의 내 모습과 너무 닮았다.
금요일(2/20) 고향 서천에 내려가
아버지께 왜 할머님이 싫다는 合葬을 굳이 하셨는지 물었다.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현재의 우리집안 형편을 보면 별 생각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15) 남한산성외성-벌봉(16:05-16:40, +35=430분)
그렇게 나아가니 멀리 성채가 보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남한산성 外城(봉암성)이었다.
병자호란 때 청군이 이 벌봉 근처까지 와
청군들이 성안을 엿보아 후일 외성을 축성했단다.
복구되지 않은 무너져 내릴 듯한 성채의 모습에 약간 놀랬는데
외성까지 복구할 여력이 아직은 완비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현실을 말해준다 하겠다.
그 외성을 돌아드니 한봉과 벌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복사해 온 1/5만 지도를 보니
한봉 방향은 좀 멀어보여 벌봉으로 향하니 그 오름이 예사롭지 않다.
다리는 축축 쳐지고 알통은 당겨오고
숨을 몰아서며 오르니 암문이 반겨준다.
 
***남한산성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中部面) 산성리(山城里) 남한산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57호로 지정되었다. 북한산성(北漢山城)과 더불어 서울을 남북으로 지키는 산성중의 하나로, 신라 문무왕(文武王) 때 쌓은 주장성(晝長城)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에 축성(築城)하였다. 《남한지(南漢志)》에 따르면, 원래 심기원(沈器遠)이 축성을 맡았으나 그의 부친상으로 인하여 이서(李曙)가 총융사(摠戎使)가 되어 공사를 시작하여, 1626년 7월에 끝마쳤다. 공사의 부역(賦役)은 주로 승려가 맡아 하였다. 성가퀴는 1,700첩(堞)이고, 4문(門)과 8암문(暗門)이 있으며 성안에는 관아(官衙)와 창고 등, 국가의 유사시에 대비하여 모든 시설을 갖추었고, 7개의 절까지 세웠다. 다만 성의 둘레가 6,297보(步), 성가퀴는 1,897보라고 하는 등 문헌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러한 시설은 기본적인 것에 불과하였고, 인조 때부터 순조 때에 이르기까지 성내의 시설 확장은 계속되었다. 임금이 거처할 행궁(行宮)은 상궐(上闕) 73간(間) 반, 하궐(下闕) 154간이었다. 재덕당(在德堂)은 1688년(숙종 l4)에 세웠고, 1711년에는 종묘를 모실 좌전(左殿)을 세웠다. 그리고 사직단(社稷壇)을 옮길 우실(右室)도 세웠다. 1624년에 건립된 객관(客館:人和館)은 1829년(순조 29)에 수리되었다.
 
(16) 벌봉-동장대지(16:40-17:00, +20=450분)
벌봉의 황성옛터 같은 폐허지대를 돌아 나오니
드디어 궁륭형의 아치를 가진 本城이 반겨준다.
우람한 송림이 우거진 잘 정비된 단아한 성채를 돌아드니
동장대지가 반겨준다.
 
(17) 동장대지-북문(17:00-17:20, +20=470분)
동장대지의 암문을 통하여 본성으로 들아가니
막 물건을 거두어가려는 상인이 보여
뭐 요기할 것 없느냐고 물어보니
라면도 국물도 없고 막걸리 한 잔은 된단다.
오랜 산행 뒤 들이키는 한 잔의 먹걸리... 좋았다.(2000원)
 
(18) 북문-서문(17:20-17:35, +15=485분)
북문에서 서문가는 길도 근사한 松林이 숲을 이루고
거기에 구불구불한 성채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숲속으로 사라져 간다.
한 잔의 막걸리와 피로가 궁합이 맞는지
어질어질하고 몽롱하여 기분이 좋은데
오래전 기억의 퇴적층에서
거여동 고모님 댁에서 잠시 기거하며 대학을 다니던 때
이 국청사가 있는 서문까지 올라왔던 영상 몇 조각이 기어나왔다.
 
(19) 서문-5호선마천역(17:35-18:30, +55=540분)
그 때 서문엔 누각이 없었고 암문만 있었다.
그런데 지금 누각을 근사하게 세우고 산책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힘들게 비탈진 비알을 올라왔던 기억 속의 풍경은 어디에도 없고
세월 속에 우거진 참나무 숲과 잘 정비된 등산로는
歲月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다만 산행로 입구의 공수부대 담장만이 옛 기억 그대로다.
하지만 그 판잣집이 즐비하던 마천, 거여는 간데없고
그 공수부대도 이천으로 곧 이전하고
송파신도시란 대도시의 탄생을 예고하듯
옛 기억 속의 골목 어귀에 근사한 5호선 마천역사가 반겨주고 있었다.
[하남 창우동-검단산-고추봉-용마산-은고개-남한산성외성-벌봉-동장대지
-북문-서문-마천동마천역] 22km라 하나 25km 정도가 아닌지? 9시간 소요.
 
배달9206/개천5907/단기4342/서기2009/02/21 이름 없는 풀뿌리 라강하
 
(덧붙임)
(1) 산행계획
 
1-1) 창우동 애니메이션고교 앞
 
(2) 창우동-유길준묘소 (09:30-10:10, +40=40분, +1.95=1.95km)
 
2-1) 베트남 참전 기념비
 
 
2-2) 넉넉한 들머리
 
 
2-3) 유길준 묘소
 
(3) 유길준묘소-큰고개(10:10-10:15, +55=45분)
(4) 큰고개-서봉(585m, 10:15-10:50, +35=80분)
 
4-1) 능선상의 반송들
 
 
4-2) 서봉(출입금지)
 
4-3)서봉에서 본 동봉(검단산)
 
(5) 서봉-검단산(휴식) (10:50-11:00-11:15, +25=105분, +1.57=3.52km)
 
 
5-1) 상봉 근처에서 내려다 본 팔당댐
 
 
5-2) 북사면의 잔설
 
 
 
 
 
5-3) 상봉 풍경
 
 
5-4) 상봉을 내려와 뒤돌아 봄
(6) 검단산(휴식)-산곡초교갈림길 (657m, 11:15-11:30, +15=120분)
 
 
6-1) 산곡초교 갈림길
 
(7) 산곡초교갈림길-고추봉 (555m, 11:30-12:00, +30=150분)
 
 
7-1) 용마산 가는 길
 
 
 
 
7-2) 능선상의 풍경
 
(8) 고추봉-용마산(휴식) (596m, 12:00-12:45-12:55, +55=205분, +3.7=7.22km)
 
8-1) 뒤돌아 본 고추봉
 
 
8-2) 용마산 정상석
 
 
 
 
8-3) 최고의 일출 조망이라는 안내판
 
(9) 용마산(휴식)-은고개갈림길(12:55-13:15, +20=225분)
 
9-1) 용마산하 이정표
 
 
9-2) 은고개 갈림길
 
(10) 은고개갈림길-은고개(13:15-13:45, +30=255분)
 
 
10-1) 죽림원 유지
 
 
10-2) 노적봉 능선
 
 
10-6) 43번 도로 은고개 정거장
 
 
10-7) 천운사 방향을 버리고 왼편 능선에 달라붙음
 
(11) 은고개-노적산갈래길(13:45-15:00, +75=330분)
 
 
11-1) 능선에 오르니 남한산성 주능선이 보임
 
 
11-2) 최초로 만난 암봉
 
 
11-3) 노적봉 갈림길
 
(12) 노적산갈래길-송전탑(15:00-15:05, +5=335분)
(13) 송전탑-검복리갈림길(15:05-15:35, +30=365분)
 
 
13-2) 검복리 갈림길
 
(14) 검복리갈림길-남한산성외성(15:35-16:05, +30=395분)
 
 
14-1) 외성(봉암성)
 
 
 
 
 
 
14-2) 외성 한봉 직하, 오른편 숲 사이 벌봉
 
(15) 남한산성외성-벌봉(16:05-16:40, +35=430분)
 
15-1) 무너져 내리는 외성
 
 
15-2) 계획대로라면 이리로 왔어야 함.
 
(16) 벌봉-동장대지(16:40-17:00, +20=450분)
 
16-1) 굴참나무의 표피
 
 
16-2) 벌봉 정상 근처의 암문
 
 
16-3) 암문 내부
 
 
16-4) 허술한 외성(봉암성)
 
 
16-5) 청병들이 정탐했다는 봉암성
 
(17) 동장대지-북문(17:00-17:20, +20=470분)
 
 
 
 
17-1) 동장대지 근처 도달
 
 
17-2) 동장대 암문
 
 
 
 
17-3) 안내판
 
 
17-4) 잘 정비된 본성
 
 
17-5) 남한산성의 주역은 승군이었다는 설명
 
 
 
 
 
 
17-6) 석양 속의 울창한 송림
 
 
17-7) 아직도 먼 서문 쪽 성벽길
 
 
 
 
17-8) 석양은 점점 더 저물어 가고
 
 
17-9) 지나온 [검단-용마]능선
 
 
 
 
 
 
17-10) 울창한 송림은 끝없이 이어지고
 
(18) 북문-서문(17:20-17:35, +15=485분)
 
 
 
18-1) 북문의 아름다움
 
 
18-2) 북문앞 안내판
 
 
 
 
 
 
 
 
18-3) 서문가는 길에도 송림.... 해는 넘어가고
 
(19) 서문-5호선마천역(17:35-18:30, +55=540분)
 
19-1) 서문 앞
 
 
19-2) 서문 아래 성황당
 
 
[검단-용마-남한산성 종주 개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