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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지 유래 

  

충북 충주시에 위치해 있는 인등산은 천등산, 지등산과 함께 삼등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땅 위에 사람이 있고 사람 위에 하늘이 있듯이 천등산, 인등산, 지등산이 북에서 남으로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차례로 천(天)ㆍ지(地)ㆍ인(人)의 3재(三才)를 이루는 특이한 이름을 갖고 있다.


7부 능선까지 임도가 나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남쪽으로 지등산과 월악산이 충주호와 함께 보이고 북쪽으로는 천등산과 그 산자락에 있는 서대마을터가 보인다. 충북선 동량역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삼탄역에서 산행을 끝내는 철도 산행지로 유명하다.


인등산 자락에 위치한 소모천마을에는 돌무더기 가운데 사람 키만한 높이로 장승처럼 세워진 조똘바위가 자리잡고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소모천마을의 남자들이 변고로 죽어가자 노승이 이곳의 산세가 요녀의 허리모양을 하고 있으니 요녀 형국의 요부에 혈을 찔러서 음기를 눌러야 한다 하여 큰 돌을 운반해 혈을 누른 곳이 바로 조똘바위라고 한다.


정상에서는 남서쪽으로 남한강을, 북동쪽으는 충주호의 지류인 주포천을 끼고 있어 산수가 수려한 편이다.

 

 

 산행 일시 : 2010년 7 월 11 일 (일 요일) 날씨 : 약간의 비 흐림            

 산 행  지 : 인등산 (666m) 충북 충주시 동량면ㆍ산척면에 위치

 산행코스 : 독골고개 = 가족묘지대 = 송전탑 = 사거리안부 = 헬기장 =

                     인등산 정상 = 자작나무숲 = 장재 = 변전소

 교통수단 : 전세버스 29인승

 산행인원 : 28명

산행시간 : 5시간 반 

 

이번 산행은 "울고넘는 박달재" 노래말에 나오는 천등산 기슭에 거주 하시며 요즘 세상에 보기 쉽지 않게 "?아가는 서당"을 운영하시며 우리나라 국가적인 다양한 행사에 홍보대사로 활동을 하시는 서예계 거목이신 "공재 김일명 선생"께서 나에게 몇 차례나 당신께서 충주 산척면 인근 (천등산, 지등산, 인등산)에 살고 있는데 청파님께서 언제 이곳 (천, 지, 인) 3개의 산중 어느곳이라도 산행을 오시면 산행 후 강원도 오지처럼 아직 때묻지 않은 금낭화 마을 계곡에 자리를 마련하여 식사를 하며 무더위를 식힐 수 있도록 편의 제공을 해 주시겠다는 말씀에 따라  

 

7월달 둘째주에 청파와 함께 떠나는 "부부 산행지"를 충주 산척면 삼탄역 인근에 위치한 지등산 줄기에 속하는 "말미산"으로 정하고 이곳은 산행대장도 나도 아직 누구도 산행을 해보지 않은 처녀 산행지가 되어 일행들 안전과 즐거운 산행 안내를 위하여 답사 산행을 다녀와야 할 필요가 있어 "공재 김일명 선생께" 몇 일에 걸쳐 전화를 드렸으나 웬일인지 통화가 되지 않아 걱정을 하다 비로서 산행 5일전 간신히 통화를 하였는데 어~ 이상하다 그렇게 왕성한 모습으로 활동을 하시는 공재 선생 전화 목소리가 좋치않음을 직감하고 근황을 여쭈니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 하였다 퇴원 하셨다고 하시는 말씀을 듣고  공재 선생의 우환이 염려 스러웠지만 많은 일행들을 대동하고 떠나는 산행인 만큼 실 수 없게 하기 위하여

 

공재 선생께 불편하시면 대충 현지 산행지 들머리 초입까지만 안내 하여 주시기를 당부 드린 후 7월 8일 산행대장이신 연산동님과 나의 차편으로 답사를 다녀왔는데 공재 선생을 만나 뵙니 의외로 공재 선생의 우환이 깊어보여 걱정을 하며 예정된 "말미산" 답사를 마치고 다시 공재 선생을 만나 금낭화 마을에서 식사를 하며 공재 선생께서는 당신이 없어도 금낭화 마을 촌장님에게  부탁 하여 놓았으니 그냥 예정된 산행을 진행하라고 당부를 하시지만 아무래도 산행을 마친 후 "공재 선생께서 추천하는 "금낭화마을 계곡"에서 식사 편의제공이 무리라는 생각이되어 

 

하는 수 없이 오전에 이미 답사를 한 '말미산" 산행을 포기하기로 하고 연산동 대장과 귀가길에 다시 인등산 들머리 구간을 확인하고 이미 산행지를 충주 산척면 지역으로 예정을 되어 있으니 계획을 변경하여 "꿩대신 닭"이라는 옛말처럼 어쩔 수 없이 인등산" 산행을 하기로 결정하고 드디어 산행당일(7월 11일) 사당역 10번 출구에서 7시 30분 일행들을 만나 인등산을 향하여 달려 가는 차에서 부득이 사정에 의하여 이미 예정된 산행지를 변경하여 인등산 산행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 드리며 죄송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전하니 일행들 고의가 아닌 '공재 선생"의 우환으로 산행지가 변경된것인데 어쩔 수 없는일 아니냐며 그런 와중에도 답사까지 다녀 오며 고생하셨다고 위로하는 일행들 박수를 받으며 우리 일행을 싫은 버스는 중간 여주 휴계소에 잠시 볼일을 보고 인등산 들머리 "독골고개"에 도착하니 서울 사당역에서 2시간 조금 더 걸려 독고개에 도착 하였다.

 

 

 

독골고개 과수원옆으로 난 들머리에서 인등산 산행이 시작되는데 몇 일전 부터 기상청 예보에 장맛비가 충청지방에 많이 내린다고 하여 지레 겁먹고 우중 산행이 되어 힘든 산행길이 되겠구나 예상을 하였는데 의외로 산행 시작을 하는 09:45분 현재 비가 내리지 않아 일행들 모두 안심을 하며 산행을 시작한다.

 

 

낮으막한 언덕을 오르니 광활한 가족묘역 지대가 나타나고

 

  

필자 청파의 동생

  

아니 그런데 이곳 가족묘지 지대에는 공들여 애써 가꿔 잘 살라는 잔디는 별로이고 웬넘의 산딸기 나무가 퍼저 마침 외진곳이 되어 누가 산딸기를 따지 않아 원님덕에 우리 일행들이 복분자(산딸기)를 따먹느라 정신이 없다.

 

  

나무잎새위 생물을 잘 보세요.

  

무심코 야생화 접사를 찍고 있는데 청파님 빨리 와보세요. 하는 일행들 소리에 뭔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껀 했는가 보다 생각 하고 달려보니 시상에 6학년 7반 인생을 살아오도록 요로코롬 이상하고 신기한 동물인지 곤충인지는 첨 봤네요 그냥 무심코 보면 나무잎새 줄기로 보일 수 있지만 관심있게 자세히 살펴 보면 이름모를 기이한 생물이란것을 알 수 있다. 곤충인지 동물인지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자연속에 살아남기 위한 수단에서 완벽한 보호색을 띠어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이 이름로를 미물의 신비스런 모습이 놀랍기 짝이 없다.

  

분명 곤충이면 다리가 6섯개에 몸체가 3등분이고 더듬이가 있고 날개가 있어야 하는데 이넘은 뭔 일인지 몸체가 3등분도 아니고 다리도 네개뿐이고 날개도 없고 더듬이도 안보이는것 보니 아무래도 이넘이 요즘 과학자들이나 자연보호 주의자들이 뻑하면 환경오염으로 기상이변 현상이 생겨 기이한 생물이 등장을 한것이라고 호들갑을 떨어 댈지도 모를일이다. 정말 이상하고 싱통방통하기 이를때 없는 생물을 발견한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이 벌레의 이름은 대벌래라고 합니다. 
 

매우 기다란 게 막대기 같은 몸과 다리들. 몸통을 자세히 보면 여러 개의 마디 구조로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마디들의 연결 모습이 바로 대나무의 마디 구조랑 닮아있음을 볼 수 있다. 즉, 대나무와 같은 모습을 하여 바로 대벌레라고 하며 대나무 마디같은 곤충이란 뜻으로 "죽절충(竹節蟲)"이란 이름을 갖는다. 
 

영어이름은 "워킹스틱(Walkingsticks)"이다. 
 

"걸어다니는 지팡이"란 의미로서 매우 재미있는 이름이다. 몸과 다리는 가늘고 아주 길며 더듬이는 짧다. 암컷의 머리에는 1쌍의 가시가 있으며 빛이나 기타의 외부자극을 받으면 몸과 다리를 쭉 뻗어 잔가지 모양으로 위장하고 움직이지 않는 습성이 있다.

  

 

비가 안온다고 안심을 하였는데 이곳 인등산 등산로는 보통 산 보다 등산객이 아직 많지 않아서인지 마치 낙엽이 쌓인데다 비에 젖어 마치 폭신한 카펫위를 걷는듯 편안한길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대부분 여름산행이 다 비슷하지만 이곳 인등산 코스도 울창한 잡목 숲이 우거져 조망은 제로 상태이지만 다행이 코스가 완만한 육산코스로 이어져 그 어떤 명산보다 더 오늘 같은날 산행하기 좋은산이라고 칭찬이 자자한 가운데 산행이 지속되고 있는데 어랍쇼? 갑자기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지니 일행들 너도 나도 가던길을 멈추고 배낭 커버를 씨우고 우의를 챙겨입고 산행을 이어간다.

 

 

울창한 소나무와 잡목숲을 이룬 편안한 등로를 따라 일행들이 가고있다.

 

 

몇 년전만 하여도 필자(청파)만 산을 다녀 동생들이 모두 (오빠 형) 항상 산행하며 조심하란 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언제 부터인가 나의 주위에 우리 가족 산꾼들이 한 두명씩 늘어나더니 오늘같은 부부산행일은 모처럼 참석한 울 도영할마이도 양파란 닉으로 참석을 하였고, 바로 손아래 남동생, 그리고 막내 여동생부부, 외사촌 여동생, 거기다 40년지기 군대시절 전우에 초딩들까지 산행길에 동참할 정도로 이제 우리 주위에 등산은 가장 많은 국민들이 선호하는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되고 있다.  

  

그동안 나 혼자 산이 우리 건강 생활에 그 어떤 보약 보다도 더 좋다는 주장을 펼치며 산행을 다니다 보니 때로는 가족들에게도 완전히 산에 미친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였는데 언제 부터인가 주위에 가족들이 하나 둘씩 산행에 동참하기 시작하여 이렇게 산에서 만나는 가족 산행의 낭만과 즐거움이 남다른데 왜 그런 재미를 외면하고 맨날 나혼자 나는 "산으로 보약 먹으러 간다"는 소리 주장을 하며 혼자만 다녔는지 후회가 된다. 그런데 요즘은 "늦게 배운 도둑질이 더 무섭다" 더니 뒤늦게 산행길에 동참한 동생들의 산타령이 늘 바쁜 나를 산으로 불러낼 정도이다.  

  

 

4거리 안부에서 일행들이 가던길을 멈추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후미 일행들을 기다리고 있다.

 

  

비오는날 사진을 찍다 보면 습기에 약한 디카 관리가 걱정이지만 그러나 사진을 찍어놓으면

울긋불긋 총 천연색 색깔이 얼마나 아름 답던지요. 난 이 모습을 "인화꽃(人花) 부르곤 하지요.

 

 

비는 내리지요. 숲이 우거져 조망은 제로이지요. 그러다 보니 막상 디카를 들고 있어도 마땅한 사진을  찍을 대상을 ?지 못해 필자는 애꾸지게 우중 산행때면 오전중 많이 나오는 버섯 사진을 찍으며 가지요. 이날 찍은 다양한 버섯 사진은 하단에 한꺼번에 편집하여 올리기로 합니다.

 

 

 

  

촉촉히 내리는 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메뚜기인지 여치가 잔뜩 포즈를 취해줍니다.

  

  

갸녀린듯하면서도 아름다운 원추리꽃

  

  

긴꼬리수염

  

우리들 어릴적 배곱은 시절엔 이 꽃을 "말싱아"라 부르며 그 잎새를 따 먹어 입이 푸르스름 하도록 먹었어요 일종의 배곱음을 달래기 위한 일환이었지요 유식한말로 하면 바로 "초근목피" 입니다. 그때 그시절 우리네 사람들은 고작 하루 세끼 깡 보리밥에 일년이가도 어디 돼지고기 한 점을 맛볼 수 있나요. 오직 채소류 나물류 아니면 (된장, 고추장, 간장) 뿐 그런데 요즘세상 " 다이어트와 건강 차원"에서 보면 그때 그시절 그 배고픈 고생한것 그리고 초근목피 고생이 어쩌면 고생이 아니라 나를 위한 건강생활에 소중한 도움이 되지 않나 좋게 좋게 생각을 합니다.

  

  

자! 여기봐여 찰칵~~~   

  

  

아니 이게 웬일이여? 인등산에 웬 첨성대가?

  

어떤 분이 쌓은 소원탑인지 정말 정성으로 잘 쌓았습니다. 이 탑을 쌓으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분에게 신의 가호와 축복이 함께 하시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인등산 정상비 해발 666m

  

정상비에서 좌측으로 가면 대모천마을이고 우측으로 가면 도덕마을 방면으로 갈 수 있다. 

  

  

아마 확실는 모르지만 SK그룹에서 인등산을 보호림으로 관리하고 있는것 같다.

  

  

그런데 인등산 정상에 오르니 올라오는동안 간간히 내리던 빗줄기가 멈추고 갑자기 시야가 확 트여 우리는 일행들에게 비 안올때 서둘러 점심 식사를 하도록 하고 안내를 하고 선들선들 불어오는 산바람 청풍을 가슴에 앉고 각자 배낭에 준비하여 온 점심을 먹으며 여기 저기서 하하 호호 들려오는 즐거운 웃음 소리가 산행의 낭만을 이야기 하는듯 하다.

  

  

야! 운해다~~~

  

  

  

  

우리 일행들이 점심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인등산 마즌편 천등산 방향에 멋진 낭만의 운해가 장관으로 펼쳐져 있어 일행들 너도 나도 식사를 하다 말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며 이리 뛰고 저리뛰며 디카에 멋지고 아름다운 운해를 담느라 여념이 없다.

  

  

  

  

식사를 마치고 장재 방향으로 하산에 앞서 연산동(최윤영)

대장으로 부터 인등산에 대한 유래와 지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 

  

  

하산에 앞서 일행들이 단체 기념 사진도 찍고

  

  

장재 방향으로 하산을 서두른다.

  

  

이곳 삼거리에서 전망대 방향으로 하산 할 수 있으나  우리들은 조금이라도 산행을 더 하겠다는 욕심에 장재 방향으로 하산을 하였으나 문재는 장재에서 로프설치 지대로 하산해야 할것을 475.9봉까지 가는 바람에 하산길에 엄청난 고생을 하게 된다. 

  

인등산 산행길에 만난 야생화

  

  

1. 일월비비추

  

 

2. 누리장나무

  

 

3. 세잎종덩굴

 

 

 

 

 

4. 하늘말나리

 

 

5. 벌등골나물

 

  

장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후 우리들은 475.9봉으로 향한다. 

  

  

옷나무 열매

  

  

  

하산지점 알바로 고생문 속으로...

  

앗뿔사 아 그런데 우리들이 장재에서 좌측으로 로프 설치 지대로 하산을 해야 했는데 그넘의 산 욕심 "과유불급[過猶不及]"으로  475.9봉을 더 오른후 하산을 하려했으나 하산코스 오판으로 우리들은 근 1시간 반에 이르는 동안 하로가 미심쩍은 미로길로 들어서는 바람에 하산 지점을 전방 300여 미터 지점에 빤히 내려다 보이는 상황에서 475.9봉으로 다시 빽하기 뭘해 그냥 치고 나가자는 판단하에 남정네들도 결코 쉽지 않은 가시밭길을 뚫고 정면 돌파하는 바람에  

  

선두에서 가시덤불과 옷나무, 그리고 산초나무 지대, 엄나무 군락지대, 가시덤불 그런가 하면 엎친데 덮친다는식으로 산딸기밭 넝쿨이 얽히고 ?힌 가파른 처녀림 숲을 뚫고 하산을 하다보니 "산전수전[山戰水戰]" 남자들이야 그래도 뚝심이 있어 미끄러지거나 넘어지지 않고 모두 안전하게 내 뒤를 따라 어렵게 날머리 구간에 도착을 하였는데 문제는 중간그릅과 후미그룹엔 대부분 여자 회원님들이 되어 오전에 내린 비로 인하여 미끌어지고 엎어지고 가시에 찔리고 그야말로 "악전고투" 고생을 하며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져들어 

  

 심지어 어떤 회원님은 비명을 지르고 더 낳아가 울음보까지 터뜨리는 고생을 하며 하산하는 소리가 들려 오지만 별다른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안이 없어 애만 태우며 모든 회원님들이 안전하게 전장속에서 살아남아  안전 지대까지 하산할 수 있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드디어 후미 그룹 보다 조금 앞서 탈출하고 있는 "도영이 할마이와 여동생 그리고 매제의 모습이 보이는데" 그 모습 보니 그때서야 불행중 다행이란 안심을 하며 언덕 비탈을 내려서는 일행들 손을 부축하여 주니

  

울 도영할마이 하는말 "당신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여편네는 죽거나 말거나 혼자서만 앞서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하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기 와이프 챙기며 하산을 하는데 당신은 뭘하는 사람이냐며 푸념을 하지만 이미 난 속으로 그런 소리 들어도 싸다는 생각했기에 미안한 마음으로 그래도 난 모두들 안전을 위하여 선두에서 길을 개척하여 여러분들 전원 이번 인등산 산행 작전에 성공하고 살아서 돌아왔으니 그만하길 다행이라 생각하라고 말을 하니 "울 도영할마이 하는말 내 두번 다시는 당신따라 산행에 따라 나서나 보라나 뭐라나 ㅋㅋㅋ ㅎㅎㅎ

  

  

죽지 않고 살아돌아온것이 얼마나 고맙던지요 누이동생 부부와 도영이 할마이

  

 

  

그 험한 코스에서 그래도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하산을 마친 일행들 모습은 마치 전장에 "패잔병" 그모습과 어쩌면 그리도 흡사하던지요. 여성들은 힘이 지치다 보니 그냥 앉은채 미끄러져 내리고 굴르고 그야말로 거지중에도상급 거지 차림으로 날머리 가시덤불 구간을 나서는 모습 보며 반가움에 또 한편으로는 그 남루한 행색에 절로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어 배꼽을 잡고 웃고 있으니

 

일행들 왈 아니 청파님은 선두에서 길을 잘못 인도하여 이 많은 사람들을 "개고생" 시켜놓고 뭐이 좋아 그리 웃기만 하냐고 한 소릴 하지만 그렇다고 절로 터져나오는 웃음이 그칠리 없지요 하하하하 ~~~ 그때 상황 생각하면 지금 산행기 쓰면서도 나 혼자 미친넘처럼 배실배실 실실 웃으며 글을 쓰고 있네요.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날머리 구간 변소앞 개천에 개울물이 흐르고 있어 어떤 뇨자분들은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옷을 입은채 철퍽 흐르는 개울물에 퍼질러 앉아 만신창이가 되도록 흙투성이가된 옷을 빨고 있는 모습 보며 주책없는 청파는 또 다시 한 바탕 배꼽을 잡고 뒤비져 웃고 말지요.

 

이렇게 엎치락 뒷치락 하산구간 "개고생 인등산 산행"을 모두 마치고 우리는 서울로 귀가길에 접어들기전 보너스로 "울고넘는 박달재 고개" 견학을 하기 위하여 달려 가며 너무 고생시켜 미안하단 말을 전하니 당시 상황같아선 원망도 많이 했는데 결과가 좋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멋진 산행을 하였다 다들 기뻐하는 모습보며 얼마나 안심이 되며 기쁘던지요.

  

으이그 그나 저나 나가 주책이지 ... 아무리 사람을 좋아하기로서니 낼 모래면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무슨 "부부산행" 방장을 한다고 앞장을 서다 일행들 개고생을 시켰는지 .... 하던일도 이쯤에선 적당히 내려서는것이 도리인것을 지가 이팔청춘도 아닌데 앞장서길 좋아 하다니... 아무래도 올 년말쯤은 더 이상 실 수 하기전 능력있는 아우들에게 바톤을 넘겨야 할것을 작심을 한다.  

  

  

  

  

우리 일행을 싫고 박달재를 향하여 달리던 버스는 잠시 삼탄유원지에 정차하여 멀리 삼탄 터널을 통과 삼탄철교를 향하여 몇 컷 사진을 찍는다 그런데 이곳 삼탄철도에는 대부분 시멘트를 싫은 화물 기차가 다니고 있네요. 이곳 삼탄유원지에서 조금만 더 가면 "삼탄역"이 있다. 그런데 이곳 삼탄유원지 인근에서 영화"박하사탕"을 촬영한 촬영지가 되어 근래들어 젊은 아베크족들이 많이 오는곳이라 한다.

  

  

시멘트를 싫은 긴 화물 열차

  

  

삼탄유원지가 명돌마을이다.

  

  

삼탄강 시비 

  

 인등산 산행길에 만난 야생 버섯들

 

  

 

 

  

 

 

  

  

  

  

  

  

  

  

  

  

      

  

 

  

  

 

  

  

  

  

  

  

  

  

  

  

  

  

 

 

 

 

 

 

1. 박달재의 유래 (해발 453미터)
산높고 골깊은 이 고개는 그 이름을 모르는이 드문 박달재 - <朴達峴> 이다. 치악산의 맥을 뻗어 백운산이 되고 그 줄기가 다시 남으로 달려 구학산, 박달산, 시랑산을 이루니 이 박달재는 동서로 봉양과 백운을 잇고 멀리는 제천과 충주를 잇는다.
1216년 고려의 김취려<金就礪> 장군이 거란의 대군을 여기서 물리쳤고 1268년 고려의 이 고장 별초군<別抄軍>이 또한 여기서 몽고의 군사를 막아냈다. 영남땅 도령 박달과 이 재 아랫마을 처녀 금봉의 사연이 전해오기도 하고 박달은 태고적부터의 유래를 지닌 白山의 뜻이라고도 하나 이 오랜일들을 오늘날 뉘 소상히 알랴.

2. 박달재의 의미
박달재는 조선조 중엽까지 이등령이라고 불리어졌다. 이는 천등산 지등산이 연이은 嶺마루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곳에는 인등산도 함께 있어 天, 地, 人이 모두 갖추어진 유일한 곳이다. 박달재는 아득한 옛날 우리민족의 시원과 함께 하늘에게 天祭를 올리던 성스러운 곳이다. 박달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 자체가 가진 의미는 없다.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가지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이 한자어로 차용이 되면서 <朴, 白, 弗, 不, 發>등으로 쓰였다.


달(達)은 산이나 언덕등을 나타내는 알타이어어의 고어이며 단군신화 속에서 나타나는 아사달, 금미달 등이 그것이며, 특히 괴구려에서는 지명에 많이 쓰였다. 그러므로 박달은 白山으로 풀이 되는데 이 백산은 태백산, 백두산등과 동일한 의미와 기능을 갖고 있다. 단군조선을 세우신 단군왕검의 壇은 흔히 박달나무 단자로 이해되고 있으나 이는 박달 즉 백산을 의미한다. 따라서 단군왕검은 백산 또는 태백산의 임금을 말하는 것이다. 단군이래로 우리민족이 천제를 올리던 백산은 여러곳에 있다. 그리고 그 산들중의 하나가 바로 이곳에 있는 천등산 박달재인 것이다.

3. 박달재의 전설
영남의 과거도령 박달은 과거 합격이라는 청운의 꿈을 갖고 한양을 찾아가다 평동마을의 한 농가에서 유숙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여난을 조심하라는 가훈을 가슴에 지닌 박달도령의 늠름하고 준수한 태도에 그집의 딸 금봉이는 그만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박달도령도 금봉이의 절절하고 연연한 자태에 넋을 잃고 말았으니, 양인심사는 양인지라. 뜻과 뜻이 맺어지고 마음과 마음이 이어져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달빛이 호젓한 밤 두 청춘남녀는 사랑을 맹세하고 장래를 약속하며 밀회로 밤을 새웠다. 그러나 이들은 이별이란 말 아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정성을 다해 몰래싸준 도토리묵을 허리춤에 달고 박도령은 눈에 어리는 금봉이의 모습을 애써 지워가며 이등령 아흔 아홉구비를 꺽어돌며 눈물을 뿌렸다.


한양에 도착한 박달이는 만사에 뜻이없고 오로지 자나깨나 금봉이 생각뿐이었다. 연연한 그리움을 엮어 벽에 걸고 과거를 보았으나 결과는 낙방이었다. 몇일을 두고 고민하는 날이 계속 되었다. 그리움 내키는대로 평동을 가자니 낙방의 초라한 모습을 금봉이에게 보일 수 없어 가슴을 태웠다. 한편 박달을 보낸날부터 성황님께 빌고 빌기를 석달열흘, 끝내 소식이 없자 금봉이는 아흔 아홉구비를 그리운 박달의 이름을 부르며 오르고내리다 마침내 실신하여 상사의 한을 안고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박달은 금봉이의 삼우날 평동에 도착하여 금봉이의 허망한 죽음앞에서 실의와 허탈감에 그만 의식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가? 눈을 뜬 박달의 앞에 금봉이가 애절하게 박달을 부르며 앞으로 지나갔다. 앞서가던 금봉이가 고개마루 정상벼랑에서 박달을 부르며 몸을 솟구치는 찰라, 박달은 금봉아! 한마디를 부르며 금봉이를 잡았으나 이는 허상일뿐 벼랑에서 떨어지는 몸이 되었다. 봄이면 두 남녀의 이루지 못한 애?은 사랑을 대변하듯 연붉은빛 진달래 꽃이 아름답게 피고 진다.


울고 넘는 박달재 가사 (작사 반야월/ 작곡 김교성/ 노래 박재홍)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비에 젖는구려/
왕거미집을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오 소리쳤오 이가슴이 터지도록/

부엉이 우는산골 나를두고 가는님아/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가소/
도토리 묵을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박달재 하늘고개 울고넘는 눈물고개/ 돌뿌리 걷어차며 돌아서는 이별길아/
도라지 꽃이피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금봉아 불러보나 산울림만 외롭구나

 

 

 

  

그간 박달재는 다른곳 원정 산행을 다니며 오가는길에 재를 지나치기만 하였는데 이날 인등산 산행 후 일행들과 함께 "울고넘는 박달재"를 40여분에 걸처 돌아 보았는데 "박달이와 금붕이"에 대한 전설속 사연이 너무도 애틋하고 아름다웠지만 무엇 보다도 조각공원(목각) 예술작품 지역에 설치된 예술작품들은 어쩌면 그렇게 하나같이 남정네와 관련한 남근 작품들을 리헐하게 표현하여 작품을 완성하였는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면 바로보기를 부끄러워 하는듯 하면서도 힐끗힐끗 그 잔뜩 고추세운 "대왕고추"를 바라보는 시선이 하나같이 반짝반짝 빛나는듯 보인다. 

  

그런가 하면 "박달이와 금붕이 사연"이 담긴 예술 조각공원 작품들은 하나같이 투혼을 담아 "박달이와 금붕이"에 대한 애끓는 사연을 조각 예술작품에 표현 하여 목각공원의 장난끼 어린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정서적인 사색을 할 수 있는 공원임에 손색이 없다. 우연치 않게 흘러간 우리 노래 "울고넘는 박달재"노래말에 나오는 "박달재 고개" 를 돌아본 심정은 앞으로 "박달재고개" 그곳에 가면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박달재 고개를 돌아본 후 오후 5시 반 현지를 출발하여 사당역에 도착하니 7시 45분이 지나고 있다. 중간에 도로공사 구간이 있어 다소 막힘으로 서행을 반복하였지만 다행히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88도로를 이용하다 보니 그래도 2시간 20여분만에 사당역 10번출구에 도착하여 일행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일행들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나는 갈길이 바뻐 서둘러 귀가길에 들어 9시 반 부터 다시 큰 아들에게 업무 인계받아 근무를 하는데

  

이날은 평소와 달리 왜 그렇게 졸음이 쏟아지는지... 아무래도 앞으론 산행 다녀와 평소처럼 "서부전선 이사없이" 근무가 쉽지 않을듯 하다. 바쁘다는 핑계 아직 손놓고 놀 수 없다는 정신으로 사실은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사업을 하루 17시간씩 근무하며 운영을 하다 보니 이젠 적당선에서 아무래도 하차 하여야 할때가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한다. "건강은 건강할때 내 자신이 스스로 지키는것"이라고 스로건처럼 말하고 살아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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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파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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