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윽고 고개 마루로 올라 서는데 눈아래 펼쳐지는 하얀 억새 평원에 탄성이 절로 타진다.

끝없이 일렁이는 은빛 물결,은빛 물결...

단풍을 유난히 곱게 물들였다는 올해의 기후가 억새마저 흐드러지게 키워냈나보다.

 

영취산 정상에 까맣게 선 사람들의 모습이 억새 평원을 내려다 보고 섰지만 조금이라도 억새와 더 놀고싶어 우린 정상에는 가지 않기로 하고 점심을 먹고 쉬며 눈에다 억새를 담는다.

 

멀찍이 소풍온 어린이들 처럼 줄을 지어 억새길을 걷고 있는 산객들의 모습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아름다운 기억 하나를 얻고 갈것 같다.

여길 오길 참 잘했다.

 

 

 

오른편 암릉은 아리랑 릿지

왼편 암릉은 쓰리랑 릿지 모습이다

멀리 바라본 금강골.위쪽의 큰 폭포는 그 웅대한 몸을 암릉 뒤에다 숨겨,그 앞에 다가서기 전에는 볼수가 없다.

에베로 릿지 암릉 

건너 편엔 에베로 릿지 암릉이 날을 세워 뻗쳐

오르고,멀리 눈길이 맞닿는 곳에 금강 폭포

협곡에도 가을 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지난 봄에 올랐던 에베로 릿지.

웅대한 금강 폭포.

아름답고 짜릿 하지만 그렇게 심하게 어렵진

않았다.

기후만 좋고 방심하다 손만 놓지지 않으면

그렇게 위험한 코스는 아닌것 같았다.

그러나 그 앞에 서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금강 폭포는 그 입구에 막아선 바위를 타고 오르기가 어간 어려운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매인 밧줄이 실하지도 길지도 않아 어려움을 더해줬다.

적당히 비온후 사격장 훈련 없는 휴일에 날 잡아 한번 더 가기로 다짐 했었는데 그렇게 되어

 

팔을 앞뒤로 흔들지 않으면 자꾸 걸음이 늦어진다는걸 체험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남의 불행을 보며 사람들이 나타내는 반응에도 연령대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사실도 팔에다 깁스를 하고 다니며 알게 됐다.

 

육십대 이전의 사람들은 자신이 당했던 경험이 있는 경우가 아니면 관심을 나타내려 하지않았다.

경위를 궁금해 하고 가끔 조언도 해주는 사람이면 모두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사람들이었다.

 

반면에 거리에서 만나 생판 모르는 분이라도, 팔을 그리 다쳐서 어쩌냐,

이 더위에 고생스러워 어쩌냐고 진심어린 얼굴로 걱정 해주시고 안쓰러워 해주시며 지나가시는 분들은

 육,칠십 연세의 어른분들 이셨다.

  타인의 고통 까지도 자신의 피부로 느낄수 있을만큼의 넓이와 깊이는 연륜이 가져다준 선물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런데 거기서 좀더 연세를 드셔서 팔순 전 후로 보이는 어른분들 께선 노쇠한 자신의 문제가 힘겨워서인지,

괜히 말 걸었다 젊은이들 귀찮아 하지나 않을까 하는 위축감 때문인지,또는 삶의 희노애락에 초연 할수있을 만큼의

세월을 사신 때문인지  그저 한번 힐끗 쳐다 보시고는 곧바로 무표정으로 돌아가곤 하셨다.

 

지난 7월,비오고 많은 날이 지나지 않은날 엄니 몇명과 밀양의 어느 계곡을 찾았었다.

석남사에서 밀양행 버스를 타고가다 하얗게 쏟아지는 폭포가 계곡 저 멀리로 바라다 보이는 곳에서 하차를 해

재재 거리며 계곡으로 빨려 들어갔다.

 

억새풀과 잡목이 있는 산길을 얼마간 오른 후, 덤불 사이 사이로 층층이 걸려있는 다섯폭의 폭포를 바라보며

우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거슬러 오르며 더 많은 폭폭를 즐기고 놀다 두 계곡의 합수점에 이르렀다.

 

1미터는 좀더 될것같은 바위에 서서 그보다 조금 낮은 바위로 건너려고 한발을 내디디려는데 발등에

뭔가가 걸린다는 느낌이들며 그대로 꼬꾸라졌다.그 아래는 땅속에 박힌 바윗돌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었다.

큰일 났다는 생각을 하며 떨어졌다.

그러고는 턱에 심한 통증을 느끼며 어푸러진채 잠시 생각을 했다.

일어날수 있기나 할까?턱이 깨졌겠지?

손을 짚고 일어나려는데 오른손에 힘이 주어지지 않았다.간신히 일어났다.

순전히 내 힘으로 일어난게 아니라 민석 엄니가 뒤에서 잡아 당겨주고 해서 일어났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손목이 약간 이상했다.안쪽이 약간 볼록 해지고 바깥쪽이 약간 납죽 해진것 같다.

그렇지?물으니, 아닌것 같은데...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니면 다행이고.그래도 팔이 좀 이상한건 분명해.탈골이 됐나?통증은 없는데.

대수롭지 않은듯,염려 떨쳐 버린체 하고는 있지만 머리 꼭대기를 짓누르고 가슴 속을 엄습하는 뭔가가 자꾸

마음에다 그늘을 만들려 한다.

건너던 바위를 뒤돌아 보니 실낱같은 넝쿨이 두가닥 젖혀있긴 했지만 그 보다는 

바위 끝의 돌출된 부분이 원인이 아니었나 싶었다.

 

모두들 달려들어 나무를 꺾어 부목을 대고 압박 붕대로 팔을 동여매고 법석이었다.

1200山 김정길님 께서 올리신 산행기를 읽고,거기서 일러 주신대로 다 준비하진 않았지만

압박 붕대와 약간의 비품은 구비하고 다녔었다.하지만 그걸 실제로 사용 하리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베테랑 산꾼들이 그리 하는것 같으니까 그냥 산꾼인것 처럼 흉내 한번 내보자는 생각으로 ㅡ말하자면 폼을로 ㅡ가지고 다녔었다.

 

점심을 뜨는둥 마는둥 얼른 보따리를 싸서 짊어지고는 싸맨 팔을 치켜들고 울산으로 돌아왔다.

오는길에 병원엘 들렀다.턱은 타박상 이지만 팔목이 골절이었다.

재환엄니의 말마따나 너무도 아름다운 비경이라 공짜는 안되고 즐긴만큼의 대가를 치른것 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감히 범접한 죄과를 벌 받았음인지도....

 

3개월이 흐르고 영취산을 찾았더니 어느새 가을이 무르익었다.

민석 엄니 1 의 승용차를 이용.

언양에서 부산 방향으로 달리다 삼성SDI 조금 못미쳐 가천 표지판을 따라나가 LG주유소에서 우회전을 해

골목길로 접어들어 산아래 마을을 향해 간다.(주유소에서 좌회전 한다음 우측으로 난 포장길이 나오면 우회전 해서 가도 된다)

왼편으로 신천 저수지를 끼고 가다 느티나무 숲이있는 마을을 우회해 마을 뒷편 과수원 가는 길로 들어가 별장인지

무슨 연수원인지 지나 갈때마다 궁굼증을 일게하는 정체 모를 하얀 건물 아래다 주차를 한다.

 

건물의 진입로 인것같이 말끔히 포장된 길로 간적도 있는것 같고,제일 왼쪽의 흙길로 간적도 있는것 같은데

이번엔 흙길로 가기로 했다.

오솔길을 솔솔 단번에 걸으니 아래 계곡에 절이 보인다.

이야기 하며 오다 우측으로 난 길을 놓친것 같다.

절로 들어가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으로 난길을 따라 오르니 묘지를 지나고 길이 없어진다.

이런일 한 두번 격는것도 아니고 또 그러려니 하고 모두들 잡목과 덤불을 헤집고 트래버스 해 등성이로 난 길로 올라선다.

 

사격장 철조망을 왼편에 끼고 넓은 돌자갈 길을 한동안 오른다.

마침 날씨가 흐려 힘이 아주 적게든다.

왼쪽 저 높은 영취산 봉우리 방향으로 등을 넘고 너덜을 건너고 또, 다시 등을 넘으며 때때로 전망 좋은 바위를 만나 쉬기도한다.

 

아리랑 릿지,쓰리랑 릿지의 발치에 불이 붙기 시작한 단풍은 그 칼날같은 암릉 틈에 듬성듬성 수를 놓았다.

머리 위 까마득 높은 마루금에선 기암들이 늘어서서 작은 인간의 꼼지락 거림을 내려다 보고있다.

안개는 암봉을 휘감다 날아가곤 한다.

 

 

 

 

 

 

 

 

 

 

 

 

 

 

 

 

 

 

 

 

 

 

 

 

 

 

 

 

 

 

 

 

 

 

 

 

 

 

 

 

 

 

질지?사고 후 자꾸 위축이 된다.수량이 약간 많을때엔 하단의 작은 폭포는 아리랑 릿지 부근 적당한 곳에서 바라보면 눈에 들어온다.

아리랑 릿지 하단을 지나고, 오르는 경로 표가 붙어있는 쓰리랑 릿지의 암벽 아래를 지나 등성이를 오르는데 잎 떨어진 가지 사이로

릿지의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등산객 뒷편으로 에베로 릿지의 전경이 보인다

 

 

 

 

 

 

 

 

 

 

 

 

 

 

 

 

 

 

 

 

 

 

 

 

 

 

 

 

 

 

 

 

 

 

 

 

 

 

 

 

 

 

 

 

 

 

 

 

 

 

 

 

 

 

 

 

 

 

 

아리랑 릿지

 

 

 

 

 

 

 

 

 

 

 

 

 

 

 

 

 

 

 

 

 

 

 

 

 

 

 

 

 

 

 

 

 

 

 

 

 

 

 

 

 

2004년10월8일 (산행기가 좀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