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화성에는 사방에 사대문으로 팔달문(남), 창룡문(동), 장안문(북), 화서문(서)를 두었다.
거기 있는 이정표를 보니 내가 가는 것은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평산성의 성길이라서 전망이 좋았다.
남수문 위로 연결되어 팔달문에 이르는 굽어보는 성터길도 그랬고, 팔달산에 만개한 벚꽃 길도 그랬다.
여기서 동대문 격인 창룡문까지 가는 길에 "동삼치- 동이포루- 봉돈- 동이치- 동포루- 동일치 -동일포루" 를 거쳐야 하는데 성(城)에 문외한인 나 같은 사람에게는 주마간산격(走馬看山格)이어서 그게 그것 같아 구별하기가 힘든다.
위에서 '치'가 3번 나왔는데 치는 치성의 준말이다.
치성(雉城)이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성곽에서 바깥으로 튀어나오도록 한 구조물이다.
성벽 가까이 접근하는 적군을 감시하고 공격하기 위한 시설물이다.
' 치'는 꿩 '치(雉)'자로 꿩은 자기 몸을 숨기고 밖을 엿보기 잘하기 때문에 그 모양을 본따서 치성(雉城)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다.
수원화성에는 동일치, 동이치, 동삼치, 서일치, 서이치, 서삼치, 서남일치, 서남이치, 남치, 북동치 등 10개의 치성이 있다.
포루(鋪樓)란 위화 같은 치성(雉城)위에 설치한 누(樓)이다. 평상 시에는 군사들의 대기나 휴식의 역할을 하다가, 유사시에는 적을 감시하고 공격할 때 쓰이는 누각이다.
수원화성에는 동일포루, 동이포루, 동북포루, 서포루, 북포루등 5개의 포루(鋪樓)가 있다.
포루에는 포루(鋪樓)와 포루(砲樓)가 있다.
후자 포루(砲樓)는적이 성벽에 접근하할 때이를 막기 위해서 화포를 쏠 수 있도록 치성을 발전시켜서 만든 형태다. 수원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만든 5개의 3층포루가 있는데 사방으로 동포루, 서포루, 남포루, 북동포루, 북서포루가 있다. 열쇠모양의 구멍으 대포를 쏘는 구멍이다.
봉돈(烽墩)이란 한 마디로 봉수대(烽燧臺)를 말하는
것으로 벽돌로 만든 것이 특징이다.
평상 시에는 5개의 횃불 구멍 중 남쪽 첫 번째에서 밤에는 횃불, 낮에는 연기를 올려 이상이 없다는 봉화 신호를 보낸다.
4대문 중 동대문격인 창룡문(蒼龍門)을 지나니 시야가 확 트인다. 직진하면
동북공심돈(東北空心墩)이 있는데 보수중이다. 중국 요동지방에 있는 평돈(平燉)을 본떠 벽돌로 동그렇게 돈대를 만들어 쌓았다는 한국에 오직 여기뿐인 공심돈대를 못보고 지나친다.
드디어
동장대(東將臺, 연무대)가 나타난다.
이 성에는 2개의 장대가 있는데 팔달산 정상 서장대와 더불어 성 주변의 이상 유무를 살피면서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라서 넓다란 연병장이 있다. 그래서 일명 연무대라 칭하는 곳이다.
바로 그 아래가 화성열차 승차장이고 그 승차장 앞이 국궁(國弓) 활쏘기 체험장이다.
화성쳘차는 임금을 상징하는 용머리에 왕이 타는 가마를 형상화한 3량의 열차를 달았는데 위 수원화성 안내도에서의 붉은 줄이 화성열차가 가는 코스다.
편도 30분 소요에 성인 1,500원씩 받고 있지만 공휴일에는 1시간 30분 이상 기다려야 한다.
동장대 아래에는 암문(暗門)이 있다.
수원화성에는 동암문, 서암문, 서남암문, 북암문 4개의 암문(暗門)이 있다. 이 암문이 장대(將臺) 근처에 있는 것을 보면 적에게 들키지 않고 군수물자를 성안으로 공급할 수 있게 만든 군사시설이 암문이기 때문인 것 같다
. 그래서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암문을 만들어서 유사시에는 문을 닫고 주변에 쌓아 둔 돌과 흙으로 적이 모르게 암문을 메워 폐하도록하였다.
거기서 얼마를 더 가니 멋진 동북각루(방화유수정)능비마 아까 본 수원을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수원천(水原川)의 남수문(南水門)에 이어 북쪽에 있는 북수문(北水門)이다. 북수문은 일명 화홍문(華虹門)이라고도 하는데 '화(華)'는 화성을, '홍(虹)'은 무지개를 뜻하는 말이다. 장마철 물이 넘치면 물보라를 이루며 수문이 넘쳐나는 모습을 그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수원의 랜드마크가 되는 카메라 포인트 지점이기도 하다.
드디어 수원화성의 정문인 규모가 웅장한 장안문(長安門)이다. 정조가 13차례의 아버지 장헌세자(사도세자자)의 능행을 을 오갈 때마다 수원화성에 들릴 때 이 문을 이용하였다는 문이다. 성문 밖에는 반달 모양의 옹성(甕城)을 쌓았는데 이는 항아리를 반을 쪼갠 것 같다해 붙여진 이름으로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는 시설이다.
그래서 이 장안문에는 성문 좌우에 방어시설인 적대(敵臺)를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고 있다.
장안성 좌우에 북동적대와 북서적대가 있다.적대(敵臺)란 성문이나 옹성에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해 성문의 좌우에 설치한 방어 시설물이다. 그 두 적대에는 다른 곳에 없는 대포가 우랍스럽게 서 있다. 북동 적대의 홍아포(紅夷砲)는 사정거리 700m에 달하는 화기로써 성곽 또는 포루 등에 배치하거나 성곽 공격용으로 사용하던 대포다. 적대는 적군의 동태와 접근을 감시하기 위해 성곽보다 높게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 북동포루-북동치-북동적대-북서적대 북서포루- 북포루'를 지나 성에 2개밖에 없다는 3층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호)에 이르렀다. 군사가 안으로 들어가서 적을 살필 수 있게 만든 망루(望樓)였다.
건물 아래 치성(雉城)은 돌로, 위쪽은 전돌(벽돌)로 쌓은 것이다. 그 앞에 서니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만든 것이니 마음껏 구경하라"던 정조가 만족하며 하던 그 말이 들리는 듯하다.
그 바로 옆이 보물 제403호라는 서대문 격인 화서문(華西門)이다.
화서문(서문)은 옛날 화성 서쪽의 남양만과 서해안 방면을 연결하는 통로가 되던 문이었는데 석축으로 쌓은 무지개문 2층에 문루가 있다. 이 문은 화성 어느 문보다 원래 모습을 그래로 간직하고 있어서 보물 제403호로 지정된 문이다. 그 문을 지키는 옹성들이 서북공심돈(보물 제1710)과 어울려 한 바탕 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데 이를 앎인가. 수백 마리의 비둘기가 그 문루를 지키고 있다. 화서문 편액은 초대 화성유수였던 채재공이 쓴 것이다.
화서문(華西門)부터는 성벽을 우측에 낀 팔달산의 오름길이 시작되는데 지는 개나리와 벚꽃 넘어 팔달산 정상의 서장대가 우리 노부부를 물끄러미 굽어보고 있다.
벚꽃이 꽃비처럼 내리는 산성를 오르다 보니 금년 봄도 이렇게 가는구나 하였다.
그 벚꽃은 필 때보다 피어 있을 때가 아름답더니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낙화 모습도 또한 아름답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화의 모습이 아름다운 눈송이 같다.
벚꽃보다 먼저 피는 목련은 꽃입(꽃잎)을 하늘을 향하여 뾰족히 내밀며 필 때의 그 찬란한 아름다움과는 달리 지는 모습은 너무 지저분하고 추하다. 그래서 나의 지금 소원은 목련 같이 태어나 살다가 벚꽃 같이 지고 싶다는 것이다.
드디어 이 화성의 일주를 마치는 팔달산 정상에 오르니 서장대(西將臺)와 서노대가 나란히 우리를 반기고 있다. 서장대도 동장대와 같이 성 주변의 이상 유무를 살피면서 군사를 지휘하던 곳이라서 그 주변에 넓따란 연병장이 있다. 노대(弩臺)란 성 가운데서 다연발 활인 쇠뇌를 쏘기 위해서 높게 지은 방어 시설로 이 성에 동북노대와 함께 2개가 있다.
팔달산은 수원시의 중앙에 있는 산이라 사통팔달의 굽어 보는 수원의 전망에 시야가 시원했다.
팔달산에서 굽어 보던 화성궁을 향한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궂은 비였다.
그 비를 맞으면서도 부지런히 행궁의 이모저모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오다 보니 아뿔사 행궁 옆에 있는 화성행궁에서 가장 중요한 곳인 정조의 어진을 모신 '회령전'을 지나쳤구나.
여행을 마치고 보면 언제나 뒤내 남는 씁쓸한 뒷맛이 있다. 한번 더 와 성밖도 둘러 보고 화홍문과 창룜문 근처에 있다는 벽화거리를 보고 가라 부여 잡는 손길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