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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25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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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60대 부부의 지리산 종주 산행기 --

“호쾌한 지리산의 대자연. 삶을 재충전하다", 삶을 #재충전하다

 □ 일 시 2022.8.20(토) ~ 8.22(월) (산행 1박2일+심야고속버스 1박)

                            (날씨 : 대체로 구름이 많이 낌, 낮에는 맑음) 

□ 간 곳 : 지리산 천왕봉(1,915m) #종주 (성삼재-천왕봉-중산리 코스)

                  - 위 치 :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국립공원 : 055-970-1000)

                              ※지리산의 어원 :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는 곳

□ 간사람 : 우리 부부 (양○○ 68세, 이○○ 65세)

□ 교통편 : <갈 때> : 동서울터미널 → 성삼재행 심야 우등고속버스

                    <올 때> : 경남 산청 원지 → 남부터미널행 우등시외버스


□ #산행코스 : 총 산행거리 약 33km 

 -(2.7km)-#노고단-(10.5km)-#연하천대피소-(3.6km)-#벽소령대피소-(6.3km)-#세석대피소(1박) -(3.4km)-#장터목대피소 -(1.7km)-#천왕봉 -(2.0km)-로터리대피소-(2.8km)-#중산리 (환경교육원앞 버스정류장) 

<세부코스> : 성삼재-노고단-돼지령-임걸령-노루목-삼도봉-화개재-토끼봉-연하천대피소-삼각고지

-형제바위-벽소령대피소-선비샘-칠선봉-영신봉-세석대피소(1박)-촛대봉-연하봉-장터목대피소-제석평전

-통천문-천왕봉-법계사-중산리


□ #준비물 : 각 2인분 준비, 배낭무게 ①10.5kg ② 8.9kg(집사람)

- 등산배낭 2(대형/중형), 방수커버, 우의, 3단우산, 스틱, 헤드랜턴, 후래쉬, 물통

- 의류 : 등산복(7부바지,상의,반팔상의2), 바람막이,모자,반바지,양말2,속옷2, 손수건2, 팔토시

- 식료품 : 세척건조쌀1.4kg(2회분(1회분 남음)), 김자반 주먹밥4개, 도시락밥 2인분, 누룽지 조금, 

컵라면6, 육포2, 반찬류(김치볶음,고기+고추장볶음,멸치볶음,깻잎장아치,김자반), 초콜릿.

에너지바. 사탕, 껌, 자두, 사과2

- 취사도구 : 코펠,버너,라이터, 바람막이, 수세미, 수저, 컵, 가스1, 칼

- 담요, 에어베개, 면도기, 칫솔, 치약, 크림, 비누, 물티슈, 휴지, 비닐봉지3, 카드, 돈, 지갑, 손목시계, 

안경닦이, 밴드류, 비상약, 상용약3, 사혈침, 해열제(타이레놀), 분무파스, 밴드, 예비마스크2, 필기구 

- 휴대폰, 셀카봉(자립형), 예비배터리 및 충전선, 가는 고속버스표 사전예매.


□ 소요 경비 : : 합계 253,600원 지출

1. 교통비 : 소계 158,600원

- 동서울→성삼재(노고단)행 우등고속버스 : 37,800원×2인 = 75,600원

- 생태공원 입구 → 중산리탐방안내소행 마을버스 : 2000원×2인 = 4,000원

- 중산리탐방안내소 → 중산리 시외버스정류장 택시료 : 5,000원

- 중산리정류장 → 원지행 시외버스 : 4,300원×2인 = 8,600원

- 원지 → 남서울버스터미널행 우등시외버스 : 26,800원×2인 = 53,600원

- 남서울버스터미널 → 우리집 택시료 : 11,800원

2. 식사비 : 소계 29,000원

- 원지읍내 「송기원 진주냉면집」 저녁식사 : 10,000원×2인 = 20,000원

중산리 시외버스정류장 편의점 커피+아이스크림 : 9,000원

3. 기타 : 소계 66,000원

- 세석대피소 숙소 예약 : 13,000원×2인 = 26,000원

- 과일(자두 등),식재료(육포,김자반,컵라면 등 구입), 기타 : 약 40,000원

□ 시간대별 #산행일지 & Episode “산길정담”


<2022.8.20(토) : 제1일차(심야 고속버스에서 1박)>


- 21:30 :

지난 2년여 동안의 지루한 코로나 펜데믹 사태가 아직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부부가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집을 나서 #지리산종주산행 길에 올랐다. 장도에 오르다.




- 23:00 : 동서울터미널에서 성삼재행 심야 우등고속버스 (함양지리산고속, 사전예매, 28석 만석) 승차, 출발. 

여행을 떠난다는 건 언제라도 가슴이 설레는 법, 훌쩍 일상을 벗어난다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머릿속엔 

무지개가 뜬다. “야호!” 이번 종주산행이 60대 후반으로서는 조금 버겁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지리산의 

호쾌한 대자연에 흠뻑 빠진다는 생각에 그저 신명이 난다. 

특히, 젊은 시절부터 산행을 즐겨 해오면서, 여름철의 싱그러운 숲속 산행을 “최고의 산맛”이라고 치부하는 

나에겐 초록빛 융단으로 뒤덮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능선의 준봉들이 벌써 눈에 선하다. 

여름철 싱그러운 숲속길 산행은 단순한 산행이 아니라, 숲의 대자연에 묻혀 무아지경에 빠져들어 몸과 마음을

비우고 숲의 정기와 생명력을 받는 것, 한마디로 ‘보약’ 같은 것, 바로 이것이 숲속길 산행에 대한 나 나름대로의 

신념이다. 

이 시간 성삼재행 고속버스 차내의 승객들은 대부분 새벽부터 지리산 산행에 나설 원색의 등산복 차림을 한

산꾼들이다. 젊은 사람들이 많고, 우리 부부처럼 나이 지긋한 부부산행팀도 제법 눈에 띤다. 

지난 2년 넘게 유행하고 있는 범세계적인 코로나 펜데믹 사태로 인해 모든 승객들은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어

모두들 마스크를 한 채로 좌석에 앉아 있다.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승차 자체가 불가한 이 이상한 상황이 빨리 

지나가고, 정상적인 일상으로 되돌아 왔으면 좋겠다.

안락한 좌석과 시원하고 쾌적한 심야 우등고속버스는 거친 엔진소리를 토해내면서 밤공기를 가르며 남쪽으로

내달린다. 편안한 좌석에도 불구하고 달리는 버스의 흔들림 탓에 잠을 청해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그 전에 지리산 종주를 할 때에는 서울에서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에 구례구역에 도착해서 다시 버스나 택시를

타고 성삼재까지 올라와서 산행을 시작했으나, 지금은 동서울에서 성삼재까지 직통 운행하는 심야 우등

고속버스가 생기는 바람에 모두들 편리한 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그 바람에 고속버스회사는 대박이 나고, 

야간열차와 지역버스는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수요자는 늘 새로운 곳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법, 

그게 바로 시장경제의 생명력 아니겠는가.


<2022.8.21(일) : 제2일차(산행 1일차)>


- 02:00 : 차창 밖이 깜깜한 새벽.

통영-대전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로 접어든 고속버스는 함양,인월을 지나 칠흑 같은 한밤중 속을 헤드라이트

불빛 하나에 의지하며 꼬불꼬불한 산길을 힘차게 오른다. 

환한 낮이면 도로 주변 지리산 줄기의 아름다운 계곡과 능선 경치가 일품이겠지만 밤이라서 창밖은 온통 어둠뿐. 

- 02:44 : 드디어 고속버스가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 

밤새 먼 길을 달려온 버스는 지친 몸을 웅크린 채 승객들을 뱉어낸다. 

사방이 어둠 속에 묻힌 적막한 산골의 밤, 고산준령의 상큼한 새벽 공기가 코끝에 스친다. 맑은 청회색의 

밤하늘엔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수많은 별들이 총총히 박혀 보석처럼 빛나고 있는데, 수줍은 듯 얼굴을

붉히면서 멀리서 온 손님들을 정겹게 환영하고 있다. 

주차장 옆 등산로 입구에는 함께 버스를 타고 온 산행객들로 북적인다. 7~8세된 어린 손녀를 데리고 온 

사람도 보인다. 모두들 야간전투를 결행하는 투사들처럼 큼직한 배낭을 멘 어깨에는 힘이 넘치고, 머리에

헤드랜턴을 달았거나 한 손에 후래쉬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새벽 야간산행이라 어두운 길을 비출 

전등은 필수.

가로등이 고개를 숙인 채 졸고 있는 아담한 성삼재탐방안내소 앞의 게이트를 지나 산행 시작. 깜깜한 

밤길을 헤드랜턴에 의지하며 천천히 나아가니 싸한 공기가 뺨을 스치고 어깨에 멘 배낭은 무게감이 

느껴진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 가는 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널찍한 시멘트 도로로 되어 있어 

밤길이지만 그런대로 편안한 길이다. 

길옆 어둠속에서 울려 퍼지는 계곡수 흐르는 소리가 힘차게 밤하늘을 가른다. 그 소리만으로도 큰 산의

물이 많은 계곡임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우렁차다. 아마 어제 저녁까지 비가 온 듯 청량하고 상큼한 

산골공기는 잠을 제대로 못자 부시시한 몸을 상쾌하게 만든다. 

드문드문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하며 바삐 걸어가는 산행객들과 조우. 

- 03:50 : 노고단대피소.

보수공사 중. 별도로 설치된 취사실 내에는 스테인레스로 열을 지어 기다랗게 만들어진 취사대가 깨끗하다. 

취사대 한켠에 자리를 잡고, 가스버너에 불을 붙인 후, 물을 끓여 컵라면 2개와 주먹밥으로 아침식사. 

집에서 만들어 온 김자반 주먹밥이 이렇게 맛있고 편리할 줄이야. 

조금 있으니 단체산행객(매일산악회, 밤 11시반 서울 출발) 도착. 대부분 젊은 사람들인데, 들어오자마자

아침식사 준비를 하느라 왁자지껄하다. 

- 04:20 : 노고단대피소 출발.

아직도 주위는 깜깜한 밤. 헤드랜턴에 의지하며 큰 바위덩어리들이 고르게 깔려 잘 정비된 급경사 산길을 오른다.

- 04:40 : 노고단 고갯마루.

날이 밝았으면 저 멀리 능선 끝마루에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솟은 천왕봉의 장엄한 모습과 섬진강쪽 운해의 

아름다운 선경을 볼 수 있으련만 사방이 어둠뿐으로 아쉽다. 노고단 능선길에서 바라보는 운해는 지리산 

제3경에 들 정도로 유명하지 않은가. 

참고로, 옛날 선조들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지리산 10경을 살펴보면, 제1경 천왕봉의 일출, 제2경

피아골의 단풍, 제3경 노고단의 운해, 제4경 반야봉의 낙조, 제5경 벽소령의 명월(보름달), 

제6경 세석평전의 철쭉, 제7경 불일폭포의 물보라, 제8경 연하봉의 암봉과 고사목 전경, 

제9경 칠선계곡의 계곡수, 제10경 섬진강의 깨끗한 물. 

노고단 고갯마루에서 헐떡이던 경사길을 끝내고 본격적으로 중턱길과 능선길을 걷기 시작. 

새벽녘의 조용한 밤정취가 산중턱을 가로지르는 완만한 산길과 어우러져 호젓하고 편안한 산행길. 

이제부터 끝없는 능선길을 타면서 지리산의 어머니품 같은 넉넉함과 장대함을 맛보게 되리라.

매일산악회의 젊은 여성 멤버 두 사람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산행. 

- 05:35 : 돼지령. 

옛날에는 멧돼지들이 좋아하는 둥굴레가 많아 유래된 이름.

드디어 어둠 속에 밝은 기운이 돌며 일출 시작. 하늘에는 구름이 많이 끼어 #일출 전경이 안보인다. 전경이 아직 제대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동쪽 하늘이 훤히 밝아오기 시작. 

조금 있으니 동쪽 하늘에 해무리 기운이 구름을 붉게 물들여 황홀한 적색구름 무리들이 파란 쪽빛 하늘과

멋드러지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치를 자아내고 있는데, 가히 “붉은 오로라”라고 부를 만 했다. 

길다란 구름떼가 늘어선 파란 하늘엔 홍학들이 날개를 펼친 듯 한 폭의 수채화가 그려졌는데, 자연이 빚어낸

장엄한 절경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이제 날이 밝아 랜턴을 끄고 산행. 좁다란 산행길 양옆에는 키보다 더 큰 수풀과 잡목들이 빼곡히 들어차

숲터널을 이루거나 숲장벽을 만들고 있다. 길 쪽으로 드리워진 수풀을 헤치면서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나아간다. 아마 수풀이 이렇게 울창해서 예전에는 멧돼지들이 많이 살았나 보다.

- 06:05 : 임걸령샘.

능선길 우측 아래로 멀리 구례쪽 산봉우리들이 허연 구름을 허리에 두른 채 절경을 이루고 있다.

매일산악회 여성들과 서로 사진 찍어주기. 

지리산 종주는 각 구간마다 특색 있는 맛이 있는데, 이 구간은 평지길 능선을 타면서 오른쪽으로 섬진강

건너편의 먼 곳 준봉들이 구름과 안개와 어우러져 노니는 운해의 모습이 장관이다. 

장대한 지리산의 위엄에 발아래 산봉우리들이 다소곳한 모습으로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 06:15 : 임걸령. 

조선 선조 때 임걸년이라는 도적이 팔도행상의 물건을 조금씩 털어 모아 빈민을 구제한 의적의 전설이 서린 곳. 

여기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가을철 단풍이 유명한 피아골이다. 7년 전, 가을 단풍시기에 직장 동료들과 

성삼재에서 올라와 이곳에서 내려가면서 유명한 피아골의 단풍 절경을 만끽한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간다. 

온 천지가 불타는 듯한 붉은 단풍과 청아한 계곡이 어우러지는 황홀한 경치는 무릉도원 선계에 온 듯 탄성이

절로 나왔으며, 가히 지리산 제2경으로 자리매김할만 했다. 단풍철만 되면 다시 한번 가고 싶지만, 그 때의 

그 감동이 흐려질까 봐 선뜻 나서지 못하겠다. 

새벽부터 제법 많이 걸어 무거운 배낭에 무게감을 느끼지만, 약간의 척추협착증으로 땡기고 저린 다리는

걱정과는 달리 오히려 힘이 생기는 것 같다. 이것은 대자연의 정기가 배어있는 상큼한 흙길과 숲속길을

마음껏 걸어서 「숲과 걷기」의 치유 효과를 얻었기 때문이 아닐까? 

처음에 집사람이 지리산 종주 얘기를 꺼냈을 때, 요즈음 내가 건강관리에 집중하고 있는 때에 지리산 

종주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사람 말처럼 ‘지금 이때 아니면 언제 또 해보겠는가?’ 하는 생각에

용기를 내어 나섰는데, 참 잘한 것 같다. 힘든 환경에 좌절해서 체념하며 주저앉기보다는 용기를 내어 

도전에 나섰던 건 참으로 의미 있는 행동이었고, 나아가, 삶의 질까지 풍성하게 해주었다고 자부하고 싶다. 

불현듯 경험에 근거한 「인생론」이 펼쳐진다. 인생 뭐 별거 있나!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맘껏 

하는 거다!” 아껴둔들 세월이란 놈이 훔쳐 간다. 나중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 있으랴! 적지 않은 세월 

살아보니 인생 뭐 별거 아니더라. 바람같이 스쳐 가는 게 인생이더라. 

이번에 집사람하고 삶의 버킷리스트에 멋진 좌표 하나 찍고 간다. 

- 06:40 : 반야봉(1,732m)을 왼쪽으로 끼고 돌다.

반야봉은 지리산 10경 중의 하나인 반야낙조로 유명한 곳. 지리산 준봉 중에서 천왕봉 다음으로 고봉. 

둥그렇게 우뚝 선 담대한 모습이 마치 달마대사의 머리를 닮았다고 한다. 숲터널과 숲장벽 산행길이 계속.

- 07:00 : 노루목. 

그전에는 노루가 많이 다니는 길목이었다는 곳.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 능선 오른쪽 저 멀리 섬진강쪽

준봉들이 구름 속에 잠겨 머리만 내놓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동양화처럼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산악회의 여성 두 사람은 반야봉 쪽으로 올라가며 산행. 

- 07:30 : 삼도봉(1,499m) 

경남-전북-전남 세 지역이 맞닿는 경계지점. 조금 널찍한 마당바위에 화살촉처럼 뾰족한 삼각꼭지로 된

분도표시점이 나즈막히 꽂혀 있는데, 날카로운 꼭지는 서로의 침범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단창처럼

삼엄하게 솟아있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이렇게 지역을 갈라놓았을 뿐 산과 자연은 하나되어 조화롭게

잘 지낸다. 

매일산악회 멤버 젊은 청년 두 명과 조우. 그들은 벌써 반야봉을 올라갔다 내려왔는데, 뱀사골계곡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아, 그래서 젊은 두 여성들도 반야봉 쪽으로 올라갔구나. 뱀사골계곡으로 간다더니 

왜 반야봉 쪽으로 올라갈까 생각했었는데, 이제서야 이해가 간다.

- 07:50 : 심한 경사의 목재계단길. 휴식.

구름이 많이 끼어 먼 곳의 산봉우리들은 구름 속에 잠겨 있다. 구름이 없으면 초록빛 녹색 융단의 싱그러운

향연이 펼쳐져 탄성이 절로 나오는데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가까이 보이는, 눈이 부시도록 짙푸른 숲으로

뒤덮힌 빼어난 절경들은 지리산의 명성에 걸맞게 호쾌한 멋을 시원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 08:00 : 화개재. 

여기서 왼쪽으로 내려가면 뱀사골계곡으로 내려간다. 몇몇 산악회 멤버들이 전망대 목재데크에서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우리도 한번 이 코스를 타고 뱀사골계곡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가슴에 담으며 트레킹하고 싶다. 

- 08:50 : 토끼봉. <이정표: 연하천 3km, 천왕봉 18km>

토끼봉 오른쪽 계곡 아래에는 칠불암과 봄철 벚꽃이 유명한 쌍계사가 있고, 섬진강과 만나는 끄트머리에는

노래로 잘 알려진 화개장터가 자리 잡고 있다. 

널찍하게 잘 정비된 헬기장 옆 목재데크에 걸터앉아 사과를 먹으며 휴식. 큰 배낭을 멘 젊은 남자 산행객 한 

사람과 조우. 오늘 장터목까지 간다고 하는데, 산행 주파력이 대단하다. 아마 전문산악인 같다. 

- 09:30 : 고갯마루길. <이정표: 연하천 2km>

산마루와 중턱을 구비구비 돌면서 거친 돌부리가 박힌 험한 오르막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주위는 아직도 

구름과 안개에 묻혀 짙은 안개 속을 걷고 있다. 

- 10:05 : 급경사의 목재계단길 오름. <이정표: 연하천 1.4km>

- 10:30 : 고갯마루에서 목재계단길 내려감. <이정표: 연하천 0.4km, 천왕봉 15.4km> 

드디어 연하천대피소가 가까워졌음에 절로 힘이 난다. 

그 전에 왔을 때, 연한 운무가 낀 산행길 주변의 울창한 원시림 속 대자연이 정말 멋있었는데, 지금은 짙은

안개 속에 고요히 잠겨 있어 머릿속에 상상력으로 그려 본다. 

사방은 여전히 짙은 운무 속. 조금 내려가니 긴 목재계단길 옆의 아름다운 생태숲은 지저귀는 새소리가 

청아하게 울려 퍼지고 안개가 연하게 드리워져 신비로움을 자아내고 있는데, 속세를 벗어나 무릉도원에

온 것만 같다. 

- 10:40 : 연하천대피소.

예쁜 이름처럼 아담한 대피소건물(60명 수용)이 반갑게 맞아 준다. 먼저 온 젊은 산행객 너댓 명이 입구 쪽

테이블을 차지하고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뒤쳐진 일행을 기다린다고 했다. 

이곳은 풍부한 샘물과 물맛이 좋기로 소문난 곳이다. 우선 대피소 앞마당 윗쪽에 위치한 샘터에서 시원한

샘물을 물통에 받아 벌컥벌컥 들이켰다. 시원하고 달콤한 샘물 맛에 피로가 풀리고 힘이 솟는다. 

이렇게 물맛이 좋은 샘물은 여지껏 먹어 본 적이 없다. 그 유명세처럼 최고의 샘물이다. 

땀을 닦으려 샘터 옆의 계곡수에 손수건을 적시려 하니 너무 차가워 단 몇 초를 못 견디겠다. 정말 물이 차다. 

대피소의 널찍한 앞마당에 열을 지어 놓여 있는, 중앙의 긴 테이블과 양옆에 고정된 긴 의자 형태의 짙은 

고동색 목재테이블(지리산대피소들의 널찍한 앞마당에 놓여 있음)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초콜릿이 섞인

에너지바와 누룽지, 그리고 쇠고기 육포를 먹으며 허기를 달랜다.

- 11:00 : 연하천대피소 출발. <벽소령대피소 3.6km> 

대피소를 벗어나는 평지길에 생태보호용 목재데크가 깔려 있었는데, 주위의 원시림 자연과 잘 어우러져

오래도록 걷고 싶은 아름답고 편안한 길이다. 집사람은 아름답고 호젓한 이 길에 매료되어 잔잔한 감동을

내비친 채 못내 아쉬워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오늘 일정에 비추어 시간을 체크해 보니, 이대로 가면 예약된 벽소령대피소에 계획보다 일찍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어 발걸음을 재촉하면 저녁때쯤 세석대피소까지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무엇보다 집사람이 대피소에서 잘 때 코고는 소리와 발냄새 얘기를 익히 들어 적응 걱정을 해온 터라 민감한 

성격의 집사람을 위해 가능한 대피소에서의 2박을 1박으로 줄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집사람을 앞장 세우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갔다. 

- 11:05 : 왼쪽으로 내려가면 음정마을로 가는 삼거리 갈림길.

- 11:25 : 산마루 고갯길. <이정표: 벽소령 2.4km, 연하천 1.2km> 

험한 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힘든 산행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 11:40 : 좁다란 길을 걷다가 무거운 배낭을 멘 탓에 걸음걸이가 엇갈리면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오른쪽 정강이에 타박상. 바위투성이 너덜길의 돌맹이에 부딪치면서 가벼운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 등에 멘 큰 배낭을 옆으로 깔고 바위턱에 넘어지는 바람에 허리 쪽이나 머리를 다치지는 않았다.

한순간의 방심에 큰일 날뻔했다. 앞서가던 집사람이 깜짝 놀라더니 가슴을 쓸어내린다. 

괜시리 종주하자고 했다며 크게 걱정을 한다. “휴!...” 이 정도로 조금 다친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신 차려 조심해야겠다. 

지리산 종주 산행길은 대부분 능선길이라서 주위의 호쾌한 절경을 즐기는 맛은 있지만, 바위투성이

너덜지대가 매우 많고, 크고 작은 돌덩이들이 계단을 이루거나 길바닥에 깔린 경우가 많아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넘어지면 돌덩이에 몸을 부딪쳐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깊은 산중이라서 사고 시 연락과 이동문제도 심각하게 대두된다. 자신감 넘친 만용은 절대 금지.

오로지 조심, 또 조심을 하는 수밖에 없다. 피가 나는 정강이 상처 부위에는 작은 밴드를 여러 개 붙여 

응급조치를 했다. 조금 아프기는 해도 산행을 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어 계속 전진.

- 12:05 : 형제봉(1,453m) 고갯마루.

두 암봉이 다정하게 붙어서 우뚝 서 있는 형제바위가 저 아래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여기서 저 멀리 천왕봉이

하늘에 닿을 듯 우뚝 솟아 위용을 뽐내는 모습이 보이는데, 지금은 구름 속에 숨어버렸다. 

형제봉은 워낙 높아 천왕봉 쪽에서 바라보면, 바로 밑 날등에 덩그렇게 얹혀진 형제바위와 함께 우뚝 선 

모습이 등에 무사를 태운 말처럼 힘찬 모습으로 조망된다. 

- 12:20 : 형제바위. <이정표: 벽소령 1.5km, 세석대피소 7.8km> 

형제봉 산마루에서 조금 내려온 날등에 엄청난 크기의 암봉 두 개가 우뚝 서 있다. 옛날 두 형제가 이곳에서

요괴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서로 등을 맞대고 불도를 닦다가 굳어져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는

바위. 거대한 형제바위를 끼고 우측으로 험한 길을 돌아 내려간다. 

- 12:50 : 급경사의 목재계단길. <이정표: 벽소령 0.7km>

- 13:00 : 음정마을로 간다는 산행객 5~6명 만남.

이쯤 오면, 능선상에 덩그렇게 자리 잡은 벽소령대피소가 손에 잡힐 듯 내려다보이는데, 여전히 구름 속에

묻혀 보이질 않는다. 새들의 지저귀는 울음소리만이 고요한 산속에 메아리쳐 멀리 울려 퍼진다. 

- 13:14 : 벽소령대피소 도착. 

벽소령대피소는 유럽의 산장처럼 경사 지붕과 외부가 짙은 고동색 목재(세석,장터목도 유사)로 되어 있어

주변 자연환경과 잘 어우러져 소담스런 멋을 뽐내고 있다. 또한, 말안장처럼 오목한 고갯마루 능선상에

성처럼 자리 잡고 있어 멀리서도 잘 내려다보였다. 

널찍한 앞마당에는 중년 남자 산행객 대여섯 명이 휴대폰으로 산행실황을 유튜브로 영상 중계하면서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1박을 하고, 또 장터목대피소에서 1박을 하기로 예약까지 했으나, 집사람이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자려면 천둥처럼 코고는 소리와 지독한 발냄새를 각오해야 한다는 아들의 엄포에 주눅이 들어 

큰 걱정을 하는 바람에 계획을 바꿔 빨리 벽소령에 도착해서 그날 중으로 세석대피소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니까 산중 2박을 1박으로 단축하는 것이다. 고속버스가 서울에서 1시간 일찍 출발(밤 11시)하는 표를 

예매하는 바람에 산행 출발이 빨라 그게 가능했다. 대피소 관리소에 들러 직원에게 사정 얘기를 하니 분소

전화번호를 알려주어 분소로 전화를 해서 벽소령을 세석으로 변경하고, 장터목은 취소를 했다. 

물통에 물이 없어 취사장 앞의 수도꼭지에서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웠는데, 예전에는 경사진 비탈길을 한참을 

걸어 내려가서 샘터에서 식수를 떠왔던 기억이 난다. 어두운 새벽에 내려가서 코펠에 물을 받아 떠오면 도중에

넘쳐흘러 반밖에 남지 않곤 했었는데, 지금은 관리소 마당 취사장 앞 구석진 곳에 수도꼭지를 달아 놓아 

아주 편리하게 개선되었다. 

- 13:25 : 벽소령대피소 서둘러 출발. <이정표 : 세석대피소 6.3km> 

떠날 때 대피소에서 식사를 하던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벽소령과 세석구간은 길이 험해서 만만치 않다고 

일러 주면서 걱정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도 어쨌든 가야만 한다. 오늘 안으로, 어둡기 전에 말이다. 

- 13:45 : 휴식.

산행길이 크고 작은 돌들로 된 험한 너덜지대가 많아 걷기가 힘이 든다. 육포와 초콜릿, 에너지바로

간식을 먹으며 기운을 북돋운다. 

- 14:00 : 출발. 

저 멀리 칠선봉 쪽 능선에는 구름이 덮여 있다. 조금 가니 평지에 구벽소령터 표지가 나옴.

<이정표: 세석대피소 5.2km, 벽소령 1.1km> 

구벽소령은 쌍계사 쪽에서 백무동쪽으로 지리산 능선을 횡단하는 임도의 능선마루에 위치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곳에 대피소가 있었나보다. 

- 14:30 : 휴식.

자두와 초콜릿으로 간식. 날씨가 좋으면 산 능선 저 아래 계곡과 섬진강쪽 산하의 경치가 일품인데 구름에 

잠겨 있어 조금은 아쉽다. 처음 산행계획을 짤 때, 내가 집사람한테 이 구간에서의 눈부신 절경 경험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해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까운 산허리에 초록빛 융단으로 펼쳐지는 싱그러운 대자연의 장엄한 풍경은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을 만큼 연신 탄성과 감동을 자아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어떠한 경우에도 지리산은 결코 산꾼들을 실망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지리산’ 지명의 유래된 뜻처럼,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변하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그것을 나약한 인간이 대자연으로

부터 얻는 ‘깨달음’으로 해석하고 싶다.

- 14:40 : 고갯마루 쉼터. 휴식. <이정표: 세석대피소 4.6km, 벽소령 1.7km> 

계속 이어지는 험한 산행길에 힘이 든다. 그래도 큰 임목들로 뒤덮인 숲길이라 청량감과 유산소의 상쾌한 

기운이 힘을 북돋운다. 

지리산 산행의 진수답게, 우거진 원시림 숲은 생명력 있는 기운을 안겨 주지만, 험한 길은 강한 지구력과 

끈질긴 인내를 요구한다. 여보, 파이팅!

- 15:05 : 크고 작은 바위로 이루어진 너덜길이 계속 이어진다.

흰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산행객이 지나간다. 

누군가 벽소령-세석대피소 구간이 지리산 종주의 진미라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듯. 힘은 들면서도 다른 

산들에서는 맛볼 수 없는 거대한 준령을 타고 넘는 호쾌함이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 15:17 : 선비샘. 

땀을 닦고, 시원한 샘물을 바가지에 떠서 벌컥벌컥 들이켜니 기운이 샘솟고 살 것만 같다. 아래쪽 샛길에서 

남자 산행객 한 사람이 올라오길래 어디서 오느냐고 물었더니 의신에서 온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길로 

내려가면 의신마을. 화개천을 따라 더 쭉 내려가면 쌍계사, 화개장터가 나온다. 

- 15:30 : 선비샘 출발.

산중턱의 숲길을 걸으며 대자연의 품에 안기니 진한 감동으로 가슴이 뛴다. 세상사 온갖 잡념은 사라지고 

오로지 눈 앞에 펼쳐지는 장엄한 절경에 도취해 있다. 바로 이 맛 때문에 그 힘든 종주를 하는 게 아닌가. 

대자연은 그 품속에 내가 존재할 때 비로소 내 마음을 열고 눈을 뜨게 한다. 

- 15:40 : 선비샘 전망대. 

탁 트인 중턱길에 목재데크로 만들어진 일망무제의 전망대. 아쉽게도 멀리 준봉의 위용들은 구름 속에 

잠겨 있다. 그렇지만 가까운 능선과 산허리에 펼쳐지는 눈부신 초록빛 신록 융단만 보아도 가슴이 시원하고,

지리산 종주의 진한 맛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 구간은 준봉들을 타고 넘는 험한 코스이기 때문에 힘이 무척 드는 만큼 산행의 여운도 최고다.

큰 수목들이 우거진 숲길을 걸을 때 지치고 힘들어 숨을 헐떡이면 그만큼 더 유산소 운동을 격하게 하게 

되어 숲의 정기를 더 많이 받게 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며, 그것이 내가 장시간 소요되는 고산준령의 

종주산행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거리 종주산행은 호쾌함을 자극하는 중독성이 있는 듯. 

- 15:55 : 쉼터 휴식. <이정표: 세석대피소 3.2km>

앞장서서 걸어가는 집사람이 지쳐서 무척 힘들어한다. 길도 험하고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끝없이 가야하는

산행길이라 충분히 쉬면서 가기로 했다. 

몇 년 전 가을철에 아름다운 설악산 단풍을 보기 위해 새벽 4시에 한계령을 출발해서 대청봉을 거쳐 가야동

계곡에 펼쳐진 형형색색의 고운 단풍절경을 구경하고 백담사로 내려오는 긴 산행길도 거뜬하게 해낸 집사람인데, 

오늘은 무척 힘이 드는 모양이다. 나도 역시 그렇고. 그동안 세월이 많이 흐른 탓인가.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세월 앞에는 장사가 없다고 하지 않는가. 지나온 시간들에서 ‘건강’의 의미를 되짚어 보니,

20,30대 때는 자고 나면 회복되었고, 40,50대 때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었지만, 60대 들어서면 

원상회복은 어렵고, 더 악화되지 않도록 현상태 유지가 최선이었다. 조금은 서글프지만, 자연의 섭리인 걸 

어떡하겠는가. 여보, 그래도 우리 힘내자! 아자! 

- 16:15 : 준봉의 능선길 옆으로 주목,구상나무 고사목 군락이 많이 보임.

기후변화로 온도가 높아져 제주도와 지리산의 주목과 구상나무들이 앙상한 뼈대만 남긴 채 말라 죽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원래 이 구간은 준봉들의 봉우리 일대에 주목과 구상나무들이 쭉쭉 뻗은 채 군락을 이루며 암봉들과 어우러져

지리산 최고의 멋진 경치를 빚어내고 있었다. 

20여년 전에 아들과 왔을 때에는 주목군락들이 하늘을 가리며 싱그러운 푸르름을 자랑했었는데, 6년 전에

혼자 왔을 때에는 안타깝게도 거의 반 정도가 말라 죽어 가고 있었다. 지금은 그 남은 반조차 거의 다 말라

죽어 허연 뼈대만 남긴 채 앙상한 고사목 군락지로 변해 있다.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프다.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이랬지만, 지금은 너무 빨리 사라지고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가득 찬 ‘문명’이

남긴 기후변화가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을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정표: 세석대피소 2.7km>

- 16:30 : 널찍한 바위전망대. 휴식. 

주변이 탁 트여 막힘이 없다. 아직도 먼 곳의 산하들은 구름 속에 묻혀 있고, 주변의 가까운 영봉들만 

초록빛 물결에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며 빛나고 있다.

- 16:50 : 앙상한 고사목 군락들이 스치듯 자주 지나가고 힘든 너덜지대 바윗길은 계속 이어진다.

하늘에 닿을 듯 거대한 암봉 봉우리들을 돌고 급경사의 철제 계단을 오르는 산행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멋모르고 험한 종주산행에 나선 집사람도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조금 가다 쉬고, 또 쉬기를 반복한다. 

원래 종주산행이란 자신과의 싸움이다. 장시간 능선길을 걸으면서 지친 몸과 힘듦을 이겨내야 한다. 

그러나, 힘이 드는 만큼 성취감 또한 크다. 그래서 나는 여름철에 종주산행 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여름철에 싱그럽고 호쾌한 능선 숲길을 새벽부터 하루종일 걷노라면 무아지경에 빠져 복잡한 머릿속이 

싹 씻겨지고, 상큼한 청량감으로 가득 채워지게 된다. 또한, 온몸에는 기력이 충만해 짐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덕유산, 치악산, 설악산, 한라산, 지리산 등 고산준령들을 종주한 적이 있다. 

또, 종주산행과 우리 인생은 공통점이 많다. 우선 긴 여정이 닮았다. 긴 여정을 하다보면, 때로는 기쁨과 

즐거움, 때로는 지치고 힘든 시간들이 편린되어 지나간다. 세상사가 어디 구름에 달 가듯 무심하겠는가. 

온갖 풍상을 다 겪는데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나아가, 먼 산행길에서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갈 때를 조심해야 하듯, 우리의 삶도 노년기에는 자신에 대하여

더 많은 관심과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한번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 16:55 : 칠선봉(1,558m).

작은 7개의 암봉이 마치 칠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것 같다하여 붙인 이름.

기암괴석의 암봉들에 구름이 숨박꼭질 하듯 스쳐 지나갈 때면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구현해 낸다. 

지금은 아름다운 일곱 선녀들의 고운 자태가 구름 속에 살포시 감춰져 있다. 흐릿한 모습의 신비스런 

봉우리들을 계속 돌며 경사면에 난 좁다란 산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나아간다. 

길이 워낙 험해 중간 중간에 짙은 주홍색 칠을 한 가파른 철재계단이 기다랗게 많이 놓여 있다. 

<이정표: 세석대피소 1.4km> 

드디어 갈 길이 1km대로 내려왔다. 서로 격려를 하며 힘을 돋운다. 아자! 아자!

- 17:00 : 구름 덮인 봉우리를 끼고 돌다가 끝인가 싶어 올라서면 또다른 봉우리. 숨박꼭질 하듯 험한

산길이 계속 이어진다. 

구름 속의 고요한 선계세상을 걷는 우리 두 사람은 그동안 살아온 얘기며, 지난했던 세월들을 토로하기도 하고,

회한을 뱉어내기도 하며 지루한 산행길을 한발씩 나아간다. 

넉넉지 못한 집안에 시집와서 자식들 낳고 기르며, 37년간을 고생 속에 살아온 집사람한테는 늘 고마움과 

미안함을 느낀다. 이제 남은 여생을 건강하게 오손도손 살았으면 더이상 바랄 게 없겠다. 

그리고, 내가 20여년 전에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 험하고 먼 종주산행을 왔던 것에 대하여 미안함과 

자책감이 느껴졌다. 그 어린 나이(당시 12세, 초등 5학년)에 얼마나 힘들었을까, 내몰기만 했던 아빠를 

마음속으로 얼마나 원망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괜스레 마음이 아프고 한편으로는 기특하기도 했다. 

집사람한테 가슴 아픈 심정을 몇 번이고 토로했다. 집에 가면 꼭 아들한테 그때는 무모한 도전으로 힘들게 

했다고, 그래서 미안하다고 얘기해 주어야겠다. 

- 17:35 : 영신봉이 보이기 시작함. 

꼭대기에 거대한 바위가 얹혀진 채 우뚝 솟은 영신봉은 벽소령과 세석 간의 마지막 관문 봉우리. 

드디어 고생 끝, 희망 시작. 온몸에 기운이 샘솟는다. 

- 17:40 : 길게 이어지는 가파른 목재계단 옆의 널찍한 데크 쉼터. 휴식. 

그 전에 날씨가 좋았을 때에는 여기에서 보면 지리산 능선의 북동쪽인 멀리 함양 읍내 마을들과 백두대간의

덕유산 준령들이 장막처럼 드리운 채 위용을 뽐내고 있는 절경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하얀 구름 속에

잠겨 고요함만 흐른다. 

- 18:10 : 영신봉(1,652m). 

옛날에 이 근처에 있던 영신사라는 절 이름에서 유래. 영신봉은 세석대피소가 바로 코앞임을 의미하는 

마지막 봉우리.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 세석이 가까워졌다. 멀리 동쪽으로 촛대봉이 우뚝 서 있고,

그 아래로  야생화 군락지로 생태복원 중인 아름다운 세석평전이 펼쳐져 있다. 세석평전 맞은편 중턱에는

세석대피소가 그림처럼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정표: 세석대피소 0.6km>

- 18:25 : 드디어 세석대피소 도착. 1박(2호실 102호 침상).

유럽 산장풍의 벽소령대피소와 유사한 모양으로 산중턱에 포근하게 얹혀 있지만, 그 규모가 훨씬 크다. 

적정수용 인원이 벽소령은 120명인데 비해 세석은 190명에 이른다. 

먼저 2층으로 올라가 관리실에서 입실 절차를 마쳤다. 벌써 2년여 전부터의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거리두기와

밀집 억제조치로 이곳 대피소도 한산한 편이다. 대피소 앞쪽 마당에 설치된 고동색 목재테이블에는 여기저기

산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저녁식사 준비를 하느라 떠들석하다. 

마당 아래쪽에 있는 샘터에는 차고 맑은 샘물이 시원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만, 아랫마을(거림마을 등)의 

상수원인 관계로 쌀씻기와 설거지 등 일체의 오염행위가 금지되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도 집에서 미리 쌀을 

씻어 건조시켜 가지고 왔다. 그전에 비해 위생적으로 불편하고 옹색하기 짝이 없지만 환경적으로는 매우

잘하는 조치라고 생각된다. 


우리도 마당 입구쪽 빈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배낭에서 버너와 코펠을 꺼내 김치찌개를 끓이고, 

집에서 싸온 도시락 밥으로 저녁을 먹었다. 먼길 걸어오느라 허기진 터에 밥맛이 꿀맛 같다. 

캄캄한 밤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초롱초롱 뿌려져 청정하고 아름다운 밤하늘을 오랜만에 볼 수 있었고,

고산준령으로 둘러싸인 산골의 시원한 밤공기는 몸속에 찌든 도회의 오염을 말끔히 씻어낼 정도로 청량했다. 

식사를 마치고 객실에 들어가니 실내는 산뜻한 목재구조로 층을 이루고,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다.

침실 호실에는 가운데에 기다랗게 복도가 있고 양쪽 옆으로 약간 높게 목재 침상이 길게 설치되어 있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입실객들을 서너칸씩 띄워서 널찍하게 배치를 해서 방역상의 문제는 없어 보였다. 

침상 머리맡에는 배낭을 놓을 수 있게 나즈막한 선반이 벽을 따라 길게 놓여 있고, 각 개인별 침상의 머리

쪽에는 옆사람의 코고는 소리를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도록 칸막이가 양쪽에 조그맣게 설치되어 있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거북한 생리적 현상과 세심한 배려 사이에 나타나는 해결 노력이 돋보인다. 

칸막이 덕분에 그전에 대피소에서 겪었던, 옆사람이 내 귀에다가 코를 대고 천둥소리를 쏟아내는 일은 

사라질 듯. 그럼에도, 좁은 실내 공간에 메아리치듯 우렁차게 코고는 함성을 만족스럽게는 막지 못할 것 같다.

모두가 온종일 걸어서 지친 상태인데 코고는 소리가 무슨 대수냐? 빨리 먼저 잠드는 게 상책! 

그전에는 모포를 한 장에 2천원씩, 2장을 빌려 깔고 덮었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코로나 방역 차원에서 

모포를 빌려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집에서 가져온 조그만 담요를 덮고 잠을 청했다.

딱딱한 목재 침상바닥은 전열코일을 깔아서인지 따뜻했다. 


주위에는 벌써 코를 골면서 자는 사람, 배낭을 풀며 잠자리를 정리하는 사람 등 어수선했다. 

장시간 힘든  산행길을 걸어온지라 피곤함에 젖어 깔끔한 목재 침상에 몸을 뉘어보지만 딱딱한 침상에 

금방 몸이 배긴다. 덮고 있던 담요조각을 허리 밑으로 깔아 넣고 누워 보지만 분위기 때문인지 쉽사리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여자쪽 호실에 잠을 자러 들어간 집사람은 잘 적응하여 제대로 잘 자는지 걱정이 된다. 

몇 번이고 몸을 뒤척이다가 불현듯 20여년 전 5월 중순 봄철, 입산금지가 막 풀릴 즈음에 아들하고 지리산

종주산행을 나서서 이곳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보낸 기억이 솟아난다. 

애초에는 벽소령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묵으려고 예약까지 했었는데, 오늘처럼 빨리 도착하는 바람에 이곳 

세석대피소에 저녁 늦게 도착해서 하룻밤을 지냈다.

당시에는 대피소 예약이 꽉 차 침상 배정을 받지 못하고 침상 옆의 옹색한 빈 공간에 배정을 받아 잠을 잤는데,

아들은 지금도 그때의 산행객들이 내뱉는 천둥소리 같은 코고는 소리와 지독한 발냄새를 잊지 못해 가끔씩 

얘기하곤 한다. 장군아! 그때 아빠가 너무 고생시켜 정말 미안하다. 

10시에 침실등이 꺼지고 어둠 속에 한참을 뒤척이다가 겨우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2022.8.22(월) : 제3일차(산행 2일차)>

- 04:00 : 기상.

침상 옆자리에서 일찍 산행을 나서려는 산행객들이 덜거덕거리며 짐 챙기는 소리에 잠이 깼다. 

나도 밤새 잠을 설치고 부시시한 몸으로 일어나 침상에서 짐을 정리하여 배낭에 넣는다.

- 04:30 : 컴컴한 호실 밖을 나가니 관리실 앞 넓은 마루 한켠에 집사람이 배낭을 옆에 두고 혼자 앉아 

있어 흠칫 놀랐다. 

예민한 성격 탓에 침실 내 산행객들의 코고는 소리와 딱딱한 마룻바닥에 적응이 잘 안 돼 밤새 잠도 

못자고 뒤척이다가 얼마 전에 복도로 나왔다고 한다. 역시 예상대로 너무 예민해서 탈이야... 

여정을 2박에서 1박으로 줄인 건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 05:00 : 아직도 밖은 깜깜한데, 대피소 앞쪽에 우뚝 솟은 촛대봉에 일출을 보러 올라가다가 날씨도

흐리고, 다리가 저리고 아파 다시 내려왔다.

- 06:00 : 호실에서 배낭을 챙겨 메고 밖으로 나오니 대피소 앞마당에는 벌써 부터 일찌감치 산행을

떠나려는 산행객 열댓 명이 기다란 목재테이블 앞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취사를 하면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는데, 버너의 연소음과 함께 새벽녘 공기를 가르며 산속으로 메아리쳤다. 

우리도 비어 있는 식탁 한 곳에 자리를 잡고, 버너에 불을 켠 후, 집에서 가지고 온 세척 건조쌀로 아침밥을

지어 컵라면과 밑반찬을 곁들여 아침식사를 했다. 산속에서 지은 밥맛이 참 좋다. 

먼길 여정의 점심을 위해 도시락도 쌌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는가. 

- 07:00 : 날이 밝아오니 원색의 화려한 등산복을 차려입은 산행객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산행길을 바삐 떠난다.

- 07:40 : 배낭을 챙겨 하룻밤 정들었던 세석대피소 출발.

이제 언제 다시 올 수 있을련지... 아련한 마음에 울컥한다. <이정표: 장터목대피소 3.4km, 천왕봉 5.1km> 

배낭 무게가 한결 가벼워졌다. 등산로가 지나는 대피소 앞쪽의 촛대봉 기슭에는 국립공원관리소 측에서 

심혈을 기울여 생태복원 중인 세석평전이 자리 잡고 있는데, 등산로 옆 야생화 단지에는 많은 야생화들이 

군락을 이루며 아름답게 피어 산행객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있다. 

지리산 종주의 마지막 구간인 이 고산지대에는 요즈음 고상한 보라색이 인상적인 산오이풀과, 밝은 주황색을

띠고 천진난만하게 환히 웃고 있지만 슬픈 전설이 마음을 울리는 동자꽃이 유난히도 많이 피어 있다. 

- 08:00 : 촛대봉(1,703m) 고갯마루.

음양고담 전설의 주인공인 연진처자가 낮에는 세석평전의 철쭉밭을 가꾸고, 밤에는 죄를 사하기 위해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올리던 곳이라는 전설에서 유래. 

바위로 이루어진 고갯마루 정상은 사방이 탁 트여 전망이 매우 좋다. 뒤를 돌아보니, 고개 아래 저 멀리 

아늑한 산허리춤에는 세석대피소가 정겹게 자리 잡고 있다. 지리산 종주를 하는 수많은 산행객들이 한번쯤은 

묵고 간 저 세석대피소는 그들에게 애틋한 고향과 같이 그리움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쉬운 마음으로 “bye, bye!”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리니 동쪽 자락 끝에는 저 멀리 천왕봉이 하늘에 닿을 듯 위용을 뽐내며 우뚝 솟아있다.

가슴이 설레이기 시작한다. 

- 08:30 : <이정표: 장터목대피소 2.0km, 천왕봉 3.7km, 세석대피소 1.4km> 

이 구간은 길이 험하긴 해도 어제의 벽소령-세석구간처럼 심산유곡의 험한 길이 아니라서 발걸음이 가볍게

나아간다. 

- 09:10 : 험한 바윗길이 계속된다. 지리산 산행길이 어디 하나 만만한 곳이 있으랴. 작은 능선마루들을 쉼없이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산행. <이정표: 장터목대피소 1.3km> 

저 멀리 하늘 위로 쭉 뻗은 위용에 숨이 턱 막히는 천왕봉은 이제 길잡이가 되어 다가온다. 점점 가까이서

바라보는 천왕봉은 하늘을 향해 깎아지른 듯 솟아올라 그 당당함에 압도되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꼭 파라마운트영화사의 상징 로고인 알프스의 마테호른처럼 “하늘의 성” 같았지만, 하얗게 차가운 마테호른보다

훨씬 더 장엄하고 짙푸른 생명력이 넘쳐나는 영봉이라 더욱 정감이 간다. 우리가 저 높은 곳을 오르다니...

가히 저기는 하늘나라 천왕이 임주하는 그곳이 맞겠다. 갑자기 가슴이 벅차오르고 온몸에 기력이 충만해진다. 

촛대봉에서부터 제석봉까지의 능선 산행길에서 손에 잡힐 듯 빤히 올려다 보이는 천왕봉, 그 압도하는 위용으로

말미암아 표지석의 문구처럼 민족의 정기가 발원되는 명산임을 금방 알 수 있게 되는데, 이때쯤이면, 나는 벅찬 

감동과 영험한 기운으로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되고, 가슴은 설레임으로 가득 찬다. 

무거운 배낭을 장시간 메어 쓰라린 어깨에 양손을 대고 배낭끈을 치켜 올려 아픔을 잠시 잊으면서 갈 길을 재촉한다. 

- 09:20 : 암봉이 많은 능선 위에 넓은 바위로 이루어진 앞이 탁 트인 전망대. 멀리 영신봉,칠선봉 등 영봉들과

계곡들이 초록빛 융단으로 물결치며 눈부신 절경을 이루고 있고, 그 뒤 능선상에는 하얀 구름떼가 한가롭게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한 폭의 멋진 산수화를 빚어내고 있다. 

쉬고 있는 은퇴한 산행객 한 사람과 잠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전망대 앞길 쪽으로 펼쳐지는 연하삼봉길의

아름다운 절경에 대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을 한다. 이 길의 특별한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그전에 나도

탄성을 지르며 발길을 떼지 못했던 기억이 있어 익히 잘 알고 있는 터. 

- 09:40 : 연하삼봉길. 

주변이 탁 트이고 호젓한 능선길 양옆으로 야생화 군락이 자리 잡고 있는 정말 아름다운 산행길. 

길가에는 나즈막한 푸른 초목들과, 야생화 군락과, 암봉들이 서로 잘 어우러져 멋드러진 절경을 빚어내고 있다.

그 유명세에 걸맞는 조화롭고 멋진 풍광이 좁다란 산길을 따라 쭉 펼쳐지는데, 지나가는 산행객들마다 탄성을 

지르면서 사진을 담기에 바쁘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모든 세상사는 그 혼자만의 웅장함이나 화려함보다는 서로 다른 인자들이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빚어낼 때, 더 큰 감동과 더 큰 찬사를 받게 되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 09:50 : 연하봉(1,721m). 

구름이 노니는 아름다운 봉우리. 산마루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세 개의 바위봉우리가 정겹게 연이어 서 있어

연하삼봉. 지리산 8경 중의 하나. 평평한 곳에 펼쳐지는 독특한 바위절경 지대다.

<이정표: 장터목대피소 0.8km> 

저쪽 앞에는 우뚝 선 천왕봉이 숨이 막힐 듯 턱 버티고 서 있는데, 그 모습이 꼭 거대한 용이 긴 목을 쭉 빼고

하늘을 오르려고 하는 것만 같다. 그 전방으로 조금 낮게 거북이등처럼 평평한 제석평전과 제석봉이 천왕님께 

머리를 조아리듯 자세를 낮추고 엎드려 있다. 

- 10:10 : 장터목대피소. 

그 이름처럼 분잡한, 도시로 말하자면 네거리 교통요지로서, 백무동길/중산리길/세석대피소 가는 길/천왕봉 

가는 길이 크로스 되어 서로 만나는 곳. 

예전에 백무동 인근 함양사람들과 중산리 산청 사람들 사이에 장이 섰었다는 유래에 따라 장터목으로 불리는

곳이다. 장을 보기 위해 그 험한 길을 올라 여기에서 장을 열다니 선조들의 강인한 삶의 정신에 숙연해진다. 

지리산 제1경 “천왕봉 일출”을 제대로 구경하기 위해서는 여기 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새벽 4~5시경에 출발, 

해뜨기 전에 천왕봉에 닿는 일출구경의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그래서 정겨운 이름만큼이나 산행객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이다. 

6년여 전 7월초, 퇴직기념으로 종주산행에 나서 여기에서 1박을 하고 새벽에 천왕봉에 올라 좋은 날씨 덕분에 

정말로 멋진, 최고의 황홀한 일출구경을 한 적이 있는데, 너무나 감동적이라 지금도 생생하게 파노라마처럼 

떠오른다. 장대한 지리산 자락의 그 많은 명소들을 다 제치고 ‘일출’을 제1경으로 치부하는 이유에 대해 실제 

눈으로 직접 보고, 큰 감동을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그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지리산 천왕봉의 일출은 3대가 덕을 쌓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할 정도로 보기도 어렵지만, 정말로 숨이 턱

막히는 최고의 멋진 장관이다. 탁 트인 드넓은 하늘에 시시각각 펼쳐지는 해무리와 황홀한 일출 광경은 광대한

하늘을 무대로 펼쳐지는 한편의 멋진 예술작품으로서, 거대한 자연이 창작하는 다채로운 빛의 황홀경에 사로잡혀

꿈을 꾸듯 빠져들게 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발길을 재촉. 대피소 뒷쪽으로 제석평전을 오르는 길은 워낙 가파르고 큰 바윗덩어리들을

깔아 놓아 힘이 들고 가쁜 숨을 헐떡거린다. 

- 10:45 : #제석평전

옛날에 이곳에는 산신제를 지내는 제석단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한다. 33만㎡(10만여평)의 광대한 주목 

고사목과 아름다운 야생화 단지. 크지 않은 평평한 바위들이 잘 깔려진 널찍한 산행길을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는 생태복원지대가 잘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숲이 사라지고 앙상한 고사목들이 허연 뼈대를 드러내놓고 야생화들 사이에 몰골사납게 서 있는 

유래를 살펴보니 가슴 아픈 사연을 담고 있다. 

광대한 제석평전은 한국전쟁 후까지만 해도 아름드리 전나무,잣나무,구상나무 숲으로 울창했었는데 자유당 

말기에 권력자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려 거목들을 베어냈고, 이 도벌이 문제가 되자 증거를 없애려고

불을 질러 모든 나무가 타죽어 현재의 고사목 군락지가 생겼다고 하니, 자연을 말살시킨 인간의 욕심에 분노가

솟구치면서도, 점차 푸른 숲과 잡목으로 생태환경이 회복되어가는 과정을 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이 든다. 

길옆 곳곳에는 아름다운 야생화 군락들로 장관을 이룸. 이곳에도 산오이풀과 동자꽃이 유난히 많이 피어 있다.

- 10:50 : 제석봉(1,808m).

성모천왕을 모시는 제왕이 자리했다하여 붙여진 이름. 산신에게 제사를 올리던 제석단과 샘터가 있는

천혜의 명당자리. 구름떼들이 주변의 고산준령을 오르내리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봉들과 

숨박꼭질을 하고 있다. 

제석봉에서 앞쪽으로 푹 꺼진 계곡의 건너편 저쪽에 빤히 올려다 보이는 천왕봉은 깎아지른 듯 하늘의

세계에 닿고 있다. 구름떼가 순식간에 능선 한쪽 면을 덮으니 우뚝 선 봉우리가 검투사의 칼날처럼 

예리하게 번뜩인다. 

- 11:00 : 능선 산행길 옆으로 아담한 야생화 단지들. 여기에도 고귀한 보라색의 산오이풀과 주황색의 

동자꽃이 군락을 이루어 유난히 많이 피었는데, 주변의 크고 작은 암봉들과 잘 어우러져 빼어난 경치를

이루고 있다.

능선의 저쪽 아래에는 만물이 하얀 구름바다에 잠겨 있고, 높다란 준봉 하나가 섬처럼 떠있다. 

불꾸불하게 하늘로 솟는 등산길은 빼어난 풍광들과 조화롭게 잘 어우러져 꼭 구름 위 별천지를 걷고 

있는 기분이다. 

<이정표: 천왕봉 0.7km>

- 11:20 : 통천문. 

마치 사찰입구의 일주문처럼 천왕봉을 지키며 하늘로 통하는 통천문의 바위굴을 통과하여 천왕이

군림하는 곳으로 한발짝씩 가까이 오른다. 

<이정표: 천왕봉 0.5km> 

조금 오르니, 길옆으로는 활짝 핀 야생화 군락과 나즈막한 잿빛 암봉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땀에 

젖은 산행객들을 응원하고 있다. 

- 11:57 : 드디어 천왕봉(1,915m) 정상에 도착. 

지리산 종주의 클라이막스이자 일망무제 경치가 압권. 역시 민족의 명산답다. “정상”이란 의미는

모든 게 한눈에 내려다보인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사방의 산하며, 소읍들이 모두 발아래로 조그맣게 조망된다. 

여기 천왕봉을 모태로 해서 사방팔방으로 쭉쭉 뻗은 능선과 계곡들은 어디를 보아도 호쾌한 절경과 

장엄한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눈이 부시다. 한마디로 지리산만이 갖는 “대자연의 위대함” 바로 그 자체다.

햇빛 뜨거운 여름철에 싱그러운 초록빛 수목들이 내지르는 ‘성하지절’ 찬가 함성이 온 산하에 메아리치는 

듯 넘실거린다. 


널찍한 바위에 터잡은 꼭대기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오른 기쁨을 환호하고 있고, 

“지리산 천왕봉(1,915m)”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글월이 음각된 소혀 모양의 정상석 앞에

삼삼오오 모여 기념사진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배낭을 내려놓고 사방을 둘러보니 발아래 저멀리 준령과 산하의 빼어난 경관들이 구름 속을 드나들며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지리산은 민족의 명산이요, 정상석의 글월처럼 민족 정기의 근원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러한 명산이 한국전쟁 때에는 우리 민족간 이념 갈등으로 말미암아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증오의 살기가 가득 찼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프다. 

우리도 기념사진을 찍고, 간식도 먹으면서 한참 동안 감동과 환호, 성취의 시간을 보내면서, 초록빛 

융단이 물결치는 싱그럽고 아름다운 장엄한 경치들을 보고, 또 보며 머리와 가슴에 듬뿍 담았다.

- 12:30 : 하산 시작.

급경사의 목재계단을 따라 중산리 쪽으로 내려감. 경사도가 매우 높은 급경사의 긴 계단이라 무척 조심스럽다. 

당초에는 백무동쪽으로의 하산을 계획했었으나, 다시 장터목까지 내려가서 긴 코스를 가야하기 때문에 험하고

급경사이긴 하지만 비교적 거리가 짧아 시간이 적게 걸리는 중산리코스를 하산길로 택했다. 

목재 계단길 주위에는 국립공원측에서 야생식물 종자보존을 위해 씨앗채취용 하얀 망봉지를 씌운 야생화들이

면사포를 쓴 새색시 신부처럼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이 서 있다. 

- 12:52 : <이정표: 중산리 5.1km, 법계사 1.7km> 

중간 중간에 숨을 헐떡이면서 지친 모습으로 산을 오르는 산행객들과 조우. 정상을 오르는 코스로서는

무척 힘이 드는 난코스다. 

- 12:55 : 천왕샘.

목재 계단길은 끝나고 크고 작은 바위들이 불규칙하게 깔린 너덜지대의 급경사 하산길이 계속된다. 

이런 길에서는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면 바윗돌과 부딪쳐 자칫 큰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조심 내려간다. 

- 13:15 : <이정표: 중산리 4.8km, 법계사 1.4km>

급경사 내리막길. 크고 작은 바윗돌이 깔려 있어 한발 한발 내딛기가 조심스럽다. 도중에 어떤 곳에서는

산행길이 큰 바위 절벽으로 인해 뚝 끊겨 곡예를 하듯 미끄러운 바위를 타고 지나야만 했다. 이처럼 중산리길은

매우 험해서 간혹 등산사고도 일어나는 곳이다. 

이 코스는 거리가 짧아 시간이 크게 줄어드는 대신 급경사의 험한 너덜지대 바윗길 투성이인데, 우리 세상사도

이처럼 얻는 게 있으면 또 잃는 것도 있는 게 아닌가. 결국 세상사는 전지적 관점에서 보면 공평하게 돌아간다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 13:25 : 개선문. 

양쪽에 우뚝 선 큰 바위가 문처럼 모양을 이루고 있다. 젊은 남자 산행객 두 명이 오르고, 그 뒤를 여자 

산행객 두 명이 숨을 헐떡이며 올라온다. 

급경사에다가 크고 작은 바윗돌이 많은 중산리 산행길은 지리산 코스 중에서도 가장 힘들고 험한 산행길로

악명을 떨치고 있지만, 가장 짧기 때문에 정상에 단시간에 오를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숨을 헐떡이며 오르고 있다. 

지리산 산행길은 어디 한군데 험하지 않은 곳이 없는데, 그중에서도 중산리 산행길은 급경사+돌길이라 

산행객들의 많은 땀과 인내를 요구한다. <이정표: 중산리 4.6km, 법계사 1.2km> 

- 13:45 : 제법 넓은 목재 평상이 설치된 심장안전센터.

중산리 산행길은 급경사에다가 험한 바윗길 투성이로 위험도가 높다 보니 산행객들의 안전을 위해 이러한

평상형태의 목재데크 안전센터를 곳곳에 설치해 두어 쉬기에 편리했다. 아침에 싸온 도시락으로

맛있게 점심식사.

- 14:05 : 식사후 출발. 시장기를 면하니 다시 생기가 솟아난다.

- 15:05 : 법계사. 

사찰은 산길 위쪽으로 위치해 길옆에 커다란 현액을 단 일주문이 덩그렇게 서 있고, 그 뒤로 올라가야 절에

닿는다. 절 입구의 샘터에서 샘물을 받아 벌컥벌컥 들이켜니 시원한 샘물 맛에 힘이 솟는다. 

쉬면서 서울에서 이 절에 쉬러 왔다는 연세가 지긋한 한 남자분을 만났는데, 공원 입구에서 나가는 

마을버스가 4시에 있고 막차가 5시에 있다고 일러준다. 빨리 서둘러 나가야겠다. 

- 15:10 : 로터리대피소.

그리 크지 않은 아담한 대피소가 하룻밤을 지낼 산행객들을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 15:35 : 험한 돌길과 편한 흙길이 반복된다. 마을버스 시간에 늦지 않게 닿기 위해서 쉬지 않고 빠른

발걸음을 재촉한다. 

- 15:50 : <이정표: 중산리 4.7km>

아직도 꽤 먼거리가 남았다. 급경사 길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험한 돌길이 계속된다. 

집사람은 허리가 아프다더니 그것도 잊고 빠른 걸음으로 나아간다. 집사람은 보기보다 강골 체질이라 

늘 같이 산행을 다니면서도 앞장서서 힘차게 나아가기 때문에 든든하다. 

길가의 계곡을 흐르는 청명한 계곡수 소리가 힘차게 울려 퍼진다. 지루하리만치 끝없이 이어지는

산행길. 지친 발걸음이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 16:25 : 공원 입구 생태탐방로 도착.

이제 숲이 어우러진 평지길인 걸 보니 거의 다 왔나 보다. 시간적 여유가 있어 안도와 편한 마음에 

발걸음도 가볍다. 짧은 하산코스를 택해서 내려왔는데, 험한 구간이 많아 산행시간이 예상보다 많이 걸렸고, 

힘도 들었다.

- 16:35 : 드디어 중산리쪽 등산로 입구(환경교육원 앞 마을버스 정류장)에 도착. 

힘은 들었지만 아름다운 절경과 대자연의 장엄함에 가슴 벅찼던 우리 부부의 1박2일 지리산종주 산행 종료. 

“여보, 수고했소!” 지친 피로감과 해냈다는 뿌듯한 성취감을 함께 느끼면서 서로 위로와 격려를 나눈다. 

머릿속에는 아름답기도 했고, 힘들기도 했던 1박2일간의 긴 산행길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비록 기개

넘치는 젊은 시절이 지난 우리 부부지만 멋진 꿈에 도전했고, 기어코 해냈다! “도전”은 머릿속에 그리면서

행동할 때에는 열정이 넘치지만, 막상 성취하였을 때에는 허탈한 법. ‘도전’은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라,

뜻을 세우고 행동하는데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중산리탐방안내소 입구까지는 아스팔트길로서, 걷기에는 다소 멀고(3km) 내키지 않아 마을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정류장에서 진주까지 간다는 중년의 산행객부부와 함께 버스를 기다림. 

- 17:00 : 중산리탐방안내소 주차장행 마을버스에 승차. (2000원×2인=4,000원)

- 17:15 : 중산리탐방안내소 도착. 또다시 시외버스정류장까지 택시 승차(5000원)

- 17:20 : 중산리 시외버스정류장 도착.

서울을 갈려면 원지에서 남부터미널까지 가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원지를 경유해서

진주 가는 시외버스 매표. 원지까지 약 50분 걸린다고 해서 시간에 맞춰 핸드폰 앱으로 원지→서울행 우등

시외버스도 매표.

시간이 많이 남아 세면대를 찾아 땀흘린 얼굴도 씻고, 편의점에 들러 커피와 아이스크림도 사 먹으며 

오랜만에 여유를 즐겨본다. 

- 17:50 : 진주행 시외버스 승차 (4,300원×2인). 

가는 도중에 높은 산들 사이로 지리산 준령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시냇가와 정겨운 집들이 지친 

마음을 포근하게 안아준다. 

이 고장 이름이 왜 “산청”이라 하는지 수긍이 간다. 높고 푸른 산과 계곡들, 그 사이로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청정마을, 곧 산청이 아닌가. 승객이 많지 않은 텅 빈 시외버스는 잘 정비된 까만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힘차게 내달린다.

- 18:40 : 원지 시외버스정류장 도착. 

인근 ‘송기원 진주냉면집’ 식당에서 냉면으로 저녁식사(10,000원×2인). 조그맣지만 비교적 깔끔한 

식당에서 맛있게 식사를 했는데, 소도시 마을이지만 손님들이 제법 많다. 

세 가지 곡물을 섞어 만든다는 냉면사리와 시원한 육수, 그 위에 길게 썬 돈육전을 듬뿍 올린 냉면 한 

그릇을 비우니 속이 든든하다. 집사람은 냉면 맛이 일품이라고 칭찬이 자자. 

- 19:50 : 서울행 대한여객 시외버스 승차 (우등, 26,800원×2인=53,600원). 

승객들이 많지 않았고, 28인승 우등버스라 쾌적한 공간과 안락한 좌석이 지친 심신을 풀어 준다.

버스는 신탄진휴게소에 한번 정차 한 후, 곧장 밤길 고속도로를 내달린다.

- 23:00 : 서울 남부버스터미널 도착. 버스 하차, 택시 승차 (11,800원)

- 23:40 : 우리집 도착. 일정 완전 종료. 


□ 산행 후기


○ 우리 부부의 이번 지리산 종주산행은 비록 힘은 들었지만, 정말 뜻깊은 산행이었다. 

이제 인생여정의 후반부로 접어들어 약해지는 몸과 마음에 힘찬 기운을 불어넣고,

민족의 정기가 솟는 광대한 지리산의 품에 안겨 자연을 만끽함으로써 오래도록 추억에 

남을 신명나는 산행이었다. 


○ 특히, 지난 2년여 넘게 범세계적인 코로나 펜데믹 사태로 인해 우리의 삶과 일상은 고립되고 

폐쇄적으로 바뀌어 엄청난 통제와 제한을 받게 됨으로써 숨이 막혀 버릴 것만 같이 답답했는데, 

이번에 대자연을 통해서 뻥 뚫고 싶었다.

세계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린 코로나 사태로 인해, 이전에는 그 흔했던 모임은 커녕 사람들을

마음대로 만날 수조차 없었고, 혹시라도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3~4차례에 걸쳐 백신을 

맞아야만 했는데,  이제 그나마 조금 풀려 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지내면서 종주 산행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종식되고 예전처럼 활기차고 개방된 일상이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고, 그동안 

답답하고 꽉 막혔던 마음을 대자연을 통해서 확 뚫어주는 통쾌함을 기대하면서 종주에 나선 것이다. 

○ 민족의 명산 지리산은 역시 어머니의 산이다. 지리산은 언제나 어머니처럼 품이 넉넉하고 포근하게 다가온다.

길고 긴 숲속길 능선을 끝없이 타고 가는 종주산행은 지리산 산행의 백미다. 키가 큰 수목들로 우거진 숲속길은

지친 삶에 찌든 심신에 생동감을 심어주는 청량제다. 

지리산에 올 때마다 늘 가슴이 벅차고, 장대한 준령능선을 무아지경으로 걸어가면 뜨거운 생명력과 진한 감동이

온몸을 타고 흐른다. 이럴 때면, 거친 세파와 스트레스에 찌들어 물에 젖은 솜처럼 축 늘어진 육신과 마음을

깨끗이 씻어 가뿐하게 해주는 최고의 청량제라고 자부하고 싶다. 


○ 20여년 전,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때, 함께 봄철 지리산 종주(성삼재→세석대피소(1박)→천왕봉→백무동) 

산행을 하였고, 2000년 1월 1일에는 새천년 일출맞이를 위해 우리 부부가 산악회를 따라 백무동→천왕봉

→중산리 산행을 하면서 지리산 제1경인 일출구경을 하였다. 

또, 그 후 직장 산악회팀과 같이 중산리→천왕봉→백무동 코스를 타면서 일출구경을 하였고, 2016년 

7월6일~7월9일에는 직장에서 퇴직 공로연수에 들어가면서 혼자 이른바 「지리산 성대종주」(성삼재→

벽소령대피소(1박)→장터목대피소(1박)→천왕봉(일출구경)→대원사) 산행을 다녀온 바가 있는데, 

그때 좋은 날씨 덕분에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장엄한 일출구경을 정말 제대로 하였다. 

지금도 그때 온 하늘이 붉게 물들며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황홀경을 빚어냈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이번 종주산행이 4번째 지리산(천왕봉) 산행이 되는 셈이다. 


○ 처음에 집사람이 이번 여름휴가에는 지리산 종주를 해보자고 제안했을 때 어안이 벙벙했다. 왜냐하면, 

지난 7월9일~10일에 인제 스피디움에서 1박을 하면서 인근에 있는 아침가리 계곡산행을 하기 위해 

진동계곡에서 조경동다리까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계곡 트레킹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약 2시간 트레킹을

한 시점에 집사람이 허리가 아파 이제 그만 올라가고 왔던 계곡길을 다시 내려가자고 하면서 고집을 피우던

일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대피소에서 1박을 해야 하는 그 험한 지리산 종주산행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지경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허리 아프다는 사람이 무슨 지리산 종주를... 장난으로 아나? 안된다고 얘기했더니 집사람은 “다른 사람들 

다하는데 못할 게 뭐냐? 우리도 한번 가보자! 이때 안가면 앞으로 언제 한번 종주를 해보겠나?” 하면서 

꼭 가야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모르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 한편으로, 나 자신도 2년전 갑작스런 심혈관 질환으로 건강이 나빠져 지금도 건강관리에 일상을 집중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연말부터 노화로 인한 허리 디스크와 척추협착증세 때문에 다리가 땡기고, 걸으면

발바닥에 이상감각 증세가 나타나 장시간 걷기에는 무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불현듯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랄 때, 겨울철이면 집 근처 백두대간의 높은 산에 올라 무거운

땔감나무를 지게에 지고 눈덮힌 미끄러운 산길을 날듯이 다닌 아련한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힘든 시절도

겪어냈는데 이쯤이야... 

다시 생각을 바꾸니, 무거운 배낭을 지고 지리산 준령의 긴 능선의 멀고 먼 숲길을 타고 넘다보면, 오히려

자신감이 충만하고 숲의 기운을 받아 건강해질 수 있겠다는 긍정의 에너지가 샘솟아 “그래 한번 가보자!”고

말하고, 일정을 잡아 성삼재행 심야 우등고속버스와 대피소 예약을 해버렸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도 일단 저지르고 시작하면 끝은 보게 되어 있는 법. 그건 삶의 진리가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는 도전했고, 거뜬히 해냈다.


○ 처음에는, 좋지 않은 허리가 무거운 배낭을 지고 장시간 산행으로 무리를 해서 더 아프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다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오히려 아픔이 줄어들었고, 허리와 다리 근육에 힘이 생겨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이것은 험한 흙길을 마음껏 밟으며 땀을 비오듯 쏟아내는 숲속길 산행에서 얻는 강한 근력운동과 상큼한

유산소 효과 덕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누군가는 숲을 「치유의 공간」 이라고 했나보다. 심산유곡의 많은

휴양림에는 치유 목적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리라. 

그러나, 휴양림은 정적인 공간인 탓에 헐떡거리며 땀 흘리고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많지 않으나, 지리산

종주를 하게 되면, 대자연의 깊은 숲속을 하루종일 아니 2~3일간씩 거의 탈진되어 지칠 때까지 걸어야

하므로, 몸과 마음을 텅 비우고 유산소로 가득 채우게 되어 그 효과가 훨씬 더 크지 않나 생각된다. 

그뿐만 아니라, 대자연의 기운으로 충만해 있는 몸과 마음은 성취감과 자신감으로 가득하고, 고산준령의

빼어난 절경들에 대한 벅찬 감동의 기억들은 눈에 선하게 떠올라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다. 

특히, 칠선봉-영신봉 구간의 수목과 암봉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절경과, 천왕봉에 오르는 제석평전에서의

아름다운 야생화 군락, 흰구름떼들이 능선을 오르내리며 빚어내는 장엄한 초록융단 절경들, 천왕봉에서 

바라본 숨이 막힐 듯한 아름다운 경관들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 지리산 종주산행은 일반적인 산행에서 느낄 수 없는 호쾌함과 뜨거운 감동, 그리고 강한 성취감을 안겨

준다. 30~40km에 이르는 준령의 숲속 능선길을 땀 흘리며 묵묵히 걷노라면 광대한 대자연의 품으로부터 

가슴 벅찬 기운과 강인한 힘을 얻게 된다. 

가장 힘들었던 벽소령에서 세석대피소 구간의 칠선봉과 영신봉의 험한 산마루들을 끝없이 돌고 돌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준봉을 넘어 갈 때에는 너무 지쳐 자주 쉬기도 했지만, 심산유곡의 암봉들과 구름떼가

빚어내는 아름다운 절경에 매혹되어 연신 탄성을 질렀었고, 제석평전과 통천문을 거쳐 하늘(천왕봉)에 

이르는 길은 아름다운 야생화와 초록빛 수목들, 그리고 회색빛 바위들과 연한 운무가 한데 어우러져 빚어내는

대자연의 서사시에 매료되어 한동안 발길을 떼지 못했다. 

또한, 급경사 내리막의 너덜길을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쉼 없이 걸어야 했던 중산리 하산길도 마지막에 

생태공원길로 들어섰을 때에는 큰 성취감이 솟아나면서 힘들었던 시간들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이처럼, 지리산 종주산행은 우리의 삶에 커다란 감동과 강한 에너지를 심어주는 활력소가 될 수 있어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볼 만한 가치 있는 버킷리스트라고 여겨진다.


○ 이제는 나이가 적지 않아서 그런지 지리산 종주산행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다. 벽소령-세석대피소 

구간의 험한 영봉들을 타고 넘을 때에는 정말 지치고 힘들었는데, 20여년 전 불과 열두살 초등학교

5학년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 험한 산행길을 왔었다는게 신통하기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그때 아들이 무모한 이 아빠를 얼마나 원망했을까. 그렇지만 내 기억으로는 아들이 오히려 나보다도 

가뿐하게 산행을 한 기억이 남아 있는데, 그렇더라도, 그 어린 아들에겐 너무 힘든 산행이었음에 틀림없다고

여겨져, 앞서 걷는 집사람에게 몇 번이고 내가 그때 아들한테 너무 무모하게 종주산행을 하도록 했다고

되뇌이면서 자신을 책망하곤 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이제는 장성한 아들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오히려 그때는 큰 힘이 안 들었다고 하면서, 

참지 못할 것은 세석대피소에서 하룻밤을 지낼 때 피곤한 산행객들이 내뱉는 심한 코고는 소리와 지옥

같은 발냄새였다고 한다. 역시 장한 우리 아들!


○ 평소에도 늘 주말이면 근교 산행을 즐기면서 살아온 우리 부부에게 이번 지리산 종주산행은 지친 삶에 

큰 활력소가 되었고, 자신감과 성취감을 가득 안겨 준 쾌거였다. 

고산준령의 숲속길에서 받은 상큼한 기운과 가슴 뛰는 벅찬 감동은 몸과 마음을 개운하게 씻어주고, 

가뿐하게 만들었다. 우거진 능선 산길의 눈부신 초록빛 절경들은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깊이 담아

두었다가 그리울 때면 한 폭씩 꺼내어 그려 보게 될 것이다. 

끝으로, 이번에 우리 부부는 지리산의 호쾌한 대자연 속에 묻혀 지내면서, 잊지 못할 감동과 에너지를 

듬뿍 받아 ‘삶을 재충전’하고 돌아왔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끝을 맺는다. <끝>

〔지리산 등산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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