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1567m) 눈꽃 산행기


일시: 2004.2.8 일요일


주관: 서울 흥사단 산악회 (YKA)


인원: 반재철외 43명


교통편: 서울 3호선 교대역 9번출구(수도관광, 안양) 버스 1대


등반코스: 총 8.4km


유일사 매표소(오전11시)---등산로---우회전(소로길)---유일사 쉼터(12시)---장군봉정상(1시)---천제단(기념사진,1시30분)---단군비각---용정(샘터)---망경사(2 시,중식)---눈썰매길---반재(3시)---당골광장매표소(당군성전)---눈꽃축제장---제3 주차장 (오후 4시)


제목: 눈꽃산행의 묘미를 안겨준 민족의 영산 태백산


 나는 2004년 새로운 각오로 출발한 흥사단 YKA산악회에서 제 901차 등반대회를 태백산을 간다고 참석해 달라는 열화 같은 요구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태백산은 우리나라의 탄생 설화인 단군과 얽힌 민족의 영산이 아닌가? 언제 갔다 왔는지 모를 정도로 꽤 오래 전에 간 산이다.


그 당시는 부부산악회를 만들어서 열심히 전국의 산을 누비던 때다. 백단사 입구에서 출발해 반재를 지나 망경사, 천제단을 왕복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가을에 단풍 구경 삼아 갔었고, 나무들이 울창해 숲길을 계속 걸어서 비교적 쉽게 다녀온 산이다. 태백시 당골 민박집에서 자고 새벽에 출발, 몇 시간만에 다녀와서 점심을 먹고 서울로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직 젊은 시절이라서 밤새 운전하고 가서 잠도 못 부치고도 태백산을 완주하는 체력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무박산행이나, 1박2일 산행코스는 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만큼 나이가 말해주고, 또 굳이 육체적인 고행을 사서 하지않겠다는 등산에 대한 철학(?)이 생긴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런데 당일치기로 새벽 7시에 출발해서 당일 밤 9시30분에 도착한다고 해서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전날 밤--- 나는 또 등반준비로 밤 12시까지 배낭 챙기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등산메모 수첩에 준비물을 적은 것만 20여가지가 넘는다. 스틱, 보온병, 아이젠, 스패츠, 우비, 카메라, 마스크, 여분의 외투와 양말, 비상약과 침구, 털모자, 돗자리, 보온밥통, 반찬통, 소주, 보리차, 커피, 손수건, 호루라기 등등... 45l 짜리 배낭에 꼭 채우고 과일과 휴지, 장갑 등은 별도의 쇼핑백에 담아야 했다.


밤새 오궁 썰매를 만드느라 잠을 설치고


드러누워 잠을 자려하니 잠이 안 온다. 뭔가 빠진 게 없는가 생각해보니, 오궁이라는 썰매 생각이 났다. 잠을 자다 말고 불을 켜고 비닐봉투를 찾아서 지나간 달력을 넣고 눈썰매를 만들었다. 끈까지 매달아 도망가지 않게 동여매도록 만들어서 배낭에 넣은 다음에 잠에 들었다. 그렇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낼 아침에 늦게 일어나면 안 된다. 다시 일어나 핸드폰 자명종을 아침 5시에 맞추어놓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이튿날 아침 5시 자명종 소리에 벌떡 일어나 물을 끓여 보온병에 담은 후 간단히 요기를 하고 6시경 출발해 3호선 전철 교대역으로 향했다. 영하 5도의 차가운 새벽공기가 코끝을 자극한다. 최근의 태백산은 눈이 안 와서 볼품 없다는 중앙일보(2월8일자) 레저소식을 들어서 어젯밤에 눈이 많이 내려주기를 빌며 오늘의 산행에 실낱같은 행운이 있기만 바래본다.


7시 정각에 9번 출구로 나가니, 관광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에 오르니 반 정도의 일행이 타고 있다. 두달 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다. 서로 악수를 나누며 오늘의 산행이 무사하기를 빈다. 김소선 이사장님을 비롯해서 반재철회장, 남무호교수, 김교근총무, 엄대장 등 간부들이 다 나왔다. 대학생 아카데미 동기인 김동욱과 박호채 친구도 보인다. 금새 앞자리가 다 채워지고 뒤늦게 청년들이 합석해 7시 10분경 출발했다.


어두운 새벽길을 뚫고 버스는 미끄러지듯이 축축한 아스팔트길을 빠져나가 곧바로 경부고속도로에 들어섰다, 날이 밝으면서 사방이 훤해져 커튼을 열어보니 맑은 하늘에 쌀쌀한 날씨다. 유리창이 서리가 끼어 얼어붙는다. 손으로 닦고 밖을 내다보니 경기도 야산에는 북사면에 잔설만 남아있었다. 앞으로 적어도 4시간은 달려야 태백에 도착한다.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서면서 반회장이 나와서 일정 안내와 운전기사에 대한 격려박수를 보내고 김태석고문님을 비롯한 산악회 간부들의 소개와 아울러 아침 식사로 김밥과 두유를 돌린다. 아침식사 대신에 준비한 김밥이 부드럽고 맛이 좋아 잘 넘어간다. 나는 집에서 가져간 사과와 귤을 꺼내서 주위에 돌렸다.


 흥사단 산악회는 요란하거나, 시끄럽지 않아서 좋다. 미리 준비한 흥사단노래(단우회 노래, 대회노래, 입단가. 서약가, 새벗맞이, 추모가, 한겨레행진곡 등)를 틀어 조용한 가운데 편히 쉬면서 달린다. 오랜만에 본 여러 단우들의 담소가 이어지고 버스는 벌써 이천, 여주휴게소를 지나 원주 톨게이트에서 빠져나와 제천 박달재주유소에 들린다. 시간은 8시30분, 주유하는 동안 화장실도 가고 자판기커피도 마시고 다시 출발한다. 여기서 부터는 국도가 이어지고 길이 좁아진다. 바닥을 보니 매우 미끄럽다.


 유일사매표소부터 전국의 산악인으로 인산인해


시속 80km로 서행하며 박달재를 넘어 제천, 영월, 상동을 거쳐 우회전, 직동리를 지나 태백산 입구인 유일사에 닿았다. 10시 30분 예정대로 도착한 것이다. 주위를 보니 웬 관광차가 그리 많이 왔는지 길가와 주차장에 버스가 지그재그로 널려 있고, 등산객들이 바글거린다. 역시 태백산이구나 싶다. 태백산(강원도 태백시)은 백두대간의 배꼽에 해당하는 민족의 영산이라서 정초에 가장 많이 찾는 신비한 산이다. 해마다 이맘 때는 전국에서 수십대의 산악회버스가 몰려든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라 수백 명은 되는 것 같다.


매표소부터 장사진을 치고 등산로 입구에서 검표원이 일일이 체크하며 입장시키고 있었다. 우리는 출발하기 전에 원형으로 둘러서서 윤회악수와 예회를 한 다음 아이젠을 발에 차고 줄을 서서 입산했다. 버스에서 내려 무려 30여분이 소요되었다. 11시 출발. 초입부터 줄을 서서 오른다. 금방 우리 팀과 다른 등산객이 섞여버려 앞뒤로 일행이 흩어진다.


미끄러운 임도길을 찬 겨울바람을 맞으며 쉬지 않고 20여분 직선길로 가다가 우측 유일사로 가는 샛길로 들었다. 사람들이 많아 일렬로 돌계단길을 뱀처럼 구불구불 돌아 30여분만에 유일사 쉼터에 도착했다. 잠시 쉬어 대오를 정비하기 위해 '와이 카!!'를 연호했다. 이곳에 유일사에 부식을 나르는 곤도라가 있고, 우측 아래로 멀리 유일사의 지붕이 보인다. 표지판을 보니 사길령매표소 2.4k, 유일사매표소 2.3k, 천제단 1.7k 지점이다.


날이 어둑해지면서 점점 세찬 칼바람과 눈보라가 치기 시작한다. 태백산은 그리 호락호락한 산이 아님을 말해준다. 단단히 각오를 했지만, 강원도 오지의 심산이라 언제 날씨가 급변할지 모른다. 등산화 끈과 아이젠을 다시 단단히 동여매고 다시 도전한다. 나는 최근 독감에 걸려 콧물이 줄줄 나와 연신 콧물을 닦으며, 마스크까지 쓰고 찬바람을 막아보려 하였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귓전을 때린다. 털모자만 쓴 것으로 소용이 없어 등산복 상의에 붙어 있는 보조모자를 써서 바람을 막았다.


이따금 당골이나 백단사에서 출발, 정상을 갔다가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마주쳐서 가다 서고 가다 서고 하면서 시간은 점점 지체되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체감온도가 더 내려가 발이 시럽고, 손이 얼어붙는다. 손을 후후 불어보기도 하고,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면서 부지런히 오른다. 머리와 등에서는 땀이 나고 열이 오른다. 모처럼의 태백산 산행은 악천후 눈보라 속에 강행군이 된 것이다.


살아 천년 죽어서 천년 장군봉 주목의 설경


 1주일 전만 해도 눈이 안 내려서 바닥에 흙이 드러난 사진을 보았는데 오늘은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를 뿌려주어 사위가 온통 은세계로 변한 밧줄지대를 통과했다. 세찬 회오리바람이 눈을 휘몰아 안경을 때린다. 나는 안경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 스틱에 의지해 안간 힘을 다해 전진했다. 40여분만에 장군봉(1567m) 정상 근처에 도착했다. 어찌 된 일인지 이곳은 바람이 자고 평온하다. 하얗게 눈꽃을 뒤집어 쓴 주목(천년 살고, 죽은 후 천년을 산다는 나무)군락지가 나왔다.


일행은 제각기 흩어져 몇 명만 만나서 주목을 배경으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박았다. 야---호.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여기저기서 등산객들이 설화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나는 근사하게 생긴 어린주목을 사진작품으로 담아보았다. 이래서 겨울이면 너도나도 태백산을 찾는 것 아닌가.... 주목군락지를 지나니 천제단(1561m, 중요민속자료 제228호, 단군제를 올리는 제단)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태백산이라고 쓴 표지석 근처는 기념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일행은 한참을 기다려 사진을 찍고 중식을 하기 위해 자리를 찾았으나 바람이 사방에서 불어 앉을 만한 공터가 없었다. 망경사로 내려가 바람을 피해 자리를 잡기로 하고 내려서는데 하늘이 벗겨지면서 눈꽃이 만발한 경치를 보며 너도 나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 이런 구경 한번 해보니 원이 없다'


' 야--- 정말. 신선이 사는 곳이구나!'


' 그러니까 사람들이 태백산을 찾아오지...'


' 저것 좀 봐! 정말 멋지잖아!'


기온이 영하 10도는 되는 듯, 이제는 배도 고프고, 힘이 빠진다. 미끄러운 하산길을 조심하며 내려가는데 갑자기 "와---' 하고 누가 뒤에서 소리지른다. 내 옆에 사람이 가리켜주어 쳐다보니, 막걸리 패트병이 대굴대굴 굴러 내려갔다. 스틱으로 막아 보았지만 허사였다. '누구 건지 모르지만 줍는 사람이 임자지...' 막걸리 병은 빙판에 쏜살같이 굴러 사라졌다. 10여분 후에 단종을 모시는 사당을 지나 망경사 앞에 도착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용정(약수터)은 얼어서 물이 안보인다. 그 앞에 너른 공터에서 중식을 하기로 결정하고 모두들 배낭을 풀고 김밥과 라면을 꺼내 따스한 물에 맛있게 먹었다. 정상주에 모두들 얼굴이 벌겋게 되어 다시 하산을 서둘렀다. 식사를 하고 나니 손발이 얼고 온몸이 갑자기 추워진다. 오들오들 떨며 짐을 챙기고 곧 하산하기 시작했다.


구르고 뒹굴며 눈썰매를 타는 젊은이들


망경사 경내는 건물마다 빙 둘러쳐 등산객들로 초만원, 모두들 식사를 하려고 야단들이었다. 길이 제법 넓은데도 하산하는 등산객이 많아 뒤섞여 내려간다. 이제 바닥은 빙판이다. 썰매를 타는 어린이, 청소년은 즐거워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이 많아 매우 위험해 보인다. 나는 어제 밤에 잠도 안자고 만든 비닐봉투 썰매를 타볼까 했지만, 위험한 것 같아 그냥 쏜살같이 뛰어 내려갔다.


썰매 타는 하산길을 부지런히 달린 후 반재 고개에서 우회전해 너덜지대 급경사길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앞에서 서면 서고, 다시 가면 또 가고 꼬리를 물고 하산하는 등산객 속에 묻혀 바위투성이의 너덜지대를 힘들게 내려서서 평지에 도착, 단군성전 옆을 지났다.


 휴---. 드디어 해냈구나!


유일사매표소에서 목적지인 당골유원지에 5시간만에 무사히 도착하니 온몸이 뻐근하고 식은땀까지 흐르고 머리는 흥건히 젖었다. 여기저기 눈꽃축제 때 만든 갖가지 얼음조형물이 많이 있었다. 자세히 보니 만리장성, 사람의 얼굴 모양, 건물모양 등을 얼음으로 조각한 것인데, 금년에는 기온이 너무 높아 얼음이 군데군데 녹아버려 제 형태가 남아 있지 않았다.


 태백석탄박물관을 지나고 민박촌을 지나니 주차장에 관광버스들이 꽉 차 있었다. 우리는 제3주차장까지 내려가서 수도관광버스를 찾았다. 버스에 오르니 10여명만 타고 있었다. 20여분을 기다려 모두 하산을 확인한 후 오후 4시30분에 서울로 출발한다. 내 앞엔 탄 분은 다 내려와서 미끄러져 팔꿈치를 다치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대리석 인도 위에서 아이젠을 벗는 바람에 넘어지며 스틱을 쳐서 스틱이 휘어져 있었다. 천만 다행이다.


버스는 1시간 여를 달려 영월 장흥에 있는 보리밥집에 도착해 갖가지 산나물과 보리밥을 먹고 얼근하게 하산주를 마신 후 어둑어둑한 밤이 되어 저녁 6시경 서울로 향했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9시30분 서울 톨게이트를 통과해 사당역에서 헤어졌다. 어머니 가슴처럼 포근했던 강원도 태백산은 언제 가보아도 추억에 남는 명산임에 틀림없었다.


2004.2.8 일죽 산사람


▣ 고석수 - 시간을 잘 맞추어 가셨네요..눈이 없어서 허탕치신 분들도 많거든요 앙꼬없는^^^건강하세요


▣ 봉래산 - 좋은산 즐겁게 잘 다녀 오셨군요
▣ san001 - 선배님 오래간만입니다. 요즘 한창 태백산에 사람이 많죠. 그런데 성함보다는 일죽산사람이 훨씬 정감있습니다. 예전부터 들어온 별명이라서인지..
▣ skkim - 좋은 는 산행 저도 즐겁군요...안녕하세요?...일죽선생님~~오랜만이죠?...요즘 뜸하시길래 산을 끊으셨나 했더니, 당일산행으로 점 멀다 싶은 태백산을 다녀오셨군요...제가 일전에 다녀왔을때 저희 일행 중 한분도 아이젠을 벗고 움직이는 바람에 넘어져 짚은 손목뼈가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는데 스틱 덕 많이 보신 젓 같습니다. 항상, 언제나 안전하고 건강한 산행하시길 바랍니다. 도 뵙지요...^L^...
▣ 일죽 - 감사합니다... 오늘 발렌타인 데이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