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굽어 보는 천자산 무릉도원

여기서부터는 십리화랑(十里畵廊)이 시작되는 곳이어서 그 5km를 우리는 모노레일[궤도열차]을 이용하여 구수한 가이드의 안내 설명 따라 왕복한다.
십리화랑(十里畵廊)이란 계곡 따라 십리에 걸쳐서 펼쳐지는 양쪽에 욱어진 수풀과 각양각색의 석영사암으로 이루어져 끝이 날카롭고 기이한 봉우리가 만들어낸 풍경들이 화랑에 전시된 그림 같이 아름답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현지식으로 점심을 하고 우리는 무릉원 서북쪽에 있는 천자산(天子山)을 6인승 케이블카(요금 상행 52위엔/ 하행 42위엔)를 타고 10여분만에 주봉이라는 곤륜봉(해발 1,262m)을 올랐다.
금편계와 십리화랑에서의 경치가 올려다보는 경치라면 천자산의 풍경은 천하제일 기봉들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경치다.






이곳은 중국의 4대명관이라는 구름(雲濤), 달(月輝), 노을(霞日), 눈(冬雪)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요, 동, 남, 서 3면에서 하늘을 받쳐 들고 있는 웅장한 봉우리들의 기이함과 수려함이 깃든 야성미의 삼위일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포인트다.
장가계를 일러서 ‘대자연의 미궁(迷宮)’, ‘지구의 기념물(記念物)’, ‘확대된 풍경 화분(花盆)’, ‘축소된 선경(仙境’), ‘중국산수화의 원본(原本)’ 이라는 곳의 하일라이트 천자산의 조망은 명실상부라, 이 진경 앞에서 감탄이란 감탄사를 다 써도 부족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장 좋고 중요한 곳에서는 사단이 나는 법인지, 이 천하의 절경을 흥분 속에 카메라에 담으려 하였더니 준비한 바데리 4통을 다 써버린 것 같다. 체념하고 감상만 하다가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라 디지털카메라에서 필름에 해당하는 후레쉬카드 512 MB를 다 써버린 것이었다. 케이블카로 올라오면서 이 절승을 놓칠세라 동화상을 찍어 대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천자산의 절경을 아깝게도 좋쳐버리고 꿩 대신 닭이라 시의 힘을 빌어 나의 감회를 끄적여 봤다.

올려다 볼 땐 봉우리가 하늘을 가리더니
내려다보니 기봉(奇峰)이 구름 속에 솟아 있네.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속세가 아니로구나.
-천자산에서





서산대사가 한국의 명산을 평하기를 금강산은 수이부장(秀而不壯)이요, 빼어나지만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이불수(壯而不秀)이나, 웅장하지만 빼어나지 못하지만, 묘향산은 역장역수(亦壯亦秀)라, 또한 웅장하고 또한 빼어나다고 하였다.
당송8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도 我願生高麗國見金剛山(아원생고려국견금강산)이라 하여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 보기를 소원하였다 한다.
일행 중에는 장가계와 비교하면 계림(桂林)은 저리 가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계림의 아름다움이 있고, 금강산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지 그 미에 우열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외국여행을 다녀와서 우리강산이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극찬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아름다움의 하나이지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말이니 삼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물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금수강산(金水江山)인 것만은 분명하다.
천자산(天子山)에서는 기이한 봉우리가 다투어 빼어남을 뽐내고 있고 그 미가 역장역수(亦壯亦秀)라 할 정도로 빼어나고 웅장하다.
정상에 어인 건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날렵한 지붕의 천자각(天子閣)나 주위 경치를 바라 볼 수 있는 점장대(点將臺), 장군암, 신병취합(神兵聚合)이 있는 것을 보면 천자산(天子山)의 이름에 대한 유래가 전설 아닌 사실인 것 같다.
명 나라 홍무왕(洪武王) 시절 이 곳에 향왕천자(向王天子, 向大坤)가 있었다. 큰 뜻을 품고 명(明) 나라에 항거하기 위해서 의병을 모아 이곳에서 훈련을 하였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이 산을 천자산(天子山)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천자산의 제1경치는 뭐니 뭐니 해도 어필봉(御筆峯) 이다. 사력(寫歷) 40년에 이런 경치를 찍어본 경험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어필봉 3 봉우리는 날렵한 ' I '자 몸매로 구름을 뚫고 나와 하늘을 바치고 있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구름에 싸인 연봉 뒤에 계속되는 연봉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인데, 흙이 하나도 없을 듯한 봉우리 틈새를 비집고 봉우리마다 소나무가 청청하다.
전설에 의하면 전쟁에 진 천자에게 던진 황제가 쓰던 붓이 거꾸로 박혀 그대로 봉우리가 되어서 임금 어(御) 붓 필(筆) 어필봉(御筆峯)이 되었다 한다.

여기는 선녀산화대(仙女散花臺)다. 봄이면 산 아래와 산 허리에 야생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청풍이 불어온다. 그러면 안개 같은 구름의 모습이 꽃에 어울려 선녀가 꽃을 뿌리는 것 같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어디선가 호르라기 소리가 난다. 이 조용한 산중에서 웬 호르라기 소리일까. 우리 30대 초반의 조선족 가이드가 빨리 가자고 아버지 또래의 우리팀을 부르는 소리다. 중국에서는 자기 아버지도 호르라기로 부르는가.
장가계 여행이란 游山玩山水看洞(유산완산수간동)이라. 유유자적으로 산을 노닐면서 산수을 희롱하는 것이라는데 천자산을 왜 이리 바쁘게 서두루는가.

*. 원가계(猿家界)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듯이 아름다움도 함께 몰려 사는 것일까. 세계의 음악가나 유명한 문인들을 보아도 같은 세대에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갑천하 계림이, 하노이의 하롱베이의 그 멋진 수천 수만의 봉우리가 그렇더니 여기 장가계의 풍광 또한 가까이 몰려 있다.
장가계 삼림공원 경내에 들어와서 20여분 가면 만나게 되는 이정표에 황석채(黃石寨), 금편계(金鞭溪), 학자색(鶴子寨) ,삭도(索道)의 갈림 길이 있는 것을 보면 무릉원이란 이름으로 한데 모여 어울려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여행사들이 장가계 여행에 원가계가 따로 있는 것처럼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무릉원의 하나가 원가계(猿家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가계 경치를 태산의 웅장함〔泰山之雄〕과 계림의 빼어남〔桂林之秀 〕과 황산의 기이함〔黃山之奇〕과 화산의 험준함〔華山之險) 〕을 한데 모아 놓은 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달에게 물었다.(猿人問月) 문을 열고 보는 산이(開門見山) 천하 제일교인가.(天下第一橋) 하늘이 스스로 만든 다리인가.(天生橋)

천하제일교는 300m의 바위 둘이 길이 20m, 넓이 2m의 자연석을 받치고 있는 천연적인 다리인데 그 아래는 천길 절벽. 그 다리 위를 거닐면 구름 위 오작교를 거니는 듯할 터인데 관광객의 안전을 위함인가 출입금지다.
그 다리 끝에 정자 두 채가 있는데 거기서 다시 또 위로 오르는 층계는 천국을 오르는 계단 같다.
그런데 이건 무언가. 이 다리 입구 난간에 수백 개 수천 개가 넘는 잠을 쇠가 굳게 잠겨 있다.

사랑하는 우리 이름으로
잠을 쇠를 굳게 잠그고
열쇠를 힘껏 던져 버리자.
우리들 사랑 깊이까지.
그 열쇠
찾고 나서야
이별이 가능하다니.
-언약



나도 아내에게 비록 지키지 못할 언약이나마 여기서만이라도 하여 주고 싶다.
'자기가 건강하다고 아내가 아파도 무관심 하고, 형제보다 자기를 괄시한다고, 둘째 며느리로 시집 와서 큰 며느리 역할 시킨다고, 남한테는 잘하면서 자기한테는 고약하다고, 술만 먹고 다닌다고, 잔소리 대학 잔소리과 전교 수석 졸업생이라고 자기를 거시기 한다고, 죽어서는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 늘 푸념하는 아내에게 원가계 절승 앞에서, 굳게 언약하는 수많은 굳게 잠긴 쇠 약속 앞에서 시 한 수를 아내에게 바치고 싶어진다.



다음 세상 또 있다면
다시 부부(婦夫) 되고 싶다
아내는 내가 되고, 당신은 남편 되어
녹발(綠髮)이
백발(白髮)이 되도록
우리로 살고 싶다.

잔소리 않는 아내
당신에게 되어주고
아내만 위해 사는 나의 남편 당신 되어
저 세상
부부(婦夫)가 되어
지금처럼 살고 싶다.
-부부(婦夫)



천하제일교 거기서 조금 내려온 곳에 미혼대(迷魂臺)가 있다.
미혹(惑)할 미(迷). 넋 혼(魂)이니 미온대는 넋을 잃을 정도로 혹(惑)하는 곳이라는데, 우리는 천자산과 어필봉에서, 원가계 천하제일교에서도 넋을 벌써 잃었는데 여기서 또 무엇을 잃으란 말인가. 미혼대란 반어법으로 그 잃은 넋을 여기서 찾아가라는 곳이 바로 미혼대(迷魂臺)인 모양이다. 공불이색(空不異色)요 색불이공(色不異空)인 불가의 화두(話頭)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