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초과와 안전사고로 얼룩진 설악산, 그러나 공룡능선은 정말로 아름다웠다.


 

                    설악폭포를 지나 정상으로 가는 길목의 단풍

 

 

  설악산과 공룡능선

 

  설악산은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는 국립공원입니다. 설악산에 있는 대표적인 능선은 장쾌한 서북능선, 용의 이빨을 닮았다는 용아장성릉, 공룡의 등뼈를 상징하며 내외설악을 구분하는 공룡능선, 그리고 대청봉에서 북동쪽으로 화채봉을 일으키며 천불동계곡을 동쪽에서 감싸고 있는 화채능선이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용아장성릉은 안전상의 문제로 그리고 화채능선은 자연휴식년제시행으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제한하고 있어 등산객들이 오를 수 있는 능선은 서북능선과 공룡능선입니다. 서북능선은 설악산의 동서를 가로지르며 내외설악과 남설악을 동시에 조망할 수 있는 멋진 능선입니다. 그러나 가장 인기 있는 능선은 아마도 공룡능선일 것입니다. 설악산의 계곡을 말하면 천불동계곡과 십이선녀탕계곡을 떠올리듯이, 능선하면 공룡능선입니다.


  필자가 본격적으로 산행에 심취한지 약 4년이 되어 가지만 유감스럽게도 아직 공룡능선을 답사하지 못했습니다. 공룡을 타려면 기본적으로 무박산행을 해야 하는 데 필자는 환경이 바뀌면 잠을 잘 못 자는 성격이어서 무박산행을 좋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르내림이 심한 공룡능선의 명성을 이미 알고 있어 필자와 같은 아마추어가 과연 정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각종 산행기에서 어린이와 함께 하거나 나이 지긋한 분들도 공룡을 거뜬히 정복했다는 글을 볼 때마다, 산에 다녀온 후 변변치 않은 산행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공룡에 대해 무지한 것은 정말 주눅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공룡과 첫 인사를 해야겠다고 작심하고는 안내산악회를 따라 나서게 된 것입니다.

 

 


  오색(남설악매표소)에 운집한 등산객  

 

  2005년 10월 2일 일요일 새벽, 45명의 등산객 태우고 어젯밤 서울을 출발한 관광버스(목동 G산악회 주관)가 강원도소재 "관광민예단지휴게소"에 도착합니다. 휴게소의 넓은 주차장에는 줄잡아 15대 이상의 등산버스가 줄지어 서 있어 밤을 잊고 산행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졌음을 실감합니다. 


  G산악회서도 이번에 밀려드는 예약을 거절하느라 오히려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최근에 41인승 버스로 교체하였는데도 단체객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정원을 초과하여 예약을 받고 보니 산악회 집행부 몇 명은 버스복도에 자리를 잡아야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산악회 S대장은 마냥 싱글벙글한 모습입니다. 한 달에 두 번 실시하는 백두대간 산행시는 30명을 채우기가 어렵기에 모처럼 만차가 되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지요.


  휴게소 분식센터에는 10여 가지의 메뉴가 붙어있지만 한 밤중이라 짜장면과 우동밖에는 팔지 않습니다. 2명의 종업원이 눈코 뜰 수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데, 필자는 우동 한 그릇을 시켜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비웁니다.   

                       
  다시 버스가 한계령정상을 향해 오르는 데 정상아래에서 그만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한참 후에 겨우 통과는 하였지만 도로 양쪽에 주차를 해둔 차량으로 인하여 큰 차량이 상호 교행(交行)을 할 수 없어 일방통행을 하고있으니 오늘 하루 일이 걱정됩니다.                 

   
  드디어 오색의 남설악 매표소 앞에 도착하니 입장하려는 등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어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이렇게 많은 인원이 다 입장하려면 날을 새게 생겼다고 한탄해 보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정원초과로 만원이 된 등산로

 

  산악회회장이 재빠른 동작으로 매표를 한 덕분에 약 15분 정도 기다려 입장을 합니다(03:40). 물밀 듯이 밀려들어가는 인파에 파 묻혀 산악회 깃발을 매단 선두대장을 앞세우고 보무도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깁니다. 머리에 착용한 헤드랜턴이 어두운 등산로에 불을 밝힙니다.  


  넓은 등산로에서는 3-4줄로 진행하던 사람들이 좁은 길에서는 1-2줄로 좁혀지니 걸어가는 시간보다 제자리에 서 있는 시간이 점점 많아집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서부터 전혀 움직이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급기야 먼저 올라갔다가 뒤로 하산하는 사람의 숫자가 점점 늘어납니다. 새벽 1시에 입장했던 사람들도 대청봉정상까지 가는 길목의 중간위치에 있는 설악폭포까지도 전진하지 못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한숨을 내쉽니다. 


  국립공원의 입장객과 관련하여 정원초과라는 말이 있는 지 또는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적합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등산로가 수용할 수 있는 한도를 초과하여 사람들을 입장시킨 것은 분명히 잘 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짜증나게 기다리는 중에도 남보다도 조금 먼저 가려고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줄지어 선 사람들이 야유를 보내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얌채 짓을 합니다. 그런데 군중심리가 발동하여 한 두 사람만 새치기를 하게 되면 또 다른 새치기를 유발하고 그 동안 질서를 지키는 사람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심리가 발동하므로 나중에는 개판이 됩니다.


  여러 줄로 서 있다가 한 줄로 바뀔 경우 너무 시간이 지체되므로 차라리 한 줄로 서자고 누군가 제안을 해서 한동안 지켜졌지만 넓은 공간이 있음을 눈치챈 뒤쪽 사람들이 자꾸만 앞으로 들어와 결국은 이마저도 무너지고 맙니다.  

       
  공원당국에서는 등산로주변에는 펜스를 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새치기를 하는 사람들이 지정된 등산로로는 새치기를 할 수 없으니 펜스를 넘는 다는 것입니다. 급기야 한 산악회(대전소재 "ㄱ"산악회)회원들이 단체로 펜스를 넘어 가다가 새치기를 시도합니다. 기다림에 지친 등산객들이 야유를 보내자 미안하다는 말 대신에 오히려 위반한 측에서 더 큰소리를 칩니다. 적반하장(賊反荷杖)입니다.

 

  그러나 질서를 지키는 사람들이 더 세게 나오자 이들은 출입이 금지된 지역으로 일제히 올라갑니다. 산악회리더가 배짱이 좋은 것인지 간이 큰지 모를 일입니다. 이들이 오르자 그 뒤로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이 너도나도 합세해 구름 때처럼 몰려갑니다.


  언제부터 생태계보호를 위해 출입을 제한했는지 모르지만 틀림없이 이들이 밟고 지나간 곳은 모두 훼손되었을 것입니다. 여기저기서 국립공원관리공단 측을 성토합니다.


  "등산객을 입장시키려면 미리 수용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입장시켜야지 이렇게 진행할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을 밀어 넣으면 어쩌란 말이요."


  "단순히 매표소에서 돈만 받을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에 안내요원과 감시요원을 배치해서 등산로의 상황을 점검하고 비지정 등산로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단속해야지요."  

            
  "매표소에서 표를 팔기 전해 등산로의 정체상황을 사전에 알려 입산을 포기하거나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옳지요."


  "입장하려는 사람들이 전부 돈인데 돈벌이에 혈안이 된 공단 측에서 그럴 리가 있겠어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언론과 연휴 탓을 합니다. 
  "언론에서 설악산의 단풍이 이 달 20일경이 절정이라고 하면서 대청봉과 중청은 현재도 단풍이 곱다고 보도하는 바람에 이지경이 되었소."


  "3일간 연휴를 맞아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을 누가 말리겠소."


  필자가 보아도 참으로 사태가 한심하여 혼자 중얼거립니다.
  "집에서 마누라 엉덩이나 두드리며 편하게 소일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산행에 빠져 이게 무슨 고생이야!" 


  필자는 지난해 9월 30일 무박일정으로 대청봉과 천불동계곡산행을 했는데 그 당시에는 전혀 지체 없이 산행을 할 수 있었기에 올해도 아직은 본격적인 단풍시즌 전이라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참가했으나 이 지경이 되었으니 누구를 원망하리까.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움직인 덕분에 매표소에서 1.7km를 지나왔으며 정상까지는 3.3km남았다는 이정표를 보고는 쓴웃음을 짓습니다(06:40). 1.7km 오르는 데 3시간이 걸렸군요.


  산악회 측에서 설악폭포 옆 공터에 모여 인원점검을 해보니 약 30명에 불과합니다. 회원들이 다 모이지 않았으니 행동통일을 할 수도 없고 당초 모임장소로 정한 설악대피소까지는 가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합니다. 간단하게 요기를 하는 등 약 15분간 지체하다가 다시 정상을 향해 출발합니다(07:35).

 

 


  곱게 핀 단풍이 맞아주는 정상 오름 길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설악폭포의 물줄기가 제법 세차지만 이를 카메라에 담을 여유도 없습니다. 이미 날은 훤하게 밝았는데 해발 950m의 설악폭포에서 시작되는 된비알에 진이 빠집니다. 사방이 깜깜할 때는 별로 힘든 줄을 몰랐는데 밝은 날씨에 오르려니 더 지치는 것 같습니다.  


  날이 점점 밝아오고 고도가 높아지니 붉게 물든 단풍이 수시로 짜증난 등산객의 마음을 위로해 줍니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듯한 단풍 숲 앞에서 기념촬영을 합니다. 등산길을 뒤돌아보니 구름위로 살짝 머리를 내밀고 있는 남설악 점봉산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대청봉 오름 막바지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지만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하늘은 흐려있어도 비가 올 날씨는 아니고 일기예보도 아침부터 맑아진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설악폭포를 지난 시점부터는 다행히도 극심한 등산로의 정체가 풀려 정상적인 속도로 산행을 계속해 대청봉에 도착합니다(09:30). 매표소를 출발한지 5시간 50분만입니다.    

 


 

                                              설악폭포 이정표
           


 

                                     뒤돌아본 남설악 조망


 

                          무리를 지어 오르는 등산객들


 

                                        불타는 설악의 단풍


 

                                             남설악 조망(1)


 

                                             남설악 조망(2)


 

 


  대청봉의 조망

 

  정상의 표석 곁에는 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차례를 기다리거나 정상적인 사진을 찍기란 이미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무조건 표석 앞에 가서 버티고 서면 동행자가 카메라셔터를 눌러주는 길 밖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K선생과 필자가 교대로 엉성한 사진을 남기고 사방을 둘러봅니다. 


  하늘에는 얕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어 약간은 어두워 보이지만  설악산은 그 아름다운 속살을 훤히 드러내고 있습니다. 천불동계곡과 이를 감싸고 있는 화채능선, 오늘 가야할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릉 등 내외설악의 아름다움이 잘 조망됩니다.


  중청대피소 방향으로 헬기 1대가 내려앉더니 곧 사라집니다. 보급품을 싣고 왔는지 아니면 긴급한 환자를 후송하기 위한 것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중청봉주변의 단풍은 약 3분의 1정도가 붉게 물든 것 같습니다.


  바람이 세게 불어오는 가운데 기념사진을 찍다가 등산모자를 바람에 날려보내고 맙니다. 과거에 근무하던 직장의 산악회에서 나누어준 고어텍스 모자로 필자가 매우 아끼는 것인데 그만 대청봉 정상의 나무숲으로 가버렸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바람이 세게 불어오는 정상에서 끈이 달리지 않은 모자를 느슨하게 쓴 채 사진을 찍기에 열중한 나의 불찰입니다.


 

                    대청봉 정상 표석주변에 운집한 등산객

 


 

                       대청봉 정상의 모습

 


 

                설악대피소 뒤의 중봉과 그 뒤로 보이는 남설악 가리봉

 


 

                    정상에서 바라본 천불동계곡의 바위꽃


 

                          정상에서 바라본 오른쪽의 공룡능선


 

             천불동게곡과 공룡능선뒤로 보이는 울산바위

 


 

               화채봉너머 아련히 보이는 속초시가지

 



 


  설악(중청)대피소에서의 결정

 

  설악대피소에 도착하니(09:50) 먼저 온 사람들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해 10월 1일 이곳에 왔을 때는 기온이 매우 낮아져 손이 시릴 정도여서 금년에는 온수와 두꺼운 옷을 준비해 왔으나 가벼운 바람막이로도 충분하여 괜히 배낭의 부피만 늘어난 꼴입니다. 


  산악회 측에서는 처음 지체될 당시에는 중청에서 한계령으로 하산하는 것도 고려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중청에 도착했고 또 다음날은 휴일이어서 다소 귀경이 늦더라도 희망자에 한해 공룡능선을 타도록 하겠다고 합니다. 나중에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하여 자신이 있는 사람은 공룡능선으로, 나머지 사람들은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하도록 계획을 잡았습니다.

 


 

              설악대피소에 운집한 등산객과 뒤로 보이는 대청봉

 


  설악대피소∼희운각대피소

 

  설악대피소를 떠나(10:05) 희운각으로 가는 길목도 추월이 거의 불가능한 정도로 등산객이 많습니다. 소청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서니 다시금 정상에서 경험했던 정도의 센바람이 불어오는 데, 장쾌한 서북능선상의 귀때기청봉은 선명하게 조망되지만 그 너머의 남설악 가리봉과 삼형제봉은 구름에 가려 희미합니다. 


  보기 좋은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소청에서 오른쪽 희운각 대피소 방향으로 하산을 합니다. 간간이 짙은 색의 불꽃을 피우는 단풍을 보며 고개를 들어보니 대청봉에 이르는 비탈면에는 이제 막 경쟁하듯 피어나려는 단풍들로 인하여 산은 여름 내내 입었던 푸른 옷을 붉은 옷으로 갈아입을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동쪽의 화채능선과 서쪽의 공룡능선을 양어깨에 거느린 채 그 사이에 형성된 협곡인 천불동 계곡의 바위를 보는 재미도 빼 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며, 하산하는 길의 곳곳에 위치한 전망바위에 올라 고사목 너머로 펼쳐지는 바위의 장관을 보는 것도 설악산을 찾는 또 다른 매력입니다.


  로프구간이나 다소 험한 구간 또는 올라오는 등산객과 마주치는 구간에서는 어김없이 긴 줄이 형성됩니다. 중간에 지체와 서행을 되풀이하는 바람에 설악대피소를 출발한지 1시간 35분만에 희운각 대피소에 도착합니다(11:40).

 

 


 

                고사목 뒤로 보이는 천불동 계곡

 


 

                      고운 단풍나무 뒤로 보이는 천불동 계곡 

 


 

                 소청으로 가는 길목에서 바라본 공룡능선


 

                   소청에서 바라본 서쪽 경관

 


 

                          소청 이정표

 

 


 

                 천불동 계곡뒤로 보이는 화채봉

 

 


 


 


 

                               가야할 공룡능선

 


 

               희운각으로 가는 내리막에서 바라본 공룡능선의 위용






 

              약간 험로인 내리막에서 기다리는 등산객들


 

                     가야할 공룡능선

 

 


  희운각대피소∼무너미고개∼신선봉  
                      
  희운각에서 공룡능선 답사희망자를 파악해 보니 필자를 포함하여 모두 12명입니다. 생각한 것 보다 적은 숫자입니다. 오색 오름 길에 너무 진을 뺀 나머지 대부분이 힘이 덜 드는 천불동계곡행을 선택한 것 같습니다. 


  천불동계곡과 길이 나뉘어 지는 무너미고개에서 오른쪽으로 내려빠지지 않고 바로 직진하여 공룡능선으로 들어섭니다(11:50). 드디어 그토록 가고 싶었던 공룡능선으로 들어섰다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뛰어 결혼을 앞둔 처녀의 심정이 이러할지 모르겠습니다.  부드러운 초입의 길을 지나자 급격한 오르막으로 사람들을 시험합니다. 중간의 로프지대를 지나 요리조리 헤집고 돌아 한 능선에 올라서니 신선봉입니다(12:15).


  이정표에는 희운각 1.1km, 마등령 4.0km 라고 안내되어 있습니다. 무너미 고개에서 25분만에 신선봉에 오르고 보니 공룡능선도 별것이 아니라는 착각에 빠집니다. 바로 옆 거대한 바위봉우리인 신선봉의 정상을 올려다보면서 살짝 돌아가니 공룡능선의 첨봉을 배경으로 G산악회 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12명의 회원 중 2명은 먼저 가버리고 뒤에 남은 10명이 모두 모였습니다.


  울산바위와 천화대·범봉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바위군을 조망하노라면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보면 저 멀리 설악의 대청봉이 천하를 호령하듯 우뚝 솟아 있고, 고사목을 배경으로 다시 보이는 범봉도 범상치 않습니다. 서쪽으로는 용아장성릉 너머 서북능선상의 귀때기청봉이 늠름하게 서 있습니다.  수시로 카메라를 꺼내 영원토록 잊지 못할 이 절경을 담아 보지만 사진을 확인해보니 실제 모습의 10분의 1도 제대로 담지 못한 것 같아 능력부족을 한탄합니다. 


 

                       신선봉 이정표

 


 

                       올려다본 신선봉 바위

 


 

                공룡능선을 타는 산악회 회원들

 


 

          신선봉에서 바라본 가야할 공룡능선(천화대와 범봉이 우뚝하다)


  신선봉∼1275봉∼나한봉

 

  천불동계곡 조망대에 서니 화채봉에서 뻗어 내려온 바위군이 천 개의 불상을 이룬다는 천불동계곡으로 가라앉으며, 울산바위조망대에 서면 다른 바위보다도 유달리 흰빛을 받아 빤짝빤짝 빛나는 거대한 바위덩어리가 정말로 경이롭습니다. 


  돌아가는 부드러운 등산로에는 샘터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입니다(13:15). 마등령까지는 아직도 2.3km가 남아 있으니 이제 약 절반을 통과한 셈입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사방으로 펼쳐지는 바위들의 축제에 피로도 잊을 지경입니다. 지척에 보이는 오형제봉(?)을 카메라에 담은 후 한 구비를 돌아가니 거대한 모습의 1,275봉이 눈앞에 다가섭니다. 로프를 잡고 오르다가 바위를 타고 넘은 후 계곡처럼 생긴 협곡의 긴 바위를 조심스럽게 오르니 1,275봉입니다(13:50).


  그런데 친절하게 서 있는 이정표도 단지 희운각대피소 3.0km, 마등령 2.1km라고 씌어져 있을 뿐 이곳이 1,275봉이라는 아무런 알림이 없습니다. 이곳 분만 아니라 마등령까지 이르는 길에도 신성봉과 샘터 및 나한봉의 이정표에만 현재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고 다른 이정표에는 거리만 표시되어 있어 도대체 현재 어디를 지나고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공단에서 입장료를 받아 이런 안내문 하나 제대로 설치하지 아니하는 무성의가 놀라울 지경입니다.

 

  지리산이나 북한산의 경우 정상 등 주요한 지점에는 현 위치에서 바라본 풍경사진을 크게 찍어 주요봉우리의 이름을 적어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설악산에서는 이런 풍경안내도를 한번도 보지를 못하였기에 하는 말입니다. 


  바위사이의 협곡안부에 서면 어김없이 세찬 바람이 불어옵니다. 바람이 어찌나 사나운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지경입니다. 황홀한 조망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손이 흔들릴 지경입니다. 실제로 필자 앞에서 올라오던 등산객 한 명이 바람에 맞아 그대로 넘어집니다. 


  직벽에 걸려있는 로프를 잡고 내려선 후 다시 로프를 잡고 오릅니다. 큰 지도를 보면 1,275봉과 나한봉 사이에 아무런 봉우리가 없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크고 작은 봉우리를 여러 번 넘어야 합니다.

 

  공룡능선을 타기 위해서는 상당한 체력이 요구된다고 하는 데 그 이유는 우선 마등령이나 희운각 대피소에는 4∼6시간 정도의 산행을 한 후 비로소 접근이 가능하므로 이 때에는 이미 체력의 소모가 있은 후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오르내림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을 무모하게 도전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용아장성능과 그 뒤의 귀때기청봉

 


 

            1,275봉 방향으로 가면서 바라본 천화대

 


 

 

 


 

                   멀리 보이는 울산바위

 


 

                    천불동계곡의 바위군 

 


 

                     하늘을 찌를 듯한 바위군

 


 


 


 

              지나가는 등산객에게 바위이름을 물어보니 "오형제봉"이라고 하는 데

              다른 한 사람은 아니라고 한다.  

 


 




 


 


 




 




 



 

             용아장성능 뒤로 보이는 귀때기청봉

 

 


 



 

                               1,275봉의 위용

 


 

                         지나온 능선뒤로 보이는 중청과 대청봉

 


 

                            더욱 가깝게 보이는 울산바위

 


 


 


 



 

                    올라가야할 긴 바위사면

 


 





 

                           능선 안부 휴식터


 



 

                             가야할 나한봉

 


 

              나한봉으로 이어지는 등산로


 

               세찬 바람이 불어오는 능선 안부

 


 

 

 


 

               왼쪽의 뾰족한 봉우리는 세존봉인듯(?)

 


 


 


 


 

 




 



 


  불행한 안전사고 소식

 

  나한봉을 오르기 위해 가장 큰 난코스인 로프구간으로 접근하는데 앞쪽에 등산객 약 200여명이 줄지어 대기 중에 있습니다(14:50). 사연을 듣고 보니 오후 한 시경 안전사고가 발생하였다는 것입니다. 


  로프구간 아래에는 연약지반으로 형성된 바위가 있고 수시로 낙석이 되어 "낙석주의"라는 안내문을 설치해둔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로프구간에서 경험이 별로 없거나 힘이 부족한 여성이 있을 경우 종종 지체되어 긴 줄이 형성됩니다. 특히 양방향으로 통과해야 할 겨우 기다리는 시간은 더욱 길어지게 마련이지요.

 

  이 날도 사람들이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줄지어 있는데, 남보다 한발 먼저 가려는 몰지각한 한 등산객이 꼬부라져 있는 줄을 이탈해 대각선 방향으로 오르다가 연약지반의 큰돌을 건드려 돌이 아래로 구르는 바람에 밑에서 기다리던 등산객 2명이 크게 부상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깨진 남자 1명은 공단 응급구조대의 처치를 받은 후 후송을 위해 마등령으로 옮겼지만, 허리뼈와 발을 크게 다친 여성 1명은 응급처치만 한 채 아직도 현장에 그대로 누워 있습니다. 환자는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아파 통증을 호소하면서 울부짓지만 부목을 가지고 환자의 아픈 부위를 고정시킬 의료진이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사고의 위치가 직벽의 바위구간 밑이라서 외부인사의 접근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헬기도 접근 할 수 없는 고약한 곳입니다. 헬기는 마등령의 헬기장을 이용해야 하지만 오늘은 특히 바람이 세게 불어 헬기의 접근이 어렵다는 말을 듣고는 한숨이 나옵니다. 환자가 출혈을 많이 할 경우 저체온증으로 고생한다는 데 오후 네시 반이 되도록 의료진은 도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나만 먼저 가려는 이기심을 가진 등산객의 실수로 무고한 두 생명이 설악산 공룡능선에서 고통받고 있는 중입니다. 실제로 우리가 기다리는 중간에도 조그만 바위가 저절로 굴러 떨어져 사람들이 기겁을 합니다. 오래되어 허물어진 바위구간은 정말로 위험한데 국도변의 바위사면에 보는 것과 같은 안전철망이라도 설치해서 등산객들의 안전을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나한봉∼마등령

 

  약 1시간 30분을 지체한 후 로프를 잡고 오릅니다. 로프를 잡는 요령만 안다면 크게 어려운 구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로프가 매달려 있는 위쪽에는 큰 바위가 자연적으로 떨어져 나간 자국이 선명하게 보여 가슴을 졸입니다. 이렇게 위험한 구간에는 철 계단을 설치하는 등 안전시설을 보강하고 필요할 경우 등산객의 진입을 통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안부에 올라 8분을 더 가니 드디어 나한봉 이정표입니다. 마등령까지는 0.5km 남았습니다. 지나온 능선을 뒤돌아보니 공룡의 등뼈 뒤로 대청봉과 중청 및 소청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더욱 다행인 것은 공룡능선에 들어선 이후부터 점점 하늘이 개이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백조의 털 같은 흰 구름 뒤로 파란 가을 하늘이 높이 떠 있다는 것입니다.  


  나한봉을 넘어 가는 사이 헬기 한 대가 마등령 주변 상공을 몇 차례 배회하더니 드디어 마등령에 착륙합니다. 필자가 마등령에  도착할 즈음 헬기는 떠났는데 사람들의 말이 머리를 다친 환자(남자등산객)를 수송하려 하였지만 헬기의 규모가 적어 다시 더 큰 헬기를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응급의료체계에 문제가 있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환자를 수송할 수도 없는 적은 헬기를 띄워 후송시간을 더디게 하고 비용을 낭비하는 처사를 모르겠습니다. 연락하는 사람이나 연락을 받는 관계자가 조금만 신경을 쓴다면 이런 기본적인 문제는 해결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마등령공터에는 응급처치를 받은 환자가 들것에 실린 채 그대로 누워있습니다. 머리를 다쳤지만 정신은 있는 듯 눈을 깜빡이는데 보기에도 정말 안쓰러울 따름입니다. 로프 밑의 여성환자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어제 저녁 또는 이른 아침 공룡능선을 타려고 왔다가 거의 막바지에 한 등산객의 부주의로 말미암아 큰 부상을 당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곳을 벗어나 비선대 방향으로 조금 진행하자 마등령 이정표(해발 1,240m)가 우리를 반겨줍니다(16:48). 실제로 마등령의 높이는 1,327m 이지만 일반인의 접근이 안 되는 모양입니다. 마등령은 동쪽으로는 비선대, 북쪽으로 황철봉, 서쪽으로 오세암과 백담사 그리고 남쪽으로 공룡능선으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이며, 비선대까지는 3.7km 거리입니다.  

 


 

       왼쪽 소나무밑의 저쪽 계곡에 로프가 있음(사고 발생지점)

 


 

                             나한봉 이정표

 


 

         뒤돌아본 지나온 능선(멀리 소청, 중청, 대청봉이 선명하다) 

 

 


 

                         파란 가을 하늘

 


 

               천불동 계곡의 바위군

 


 

                           마등령 상공을 배회하는구조헬기

 


 




 

                     구조헬기의 모습

 


 

             마등령에서 바라본 세존봉(?)

 


 

                     마등령 이정표

 


 



 

                  화채봉 아래의 바위





  마등령∼비선대∼설악동

 

  마등령에서 비선대로 하산하기 위해 동쪽으로 내려섭니다. 부드러운 등산로에 서니 화채봉과 서쪽 사면의 바위가 석양에 빛나고 있습니다. 가는 방향으로는 우뚝 솟은 바위봉의 이름을 물어보지만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등산안내도를 보면 세존봉인 것 같은 데 정확한지 모르겠군요. 


  모가 난 바위로 구성된 등산로를 통과 한 후 직벽의 철계단을 내려오니 큰 바위에 로프를 걸어 놓고 바위 타기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바위이름을 물어보니 '유선대'라고 합니다. 이곳에서부터 비선대까지는 거의 너덜길입니다.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 손전등을 들거나 헤드랜턴을 켠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바위사이를 요리조리 통과하며 조성된 등산길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매우 좋을 것 같지만 이미 어두워져서 그 형체만 짐작합니다.


  돌로 된 등산로는 그래도 돌을 계단식으로 잘 조성해 놓은 것이 다행입니다. 왜냐하면 야간이기 때문에 밝을 때보다도 훨씬 더 조심스럽고 이미 산에서 13시간 이상을 보낸 터라 체력소모가 많기 때문입니다. 신선대로 하산하는 데 다시금 헬기소리가 들립니다. 마등령의 환자를 후송하기 위한 것이기를 바랍니다.


  평소 산에서는 날아다닌다는 K선생이 필자와 동행하기로 자청해서 산행을 끝마칠 때까지 길동무가 되어 준 것이 고마울 따름입니다. 비선대에서 후미가 올 때까지 기다린 후 거의 경보수준으로 설악동주차장까지 걸어가서 땀도 씻지 못한 채 주차되어 있는 버스에 오릅니다(20:20). 


  오늘 산행에 16시간 4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그러나 오색 오름 길에서 2시간 이상을 그리고 나한봉의 로프구간에서 1시간 30분을 지체하였기에 실제로는 13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습니다. 산행코스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남설악매표소/설악폭포/대청봉/설악대피소/소청/희운각대피소/무너미고개/신선봉/1,275봉/나한봉/마등령/비선대/설악동주차장입니다. 등산버스가 미시령을 통과하여 서울 집에 도착한 시각은 새벽 두 시입니다. 무박산행을 위해 집을 나선 지 만28시간 만입니다.  
 


 

 

 


 



 

 

  산행 후기

 

  처음으로 도전한 공룡능선을 무사히(?) 넘었습니다. 그러나 산행 초입부터 인산인해를 이룬 등산객들로 인하여 짜증이 났고(나중에 한계령을 출발하여 오른 사람들도 오색과 마찬가지로 등산로가 주차장이 되었다고 함), 질서를 무시하고 남은 어떻게 되든 나 또는 우리만 좀 편해 보려는 그릇된 이기심으로 공중도덕을 위반하는 사례가 많아 이맛살이 찌푸려졌으며, 이러한 이기심이 결국은 안전사고로까지 이어져 두 사람의 생명을 크게 다치게 한 것은 우리 모두 반성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공단 측에서도 산악사고 발생시 이를 신속히 구조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고 사고 발생 위험도가 높은 등산로를 재정비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지난해 가을 필자는 설악산을 다녀와서 "아! 설악의 대청봉과 천불동계곡"이라는 제목으로 산행기를 썼습니다. 필자는 그 당시까지 천불동계곡의 바위만큼 아름다운 바위를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공룡능선의 바위를 보고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천불동계곡에서는 계곡을 따라 양쪽으로 도열하듯이 배치된 바위를 올려다보며 즐길 수 있으나, 공룡능선에 서면 가까워졌다가 멀어지는 수만 가지 형상의 바위를 오르내리며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면서도 공룡능선을 찾는 이유를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오늘 부상당한 환자들은 부디 좋은 의료진을 만나 빠른 시일 내에 완쾌되어 다시금 산을 찾게 되기를 독자와 함께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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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박산행을 하고 난 후 개천절인 오늘 하루 외출을 하지 않고 집에 쉬면서 이 산행기를 썼습니다. 지금까지 지루한 산행기를 읽어주신 독자여러분에게 감사를 드리며, 단풍의 계절을 맞아 즐겁고 안전한 산행을 계속하시기 바랍니다.


                  2005년 10월 3일 저녁  펜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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