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칠선계곡의 여름

이글거리는 태양에 녹초가 된 여름,

갑자기 캄캄해지고 번갯불에 하늘이 빠게지며 천둥소리가 몰고 온 소나기에 불안한 - 비발디의 사계 중 '여름'은 폭염을 그렇게 씻어내지요.

난 오늘아침 봉산에 끼면서 비발디의 '여름'에 잠시 빠저들거나 아님,

한낮 어느땐 그런 뇌우를 기대해 봤지요.

그 소이는 몇 해 전 겨울, 

봉산에 쥐새끼처럼 끼어들었다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선율에 눈 감았었고 이내 진종일을 하얀 백덕산의 설국에 빠져 가까스로 탈출했던 추억을 간직하고 있어서 였지요.

오전 10시경, 오늘 처녀운항한 에어봉산호는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용소골 입구에서 나를 땡볕에 내려놓습니다.

짙푸른 푸나무의 초록휘장은 사방을 에워싸 하늘을 쥐어짜고 있음이 지리산 칠선계곡은 분명한 것 같음인데 오그라든 하늘의 열기는 염병을 합니다.

추성교를 지나 완만한 경사로를 오르는 나는 따가운 열침에 속수무책,

에너지를 몽땅 짜내며 푹푹 찌는 열탕에 드는 기분이었슴다.

폭염를 따돌리려 온 칠선계곡의 로망은 반 시간도 못 돼 집생각이 났죠.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란 말이 오늘도 씨가 될라?

 

 

두지동네 두서너 체 산집을 지나자 연분홍나팔이 수풀 위로 긴 모가지를 내밀고 해바리길 하다 지쳤던지 외면하고 있습니다.

죽을 때가지 옷 한 번만이라도 입고 뽐내고 싶은 그리움에 모가지만 뽑은,

목이 길어 슬픈 꽃 - 상사화여!

이 염천에 가는 모가질 뽑아 환~하게 웃으면 계절이 노망끼가 돋아 꿈에 그리던 옷을 입혀줄줄 알았더냐?

첩첩 지리산도 날가뭄에 염병할 지경인데 상사화 - 니 소원 들어줄 것 같더냐?

 

 

드뎌 푸나무숲 터널에 들었습니다.

점점 오그라들던 염천은 독안의 물만 하더니 무성한 이파리톱날에 그마저 갈갈이 토막나 빗살이 돼 부서집니다.

부서지는 건 햇살뿐 만이 아닙니다.

지리산 골골을 쥐어짜고 어루만지며 지상의 평등을 추구하러 달리던 물길이 바위에 부서지다 낭떨어지에선 곤두박질 소금처럼 부서집니다.

물 부서지는 등살에 바람이 기겁을 하며 달아나 숲 이파리에 매달리면 이파린 간지려 사시나무 떨듯 흔들어 댑니다.

그 시원한 바람이 나의 얼굴을 스치며 '집 나간 개고생'을 치유합니다.

 

 

피서가 아니어도 가끔은 개고생 하러 집을 떠나야 합니다.

낯선 곳에선 잔혀 새로운 것들과 맞닥뜨리며 시야를 넓힐 수가,

뜨악한 얼굴들 틈새에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기도 하기 땝입니다.

집 나설 땐 될 수 있음 짐을 가볍게 꾸립시다.

비운 만큼 채울 곳이 많아서 입니다.

짐이 많음 버릴 쓰레기도 많아 이래저래 개고생만 할지 모릅니다.

흐르는 물은 모든 걸 내려놓습니다.

그의 부단한 내려놓기가 청정수가 됨이고,

 놈들이 모여 명경수가 돼 시퍼런 쪽빛으로 우릴 미치게 유혹합니다.

내려놓아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텅 빈 물은 모든 걸 품어 안습니다.

가까운 수플은 물론 날아가는 잠자리며 이름모를 새들과 하얀뭉개구름과 지만큼 푸른 쪽빛 하늘도 품에 안아 보여줍니다.

마음을 비워야 뭔가를 채을 수가 있다지요.

뭔가를 채워 올 때 '집나간 개고생'은 개고생이 아닐테지요.

 

 

칠선계곡엔 물폭탄 우뢰소리 못잖게 시끌대는,

어쩜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울음소리가 이 없습니다.

쓰르르~ 맴~맴 하는 청아한 토종소린 악다구니 쓰는 으악스런 외래매미 등살에 기가 팍 죽을 것 같은 애처러움이 돋습니다.

해도 놈들의 울음소린 우리네 맘을 그지없게 해 줍니다.

-<"쓰름쓰름 쓰으름~" 스름매미 살갑고, "맴 맴 매앰~"참매미 조신하다."트르륵 츨르륵" 트럼펫 불러대는 참매미, "따르륵 따르르~"기관총 쏘아대는 참깽깽매미, "지글지글 딱 따그르르~" 기름 볶아대는 유지매미, 온종일 악머구리 끓듯 머리에 쥐가 난다. 새각시 방귀뀌듯 조심조심 반짓고리 골무만 한 토종매미들아, 저 소나무등껍질처럼 우악스런 외래매미 등살에 어찌 견디며 살아갈고! >-

라고 쓴 김화성 기자의 매미타령이 생각납니다.

7년을 내공들인 그 청아한 울음은 우리맘에 청량제 노릇 톡톡히 하지요.

 

출렁다릴 출렁대다보면 선녀탕과 옥녀소가 잉크물 풀어놓았나 싶은데

소(沼) 가장자릴 삐잉 둘러 붙어 매미떼처럼 왕왕대는 우리네들이 볼썽 사납슴다.

산의 주인은 푸나무고,

새들이고,

온갖 벌레 곤충들이며,

계곡 골의 주인은 돌맹이와 바위와 이끼와 물이 틀림없음인데

 여기저기 달라붙어 소란피우는 우리네는 외래매미보다 못한 불청객이 이니던가요?

손님은 남의 집엘 가면 주인장이 주는 것만 보고 만지다 마음 속에 간직하고 와야,

에 또 초청 받을 수가 있는 손님이 되는 게 아닐까요? 라고 생각해 봅니다.

손님노릇 하기 어디 만만하던가요!

 

비선담에 이르렀습니다. 정오가 지났어요.

갈갈한 목 추기고 되돌아서야 했습니다.

우리들이 망나니 외래매미 노릇 한 탓입니다.

손님인 주제에 주인행세 하려 한 벌 받는 게지요.

예까지만이라도 손님인 척 하게 한,

눈 감아 준 산의 주인장들께 감사해야 하겠지요.

계곡은, 푸나무는, 골을 줄차게 달리청정수는,

매미들과 새들의 합창은 우릴 여름에서 잠시 때어 놓음도 잊지 않았지요.

여름(暑)은 사람(者)이 해(日)를 이고 있기에 더운 게지요.

해만 때놓으면 더윌 떨칠 수가 있다는 셈이지요.

칠선계곡은 우리들 머리위에서 해를 앗아 갔습니다.

피서는 제대로 온 게지요.

 피서지치고 산의 계곡만 한 곳이 어디 있으리요!

비발디의 '여름'이 없었어도 칠선계곡의 여름은 넘 시원했습죠.

봉산님들 고맙슴다.

2013. 08.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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