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날짜 : 2004년 4월 25일 일요일
산행코스 : 천황사 - 구름다리 - 천황봉 - 구정봉 - 미왕재 - 도갑사
산행시간 : 약 6시간
산행인원 : 4명.
1. 월출산 가는 멀고도 험한(?) 길.
KTX때문에 느린 남도행 밤기차들이 사라져 버려 월출산 가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서울역에서 11시 넘어 기차를 타고 새벽 6시 목포에 도착하여 영암을 찾아가는 길은
새벽녘 목포역의 비릿한 바닷내음과
독천을 거쳐 영암으로 가는길에 보이는 아름다운 보리밭의 전경과
그 새벽 공기의 알싸함이 겹쳐 즐거운 여정이었었다.
KTX가 생겨나고 기차역들의 희비가 교차하게 되었다.
이처럼 느림의 미학을 따라 쉬이 갈 수 없는 곳도 있고 예전엔 서지 않던 새마을호와 무궁화호가 여러차례 서게 된 작은 간이역도 있고.
섬진강과 보성강이 만나는 곳의 작은 간이역인 압록역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언젠가 모든것이 너무 빠르게 정신없어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면 남도행 기차표를 사들고 압록역에 한 번 가보시라.
정겨운 간이역을 만날 수 있으리니....
고속버스를 타고 가자니 천상 광주를 거쳐 영암으로 가기로 했다.
심야버스를 타려고 강남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밤 12시 조금 못 되었는데 웬 사람이 그리 많은지.....
광주가는 심야우등버스는 새벽 2시까지 있는데 벌써 1시차를 예매하고 있을만큼 사람이 많다.
원하는 시간에 타려면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는게 나을 듯 싶다.
서울 - 광주 심야우등버스비 : 21,100원 3시간 50분 소요.
달리는 버스에서 얼마나 편한 잠을 바라랴....자는 둥 마는 둥...
새벽 4시 50분. 광주종합터미널에 도착한다.
광주터미널은 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버스터미널이 함께 있어 무척 크고 복잡하다.
버스에서 내려 좌측으로 가다 또 다시 좌측으로 돌아 직진하면 매표소가 나온다.
광주에서 영암가는 버스는 새벽 4시 30분부터 거의 10분 간격으로 있다.
대개는 나주 영암을 거쳐 강진이나 해남 등으로 가는 버스이다.
새벽 5시 영암가는 시외버스에 탑승한다.
광주 - 영암 시외버스비 : 4,400원 50분 소요.(새벽시간이라 빠른것이고 낮에는 1시간 20분 소요.)
버스를 타고 가는 길에 서서히 날이 밝아오고 들판에 보리밭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1시간이라도 더 자려는 욕심에 잠을 청해보았으나 날이 밝아오니 새벽 들판에 눈이 자꾸만 가 결국은 포기하고 만다.
5시 50분. 영암 도착. 흐미......너무 빨리왔다.
천황사 들어가는 첫차는 6시 40분이다.
그 다음 버스는 9시 10분.
우린 6시 40분 버스를 탈 예정이다.
택시를 타도 매표소까진 4,000원 조금 더 나온다.
그 동안은 택시를 타고 다녔으나 오늘은 버스를 타보려고 한다.
세수도 하고 혹여 봄볕에 새카매질까 싶어 썬크림도 찍어바르고 하다보니 금새 시간이 간다.
영암 - 천황사 : 750원 10분 소요.(버스에 올라 정면을 보고 오른쪽 좌석에 앉아야 가는 길에 월출산 전경이 보인다.^^)
이렇게 비몽사몽 끝에 힘들게 월출산에 도착했다.^^
산악회 버스를 이용하면 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편하게 가겠지만 굳이 힘든 고생을 사서 하고 싶은 분은 참고하시라고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힘든 고생이라 하지만 이렇게 물어 물어 찾아가는 여행 길. 그리고 산행 길의 맛을 아는 분은 아시리라.
거기엔 돈으로 살 수 없는 그만의 자유와 기쁨이 있다.
2. 산행.
아침 7시경. 월출산 매표소에 도착.
우뚝선 바위산이 정면으로 보인다.
점점히 퍼져오는 아침햇살을 받아 투명하게 빛나는 나무들속을 걸어 야영장에 도착한다.
아침도 먹고 식수도 채우고 볼일도 보고....
7시 30분.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요즘은 정말 산빛이 예쁜 날들이다.
햇살이 퍼져 들어오는 숲속에 엷은 투명한 나뭇잎들의 색조를 뭐라 표현하면 좋을까?
또한, 우리를 반기는 새소리는 조용한 숲속에 너무나 청량해서 그 어떤 음향기기도 따라오지 못할 소리를 낸다.
소실(燒失)되어 사라져 버린 천황사는 그 절터만 휑하니 놓여있고 한쪽의 천막에는 스님이 기거하는지 회색장삼들이 빨래로 널려있는데 그 모습이 처량하다.
덩그러니 천막 옆에 놓여있는 녹슬어가는 종 하나가 사라져버린 절집의 쓸쓸함을 대변하는 듯 싶다.
구름다리로 오르는 길은 제법 급경사도 있지만 그다지 힘들지는 않다.
양편으로 우거진 신우대 숲속길은 아침의 그 맑고 서늘한 기운과 더불어 상쾌하다.
길 양옆에 괴불주머니인지 현호색인지 무리지어 피어있다.
허물벗어 던지듯 윗옷들을 하나씩 벗어내고 땀이 조금씩 날즈음에 구름다리에 도착한다.
8시 10분. 구름다리.
한 사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다리이다.
사진 한 장이라도 찍으려니 교행하는 이가 없을때를 기다려야 한다.
저 아래 내려다 보이는 영암들판에 네모 반듯 반듯한 논들과 보리밭이 시원스럽다.
날이 좋아 시야가 넓어 능선이 모두 보이니 장쾌하게 뻗어나간 강원도의 산들만은 못해도 그 아기자기함이 이쁜 능선을 만들어낸다.
게다가 여기엔 강원도에선 볼 수 없는 너른 들판의 시원함이 있지 않은가.
구름다리를 지나 급경사의 철계단을 오르 내리다 급기야 다시 내리막길이다.
정상이 아직 멀었는데 내리막길이 길다.
오른만큼 다시 올라야 하는데......에고....내 무릎..
급기야 살갗이 봄볕에 타든 말든 반소매 차림이 되었다.
더운게 급선무지..나중에 새카매지는것은 지금의 문제가 아니다.
힘들게 다시 오르는 경사길.
계단이 정말 싫지만 한걸음 한걸음 떼어놓는다.
월출산은 그늘이 없는 산이다.
그래서 여름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산이다.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묵묵하게 걷다보면 목적지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드디어 통천문밑의 계단이다.
올라오면서 여러종류의 제비꽃들과 각시붓꽃 그리고 계단 아래에서조차 내 눈을 잡아 끈 보라색 구슬봉이를 보았다.
통천문을 통과하니 이렇게 시원할수가.......
저 아래로는 이제 영산강가의 평야들이 보인다.
시야가 더 맑다면 목포 앞바다가 보일텐데......
너른 평야에 남도의 붉은 황토가 인상적이다.
9시 50분. 드디어 천황봉에 섰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인지 사람들이 많지는 않다.
사람보다 파리와 각다귀같은 곤충들이 더 많은 듯 싶다.
천황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려고 서 있는데 얼마나 많이 달려드는지......
팔에 '따끔'하는 느낌이 있어 보니 물기도 하는 듯 싶다.
정상에 앉아 간식꺼리 입에 물고 조망을 즐기며 잠시 쉬고 싶었지만 서둘러 능선길로 접어든다.
오시는 분들이 입을 즐겁게 할 때 조금만 주의해도 훨씬 덜할텐데.......
천황봉 표지석 발밑에도 누군가 흘리고 간 붉은 방울토마토들이 으깨어져 있다.
능선상에서 바라 본 경포대 계곡쪽은 연두빛 바다가 펼쳐져 있다.
오르락 내리락 바람재에 서니 이름값을 하는지 정말 시원하다.
괜시리 바람재란 이름이 붙지는 않았으리....
솔직히 월출산에 세번째 오지만 무슨 무슨 바위라 하는것들을 도무지 찾기가 힘들다.
이리 보면 이것 같고 저리 보면 저것 같고.
그저 멋진 바위 능선들이 있었다....라고 편하게 생각하기로 한다.
그저 편한것만 찾으니..........^^......
구정봉 가는길에 있는 베틀굴에 들러본다.
조금 전 지나쳐 온 남근석을 생각하며 자연의 오묘함인지 아님 우리네의 해석이 더 좋은건지 아리송해진다.
구정봉에는 처음이라 오르는 길을 한참 찾았다.
그 바위틈 사이로 그런 길이 있을줄이야.
북한산 호랑이굴처럼 size가 좀 되는 사람들은 빠져나가지 못하겠다. ^^
11시 20분. 구정봉 정상에 서니 천황봉이 저 앞에 우뚝하고 탁 트인 조망이 시원스럽다.
눈도 바람도 시원하지만 햇볕 피할곳이 마땅치 않아 내 피부는 따갑다고 아우성이다.
미왕재를 향하여 길을 재촉한다.
조금씩 나무 우거진 길들이 나타나 햇볕은 잠시 잠시 피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완만한 경사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괜찮던 무릎이 시큰거리기 시작한다.
12시 10분. 미왕재 도착.
바로 도갑사 하산길로 접어든다.
본격적으로 무릎이 아파오기 시작하여 스틱을 들고 오지 않은걸 무지 후회하며 천천히 게걸음을 하여 내려간다.
이제서야 올라오는 사람들도 있다.
천황사로 넘어간다는 가족을 만났는데 시간이 조금 부족할 듯 하니 서둘러라 말해주지만 걱정이 된다.
오후 1시. 도선수미비와 도갑사 부도밭을 지난다.
도갑사 가는 길의 다리 아래서 세족의 즐거움을 누리기로 했다.
시원한 그늘아래 두꺼운 양말을 벗어던지고 물속에 발을 담그니 발가락들이 그제서야 살겠다는 듯 꼼지락거린다.
물은 얼마나 차가운지 5초 이상 담그기가 힘들다.
아~~~~이 맛에 산에 오는것은 아닐까....
오후 1시 30분. 도갑사 경내.
정갈하게 빛나는 도갑사 마당과 너른 뜨락에 여백의 미라도 채우듯 서 있는 5층석탑과 오래된 나무 한 그루.
3. 자운영, 보리밭 그리고 월출산.
산에서 간식꺼리를 계속 물고 있어서인지 도무지 밥 생각이 없다.
배가 고프면 서울 가는길에 먹기로 하고 길을 걷는다.
도갑저수지를 끼고 도는 길은 그늘도 없고 차도 쌩쌩 달린다.
굳이 이 길을 걸어가는 이유는 대중교통이 여의치 않은탓도 있지만 가는 길에 보고픈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자운영, 보리밭 그리고 월출산.
자운영은 풀이기 때문에 일부러 심었다가 갈아엎으면 쉽게 썩어 거름이 된다고 한다.
지난 봄에 월출산을 다녀가면서 생각없이 걷다가 넓게 펼쳐진 자운영 꽃밭을 보았었다.
솔직히 작년에 그 이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가 한참후에 어느 책을 보다가 그 붉은꽃이 자운영인걸 알았다.
봄이 되니 도무지 그 붉은 꽃밭이 아른거려 견딜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는 월출산보다 그 자운영 꽃밭을 보려 먼길을 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넓은 들판에 반짝이는 푸른 보리밭도.
도갑사에서 독천과 영암사이의 지방도가 있는 삼거리까지는 약 2km정도 된다.
쉬엄 쉬엄 걸어도 금새 간다.
도갑사에서 영암까지 오가는 버스는 하루에 딱 두 번이고 택시는 만원정도이다.
시간이 있다면 길가의 야생화들과 자운영과 보리밭을 친구삼아 걷는것도 좋으리라.
물론, 여름엔 절대 권하고 싶지 않다. ^^
삼거리에서 영암까지는 약 8km정도 되는데 버스가 자주 오가므로 이용하면 된다.
영암에서 서울까지의 고속버스는 하루에 세 번 있다.
3시 30분 고속버스(우등버스 요금 21,900원)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연분홍 봄빛이 사라지면 그 붉은 꽃밭들은 모두 뒤엎어질 것이고 푸른 보리밭은 누렇게 변해가리라.
월출산의 산빛도 점점 더 짙어지고 푸르게 푸르게 농익어가겠지.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속절없이 봄날의 하루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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