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04. 8. 10(화)~11(수)

일행 : 30대 후반 부부 2명

산행코스 : 비선대-양폭산장-희운각산장-소청-중청-대청-중청-소청-희운각산장(1박)

               희운각산장-공룡능선-마등령-금강굴-비선대-설악동


 

03시15분 일산을 출발합니다.

설악동에서 8시에 산행을 시작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부산을 떱니다.

가는 길은 여름 휴가철이 무색할 만큼 조용합니다. 달이 없어 길은 칠흑입니다. 후사경에는 빛줄기 하나 없습니다. 홍천쯤에 이르러서야 먼동이 트는 듯 강원도 산들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신호등 외에는 차를 막는 것이 하나도 없어, 한계령휴게소에서만 잠깐 쉬고 7시30분에 설악동소공원에 도착했습니다. 4시간15분 걸렸네요.


 

장기주차를 신청하고, 준비한 빵으로 아침을 먹은 후, 계획대로 8시에 설악동을 출발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도착한 곳은 비선대, 시간은 8시45분입니다. 선녀가 오르내린다는 비경에서 5분 정도 사진도 찍고 쉽니다. 앞으로 만만치 않을 산행을 생각하며 숨을 고르는 시간입니다.


 

이번 산행의 목표는 공룡능선입니다. 이보다 더 높은 대청봉이 설악의 최고봉이고 또 나로서는 처음 오르는 곳이지만 적어도 우리는 목표는 아닙니다.


 

9시25분 귀면암이란 팻말 앞에 도착했습니다. 귀신의 얼굴을 누가 보았다고 鬼面이란 이름을 붙였을까요, 그 이름을 확인해볼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공룡능선이라는 ‘거대한’ 목표앞에 사사로운 여유를 가질만큼 대범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희운각산장이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는다기에 서둘러야 한다는 심적 부담 때문입니다. 양폭산장까지는 앞으로 70분, 부지런히 걷습니다. 혼자서 오셨다는 초로의 아저씨랑 앞서거니 뒷서거니를 거듭하며...


 

뛰어들라고 유혹하는 오련폭포를 지나 양폭산장에 도착한 시간은 예상보다도 한참이 빨라 10시20분입니다. 등산화 끈을 다시 매고, 계곡물에 손도 씻습니다. 10분간 쉬며, 간식도 합니다.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깁니다. 돌을 맞부딪혀 쪼개놓은 듯한 절벽과 검푸른 숲 그리고 옥빛 계곡물이 더 없는 조화를 이뤄 우리들에게 시립해 있는 듯합니다.


 

양폭에서부터는 오르는 길이 한층 급해집니다. 붉은색 철계단의 경사도가 더욱 아찔하고, 돌계단들이 벌써 다리를 팍팍하게 만듭니다. 양폭산장에서부터 75분을 걸어 무너미고개에는 11시45분경에 도착합니다. 이 고개는 대청봉과 공룡능선길을 나누는 갈림길이기도 합니다. 초입에 ‘공룡’에 대한 경고가 붙어 있습니다. “아주 위험하다”고. 내일을 기대하며 우리는 대청봉길로 들어서 5분 후에 희운각산장에 도착합니다.

  

<희운각산장> 

 

 

산장에 숙박을 예약합니다. 선착순 1번입니다. 선반식 3층의 1번과 2번을 배정받았습니다. 점심은 라면에 햇반을 먹습니다. 지치고 땀을 많이 흘린 탓인지 입맛이 없어 겨우 식사를 마칩니다. 휴지로 닦는 마른 설거지 후 소청 오르는 길이 험하다기에 배낭 무게를 줄이고 나머지 짐을 산장에 맡깁니다.


 

젊은 등산객 하나가 컵라면 두개에 초코파이 한상자를 계산하는데 1만5천원을 받네요. 아무리 산장이라지만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배낭하나에 물 여섯통과 사진기만을 넣고 소청으로 향한 시간은 1시20분, 70분이나 쉬었습니다. 이제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소청가는 길은 듣던 대로 만만치 않습니다. 100m가 넘은 가파른 철계단이 산장앞에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수시로 다가서는 철제난간과 계단 그리고 급경사에 매달인 자일을 잡고 오릅니다. 오르는데는 아무런 의지가 있는게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장애물이 있어서 넘고 피하며 가는 것뿐입니다. 숨이 턱까지 차고 입에서 단내가 납니다. 옷이 흥건히 땀에 젖습니다. 아무데나 잡고 꾹 눌러짜니 물기가 줄줄 흐릅니다.

  

오르면서 잠시잠시 뒤돌아본 경치에 감탄이 절로 납니다. 공룡능선의 위용과 천불동계곡의 비경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산장을 출발한지 65분을 걸어 드디어 소청봉 도착합니다. 지도에 적인 90분 보다는 잘 걸었습니다. 소청에서 대청까지는 거의 평길에 가깝습니다. 20분과 15분을 걸어 각각 2시45분과 3시 정각에 중청산장과 대청봉에 도착했습니다. 대청봉에서 한참동안 사진을 찍습니다. 예닐곱분이 먼저 와 있어 사진 부탁도 하고 또 찍어도 드리고 하며 대청에서 ‘포만감’에 젖습니다. 햇빛이 아주 뜨겁습니다. 그리고 동해바다는 구름에 가려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만, 멀리 울산바위와 ‘공룡’ 그리고 계곡의 시꺼먼 숲과 대조를 이루는 하얀색 절벽이 장관입니다. 연신 사진기를 들이 대 봅니다만, 그걸 모두 다 담을 생각은 애초에 없습니다.

 

대청을 내려 산장에서 잠시 쉽니다. 식수도 제공하지 않을 만큼 물사정이 좋질 않네요, 대청서 희운각까지는 식수를 채울 곳이 전혀 없습니다. 설악산은 물이 많지만 등산객들에게는 식수가 부족한 곳 같습니다. 산장지기랑 몇마디 나누다가 하산길을 서두릅니다. 3시50분입니다. 소청으로 오르고 있는 분들의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아주 여유롭게 인사를 건냅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오르던 길 역순으로 중청과 소청을 거쳐 희운각에 도착한 건 4시50분입니다.

 

<중청서 본 공룡>

 

 

희운각에서 여유로운 저녁을 준합니다, 카레입니다. 배가 고픈 것에 비하면 식욕은 그리 없습니다. 연신 물만 들이키다가 식사를 끝냅니다.


 

산장에서의 1박은 악몽입니다. 다시는 이런 곳에서 잠을 자고 싶지가 않습니다. 호사를 바라는게 아닙니다. 1인당 배정된 넓이가 약40Cm, 칼잠을 자다보면 낯모르는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자는 것도 문제가 아닙니다. 코고는사람, 이빨가는사람 떠드는사람, 방귀끼는사람, 그리고 산장 밖에서 소줏잔이라도 기울이는지 왁자지끌 하여 아주 무딘 사람이 아니라면 이곳에서 잘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도 한잠을 못잤습니다. 밖에서는 추워서 못자고 안에서는 더워서 못잘 만큼 끼여 자자니 온 몸에 땀 투성입니다. 밤중엔 누군가가 산장지기에게 항의를 해대는군요, 어디 잠을 잘 수 있냐구요, 항의에 동감했습니다만, 같이 거들지는 않았습니다. 이렇듯 산장에서는 밤은 시간이 참 더딥니다.

산장지기는 언제나 등산객들 위에 ‘군림’하겠다는 생각을 지닌듯 했습니다. 비누 안되고 치약도 안된다, 쓰레기는 가져가라 라면국물도 버리지 마라, 맞습니다, 여기까지는 공감합니다. 자연을 보호한다는 대의명분 좋습니다. 그런데, 임시로 마련된 대형천막이 텅비어 있음에도 더위서 못자겠다는 이들에게 대안을 주지 않은 것은 왠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새벽에야 겨우 든 토끼잠을 깨서는 얼른 나와 버렸습니다. 아침을 먹고 산장을 나선 것은 7시30분, 산장지기에게 묻습니다. “‘공룡’을 가는데 물이 얼마나 필요하겠냐”고. 중간에 식수가 없다며, 1인당 1500ml를 챙기라고 하지만, 넉넉히 둘이서 4000ml를 챙겨 배낭에 넣습니다, 배낭이 묵직합니다.


 

처음부터 길이 험합니다. 산장서 같이 나선 부산의 50대 부부는 곧 처집니다. 자일을 잡고 급경사를 오르내리다가 25분만에 신선봉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와 있던 분께 사진을 부탁하여 찍고, 물을 마시며 5분을 쉽니다. 뒤돌아서면 대청이고 바른쪽 전방에는 울산바위 좌측엔 신령의 작품들 그리고 앞에서는 1275봉, 범봉 등이 톱날형상으로 무섭게 일행을 노려보는 듯합니다. 본격적으로 ‘공룡’에 들어선 느낌여서 잠시 기가 죽습니다.

 

<신선봉에서 바라본 공룡>

 

 

부산 부부는 한참을 뒤돌아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미안한 생각을 가지고 먼저 출발합니다. 절벽을 기어올랐다가 깎아지른 내리막을 오르내리기를 서너번 반복하다가 뱀 한 마리를 만나 깜짝 놀랍니다. 9시5분 샘터에 도착합니다. 수통에 물을 퍼담을 정도는 아니지만, 갈증을 해소할 수는 있을 만큼 충분한 양입니다.

희운각2.8Km, 마등령2.3Km. 1시간35분만에 절반 이상을 걸었단 얘기? 예상 외로 빨리 걸은 것같습니다. 샘터의 물로 갈증을 달래며 10분을 쉽니다. 1275봉에 도착한 것 샘터에서 꽤 험한 길을 30분이나 오른 후입니다. 그런데 왠걸 샘터에서 겨우 200m를 왔을 뿐이라는 팻말입니다. 뒤따라 오던 한분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습니다. 오이와 초코릿을 먹고, 다람쥐에게 간식도 주고 한참을 쉬었습니다.


 

이미 지나온 절반보다는 좀더 험한 길들입니다만, 위험을 느낄만한 곳은 아직 없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등산로가 무난한 편입니다. 또 정신없이 걷습니다. 나한봉 앞에서 앞서가던 부부 한팀이 움칠거리며 서성대고 있습니다. 살모사가 앞에 있다고 합니다. 아주 굵은 놈입니다. 뱀도 놀랬는지 꼼짝을 않습니다. 길을 가로 막은 놈에게 알파인스틱을 휘둘러대자 서성대던 부인이 기겁을 합니다. 다행히 뱀은 다른쪽으로 사라졌습니다. 이후부터 겁이 슬며시 듭니다. 머리위의 바위를 잡을때 뱀을 만지지나 않을까 하구요.


 

11시30분에야 나한봉에 도착했습니다. 공룡능선의 마지막 피크입니다. 군데군데 매여진 자일을 잡고 절벽을 오르내리느라고 힘이 쭉 빠졌습니다. 마등령갈림길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분들을 만났지만, 식욕은 없습니다. 잠시 인사를 나누고 11시50분 드디어 마등령정상에 도착합니다, 희운각을 출발한지 4시간20분만입니다. 1320m의 마등령은 ‘공룡’의 시작이자 종착점이라기에는 초라해 보입니다. 그래도 ‘공룡’을 넘어온 기념으로 이정표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었습니다.

 

<비선대 하산길에서 본 공룡>

 

이제부터는 비선대까지는 계속 내리막입니다. 중간에 포인트는 전혀 없습니다. 꼬박 2시간30분을 내려와서야 금강굴에 도착합니다. 마음 같아서야 그냥 지나치고 싶습니다만, 처가 딸애 때문에라도 올라야 겠다기에 군소리도 못하고 철계단을 오릅니다.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족히 몇십미터를 굴러야 할 만큼 경사가 가파릅니다. 경사도가 80°가 넘어 보입니다. 아찔합니다. 금강굴의 금강암 부처님께 참배하고 다시 하산을 재촉합니다. 비선대에 도착한 것은 2시50분입니다. 마등령서부터 거의 2시간30분간 너덜지대를 내려왔습니다. 참 지루한 길입니다. 정오의 햇빛이 정수리에 내려 꽂혀 뜨겁고 발목과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입니다. 아내도 말은 없지만 다리가 많이 아픈가 봅니다.


 

비선대에서는 한참을 쉬었습니다. 배낭을 베개삼아 하늘을 보며, 설악을 다시 밟아 올라갑니다. 슬며시 잠이 몰려올 찰라, 이게 뭡니까, 50대부터 20대 남녀 십여명이 우당탕탕 선잠을 깨웁니다, 풀장같은 계곡에 풍덩풍덩 뛰어 들어 캔맥주를 따고, 비누로 목욕하고, 빨래까지 하네요, 하도 어이가 없어 물었습니다. 무슨 동호회에서 오셨나 보죠? 아주 자랑스럽게 대답합니다. “아뇨, 코오롱등산학교 동기생인데요” 하도 어이가 없어 사진기에 이들의 ‘만행’을 몰래 담아 둡니다.


 

지난 이틀간 16시간 50분을 걸었습니다. 첫째날 8시간50분, 둘째날 8시간. 그렇지만 ‘공룡’에 대한 기대가 너무 큰 탓인지, 하산 후에는 실망일까요, 공허함마저 느낌니다. 설악으로 가기전 공룡능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으로 인터넷을 통해 몇편의 산행기를 구해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에 와서보면 하나같이 과대포장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산행기를 적었습니다. 누군가 처음 가는 ‘공룡’에 대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분이 계실 것같아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