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월30 ~ 31일 (무박) 토요일 날씨 맑음,
한계령 - 대청봉 - 희운각 - 천불동계곡 - 비선대 - 소공원.

" 아들! 엄마좀 도와줘 "
" 네! "
" 이거 밥 퍼서 저 밥통에 넣어주고 낼 먹을때 콩비지 찌게 데워서 먹어 "
" 넵!"
하루를 넘기는 자정시간에 바쁘게 배낭 멘 엄마, 아들의 전송을 받으며 집을 나선다.
집에만 있을땐 몰랐는데 이 오밤중의 거리는 마치 초저녁같다.
버스 탈 곳에 도착하니 몇분이 기다리고 계시다.
이 시간에 시커먼 사람들이 어찌 여기 서있는가 싶은지 비틀거리며 노래방으로 들어가던
한 남자가 위 아래로 우릴 훌터본다, 우린 그시간에 그곳엘 들어가는 사람을 쳐다보고,,, @@@

산악회 버스에 올라타니 함께 못 간다던 우리동네 부부가 나란히 앉아있어 뜻밖에 반갑다.
잔잔한 음악에 나도 몰래 사르르~ 잠이 들었다가 휴게소에서 싸늘한 밤공기에 온몸이 알싸하다.
나눠준 김밥 한줄이 맛있다. 자다말고 먹는데 잘도 넘어간다.
새벽 4시10분,
언젠가 준비해놓고 한번도 사용하지 않은 헤드렌턴을 모자위에 밝힌다.
탄광의 광부들 모습이지만 손전등에 비해 참으로 편리하다.

재 작년 가을, 남편이랑 둘이서 여기로 올라 대청볼 갈때 철계단 설치를 하느라
쇠소리가 온 산을 울리더니 많은 계단이 생겨있다.
(그때 유난히 힘들어하며 현기증에 힘들어하던 남편,중청 산장까지 가는데 여섯시간 인가 걸렸었죠,
집에와서 얼마후 병원신세 졌죠,십이지장 출혈로,그때 위장이 새고 있었던 거였죠,ㅋㅋ
담배도 안피고 술도 소주 두서너잔이 고작인 사람이,)

한숨 고르며 하늘을 올려보니 초롱초롱 별들이 쏟아질듯, 북두칠성이 머리위에 있다. 참 아름답다.
헉헉 거리다 도저히 못참아 옷을 벗어 배낭에 매달고 조끼차림에 오른다.
앞사람의 불빛을 쫒다가 놓치기 일수다.
의례히 초반 한시간이 넘 힘들어 선두 대열에 끼지 못한다.

7시 넘으니 훤해진다, 동녁하늘이 빠알갛게 물들어온다.
대청봉까지는 어림도 없고 저 봉우리까지 가야만 해 뜨는걸 볼텐데
도대체 이놈의 발은 왜 이리 무거운게야... 맘만 급하고 설렌다.

점봉산, 주걱봉, 귀떼기청이 모두 보인다.
5분만 일찍 도착했더라면 눈섭처럼 나오는 근사한 일출을 봤을텐데,,, 윽 ;; 아쉽다.
첩첩산골에 연기처럼 잔잔한 구름이 깔려있어 기가 막힌 장관을 연출한다.
추운데도 아저씨들 자리를 뜰줄 모른다.
이맛에 편안한 안방 놔두고 버스에서 몸을 비비꼬며 앉아서 잔게 아닐런지,,,
바람은 없는데도 잠깐 서 있는데 손도 시렵고 많이 춥다.

대청봉 올라가는 길이 다져져서 딱딱한 하얀 길이 돼 버렸다. 스틱도 잘 안들어간다.
정상에가니 동네아저씨가 안보인다, 엥? 어케 된거야;; 설악산 처음이라 했는데,,
중청산장에서 선두팀 모두 떠나고 다섯명이 묶여 천불동 계곡으로 향한다.
아저씨들의 발을보니 아이젠을 모두 했다. 서둘러 나도 했다.

백담사랑 소공원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부터 희운각 까지 나에겐 처음 길이다.
많은 눈이 쌓인 직벽의 산을 내려가자니 앞서가는 아저씨도 조심조심 한발자욱씩 띈다.
엉덩이 썰매를 타고서 내려들 가셨는지 마치 봅슬레이 경기장처럼 생겼다.
왼만큼 경사라야 나도 타고 내려가지, 그대로 고꾸라질것같아 용기가 안난다.
아저씨들 한테 엉덩이 썰매로 내려가 보시랬더니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다.
그럭저럭 마치 빼먹었던 백두대간을 연결시킨 것처럼 희운각을 찜 한다.

희운각에서 아저씨들은 시원한 막걸리를, 난 약초차를 한잔 사 마시고 {한잔에 2,000원}
얼어붙은 천당폭포를 보며 긴 철계단을 지나 양폭산장에 이르러 따끈한 물에 미수가루로 배고픔을 달래본다.
가을의 화려한 색동옷을 입은 천불동계곡에 비해 퇴색해 버린것같은 겨울의 쓸쓸한 계곡이다.
하산때 신은 아이젠은 눈없는 철계단에선 쇠소리에 귀가 쟁그럽고 걷기에 여간 불편한게 아니다.
남, 여학생들 극기훈련 하느라 제 몸집보다도 더 큰 배낭을 메고
떨어지지 않는 다리를 질질끌며 오르는게 여간 안 쓰러운게 아니다.

비선대지나 편안한 길 여기도 미끌미끌하다. 이젠 그만 걷고 싶어진다.
전엔 몰랐는데 비선대서 소공원까지 오늘은 꽤나 길게 느껴진다.
2시,휴~ 따져보니 열시간이나 걸었네~
겨울 설악산행,행여나 기대했던 눈꽃은 볼수 없었으나 깊은 잠을 한숨 푸욱 잔듯한 흡족한 산행이었다.


▣ 산그림자 - 겨울 설악산에 발걸음 하신것 축하드리며 잔잔하 마음을 헤아려 가며 산행길에 설악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신 님의 마음에 감사 드림니다.. 님의 고운 글 잘 읽었습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바라며...
▣ 물안개 - 소녀님 겨울설악완주를 축하하고, 소백의 강풍도 이겨내고 이제 소녀가 아니라 산사나이의 기상이 느껴지네요.오늘 북한산에서 만나 회포좀 풀어보자구요
▣ 김현호 - 소청에서 희운각까지의 눈길이 급경사이면서 매우 재미있는코스인뎅.. (저는 그재미로 설악산에 가는데) 담에 기회됨 해보시길..
▣ 산 소녀 - 산그림자님,안개님,김현호님! 감사합니다.그 봅슬레이길을 엉덩이 썰매라~ 다시 한번 가야 할라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