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3년 12월 29일 11.30 - 16.30
인원: 지수, 엄마, 아빠 (3명)

그동안 휴가를 뒤로 미루고 지내다가 이제서야 짧은 휴가를 내었다.
산정호수를 찾아 길을 나섰다. 마침 산정호수옆에 명성산이 있다고 한다.
지수는 이런 저런 생각도 없이 그냥 산정호수에 가고 명성산도 한번 가야 한다고 하니 그런가 한다. 하지만 기대감에 다소 설레임이 엿보인다.

엄마랑 거의 매주 토요일에 정릉->일선사->대성문->보국문->정릉 아니면 정릉->일선사->대성문->영추사->정릉 코스로 다니다 보니 나보다 산행이 더 쉽다.

아무튼 오전 11시경 일어나서 숙소에서 나와 산정호수를 한바퀴 돌고 난 뒤 숙소의 직원이 알려준 자인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남들은 모두 억새가 있을 때 가는 데 우리는 그냥 새로운 산에 또 한번 가 본다는 생각으로 배낭을 매고 나선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거의 없다. 자인사 옆에서 시작된 길은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데 가파른 편에 속한다.

처음부터 헉헉거리는 폼이....일단 계단이 끝나고 실제 계곡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전에 이정표가 하나 있다. 등산로가 아님과 함께 오른쪽으로 가라는 표시...동그랗게 만든 것이 이채롭다. 이 곳에서 찬바람을 이겨낼 코코아 한잔씩을 하고선 다시 출발이다. 이제 겨우 10분 채 올라오지 않았는데 장시간의 휴식은 안된다…. 도토리모양처럼 생긴 것이 있어서 보았더니 아주 동그랗게 생긴 것이 호박같다. 표면에 점이 작게 두개나 찍혀 있어서 마치 사람같은 모습이다. 셋이서 한참이나 웃었다. 피로가 싹 가신다.

계곡 속으로 들어간다. 억새 밭이 1Km라고 적혀 있는데 이게 예상을 완전히 빗겨 간다. 산중턱쯤에 억새 밭으로 나가는 옆길이 있으리라 했는데… 없다… 그냥 계속 돌밭 길을 올라가기만 한다. 빙글빙글 S자로 돌기도 하고 아님 똑바로 오르고….. 지루하게 가다 보니 성벽처럼 만든 것이 보이는 데 이것이 끝은 아니다. 이 곳에 벤치가 하나 덩그렇게 있다.

잠깐 앉아서 휴식을 취해본다. 다시 오르막길, 지수어린이는 머피(손바닥만한 강아지인형)와 함께 잘 가고 있다. 거의 정상 비숫한 곳에 이른다. 여기서도 오른쪽으로 가면 위험한 곳이라고 적혀있다. 왼쪽으로 나무계단이 있다. 나중에 계단 끝을 보니 135라고 적혀있다. 135계단인가 보다 라고 어린이가 말한다. 사실 산행 후에 아내와 나는 이 나무계단이 얼마나 무서웠던지 바짝 긴장이 되었노라고 말했다. 계속 가파르게 올라오기만 하다가 다시 이 나무계단이 급한 경사로 되어 있어서 난간을 잡았는 데 아주 힘이 많이 들 정도로 잡았다. 그런데 지수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그냥 올라가는 것이었다. 어린이의 마음이란 역시…두려움은 두려움을 만드는 데…… 마음 씀씀이가 이렇듯 다른 것임을…무서움이 없다..
135계단이 끝나니 이젠 밧줄이 있다. 산에 비가 오지 않아서 인지 바닥이 말라있고 밧줄에 의지하지 않고 올라가기에는 마른 흙으로 인해 미끄러질 수가 있다. 밧줄을 잡았는 데 위에서 반대로 내려오는 분들이 몇 분 계신다. 이제부터는 능선이 이어진다. 따뜻한 햇볕이 들어 바람을 막아준다. 하지만 이 능선을 지나자 곧 아래로 넓게 펼쳐진 검은 밭이 나타난다. 말 그대로 억새 밭인가 보다. 하지만 겨울이라 시커멓게 잘 태워져 있다. 아래로 약수터라는 이정표가 있어서 내려가 보았더니 물이 담긴 바닥에 온통 붉은 녹 같은 것이 보인다. 냄새도 불에 탄 냄새가 역력하다. 먹지는 못할 물이다. 능선에 있는 정자에 올라 전망을 한번 살펴보고 나서 지수는 떠날 생각이 없다. 마침 이 곳에는 눈도 조금 있어서 눈사람을 만드니 어쩌니 하면서 계속 놀다 가자고 한다. 지수어린이가 처음 자인사에서 시작할 때는 자인사입구에는 명성산(明聖山)이라고 씌어 있었는 데 이 곳에는 명성산(鳴聲山)이라고 되어 있다고 한다. 요즘 천자문을 배우더니 글자가 눈에 보이는 모양이다. 아마 정자앞에 있는 것이 맞는 표현인 듯 하다. 일련의 사람들이 또 지나간다. 우리가 온 코스인 자인사로 가는 듯 하다. 또 한무리의 사람들은 억새밭 아래로 내려가서 길을 간다. 폭포로 가는 방향인데 그리로 가나보다.

겨울바람이 매섭게 불어온다. 모두들 옷깃을 다시 여미고 출발이다. 우리는 능선을 따라 쭉 가다가 하산하는 코스를 택했다. 산능선을 기준으로 오른쪽으로는 따뜻하고 왼쪽으로는 바람이 매섭다. 나뭇가지에도 온통 눈이 가지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지를 따라 눈이 가지의 왼쪽편에 죄다 얼어 있을 뿐이다. 눈꽃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바람에 따라 떨어진다. 마치 눈이 날리는 듯…..

까마귀 한 마리가 어디선가 날아와서는 우리의 앞길에 있는 나무 위에서 계속 깍깍 울고 있다. 상당히 기분이 묘했지만 우리가 가까이 가면 날아가겠지 하곤 길을 재촉한다. 내려가다가 오르다가 정상같이 느껴지는 곳을 또 지나니 삼각봉이란 곳이 나타난다. 기념사진을 한번 찍고선 또 나서는 데 대체 갈림길이 나오지를 않는다.

겨울산의 오후는 대체로 빨리 어두워지는 바 초행길인 이곳의 상황파악이 잘 안된다. 명성산의 정상까지는 삼각봉에서도 한참을 가야 하지만(약 2.5Km) 이 갈림길은 아니므로 이곳이 나타나기만 했지만 쉽사리 나타나지 않는다.

이제 갈림길이다. 일단 한숨을 돌렸다. 시간을 보니 3시 30분. 충분히 여유가 있다. 길도 흙길이라 내려가기가 어렵지는 않다. 햇볕이 있어서 길이 젖어 있지는 않다. 중간쯤 오니 길이 돌길로 바뀐다. 다소 뭉툭한 바위들도 있고. 가끔씩 길을 찾지 못할 때마다 보이는 산악회 리본들이 유용하게 쓰인다. 그러나 어떤 길에는 길이 아닌 곳에도 있다. 예전에 다니던 길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 왼쪽으로 가야 하는 듯 한데 가보니 낭떠러지이고 폭포같이 생긴 곳에 호스가 많다. 빙벽등반을 위해 일부러 얼음을 만들고 있는 가 보다. 오른쪽으로 돌아서 내려와서 보니 아름다운 그림이다. 빙벽앞에서 지수어린이 찰칵…..

아까부터 계속 다왔느냐고 묻는다. 다소 지루한 길이다. 하지만 재미를 느끼게 해 주기위해 얼음 미끄럼도 타게 한다. 계곡을 끼고 나오니 큰 길이 보인다. 여기서도 왼쪽 오른쪽이 약간 헛갈린다. 오른쪽길이다. 군인들의 훈련에 필요한 구덩이들도 보인다. 이 길을 따라 쭉 내려오니 비포장 대로가 나타난다. 여기서 산행은 끝이다.

왼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비포장 도로를 얼마 만에 걸어보는가? 지수어린이에게 옛날 우리가 어렸을 때 학교 다니던 얘기를 해주면서 걷는다. 여유있게 산행을 해서인지 모두들 힘든 기색이 없다. 길가의 집에 있는 개들이 짖어댄다. 너무 시끄럽다. 사람소리가 반가워서인지 아님 경계심때문인지 아무튼 조금 시끄럽지만 색다른 시골의 정취가 묻어난다. 거위들, 토종닭들, 오리들,.........

아스팔트길로 접어들자 처음에 자인사로 간 길이 나타난다. 이렇게 명성산 산행은 마침표를 찍는다. 우리가 돌아온 길을 쭉 되짚어 보니 명성산이 마치 하나의 병풍처럼 우리들을 왼쪽으로 크게 둘러싸고 있었다. 산정호수를 걸으면서 그 여운을 한번 더 달래고 숙소로 향한다.
역시 시작은 항상 반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지수어린이는 명성산을 또 다녀왔다. 많은 생각은 항상 작은 실천보다 결국 못하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새기면서 또 다른 지수어린이와의 우리 가족산행을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