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지리 종주(화엄사-유평(대원사)) 총42.7Km(44.2Km)

일시 : 2004년 7월 27일(화) - 7월 29일(목)
날씨 : 흐렸다 개였다 맑음
코스 : 화엄사-노고단(1박)-삼도봉-화개재-토끼봉-연하천-형제봉-벽소령-칠선봉-영신봉-세석(2박)-촛대봉-삼신봉-연하봉-장터목-제석봉-천왕봉-중봉-써리봉-치밭목-유평

<산행 일정>
(첫째날) 화엄사-노고단 산장(6.5Km)
        . 화엄사 출발(13:05)-국수등(14:35)-중재(15:05)-노고단 대피소(16:35) 3시간 30분
(둘째날) 노고단 산장-세석산장(20.9Km)
        . 노고단 산장(06:05)-임걸령(07:20)-삼도봉(08:10)-화개재(08:35)-토끼봉(09:20)-연하천(10:40-11:40점심)-벽소령(13:20-40)-선비샘(14:20)-칠선봉(15:50)-세석산장(17:00) 10시간 55분
(셋째날) 세석산장-유평(대원사)15.3Km(16.8Km)
        . 세석산장(06:00)-삼신봉(06:50)-장터목(07:20-30)-천왕봉(08:10-30)-중봉(08:55)-써리봉(09:50)-치밭목 산장(10:35-11:30)-새재삼거리(12:00)-유평(14:10) 8시간 10분

. 총산행시간 22시간 35분 - 휴식 2시간 45분 = 산행시간 19시간 50분

<접근 및 귀가 경로>
27일 08:00 택시로 통영 버스터미널로 이동 진주행 (08:30)승차, 진주에서 하동행(10:15), 11시 30분에 하동 도착. 하동에서 구례 행(12:30)이 있으나 시간이 촉발할 것 같아 화엄사까지 택시로 이동 요금 36,000원이 나온다. 화엄사 입구에 12:10경 도착함. 다음에는 하동에서 11:10발 구례행 버스를 탈 수 있도록 통영에서 1시간쯤 일찍 출발하면 화엄사에서 13:00쯤 산행을 시작할 수 있겠다. 산채비빔밥으로 점심식사(12:40)하고 화엄사까지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감. 매표소에서 입장료 1,600원, 문화재 관람료 2,200원 모두 3,800원 지불함. 보지도 않는 문화재 관람료는 무척 아깝다. 화엄사 일주문 앞 다리에 도착(13:00) 배낭을 추스리고 스틱 조정하고 출발 준비함.

29일(목) 유평(밤밭골) 날머리 철문 도착(14:10). 대원사 매표소까지 도보로 천천히 이동 중에 대원사 200m 쯤 앞두고 지나가는 트럭이 고맙게도 버스주차장 까지 태워주셔서 편하게 이동(14:40). 대원사 발 진주행(15:30) 승차. 진주에서 통영행(16:50)타고 도착(18:10). 시내버스 타고 집에 도착(18:40).

<산행소감>
. 작년부터 지리산 자락을 열 몇 차례 드나들었지만 지리산 종주는 이번이 처음이다. 작년 성삼재-천왕봉 종주를 호우주의보 때문에 포기하였으나 간이 더 커진 탓인지 무식한지 올해에는 목표를 상향조정하여 고전적 코스인 화엄사-대원사 종주로 정하고 인터넷 예약(27일 노고단-29일 세석)을 진작에 마쳤다. 금년에는 비가 문제가 아니라 폭염이 문제다. 연일 30도를 넘는 기온이 산에는 어떨지 일사병, 탈진 등이 걱정된다. 요즘 몸이 술 때문인지 연식 탓인지 컨디션이 별로다. 산행 빈도도 훨씬 떨어지고 의욕도 줄어든다. 몇 년 동안 주말에는 어김없이 산만 생각하고 다니던 일상생활 리듬이 요즘에 와서 깨지고 있다. 그렇지만 마음을 다잡아서 다시 산으로 간다. 준비물이 만만치 않다. 작년 지리산 종주를 위해 준비하였으나 단 하루밖에 사용하지 않았던 50L 배낭에 이것 저것 챙기다 보니 11Kg이 조금 넘는다. 내 체격에는 무리인 것 같지만 그대로 메고 출발한다.

. 택시로 화엄사 터미널에 내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포장도로를 걸어 올라가니 걸음이 휘청거린다. 이래 가지고 무사히 종주를 해낼지 걱정이 된다. 천천히 올라가는 오른쪽 계곡에는 물놀이 가족이 정겹다. 화엄사 일주문 건너 다리 옆 공터에는 유치원 아이들이 소풍을 나왔다. 바위 옆에 배낭을 내려 놓자 말자 밥 먹던 여자 아이가 벌이 우짜고 저짜고 하면서 갑자기 비명을 지르면서 김밥 도시락을 내던진다. 유치원 선생님이 내 얼굴을 먼저 쳐다본다. '나도 놀랬다 이 사람아' 내 얼굴이 벌처럼 생겼나 아니면 거지처럼 보였나? 내 참 시작부터 이상하게 돌아간다. 순간의 오해는 말없이 풀렸으나 우선 사람은 잘 생기고 봐야 되는가?

. (13:05) 스틱 조정하고 멜빵 끈 조절하고 배낭 다시 어깨에 메고 드디어 화엄사-대원사  코스 첫발을 내딛는다. 지난 가을 새벽에 걸었던 길이고 대낮이라 낯설지 않다. 노고단까지 7.0Km이다. 오늘은 산장까지만 가니까 약 6.5Km를 간다. 허리가 약간 불편한 것 같고 오른쪽 다리의 느낌이 안 좋다. 날씨는 구름 때문에 따갑지 않으나 움직일수록 땀이 비오듯 한다. 손수건을 길게 접어 이마를 동여 메고 돌덩이로 포장된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화엄사 수련생들이 연기암쪽에서 질서있게 다소곳이 내려온다.

. 젊은 친구가 내 앞을 질러간다. 잘도 올라 간다. 생각 같으면 나도... 그렇지만 배낭이 너무 무거워 다리에 힘이 억수로 들어간다. 되도록 천천히 빨리 갈 일도 없고 시합도 아니다. 사실 화엄사에서 노고단 코스는 멀기만 하지 볼거리도 별로이고 지겨운 오름길이다. 오른쪽 계곡에는 물소리가 유혹하지만 묵묵히 길만 따른다. 연기암 노고단 갈림길 표지가 나온다. 물이나 한모금 떠갈까 하고 왼쪽 연기암 쪽으로 오른다. 따가운 햇볕이 내리는 풀숲길을 약 30m 쯤 진행하니 왼쪽에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건물이 보인다. 완전히 햇볕 속으로 나왔다. 세멘트 포장도로다. 입구에서 절까지는 한참 가야할 것 같고 오른쪽 샘터에는 물이 말랐다. 집에서 가져온 물이 있으니 오른쪽 노고단방향으로 발길을 돌린다. 계단오름길 입구에서 잠시 쉬고 물 한 모금 마시고 신발끈을 다시 동여 멘다.

. 14:35 국수등이다. 반쯤 온 것 같다. 표지판거리가 반반인 것 같은데 기록이 없어 모르겠다. 잠시 쉬고 오른다

. 15:05 중재를 지나 시원한 물소리 들리는 오른쪽 계곡에 신경을 쓰다가 진입이 용이한 쪽으로 접근하여 세수를 하고 사과로 요기한다. 무거운 배낭도 이젠 적응이 된다. 그런데 땀이 너무 흐른다. 조금 오르다가 다시 계곡에서 얼굴을 물에 적신다. 그러나 20미터만 오르면 말짱 헛일이다. 노고단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이 부럽다. 나는 갈 길이 멀다. 내일도 모레도 가야 한다.

. 눈썹바위이다. 이젠 거의 다 온 것 같다. 조금만 오르면 성삼재에서 오르는 큰 도로가 나온다. 전망대에서 올라온 계곡을 되돌아 보는 재미가 기대된다. 벌써 몸에서는 땀냄새가 진동한다. 어디선가 쉰내가 난다. 몸에서 나는지 배낭끈에서 나는지 한참 킁킁거리다 포기한다. 찾아 봐야 해결 방법이 없다, 허리 힘주고 배낭을 다시 짊어진다.

. (16:35) 노고단 산장이다. 작년 생각이 난다. 호우주의보로 종주 포기하고 판초 둘러쓰고 하산했던 일. 이번에는 호우주의보 호자도 없다. 그대신 더위가 걱정이다. 그래서 소금을 은박지에 조금씩 넣어 6개를 준비했다 일사병, 탈진 뭐 그런거 예방한다고 나름대로 신경썼다. 산장에서 잡다한 일을 거들던 아저씨가 바뀐 것 같다. 카우보이 모자 쓰고 폼잡던 공단 젊은 직원도 안 보인다. 매점에는 아지매가 물건을 판다. 대체로 작년 보다 분위기가 좋아졌거나 아니면 공단 기강이 해이해진 것 같다.

. 치약, 세제사용 금지만 믿고 칫솔을 안가져 왔다. 이런 등신. 소금으로 양치질하면 되는데 항상 완벽하게 준비한다지만 생각이 도를 지나쳐서 이렇다. 쉽게 생각할 것은 쉽게 해야 되는데. 앞으로 사흘동안 내 입은 완전히 거지가 되는 거다. 식수대 옆에서 하얀 거품을 물고 양치질하는 사람이 부러울 때 나는 산에 온 목적을 망각한다.

. 땀에 젖었던 상의가 식으면서 춥다. 자켓을 입고 의자에 앉아 휴식한다. 성삼재에서 노고단까지만 관광온 가족과 연인들의 웃음과 오고 가는 발걸음이 보기 좋다. 대피소 입실이다. 1번자리다. 행운이다. 창문턱과 라디에터, 그리고 몇 센티의 여유공간이 덤으로 주어지는 가장 좋은 자리이다. 작년 3번 자리에서 그렇게 부러워 했던 자리이다. 잠잘 때 한쪽만 신경쓰면 그런대로 편안한 잠자리이고 배낭의 물건 정리 등이 편리하다. 일상생활에서 누리던 안락함과 편리함을 팽개치고 형편없는 불편함을 스스로 찾아서 산에 들어와서는 막상 잠자리에서 속물 근성과 이기심이 발동한다.

. 햇반과 시금치 된장국으로 저녁을 해결한다. 지리산에서 처음 취사한 음식이다. 10시쯤 되니까 배가 고팠지만 참았다. 진주버스에서 만난 대학생들이 권하는 소주도 사양했다. 저녁을 먹고 송신소 도로로 걸어 가면서 아내에게 전화 건다. 평소에 안하는 짓인데 산에 오면 이렇게 마누라 생각해 주는 척 한다. 그리고 당분간 핸드폰 쓸 일 없으니 꺼놓는다. 월령봉 능선 들머리를 찾아본다. 송신소방향 오른쪽 가드레일이 끝나는 곳에 길이 보인다. 샌달을 신고 있어 뱀이 겁이나 들어가지는 못했다. 원추리 보호구역이다. 노란 원추리가 많다. 구름인지 안개인지 하얗게 뒤덮는다.

. 대피소로 돌아와 8시에 잠자리에 누웠다. 라디오를 귀에 꽂고 자는 둥 마는 둥 밤이 지나간다.

.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일단 밖으로 나가 본다. 사람들이 분주하다.

. 나도 덩달아 취사장에 가서 밥을 준비한다. 물이 끓고 햇반이 익는 동안 세수를 하기 위해 취사장 옆 물이 나오는 곳으로 가니 식수 나오는 곳에서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왼쪽 편 물 나오는 곳에서 대강 얼굴을 씻고 나니 한사람이 유심히 취사장을 올려다 보고 물나오는 곳을 쳐다 보고 내 얼굴을 한번 쳐다 보더니 그냥 간다. 아마 취사장에서 나오는 설거지 물에 세수를 했나 하고 그냥 간 것 같다. 설거지 물에 세수할 내가 아니다. 아무런 냄새도 없었다. 그리고 작년에 공단 직원이 그곳에서 주전자 물 받아 가는 것을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그러나 취사장에서 나가는 물이 어떤 건지 확인은 못했다

. 밥 먹고 정리하고 배낭을 메고 출발 준비하니 아침 6시가 좀 넘는다. 본격적인 주능선 산행의 첫발 취사장 옆 계단을 천천히 오른다.(06:05) 오름길이 처음부터 힘에 부친다. 맨몸으로 오르던 아가씨들이 길옆에 피어 있는 보라색 들꽃의 이름을 서로 물어본다. 내가 알면 가르쳐 주지. 노고단 고개에 올라서니 반야봉에서 비치는 아침 햇살이 눈부시다. 햇살을 마주하고 걸음을 옮긴다. 배낭이 무겁다. 어제 저녁과 아침에 먹어치운 햇반 두 개 무게는 배낭 무게 감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 임걸령을 향하는 길은 안면이 있지만 걸음이 무겁다. 속도가 붙지 않는다. 길가의 산죽과 나무 이파리의 이슬이 시원하게 스치고 노고단 산자락 아래 운해가 멋지게 어우러진다. 코끝을 스치는 풀잎 냄새와 아침공기가 상쾌하다. 제발 오늘 목적지까지 가는 동안 지금 기분대로만 가자. 돼지령을 지나고 피아골 삼거리를 지난다. 피아골로 올라와서 중봉을 거쳐 묘향대를 보고 삼도봉에서 불무장등 쪽으로 내려서서 오른편 무착대터를 거쳐 직전마을로 하산하는 코스를 생각하면서 가다보니 임걸령 샘터이다(07:20). 물을 보충한다. 물맛은 여전히 좋다.

. 연하천까지 샘터가 없어 물통 2개를 가득 채우니 배낭무게가 더 나간다. 노루목 삼거리이다. 물한모금 마시고 잠시 휴식하고 출발한다. 반야봉 하산길이다. 오른쪽 용수암 가는 길이 보이고 왼쪽으로 묘향대 가는 길이 보인다. 소금장수 무덤을 지난다. 행복한 소금장수이다. 국립묘지 어느 누구의 무덤 못지 않게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무덤을 한 번씩 보고 지나가니 죽어서도 얼마나 행복할까?

. 08:10 삼도봉이다. 날씨가 서서히 더워진다. 삼각표지판 한번 쳐다본다. 끝이 반짝거린다.불무장등 들머리를 요리조리 찾아서 확인하고 화개재를 향하여 다시 걷는다. 유명한 오백오십 몇 계단이다. 누군가 551이라 적어 놓았다. 몇계단 내려가니 밑에서 올라오던 젊은 커플이 아이구 아직도 계단이다 한다. 다 왔습니다  17개 밖에 안남았습니다.(세어보지 않았으나 이보다 적게 남았다) 라고 하니 아가씨가 너무 좋아하며 고맙습니다 한다. 거짓말하고 칭찬들었다. 계단 마지막 기둥에는 554개라고 적혀있다.

. 08:35 화개재 쉼터에 도착. 한 젊은이가 지도를 보면서 쉬고 있다. 천왕봉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왕복종주중이라 한다. 세 개 3,980원 하는 사과 한 개를 나누어 먹는다.(물가가 비싸다는 뜻?) 이 젊은이는 세석까지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같이 가게 된다. 붙임성도 있고 지리산을 자주 다녔는지 그 유명한 총각샘도 알고 있다.

. 토끼봉까지 오름길이다. 땀이 쏟아진다. 그런대로 구름이 있어 참을만 하다. 젊은이는 덩치를 보니 진도가 잘 안나갈 것 같은데 오르막에서 힘이 너무 좋다. 덤프트럭이다. 토끼봉에 도착이다(09:20). 토끼봉을 지나 명선봉을 거쳐 연하천으로 가는 길은 너무 힘들다. 명선봉은 구경도 못하고 사면길을 오른다. 젊은이가 총각샘을 다녀 온다. 물이 없단다. 물을 주려하니 사양한다. 계단을 오르고 지겨운 내리막 나무계단을 지나니 연하천 산장이다.(10:40)

. 아침 5시에 밥 먹고 지금까지 사과 반쪽으로 견뎠으니 뱃속에서 데모를 한다. 점심을 먹기로 한다. 임걸령에서 떠 온 물로 라면을 끓이고 캔맥주 한 개로 갈증을 푼다. 차가운 샘물에 담가 놓은 시원한 맥주를 파는 연하천 산장지기께서는 털보였다. 라면 1개 반, 오이 한 개, 그리고 맥주로 점심을 해결하고 벽소령으로 향한다.(11:40)

. 조금 가니 음정 연하천 천왕봉 삼거리이다. 작년에 영원사에서 이쪽으로 올라왔다가 벽소령으로 하산했던 적이 있다. 길이 무척 까다롭고 산죽이 무시무시한 곳이다. 벽소령 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길보다 무척 험하다. 오름길과 너덜길이 많다. 이정표 없는 형제봉이다.바위에 올라 조망하나 구름에 가린 천왕봉은 보이지 않고 벽소령 산장만 아래 형제봉 건너편 왼쪽으로 그림처럼 앉아 있다.

. 13:20 벽소령에 도착한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람을 쏘인다. 시원한 음료수로 활력을 되찾아 본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산장직원이 머리에서 턱아래로 붕대를 감고 음정으로 하산한다, 벽소령에서 음정으로 3번 의신 삼정으로 1번 하산한 적이 있는 곳이다. 벽소령 취사장의 파리가 유명하다.

. 20분 쉬고 오늘의 마지막 난코스 6.3Km 세석까지 길을 떠난다. 중간에 선비샘이 있으나 칠선봉을 지나 영신봉 오르는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벽소령에서 쉬고 있던 모녀 3가족과 50대 부부, 그리고 아까 젊은이 등이 같이 길을 가게 된다. 세석에서 벽소령은 2시간 30분만에 왔으나 벽소령에서 세석길은 3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선비샘에 도착하니(14:40) 모녀 3가족이 쉬고 있다. 연하천에서 떠온 물로 손수건을 적셔 얼굴을 식히고 선비샘 물을 한통 받는다. 젊은이가 오이를 권한다. 정중히 사양하고 먼저 길을 떠난다. 전대에 도착한다. 경치가 좋다. 장터목 산장이 보이고 제석봉 너머 천왕봉이 구름에 가렸다가 다시 나타난다. 오른쪽 아래에 대성골과 세개골이 보이고 남부 능선이 저만큼 달리고 있다.

. 15:50 칠선봉이다. 먼저 온 50대 부부가 길을 떠난다. 모녀 그룹의 아이들이 먼저 도착한다. 이젠 서서히 지치기 시작한다. 벌써 배가 고파 온다. 다리의 힘도 빠진다. 어깨와 목도 아프다.

. 마지막 난코스 200계단(실제 세어보니 176개였다)이 입을 벌리고 기다린다. 한발 한발 아주 천천히 오른다. 계단 중간에서 바라보는 지리능선은 너무 보기 좋다. 이 경치 그대로 옮겨다가 집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계단을 지나면 철계단이 있고 약간  위험스러운 봉우리에 올라서니 이 부근의 기막힌 조망에 잠시 배고픔을 잊는다.

. 영신봉으로 넘어 가는 길목의 바위 그늘에 앉아 잠시 배낭속이 오이를 더듬어 찾아보나 사과만 잡히고 찾을 수 없어 초코렛 과자와 물로 잠시 허기를 달랜다. 영신봉 헬기장을 지나면서 저 너머의 영신대로 내려 가는 길이 있다던데 잠시 쳐다보고 세석으로 내려선다.(17:00)

. 산장 쉼터에 빈자리가 없다. 울타리에는 빨래와 수건과 양말이 널려 있다. 취사장 앞 의자에 잠시 앉아 사람구경 좀 하다가 샘터에 내려가 저녁 지을 물을 떠왔다. 취사장에는 뱀사골, 벽소령에서 자고 오늘 세석에서 보낸다는 50대 부부가 식사 중이다. 3박 4일 지리산 종주이다. 여유있는 산행이다. 햇반 2개를 사서 라면을 끓여 저녁을 먹고 자리를 배정받았다. 시설은 노고단 보다 좋은 편이나 3층이어서 오르내리기 불편하다. 라디오 수신상태가 너무 양호하다. 세석고원 주변에 운무가 내려온다. 내일 날씨가 좋으려나

. 사람들은 천왕봉 일출을 보고 싶어 한다. 적어도 세석에서 3시 이전에 출발해야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다. 가까이 있는 촛대봉에 가면 천왕봉 부근에서 올라오는 해를 볼수 있다 한다. 나는 이래저래 촛대봉이든 천왕봉이든 일출은 보지 못했다.

. 마지막 날 4시쯤 일어났다. 옆자리의 젊은이는 언제 나갔는지 없다. 정신 추스리고 생각좀 하다가 배낭을 짊어지고 무작정 떠나느냐 밥해먹고 가느냐 갈등한다. 일단 배낭을 다 챙겨서 모포 반납하고 밖으로 나왔다. 여기저기서 벌써 새벽밥을 짓고 먹는다. 일단 새벽밥을 해먹었다. 화장실도 갔다오고 선크림 치장하고 식수 보충하고 이리저리 준비하니 05시 50분이다. 마지막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사고 당한다는 생각으로 아주 천천히 움직인다.

. 06:00 대원사를 향해 출발이다. 세석에서 천왕봉까지 5.1Km, 천왕봉에서 대원사까지 11.7Km를 가야한다.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너무 환상적이었다고 전한다. 일출을 보지 못한 아쉬운 생각이 머리를 맴돌다가 작년 천왕봉 오름길에서 보았던빨갛게 타오르던 불덩어리가 그나마 마음을 진정시킨다. 삼신봉 바위에서 잠시 쉬었다가 연하봉을 지난다. 아름다운 곳이다. 장터목에 도착하니(07:20) 그야말로 장터이다. 덤프트럭 젊은이가 아침식사 중이다. 천왕봉을 거쳐 백무동으로 하산한다는데 왕복종주는 포기한 것 같다.

. 천왕봉까지 1.7Km 남았다. 치밭목까지는 물이 없으므로 식수를 2통 준비한다. 또 배낭이 무거워진다(07:30). 그러나 마음은 이상하게 가벼워 가파른 오름길 계단이 힘이 들지 않는다. 천왕봉 일출에 욕심을 버린 탓인가? 제석봉도 지나고 통천문을 지나서 점점 가팔라지는 오르막과 계단을 다리는 힘들지만 마음만은 가뿐하게 천왕봉을 향해 오른다. 하산하던  분들이 격려해 준다. 드디어 천왕봉에 섰다(08:10).  

. 자랑하기 위해 집에 전화한다. 칭찬받았다. 조심하라는 말도 듣는다. 주위의 사람들도 집에 친구한테 직장에 막 전화건다.

. 갈길이 아직 멀다. 대원사 까지 11.7Km, 먼저 중봉을 바라보고 내려선다.(08:30). 중봉 못미쳐 마야계곡으로 빠지는 출입금지 표지판을 지나니 수해복구 공사팀 콘테이너 박스가 길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천왕봉 북쪽의 칠선계곡에서 오르는 가파른 철계단 모습이 뚜렷하다. 중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의 모습이 경이롭다. 치밭목 방향은 구름이 덮고 있어 보이지 않는다.(08:55)

. 하봉으로 내려서는 출입금지 표지판을 째려본다. 언젠가 법을 어겨야 되는 곳이다. 중봉에서 하봉코스가 미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른쪽 방향으로 내려선다. 치밭목까지의 하산길은 나름대로 좋아하는 길이다. 써리봉 근처의 암릉길이 재미있고 바위 쉼터에서 올려다 보는 중봉과 천왕봉의 모습과 내려다보는 황금능선과 마야계곡의 경치가 끝내 주는 곳이다. 써리봉 못가서 벌써 배가 고파온다. 사과하나와 초코렛 2개로 허기를 진정시킨다. 약간 까다로운 바위길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니 써리봉이다.(09:50). 대원사계곡에 놀러왔다가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아침 6시에 새재에서 올라온다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이 3명이 쉬고 있다. 언제 갔다가 언제 내려 올지 걱정이다.

. 10:35 치밭목 산장에 도착한다. 겉모습이 바뀌었고 마당에 있던 자연목 탁자와 의자가 합판 탁자로 바뀌었다. 편리함과 기능성에 밀려 옛날의 운치있는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물에 담가 놓은 캔맥주를 사서 마신다. 점심을 해먹고 물을 보충하니 약1시간이 지난다.(11:30)

. 미끄럽고 습기 많은 너덜길이 전개된다. 조심하지 않으면 다치기 쉬운 길이다. 무제치기 폭포는 지나치고 무제치기교를 건너 새재와 유평 삼거리에 닿는다(12:00). 오른쪽 대원사 방향으로 내려선다. 계곡 물소리가 유혹한다. 접근이 쉬운 곳에 배낭을 내려 놓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다. 물속에 담긴 발이 매우 시리다. 짧은 티셔츠로 갈아 입고 기분 좋게 길을 간다. 왼쪽 능선길을 따라가나 반팔이 산죽과 나뭇가지에 스친다. 얼마 가지 못해 땀이 몸을 적신다. 나무 그늘에서 다시 긴팔 셔츠로 갈아 입고 전망대에서 내려온 길을 뒤돌아본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무제치기 폭포가 저 위에서 장당골을 내려다 보고 있다.

. 한판골로 넘어가는 바위 너덜길이 힘들고 산죽길이 지겹게 이어질 때 왼쪽 바위를 타고 흘러내리는 차거운 샘물에 갈증을 풀고 식수를 바꾼다. 한판골 넘어서는 고개를 지나 내림길이 너무 힘들다. 나무 계단을 피해 옆으로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다리에 힘이 들어가면서 무릎과 장딴지에 통증이 온다. 실계곡을 건너는 곳에 잠시 쉰다. 대원사 3.3Km 남아있다. 세수를 하고 다시 출발이다.

. 오른쪽 한판골 계곡의 물소리가 점점 커져가고 물놀이하는 사람들의 시원한 비명소리가 들린다. 마지막 남은 3Km를 어떻게 걸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저기 앞에 철문과 리본이 보인다. 한판골의 지겨운 대원사 하산길이 끝나는 순간이다.(14:10)

. 유평에서 대원사까지의 1.5Km의 포장길 그리고 주차장까지의 결코 짧지 않은 땡볕길이 기다리고 있다. 택시를 불러 덕산으로 가서 버스를 탈까 생각하다 어차피 힘든 길을 가기로 마음 먹었으니 그냥 걷기로 한다. 1시간 간격으로 10분 경에 차가 있다 하니 50분 안에 주차장까지 걸어가면 15시 10분 버스는 탈 것이라 예상하고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  상가의 동동주가 유혹하지만 버스 타고 가다가 술냄새 풍기면 눈치 받을까 꾹 참고 앞만 보고 길을 간다. 정말 덥다.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울까 하다 땀냄새 좋아할 사람 없어 달아나는 차 꽁무니만 불쌍한 눈으로 쳐다 보다가 그냥 또 걷는다.

. 저만치 대원사로 가는 모퉁이가 보인다. 뒤에서 오던 트럭이 내 앞에 멈춘다. 태워줄 모양이다. 주차장! 하니까 타라 하신다. 대원사를 지나 주차장으로 가는 빨간 포장길이 차를 타고 가도 멀다. 그동안 트럭 기사님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먼길을 걸어서 내려올 생각을 했으니 머리가 더워진다.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 입구에 와서야 저 버스를 타라고 안내해 주신다. 머리 숙여 큰소리로 감사 인사하고 대기하고 있는 진주행 버스로 향한다. 이 버스는 15시 30분에 출발이다. 샤워하고 차가운 맥주를 들이킬 생각이 힘들었던 2박 3일의 피로와 함께 달리는 버스 에어컨에 녹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