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산 피아골~장밭골~선암사골, 이 길이 마지막인 줄 어찌 알았으리요.

 

Mt. 1113 조계산 계곡

 

산 행 일 : 2011년 8월 3일 수요일

산의날씨 : 흐림

동 행 인 : 지리산악회 산우님들

 

산행(도상)거리 : 약 10.7km

              송광사 주차장 <1.2> 송광사 <3.0> 연산사거리 <2.4> 보리밥집 <3.1> 선암사 <1.0> 선암사 주차장

 

산행시간 : 7시간(식사 휴식 2시간 15분포함)

          송광사 주차장 <0:45> 토다리 <1:35> 연산사거리 <0:40> 아래 보리밥집 <1:45> 선암사 주차장

 


 

피아골의 무명 폭포


 


조계산 산행지도 - 출처 부산일보

 



2006년 10월 지리산 태극종주 때 칠선봉으로 가면서 - 색안경을 쓴 이

 

이 글을 쓰기가 늦어진 것은 나도 모르게 목이 메고, 임과 함께했던 그날이 자꾸 떠오르면서 마음을 추스르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명을 달리하신 임을 언제까지나 붙들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갈수록 힘들어지는 산행이긴 하나 어느 산, 어느 산줄기를 따르든 임과 함께 걷겠다고 약속은 하겠습니다.

 



송광사 고목의 버섯

 



피아골 계곡 - 1

 



피아골 계곡 - 2

 

폭염특보가 발효된 8월 5일 낮.

비교적 시원한 순천의료원 장례식장 안에는 은은한 향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영정 앞에 이르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평소 막걸리를 좋아하시되 단 한 번도 흐트러짐을 보이지 않았던 고인에게 산행대장 허남금 님이 일행을 대표하여 술잔을 올렸다.

“형님, 부디 극락왕생하옵소서.”

 



피아골 계곡 - 3

 



피아골 계곡 - 4

 



피아골 계곡 - 5

 

부음을 받은 것은 전날, 그러니까 조계산 계곡산행을 다녀 온 바로 뒷날이었다.

집 부근 건강 길에서 걷기운동을 하고 있을 때 허남금 님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형님, 정구 형님이 돌아가셨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뭔 소리여, 장난하지 마!”

“밀레 사장한테서 전화를 받고 믿을 수가 없어서 병원에 확인을 해봤습니다. 진짭니다.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합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더니, 윗몸 일으키기 운동기구에 엉덩이를 걸치고 하늘을 바라봤다.

잣나무 바늘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사정없이 내리꽂힌다.



피아골 계곡 - 6

 



피아골 계곡 - 7

 



피아골 계곡 - 8

 

일반 산행이 성에 차지 않는다는 지리산악회 사람들.

1대간 9정맥을 끝내고 나자 하나 둘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현재는 적은 인원으로 2차 호남정맥 종주를 하고 있지만 우선 나부터도 동참하지 못하다보니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았다.

“오랜만에 얼굴이나 한 번 보도록 합시다.”

방학을 맞아 여유가 있는 여수의 신재균 님이 제안을 했고, 나는 술도 마시게 될 분위기를 예상한 나머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마땅한 장소를 찾아야 했다.

조계산 계곡, 송광사 주차장을 기점으로 신평천을 따르다 피아골로 들어서고 연산사거리로 올라 장밭골에 합류하여 보리밥집에서 식사를 한 후 선암사골을 타고 선암사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적당한 곳에서 대충 씻고 다시 시내버스를 타면 제격일 것 같았다.

 



송광사 석주

 



세월각과 척주각 - 2010년 4월 산행 때 촬영

 



우화각 앞에서 - 모자를 안 쓴 이

 

10 : 50 송광사 주차장 출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확 끼쳐든다.

‘僧寶宗刹曹溪山松廣寺’ 석주를 지나 신평천을 가로 지르는 누다리 청량각을 통과하지 않고 계곡 좌측을 따르다 이내 물길을 건너 오른다.

일주문과 송광사 역대 고승과 공덕주들의 비를 모아놓은 비림을 지난다.

이어 단칸짜리 건물 두 채, 척주각(滌珠閣)과 세월각(洗月閣) 앞에 이르렀다.

“죽은 사람이 절에 들어오려면 저기에서 세속의 모든 때를 씻어야 한답니다.”

“그러면 시신을 안치했다는 말인가?”

“..........”

 

나란히 걷고 있던 이정구 님의 질문에 확실한 답을 드릴 수 없었다.

시신이 아닌 위패를 말하는 것이었다.

남자의 혼은 ‘구슬을 씻는다’는 척주각, 여자의 혼은 ‘달을 씻는다’는 세월각에서 각각 세속의 찌든 때를 씻는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지 않은 우측 길은 천자암으로 갈 수 있다.

 



두 번째 다리

 

천자암으로 갈 수 있는 삼거리 좌측 계곡 다리를 건너면서 보니 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가끔 나뭇잎을 살랑거리는 바람이 불어오지만 숨은 턱에 차고 땀은 비 오듯 흘러내린다.

한동안 걸어 개울이 가까운 지점에 이르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물가로 내려간다.

물속에 머리를 처박고 10여 분간 휴식을 취한다.


토다리

 



피아골 계곡 - 9

 

11 : 45 토다리

이곳이 피아골 입구로, 다리를 건너면 송광굴목재로 곧장 갈 수 있으며 계곡을 따르면 연산사거리로 긴 골짜기가 이어진다.

시끄러울 정도로 악을 쓰지 않고 적당한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줄기를 수시로 건너간다.

잦은 비로 인하여 징검다리를 삼켜버린 곳이 더러 나오기도 하지만 신발을 적시지 않고도 건널 수 있다.

 



쉬어갑시다.”

 


 

능선이 가까워지는 지점




밧줄이 늘여져 있다.

 

12 : 33~43 개울 가 휴식

소나기를 퍼 붓기라도 하려는 듯 어둑어둑해지기도 하고 뜨거운 햇살이 쏟아지기도 한다.

시원한 물이 흘러내리는 계곡이 아니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이 없다면 산행을 포기하고 적당한 곳에 자리 잡아 물속에 들어앉았다 되돌아섰을지도 모른다.

이정구 님이 배낭을 열어 막걸리를 꺼낸다.

텅 빈 배낭도 부담스러운 날씨에 막걸리 세 병과 안주를 짊어지고 올라온 것이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일행들과의 거리가 차츰차츰 벌어져 버린다.

 



연산사거리 장밭골 방향 초입

 



장밭골 본 계곡

 



장박2교

 

13 : 35 연산사거리(등고선 상 770m)

토다리로부터 한 시간이면 올라올 수 있는 곳에 반시간을 더 걸어 힘들게 당도했다.

가느다란 물줄기가 겨우 맥을 잇는 몇몇 개울을 지나 장밭골 계곡을 건너간다.

피아골과 달리 장밭골은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다.

작은 굴목재 갈림길과 나무다리 세 개를 차례로 통과하고 선암사와 송광사를 잇는 길을 가로질러 보리밥집에 이르니 일행이 안 보인다.



선암사와 송광사로 이어지는 길과 보리밥집

 



아래 보리밥집의 겨울 풍경 - 2010년 12월 산행 때 촬영

 



중국 봉황산 나한봉에서 - 2006년 8월

 

14 : 15~15 : 40 아래 보리밥집

자가용을 이용하여 선암사에서 올라온 민병권 님 부부가 활짝 웃으며 반겨주고 평상의 커다란 상 위에는 벌써 식사준비가 되어있다.

내가 보리밥을 즐겨 먹는 방법은 참기름 등 기름기가 없이 다른 나물도 일체 넣지 않고 갈치 속 젓갈에 싱싱한 열무만 잔뜩 넣고 비벼서 된장국에 곁들여 먹는 것이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웃음꽃이 만발하고 동동주 잔이 몇 순배 돌아간다.

 



굴목재 - 장군봉 방향

 



선암사골 - 1

 



선암사골 - 2

 

다시 계곡을 따르다 작은굴목재로 올라 비로암 길에서 우측 서부도전 골짜기로 내려서려고 했는데 너무 지친데다 술도 오르니 지루하지만 무난한 선암사 골을 걷기로 한다.

작은 굴목재로 오르는 가파른 길이 몹시 부담스럽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겨우 호남정맥으로 올라서 고동산 방향과 조계산 방향의 정맥을 잠시 바라본 뒤 선암사로 이어지는 더욱 더 가파른 길을 타고 내려간다.

몇몇 분은 금세 자취를 감춰 버린다.

 



편백림

 



서부도전

 

편백림 산책길에 이르자 다리가 조금은 편해진다.

대승암 갈림길을 지나 서부도전 입구에 닿았지만 뜨거운 햇빛이 무서워 슬쩍 훔쳐보고는 나무 그늘 밑으로 얼른 피해버린다.

강선루는 아직도 보수공사 중이고, 보물 제400호인 승선교를 통해 개울을 우측으로 건너 조금 가다 작은 무지개다리를 건너 다시 넓은 길을 걷는다.

호법선신(護法善神), 방생정계(放生淨界) 두 장승 사이를 지나 부도전에 이르자 이정구 님의 모습이 보인다.

 



조약돌 무더기와 작은 무지개다리

 



선암사 계곡

 

“줄줄 흐르지?”

“.............”

“조용히 따라와 봐”

기가 막힌 곳으로 안내한 이정구님의 얼굴에 흐뭇해하는 미소가 넘쳐흐른다.

땀으로 범벅된 셔츠만 갈아입고 시내버스 종점으로 향한다.

 



중국 천산 정상에서 - 2006년 8월

그날은 어쩐 일인지 모두들 그냥 헤어지기가 섭섭하다고들 했습니다.

어느 누군가와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어떤 계시를 받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새콤달콤한 서대회가 생각났습니다.

서대회 전문요리 집을 찾아보겠다며 무더위와 함께 임의 동네인 웃장을 빙 돌때는 정말이지 짜증도 났었습니다.

덕분에 임의 동네를 둘러봤으며 결국에는 일반 횟집을 찾아 술을 나눠 마신 것이 임과의 영원한 이별주가 될지 꿈엔들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이제는 ‘짬짬이’와 ‘틈틈이’ 농담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는 임께서 영원히 살아계실 겁니다.

임 이시어, 부디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