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락산(道樂山) 964m
위 치 : 충북 단양군 단성면 가산리

산행일자 : 2004년 2월7일/나홀로
풍기출발(07:45) – 상선암(08:45)
상선암08:50 – 제봉10:37 – 신선봉11:33 – 도락산11:55/12:15 – 채운봉13:02 –검봉13:40 – 큰선바위14:11 – 상선암14:40
상선암출발(15:15) – 풍기(16:00)

◈상선암-제봉-도락산-채운봉-상선암
밤사이 눈이 왔단다..
창을 열고 밖을 보니 다져진 눈은 적설량을 가늠키 힘들어 보이지만 그리 많아 보이지 않음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재빨리 머리를 굴려봅니다.
조건은 이동거리가 멀지않은 가까운 산…
배낭을 싸면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나에게 집사람이 한 소리 합니다.
“날도 안 좋고 길도 미끄러운데 좀 기다리며 날씨를 봐가면서 천천히 출발하지”
일리있는 말이기는 하나 벌써 설산으로 저만치 달려가고 있는 마음을 돌리기엔 너무 늦었습니다.
여러 당부의 말과 걱정스런 시선을 뒤로하고 하얗게 포장된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달려봅니다.

풍기IC를 진입하는데 어지러이 춤추고있는 검은구름 뒤로 아침해가 검붉은 빛을 발하며 자기의 존재를 알리는 모습이 오늘 날씨를 대변하고 있습니다.
한산한 고속도로를 지나고 몇 안되는 바퀴의 흔적을 쫓으며 도착한 사인암은 포근한 솜이불 덕인지 아직 깊은 잠에 빠져있습니다.
차소리에 잠에서 깰까 봐 조심조심 지나치니 상선암가는 길엔 차 바퀴의 흔적조차 없습니다.
적설량도 풍기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10cm 이상은 되어 보입니다.

잠시 갈등하다가 불빛도 없이 칠흑 같은 어둠을 열어가는 심정으로 조심조심 곱게 쌓인 눈위로 차를 몰아 봅니다.
그래도 오르막은 그런데로 오를만한데 길고 커브진 내리막이 나타나니 나도 모르게 발엔 힘이 들어가고 후회가 밀려옵니다.
하지만 이젠 차를 돌릴수도 없는 상황이니 정신 바짝 차리고 저속에 4륜으로 살금살금 내려서 봅니다.
길고 긴 내림길을 무사히 끝내니 안도의 한숨과 벌써 산정상에 다 오른 기분입니다.
상선암입구에 주차하고 순백의 눈밭에 나만의 발자국을 그리며 상가로 들어서니 눈을 치우던 어르신 한분이 근심스런 눈으로 쳐다보며 묻습니다.
“오늘 등산하시게요?”
“네, 등산을 하려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걱정입니다”하니 어지간하면 오늘 등산은 취소하는게 어떻냐며 평시에도 험한 도락산 등산로 얘기와 오늘 같은 날은 눈이 허벅지까지 빠지는 곳도 있을거라는 말씀을 한 후 더군다나 혼자인 모습에 더욱 걱정이 되시는 눈치입니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조금 올라가보고 위험할 것 같으면 욕심을 안 부리고 내려오겠다며 근심 가득한 어른을 안심시켜 봅니다.
설레임과 불안함을 동시에 품고 순백의 설원에 첫발을 힘차게 내딛습니다.

아무도 가지 안은 길…
마치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설레임도 있지만 올바른 족적을 남겨야 뒤따라 오는 이가 편하리란 생각엔 사명감도 느껴지는 그런 걸음을 걷습니다.
등산로도 희고, 바위도 희고, 나무도 희니 심지어 간간히 부는 바람도 하얗게 느껴집니다.

이번이 3번째 산행이기에 등산로를 대충은 알지만 갈림길처럼 보이는 여러 곳에서 마치 미로 찾기를 하듯 하나하나 찾아 올라가는 재미도 쏠쏠합니다.
산책로 같은 500여m의 등산로도 끝이 나고 이제부터는 급경사에 암릉 길의 연속입니다.
평상시에도 땀방울 꽤나 흘려야 오를 수 있는 힘든 길인데 오늘은 한발한발 내딛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가파른 바위 위에 눈이 덮였으니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 난감하기만 합니다.

장님이 길을 가듯 스틱으로 툭툭 쳐보기도 하고 발로 바위 위에 눈을 쓱쓱 걷어 내보기도 하며 한발 한발 오르니 힘만 들뿐 영~ 속도가 나질 않습니다.
어쩌다 철계단이라도 나오면 구세주를 만난듯 그렇게 반가울수가 없습니다.
철계단이 반가운 이유는 내가 올바른 등산로로 오르고 있음을 확인할수 있음이요, 또 하나는 평상시엔 그렇게 짜증나던 계단이 오늘 같은 날엔 다른 곳 보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올라 설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선상봉을 지나 오르니 매서운 바람이 휘몰아 치고 내딛는 걸음걸음마다 눈이 먼지 날리듯 풀썩풀썩 날아 오릅니다.
소백의 칼바람 경험이 많은 나로서는 소리만 요란한 이런 바람쯤은 문제가 없습니다.
가끔 아주 가끔 나타나는, 바람도 쉬는 양지바른 눈밭을 걷노라면 한바탕 누워 뒹굴고 싶은 생각 간절합니다.
그런 몇번의 유혹을 뿌리치고 채운봉으로 묵묵히 오릅니다.

눈에 덮여 사라진 나무계단을 오르는 발길은 빙벽등반이라도 하는 듯 몇 번 씩 눈 속을 툭툭 차며 발 디딜곳을 확인한 후 한발한발 올라갑니다.
시간은 평시와 같이 흐르건만 내 발길이 따르질 못하니 거리는 줄어 들지 않습니다.
게다가 심술궂은 바람은 등산로 곳곳에 눈을 모아 함정을 만들어 놓고 기다리니 무릎을 지나 허벅지 까지 빠진 나의 발걸음은 더욱 느려질 뿐입니다.

온갖고생 다하며 힘들게 움직이는 발은 묵묵히 있는데 편안히 앉아만 있던 속은 무슨 염치인지 먹을걸 달라합니다.
괘씸도 하고 시간도 너무 지체되었기에 도락산 정상에서 보자하고 모른체 그냥 걷습니다.

힘들게 힘들게 신선봉에 오르니 거짓말처럼 바람이 잔잔하고 햇살 또한 따사롭습니다.
쉬었다 가고싶은 욕망이 끝없이 밀려오지만 아니 그보다도 볼품없는 정상은 뭣하러 가려하느냐는 달콤한 꼬심의 속삭임도 무시한체 도락산 정상으로 미련없이 발걸음을 옮겨봅니다.

평상시 10여분거리를 20분이 걸려 올랐지만 예상외로 좋은 기분을 받습니다.
봄날 같은 따사로운 햇볕이 한꺼번에 몰려와 있는 듯한 바람한점 없는 도락산 정상입니다.
게다가 햇살을 받아 보석처럼 밝게 빛나는 눈밭은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배낭을 벗어 던지고 나도 모르게 눈밭에 벌렁 누워 버립니다.
누워서 보는 2월의 푸른하늘은 나의 눈을 금새 파랗게 물들여 버립니다.
세상이 온통 파란색뿐이라는 생각이 들어갈 즈음 하얀 뭉게구름이 가벼운 걸음으로 사뿐사뿐 걸어가니 잠시 환상에서 깨어 겨우 일어나 봅니다.

우유에 빵으로 그냥 허기를 채우는 식사지만 그맛이 정말 꿀맛입니다.
언제없어졌는지 무심결에 손을 넣은 빵봉지는 텅텅 비어있습니다.
ㅎㅎㅎㅎ 아쉽지만 어쩔수있나요.
채운봉쪽의 만만찮은 내림길을 머리속에 그리며 서둘러 내려갑니다.

신선봉에서 소백의 모습을 다시 한번 그려보고 형봉으로 내려서는데 눈을 의심하게 등산객한분이 올라오시고 계십니다.
반가움에 인사를 하니 부산서 혼자 오셨다는 산꾼은 도락산이 처음인데 내가 열어놓은 길을 따라 편하게 올라올수 있었다며 연신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빨리 정상을 돌아 따라오시라는 인사의 말을 남기고 채운봉으로 조금은 가벼워진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설악산 공룡능선을 닮았다는 채운봉쪽 내림길…
경사가 70도는 족히 넘을 경사면에 양쪽이 낭떠러지 길
쇠난간을 설치해놓긴 했어도 어디 하나 잡고 만만히 내려설수있는 길이 아니니 손과발 다 동원하고도 엉덩이까지 이용해서 겨우 내려서고 겨우 올라서는 길이 검봉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어렵게 검봉까지 와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앞으로의 덜 험한 등산로를 상상하며 내려서는데 이제부터는 또다시 등산로가 헷갈립니다.
이리 저리 우왕 좌왕…
영 못찾을길은 상선암쪽 큰선바위 위치로 방향을 잡고 내려서기를 몇번…
드디어 큰선바위를 지나고…

금새 뒤쫓아온 부산의 산꾼과 합류하여 순해진 등산로를 편하게 내려섭니다.
왜 도락산이라 부르는지 아느냐는 질문에
도락산은 조선조 우암 송시열선생이 「도를 깨닫고 스스로 즐길만한 곳」이라해 이름지어졌다는 얘기가 있다 하니 자기생각엔 돌악산이 발음을 하다 보니 도락산이 된게 아닌가 생각한다며 함박웃음을 지어보인다.


제봉 바로 아래 등산로


도락산 눈꽃, 솜사탕 나무가 아닌가 싶은…


나만의 흔적, 도락산 정상에서…


신선봉에서 본 소백산, 멀리 유난히 희게 보이는 것이 연화봉


신선봉에서 본 채운봉과 그외 웅장한 산줄기…


채운봉에서 본 신선봉 모습


▣ 산모퉁이 - 좋은 곳에 사시는 군요. 가까이에 소백산도, 사진에서 본 멋진 도락산도 있으셔서... 정말 멋있는 산행이셨으리라 상상이 됩니다. 부럽기도 하고요... 잘 읽고 보았습니다..
▣ 허경숙 - 길문주님! 도를 깨닫고 즐기는 산을 혼자 다녀 오셨네요. 역시 소백에 몸 담고 사시는 분이라 심설을 마다않고 험한 곳을 즐기시다니 부럽습니다. 몇년전 도시락도 안 가지고(산아래에서 먹고 갔음) 도락산 올랐었는데 너무너무 재미 있어서 이름이 도락인가 했었죠 그런데 일행 중 한 사람이 고소공포증이 있어 "미서버(무서워)"를 연발해서 올매나 우습던지 본인은 참말로 미서버서 얼굴이 노란 귤껍질이 되었는데... 혼자 즐기셔서 조금 미안 하셨겠지만(?) 그대신 좋은 그림 주셔서 감사 합니다. 건강하시고 즐거운 나날 되시길...
▣ 주왕 - 지난번 소백산산행위해 어의곡으로 향할때 택시기사님이 도락산과 제천 금수산을 '강추'해주시던데 이유가있네요 아직 서울에서 닿기쉽고 길이 어렵지 않은 국립공원만 다니고 있는데 좀더 경험을 쌓아 저도 다음에 꼭 가봐야 겠습니다.좋은글 사진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 산초스 - 지난 1.25 소백산 비로봉에서 보이던 도락산. 작년에 금수산,월악산 다녀와서 올해 봄에 한번 가려고 계획중인데 잘 보았습니다.
▣ 이병예 - 여전히 산행을 즐기시며 사시네요.좋은곳도 많이다녀오셨네요.사진도잘보구..글도잘읽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