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뼈다귀는.

 

금년들어 최고로 춥다는 성탄일. 능선의 세찬 바람에 겨우 몸을 가누고 얼음보다 차가운

카메라를 부여잡았다. 겨울산의 추위야 익숙할대로 익숙해졌지만 억새풀 줄기만 남도록

불어제친 칼바람의 매몰찬 광경에 나도 그만 얼어붙는다. 세월의 칼바람에 모든 허세가

 나가떨어지고 줄기만 남은 내 삶의 뼈다귀는 저보다 아름다울 수 있을까. 

 

 

 

 

 

아름다운 추억 되리라!

 

수 년 전부터, 가을억새로 갑자기 화려하게 떠오른 경주 무장산.

철지난 플랭카드지만, 오늘 나의 추억은 얼마나 아름다울 지......

두터운 옷과 방한모 속에서 고마운 암곡동 청년회의 인사를 마주한다.

 

 

 

 

 

무장산의 위치

 

많은 산행기를 보았지만, 나처럼 경주를 대충 아는 사람이 무장산의 인근과 그 위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안내가 부족했다. 그러니까 보문단지의 코모도조선호텔과 힐튼호텔 사이, 자동차 극장 삼거리에서

경주신라 CC쪽으로 붙은 길을 따라 왕산 마을 쪽으로 가면 무장산의 들머리에 다다를 수 있었다.

 

 

 

 

 

 

명색이 토함산 인근의 국립공원 영역이다.

 

무장산은 경주국립공원 토함산 지구에 포함된 국립공원 권역이다.

남으로 보문-감포 국도가 있고, 그 아래로 토함산이 있으며, 동으로는 골굴사 기림사 거쳐 포항 오어사

로 향하는 길이 지난다. 위로는 운제산이 내게는 익숙하며, 산줄기로는 일전에 산사랑방님과 답사한

소호고개 - 백운산 사이의 845 봉에서 분기되는 호미지맥이 치술령 거쳐 토함산 지나 이곳 무장산을

밟고, 포항의 호미곶으로 뻗어간다.

 

 

 

주차장은 넓지만

 

암곡동 공동묘지 입구를 지나 마을버스 정류소가 있는 마을회관 건물까지는 넓은 2차선길이다.

이곳에서부터는 중앙선 표시가 없는 좁은 포장길이 이어진다. 대형버스는 마주오는 차가 신경

쓰일만한 폭이다. 아예 진입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우측 시멘트 담벼락은 덕동호로 내려가는 물줄기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듯하다. 예쁘게 채색

을하여 벽이 주는 단절감을 감소하였다. 폐교된 왕산초교는 여전히 쓸모가 있는 듯, 행사안내를

하고 있는 플랭카드가 걸려있다. 깜찍한 건물인데 부디 쓰임새를 잘 유지하면 좋겠다.

 

 

용문사 갈림길에서 갑자기 길과 공간이 넓어지고 지역주민 차량외는 더이상 진입할 수 없다는

안내판과 선덕여왕 촬영지 안내판이 크게 눈에 띈다. 이곳이 드넓은 주차장이다. 주차장에서

위 사진의 법평사 갈림길까지는 약 500m, 도보로 침착히 걷다보면 몇군데 시골스런 천막으로

된 간이 식당이 미나리파전과 오뎅등을 장사한다. 오늘은 꽁꽁 얼어붙어 아예 문을 걸어 잠궜

다. 요즘은 장사를 안하시나?

 

 

 

 

국립공원 관리사무소가 번듯하다.

 

주차장에서 이곳까지 발걸음으로 측량한 거리는 1Km, GPS 도 유사한 값을 나타낸다.

 

 

 

 

산행 여유시간이 없군!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오후 1시 45분.

부산서 늦게 출발하였어도 여유있게 산행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대저-양산 구간에서

뜻밖의 지체와 정체를 겪는 바람에 시간이 촉박해졌다. 자칫 해가 저문 시간에 하산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체 거리가 10 킬로가 약간 넘는데......

 

 

 

겨울풍경

 

 

 

 

겨울풍경

 

이쪽 산의 특징이 늘 가물었다는 인상인데, 한겨울에도 계류를 건너는 길이 대여섯 군데다.

토함산보다 물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그도 그럴것이 지형자체가 산 속의 산이기 때문이다.

 

 

 

 

회귀의 갈림길

 

이곳이 무장사지 가는 방향과 무장산에서 암곡동 내려오는 길이 만나는 곳이다.

경사가 급한 3.1킬로 길을 버리고 직진, 무장사지로 가는 평지길로 이어간다.

 

 

 

어이쿠! 낙엽 속에 빠져버렸네.

 

계곡 속 풍경을 담을 욕심으로 잠시 계곡 쪽으로 내려가다가 낙엽 덤불 속에

쑤욱 빠져 그대로 엉덩방아. 쌓인 낙엽에 드러누워 가슴까지 덮혔다. 햐~....... 

 

 

 

 

 

정말 아무도 없네......!

 

두어팀이 새파랗게 몸을 움추리며 하산길을 재촉하며 다가왔지만 서로 냉랭하게 지나쳤다.

이 추위에 서로 인사를 주고받을 따뜻한 마음도 얼어붙어버렸을까? 그래도 하산하는 사람들

이야  곧 따뜻해지겠지만 산릉의 강추위 속으로 행진하는 외로운 나는 누가 위로해주리......

 

 

 

 

고개와 목책길

 

너른 길로 직진하면 능선 가는 길, 계단길은 무장사 옛터 탐방로. 

 

 

 

다음은 무장산과 무장사지에 관한 간단한 인용이다.

 

[국제신문] 근교산&그너머 <597> 경주 무장산 억새 산행

옛 오리온 목장터가 전부 억새밭

 

국토지리정보원의 지형도에도 표기돼 있지 않은 무장산은 포항 오어사를 품은 운제산과 경주 토함산을 잇는

이른바 운토종주길상의 그냥 스쳐 지나가는 624봉으로 불리다 지난해 한 산꾼이 정상의 조그만 돌에 '무장산'

이라고 적은 이후 지금까지 '무장산'으로 통용되고 있다. 지금은 돌 대신 '경주 무장산 624m' 라고 적힌 세로

모양의 나무판이 걸려 있다. (이 글은 2008년에 답사한 내용이다. 지금은 거대한 정상석이 위치한다. 인용자 

주*)을 반영하지그렇다고 '무장산'이 전혀 근거없는 이름은 아닌 듯하다. 바로 이 산 중턱에 무장사지 삼층석

탑이라는 보물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무장산은 무장사에서 비롯된 이름인 셈이다. 무장사는 어떤 절이었을까. '투구 무(), 감출 장(藏) 자를 쓰는

무장사(藏寺)는 태종무열왕(김춘추)이 삼국을 통일한 후 투구 등 병기를 묻은 곳이라고 삼국유사에서 일연은

적고 있다. 병기가 필요없는 평화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태종무열왕의 결연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경주시 암곡동에 위치한 무장산이 억새 산으로 변모한 것은 10여 년 전부터. 지난 1970년대 초부터 산 정상

부에 젖소를 키우던 오리온목장이 1996년 문을 닫으면서 그 너른 초지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차츰 억새군락

지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개 안부의 하늘금.

 

산과 하늘의 경계가 되는 우듬지(나무 꼭대기 줄기)들의 모습이 실체를 드러낸다. 꼭대기 줄기와

가지들이 사이사이 드러내는 여백은 외로운 산꾼의 발걸음에 힘을 더한다. 이제 산이 하늘을 만나

는 겨울 솜털의 끝에 도달한 것이다. 

 

 

 

 

산의 울음, 그 기나긴 포효!

 

솜털이라고 했지만 겨울 산이 울어대는 엄청난 굉음은 산릉에서는 흔들어대는 우듬지들의 진동으로

그끝이 더욱 기괴하다. 굳이 비유하자면 마치 태풍이 불어대는 바다에서 들려오는 소리보다 더하다.

 

오늘같은 산릉의 겨울바람이 이토록 매섭게 느껴지는 이유는 살갗을 에는 얼음조각 같은 냉기에도

있지만 그 소리 또한 도저히 화합하기 힘든, 너무나 거대한 양과 힘으로 모든 것들을 가차없이 흔들

어대기 때문이다.

 

잔잔한 계곡들이 많은 일대의 지형들은 온갖 음파를 만들어내어, 강한 바람이 쓸고 지나면 이곳저곳

에서 일시에 사연을 토해낸다. 산의 침묵은 겨울바람이 깬다. 깨진 침묵은 마치 어떤 거대한 짐승의

포효처럼 길게 웅장한, 그러나 그 끝은 너무나 섬세한 음파를 만들어 하늘과 땅을 진동시킨다.    

 

 

 

 

이 추위에 멧돼지들은...... 

 

그들이 진종한 자연의 존재라면 오늘의 추위는 예감했을 것이고, 지금쯤은 어느 삶터에서

옹기종기 몸을 섞어 보온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주린 배를 느끼며

살아갈 것이다. 배고픈 모든 생명의 긴장에 무한한 동정과 연민을 보낸다.

 

 

 

 

바람은 더욱 거세지고 그 끝에는 냉기의 바늘을 매달았다!

 

드러난 살은 모두 옷과 모자와 각종 커버 속에 감추었다. 그러나 맨몸을 드러낸 억새는 겨울 바람에

죄다 씻기어 단 한몸 외로운 줄기가 되어 구성진 울음을 울다가 일제히 드러눕다가 일순 정적에 잠

기기도 한다. 그리고 먼 하늘에서 내 뒤쪽으로 포항바다로 향해 엄청난 바람이 태풍처럼 몰아친다.

억새들은 일제히 높은 소리를 내며 서로 몸을 부빈다. 합창을 동반한 거대한 교향곡이 이 산릉에서

연주되는 것 같다. 

 

 

 

 

 

이 너른 산길에서 바람에 휩쓸려 비틀거리며 걷다!

 

 

 

 

 

일제히 드러눕는 메마른 순종

 

혹독한 것은 겨울바람이 아니라 의연한 인내다.

산이 되었기 때문에, 큰 나무가 되었기 때문에 스스로 혹독한 길을 가야만 하는 것.

 

혹독한 세월의 바람이 지나고 난 겨울의 끝에 삶의 참 모습이 그 빼대를 드러낸다.

산을 보라! 겨울산의 육질, 나무를 보라! 겨울나무의 나신......

 

그리고 나를 보라!

 

  

 

 

 

 

 

 

 

 

 

 

 

위 안내표, 현위치에서 0.9km,30분 코스를 택했다. 오늘 비로소 처음으로 맞는 소로길이다.

 

 

 

멀리 포항이 보인다.

 

 

 

 

 

산릉전체가 억새밭이다.

가을날의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동쪽 감포바다 쪽.

 

오직 산과 바람과 햇빛 뿐, 그리고 외로워서 행복한 나.

 

 

 

경주 일요산악회에서 주도하여 이곳에 근사한 정상석을 건립하였다.(2010.5.30. 제막식)

월성원자력발전소를 포함한 여러곳의 도움이 있었다고 하는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곳을

무장산이라 하지않고 '동대봉산 무장봉'이라고 칭했다.

 

무장산도 낯선데 동대봉산이라니.....싶었지만 토함산 정상에서 보았던, 절골을 사이로 우

측의 함월산, 좌측의 680 봉이 바로 동대봉산이었다. 680 동대봉산과 654 무장산은 능선

줄기로 이어져 있으니(직선거리 약 4.5 킬로) 주봉을 동대봉산으로 삼고 무장봉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이 산악회에서 공을들여 세워둔 것 같다.

 

옳으신 발상이다. 한갓 664 봉에서 적당한 이름짓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이미 알려진 무

장산으로 비를 세울 것인지 주위 산세를 고려할 것이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겠는가. 

주산의 영역 설정도 논란의 여지가 많고 엄연한 산을 부속봉으로 귀속시키는 것도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다만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일 뿐......  

 

 

 

 

 

.......!

 

 

 

 

......!

 

 

 

 

......!

 

 

 

 

춥다!

 

만약 한사람이라도 이 산릉에 있었더라면, 저 폐물이 되가는 전봇대에 눈길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이다. 그(전봇대)와 나의 직면이.

 

 

 

 

 

늦은 오후지만 해는 아직 서쪽으로 눕지 않았다.

 

 

 

 

3.1 킬로 하산로도 정취 만점.

 

 

 

 

이 중 약 1킬로는 경사가 급하다.

 

결국 물 한모금 마시지 않고 약 10 킬로를 돌았다. 점심도 안먹고 올란 터라 초코릿바 한 개를

억지로 깨물면서 비탈길을 걸어내렸다. 배낭의 따끈한 커피보온병과 500 cc의 물, 빵 세개는

고스란히 짐이 되고 말았다.

 

관리사무소에서 주차장까지는 배낭을 단단히 조여메고 조깅을 하였다. 1킬로 거리를 뛰면서

몸의 한기를 다 털어내고 긴장된 근육도 이완하였다. 조금 빠르게 지나가는 겨울농가의 풍경

을 바라보는 것이 행복하다. 아! 이 규칙적인 호흡. 나는 이 리듬이 좋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경주를 한바퀴 두르고 돌아오는 아내의 차가 진입하고 있다. 정확히 시간을 맞추었다. 

 

산행시간 3시간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