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우(雲雨)의 정 [장암산 ~ 남병산]

 


 

2013.  5. 19 [일]


평택 FM  47명



평창교 - 활공장 - 장암산 - 955봉 - 바위지대 - 남병산 - 기러기재 - 하안마을  [5시간]




 봄을 아쉬워하는 보슬비가 소리 없이 마음을 감아 싼다. 아쉬움이 젖어드는 건 아닌지

 하지만 장암산정 일대의 풍경이 신록에서 녹음으로 치닫고 있음이 그 증명을 한 셈이다.

47명의 님들은 평창강의 고요한 수면 위로 끝자락의 봄의 그림자를 찍어내며 조용한

행보를 한다.

 


영서의 보배, 평창. 그 어느 곳 보다 으뜸이 우선인 이곳.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이 시간 속에 흐르는 산정은 고요한 숨결을 정숙히 품고 있다. 촉촉한 숲속에서 발산하는

봄의 향기가 은은하면서 심미하다.

 


 황혼빛깔로 물든 낙엽 길을 걸으며 깊은 사색에 잠겨든다. 5월의 깊은 의미를 품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다. 후드 ~득!!  연푸른 나뭇잎에 떨어지는 빗소리의 무게가 가는 길을

안내하면서 님들의 마음을 적셔준다. - 이슬처럼 맑은 빗방울이 시간을 가로 막는다.

 


오솔길처럼 편안한 산길의 모습에 안온함이 흐르며 다가올 여름을 생각한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님들에겐 어쩜 다시올지 모르는 기약이 앞선 것인지 아니면 텅 빈 마음의

충만이 가득한 것인지 의연한 마음에서 살짝 엿볼 수가 있다. 서늘한 바람이 온 몸을

휘감는다. 묵묵히 이어가는 뒷모습만 바라본다.



                   이때 여성회원님께서


“ 여기의 나무처럼 세상을 살았으면… ” 하고 가는 소리로 이야기를 해댄다. 그 말이

 내 마음에 박혀 세상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세속의 욕심이 얼마나 팽배해지고,

        커서일까? 그저 소시민답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 내 바램이며 인생론인데빈 몸으로

왔다, 빈 몸으로 가는 것이 인생인데… 초라한 나, 후회가 앞선다.

 

 


 萬山이 다 초록으로 짙어가는 이즈음이다. 느끼자니, 어지러운 저잣거리에서 타성에 젖어

  일관 없이세월의 틈바구니에서 사는 세인들에게 그저 일상속 비분강개한 마음이 앞을 가리지만

허나 그 슬픔을 잠재우고 사는 기쁨 그대로 순박한 우리의 인생을 내어놓는

그 어디에다 비할 것인가. 마음이 고요해진다.

 


숲 사이로 운우에 싸인 키다리의 적송과 편백을 바라보며 순백의 세계를 연상케 한다.

느슨하게 풀어진 산자락이 어렴풋이 희미해져 그 모습을 간간히 드러낸다. 복잡한

분별없이 담박한 형상에 마음이 풀어진다. 무심히 산정 속에 당당하게 서 있는

그 나무들에게 세월의 손이 길게 걸쳐있다. 깊은 향음이 콧속을 태운다.

 


  “ 서늘한 그늘을 드리워서 시원한 풍요를 주는 나무들에게 그저 고마움을 느낍니다.”

      “ 자연이 주는 힘은 비록 소소하지만 그 풍요는 인생사의 커다란 밑거름이 되어줍니다.”

                                   “ 그렇죠. 잎이 지면 뿌리로 돌아갑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의 생에서도 그것과 매한가지 아닙니까.”

 

                                  님들이 엮어내는 대화 속에는 자연의 음덕이 오롯이 배여 있는 듯 하다.

 


연초록의 새잎이 돋으면서 드리우는 그늘이 하루하루 넓어져 가고 있다. 융탄자 같은

      낙엽 길을 걸으며 초록의 향음에 좀 더 가까이 가본다. 정갈하고 맑은 빗방울이 탐스럽게

  새잎에 매달려 있다. 후, 6월이면 그 새잎은 그들만의 정열을 피워대며 한층 물이 올라

있겠지. 산 공기의 흐름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한다.



   소담하게 걸쳐 있는 철쭉의 싱그런 자태에 빗물이 스며든다. 옥수처럼 맑은 이슬이다.

잎을 펼치다 수줍음을 타는 모양이다. 곳곳에 이런 치장을 한 꽃들의 형상에 마음이

      밝아진다. 미세한 탄성만이 습기가 가득 찬 산중을 울려댄다. 꽃들은 바람에 흔들거리며

 몸을 비스듬히 내보이기도 하고, 때론 빗물에 젖어 고개를 떨구곤 한다. 만지면 곧

떨어질 것 같은 꽃들이여!!

 


맑은 기운이 하늘을 열려 놓는다. 구름에 걸려있는 산자락은 첩첩이 이어지고,

   그 산자락이 품은 산중은 고요하게 신록의 수를 놓고 있다. 갑자기 엷어지기 시작한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이 점점 짧아져 가는 것이다. 이 시간이 사라져 간다. 흰 구름에

   쌓인 하늘은 또 다른 시간을 내보이고, 억겁의 세월 속에 핀 아름드리 거목 한두 그루가

다가올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 듯 5월의 그림자를 지어대며 서 있다.

 


 적빛으로 물들어지는 길은 인적이 드물고 때도 묻지 않았다. 많이 딛지 않은 산길에

   발바닥으로 느껴지는 흙길의 탄성도 살아있다. 要 순환된 길을 걸으며 연푸른 색깔을

      내보이고 있는 앞 산정에 註 된 응시를 해 보인다. 6월의 자리를 안내하고 있는 듯 하다.

    님들은 아쉬운 듯 눈동자를 질끈 돌리면서 앞서 온 산정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



   깊고 묵직한 산 모습과 아름드리 적송, 육중한 편백, 곱게 빚은 철쭉, 소북한 낙엽 길,

이 모든 게 편안한 마음을 주었던 장암산과 남병산. 또 언제 마음을 들여 놓을 수가

있을까. 아련한 생각에 머리가 둔탁해진다. 또 오겠지, 그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