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길과 심산유곡은 눈 이불을 걷어차며 기지개를 펴다


2005.02.05(토, 맑음)


미시령(10.30)→상봉(11:30)→화암재(12:00)→신선봉(12:40~13:30)→대간령(15:00~10)→마장터(16:00)→소간령(16:30)→창암(17:00)



겨울이 지나가기까지 서울 주변의 산들은 하얀 눈을 좀처럼 볼 수 없어 내 마음은 아직도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월력은 어느덧 일년 24절기의 첫 출발인 입춘절이 지나고 있으니 더욱 더 눈이 보고파진다.

며칠 전부터 눈밭을 가볼 욕심으로 스패츠도 사고 콜맨 버너도 사면서 눈 소식에 귀기우리며 어딜 갈까 궁리를 하는데 뫼솔 산악회가 설악산 미시령에서 진부령을 간단다.

미시령에서 진부령은 백두대간길이고 좀처럼 가보기 힘든 곳이라 이번기회에 무작정 그곳을 가기로 결정한다.
확인하니 한대가 이미 만차 상태다. 일단 대기자로 올려놓고 기다리는데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내일 아침 나오라고.

서울과는 달리 그곳은 눈으로 온 산하가 뒤덮여 있으리라는 기대로 벌써부터 마음은 그곳에 가 있다. 06시 50분 사당출발이다. 어제 저녁 대충 배낭을 꾸려 놓았지만 오늘만은 평소와 달리 특이한 산행이다.

아침을 생략하고 도시락도 없이 떠나는 산행 게다가 산행거리도 만만치 않은데 일단 주방 한구석에 굴러다니는 고구마를 몽땅 넣고 사과 2개와 꽂감 그리고 온수를 챙겨 온 가족이 잠들어 있는 이른 새벽에 조용히 집을 나선다.

동네 어귀 미니스톱만은 불을 밝힌 채 젊은 친구 혼자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양갱 두개를 비상식으로 사면서 내가 지불하는 것이 고작 일 천원이고 보니 밤새 어느 정도 매출을 올리는지가 궁굼해 진다.

그 친구 머뭇거리 길래 한 십만원 정도 되느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한다.
밤새 가게를 지킨 젊은 친구의 일당을 물으니 시급으로 3천원 하루 8시간 근무란다.
아직 출발할 시간도 여유가 있어 그 청년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 본다.

병역의무를 필하고 방사선학과를 졸업했단다.
하면 자신의 전공을 찾아 가야지 물으니 적성에 맞지 않아 졸업은 했지만..... 다른 길을 찾는 중이란다.

수고하라는 인사말을 나누고 우리 아들 녀석 문제를 생각해 본다.
서울시내 모 대학에 합격되어 등록금을 내야한다고 무작정 때를 쓴 아들 녀석의 요구를 받아드리지 않고 납부시한을 넘겼다.
남이 가니 나도 무작정 진학하고 보자는 식은 곤란하다는 생각으로 고심한 끝에 대학진학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일찍부터 이문제로 아들 녀석도 고민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보기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

본인의 적성을 생각지 않고 아무 학과나 들어가면 이 친구처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고 그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낭비만 초래할 뿐이다.
진학후 전과도 할 수 있다는데 하는 막연한 생각만으론 곤란하다.
과연 무슨 학과로 전과할 것인지 또한 가능한 일인지 어느 정도 전과가 허용되는지 구체적으로 따져 봐야 할 일이다.

요즘 우리 주변에 대학 졸업후 갈 곳을 못 찾아 방황하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가.
직원을 모집하는 회사입장에서도 학력이나 출신학교보다는 그 친구를 채용해서 얼마만큼 회사가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를 따져 볼 수밖에 없지 않은가.
어찌됐든 고졸학력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정신 차리고 자신의 갈 길을 지금부터 찾아 가야 한다.

사당역 지정된 장소에 이르니 어두컴컴한 중에서 한 두분씩 산님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등산차림의 어르신 한분이 계시 길래 설악산 가시냐고 물으니 그렇다 하신다.
자세히 보니 연세가 지긋하신 분(적어도 65세 이상)이다. 보문동에서 지하철로 방금 도착하셨단다.
이어서 부천에서 오셨다는 50대 중년 여성분 그리고 가양동에서 오신 50대 후반의 중년 남성분도....
차림새로 보아 모두가 산행경력이 대단하신 분들 같다.

예정대로 2대의 버스가 도착되고 서초 구청 앞을 지나면서 빈 좌석이 가득 채워진다.
처음 가보는 안내 산악회 대부분이 40대를 넘긴 중장년층이다.

양평을 벗어날 뜸 한 휴게소에 들러 20분간 휴식한다. 이 시간에 아침 들고 커피도 마시며 이런 저런 용무를 보느라 바쁘다.
나는 차중에서 배급받은 따뜻한 콩떡 한 조각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양평군을 벗어나 드디어 강원도 홍천군으로 접어들었다.
09시 30분이 지나 차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은 봄날처럼 완연하고 이미 봄으로 접어들었는지 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벌써 겨울도 지나가고 있음이 확실하다.

올해는 아들 녀석 대학진학문제로 그리고 우리 딸 취업문제로 아내는 근무환경 변화로 모두가 새로운 문제에 부닥치면서 돌파구를 찾아 가야 한다. 나 역시 특별한 일 없는 것 같지만 가장으로서 중심을 잃지 않도록 심신을 관리해야 한다.
그야말로 우리 가족 모두가 중대한 변환점의 기로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우리 딸 군 입데 최종합격자 발표일이다. 궁굼한 생각으로 핸드폰의 전원을 켜는데 조금 있으니 신호가 깜빡거린다. 최종 합격했어요. 3월 28일 입대한다며 설악산 잘 다녀 오세요라는 딸의 멧세지다.
딸의 소원데로 되었으니 한 가지 시름은 풀린 셈이다.

그 녀석은 어릴 적부터 치마를 싫어하고 태권도를 배우겠다고 했으니 군 생활이 적성에 맞을 듯싶다.
동생 녀석은 누나가 군 지원한다고 하니 시집 못 간다며 반대했었는데...
아니 하나밖에 없는 누이, 평소 부모보다 가까운 누이로서 많은 의지가 되어 주었던 누이가 군을 지원한다니 그게 당장 싫었던 모양이다.
헤어짐이 싫더라도 이젠 성년이 되었으니 저마다 부모 곁을 떠나 독립해야 한다.

창밖으로 익숙한 강풍경과 빙어 낚시꾼들도 보이니 인제 원통을 지나는 모양이다.
한계령 갈림길에서 진부령 쪽으로 달려가면서 차창 밖을 살피는데 아직도 수북히 쌓인 눈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 산행코스와 주의사항을 전달하신 대장님은 미시령이 가까워지면서 정상부근은 쾌 눈이 많이 쌓여 있다며 스패츠를 착용하라 하신다.
드디어 미시령 휴게소 건물 앞에 정차한다.(10:30)



도착하자마자 작전하듯이 휴게소는 들르지 않고 곧바로 산사면 눈길을 따라 오른다.
나도 뒤따라 무작정 올라간다.


능선에 이르니 드디어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그 유명하다는 칼바람은 아니다.
날씨는 쾌청한 편인데 약간의 가스층이 형성되어 울산암 쪽은 형체만 알아볼 뿐이다.





능선 길은 강풍으로 눈이 날아가 버렸는지 군데군데 돌작밭이 들어나 있다. 상봉이 가까워지면서 선두의 진행속도가 느려진다. 선두의 발자국을 이탈하여 눈밭으로 질러가려 하니 무릅까지 푹푹 빠져 진행속도가 나지 않는다.

제법 올라왔는지 저 건너편으로 대청봉과 중청 화채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속초시 온정리와 미시령 고개길도 한눈에 들어온다.





상봉 돌탑에서 오늘 가는 코스를 확인하는데 바로 맞은편 봉우리가 신선봉이란다.
오른쪽으론 동해바다와 간성읍 그리고 저 멀리 대간령 그 위로 마산봉이, 넘어가면 진부령이란다.





하얗게 쌓인 눈으로 산의 윤곽이 선명한데 진부령으로 하산키 위해서는 대간령까진 늦어도 14시까지 도착되어야 한단다.
선두그룹에 속한 나는 그들과 함께 열심히 올라간다.
뒤쳐지면 진부령은 포기하고 대간령에서 곧바로 창암으로 하산해야 하니....

간간이 로프에 의존하며 급경사 길을 내려가는데 음지라서 인지 눈이 그대로 쌓여 있고 신선봉으로 오르는 길도 온통 수북히 쌓여 있어 진행속도가 무척 느려지고 게다가 길을 이탈하여 나무와 숲을 헤치며 오르다보니 더욱 더 힘이 든다.





드디어 돌무더기가 나오더니만 신선봉이 가깝다.
이곳은 설악산과 달리 멋찐 암봉은 보이지 않고 너덜지대의 바위 모습이다.








돌무더기는 양지쪽이라 이곳에서 대충 활동 에너지를 보급한다. 나 역시 고구마와 사과 한개 그리고 따뜻한 물로...


대간령으로 가는 길도 온통 눈이 쌓여 주변의 리본을 찾아보는데 보이는 리본의 위치는 후진하는 쪽이란다.
잠시 주저하며 이곳 저곳의 방향을 알아보는데 산행 경험이 많으신 한분이 무조건 저 아래 바위 왼쪽으로 내려가야 한다며 앞장서신다.



그 분의 발자국만 따라 내려가는데 반가운 리본도 보이기 시작한다.
대간령까지의 하산길 역시 음지쪽이라 수북히 쌓인 눈이 그대로 있어 허벅지까지 눈에 파묻히면서 밀치며 미끄러지듯이 내려간다.

간혹 너덜지대를 통과할 땐 크래바스에 빠지는 위험을 감내해야 하지만 선두만 그런 위험에 처할 뿐 우리는 그들이 만들어 놓은 발자국만 따라 가면 되니 안심이다.
가끔 선두가 크래바스에 빠진 흔적이 보인다.



정신없이 그저 앞만 보고 눈속을 헤치고 가는데 쌓인 눈이 성벽처럼 높아 보이는 지점도 있다.
역 부러 우회길을 개척하며 진행한다.




대간령 넘어 병풍바위와 마산봉이 점점 선명하게 다가오는데 제법 높아 보인다.
마음은 그곳에 올라 진부령으로 하산했으면 하지만 지금 같은 더딘 진행으로는 어렵다하신다.






불가불 대간령에서 창암으로 하산한다며 오늘의 산행일정을 수정 공표하신다.

아무래도 그렇게 하는 수밖에 벌서 3시가 가깝지 않은가





대간령에서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기념사진 찍고 곧바로 계곡 길을 따라 하산하는데 이곳도 역시 수북히 쌓인 눈으로 진행속도가 느리기는 마찬가지다.

그야말로 하늘만 바라볼 수 있는 심산유곡이다.




선발대가 남긴 발자국만 따라 눈과 얼음으로 뒤덥힌 시내를 여러 개 넘어 이리저리 계곡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는데 갑자기 강아지 짓는 소리가 들리더니만 연기가 피어 오르는 천막 지붕의 집 한채가 보인다.




이제까지 오면서 만나는 산천초목 모두가 두터운 눈 이불을 덮고 아직도 깊이 잠들어 있었기에 심산유곡의 깊은 겨울잠을 깨우는 강아지 소리가 더욱 반갑고 귀엽다.



가까이 다가가 강아지를 안아 주고 싶은데 앞서 가신 분들은 시야에서 사라진지 오래인지라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다.
태양빛도 옅어지면서 서산 가까이 기울고 있으니.
그래도 아쉬운 마음은 계속 그쪽을 주시하는데 누군가와 대화하는 말소리도 들려온다.

전기도 없는 이런 심산유곡에서 무엇을 하시며 어떻게 먹거리를 조달하시는지 그리고 어쩐 일로 이런 곳에서 살게 되었는지?
하룻밤 그들과 머물 수 있다면 좋으련만.....

곧 마을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달리 재(소간령)를 넘고 시냇가를 따라가는 계곡 길은 한참동안 계속된다.




깊은 겨울잠에 빠져 있던 계곡물도 가끔씩 흰 눈 밖으로 해맑은 얼굴을 내밀어 잘 가시고 신록의 계절에 꼭 다시 오시란다.
냉큼 다가가서 한잔 마셔 보고 싶지만 역시 선두가 보이지 않는지라 못 본채 가던 길을 그대로 진행한다.



대간령에서 하산한 만큼의 거리를 내려 갔다싶은데 드디어 차 소리가 들리면서 미시령으로 오르내리는 신작로가 저 건너편으로 가깝다.





조그만 군 훈련장을 지나 얼어붙은 냇가를 건너 차도에 오르니 건물 한 채가 보이고 앞서 가신 분들이 벌써 승차 준비를 하신다.(17:00)
내 뒤로 아무도 보이지 않아 꼴지로 도착한 기분이다.

줄지어 차에 오르니 한차 가득하다.
아니 이렇게 앞서 오신 분들이 많다는 것인가.
나도 열심히 내려 왔다고 생각되는데 대단하신 분들이다.
중년 여성분도 계시고 대부분이 50대를 넘긴 분들 같은데.....
곧바로 그곳을 출발하여 용대리와 남교리를 지나간다.

스패츠를 했음에도 눈이 들어갔는지 산행 중에 아무 말 없던 발이 괴로워 한다.
마치 빗속을 거닐 때처럼 온통 축축하고 ...
여분의 양말로 갈아 신고 바람을 쐬게 하니 기분이 좋아 진다.

약 한 시간 정도 달려가다 한 휴게소에 들러 따끈한 우동국물로 긴장된 몸을 녹이고 들어오니 후미 차량도 이제 출발했다 한다. 어둠이 잦아드는 시간인데 후미를 맡았던 대장님은 모든 분들 확인하며 이끌고 오시느라 늦은 시간까지 수고 많이 하셨을 것 같다.
같은 시간에 올랐건만 산행을 하다보니 선두그룹과 후미 그룹간에 이렇게까지 간격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입춘이 지나가면서 가는 겨울이 더 더욱 아쉬워 무조건 달려 왔지만 심산 유곡과 백두대간의 한 자락을 거닐며 온종일 깊은 눈 속에서 즐거워했으니 다행이다.
나 홀로 감히 이런 곳을 다녀 볼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동안 외면해왔던 안내 산악회야말로 안전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가장 저렴하게 산행 범위를 넓혀 가는 데는 최고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갈 때나 올 때나 무엇을 생각하는지 대부분이 침묵에 잠겨 있어 나로서는 다행이다.

하지만 연세 드신 분이나 젊으신 분이나 오로지 산이 좋아 산을 찾아 떠나온 우리들이기에 고요한 침묵 속에서도 따스한 온정은 하나로 통하는 것 같다. 마치 얼음장 밑으로 조용히 흐르는 시냇물처럼....

*사진이 않보이시는 분은 아래와 같이 해 보세요.
익스플로러를 실행시키고
상단에 있는 '도구' 를 누릅니다.
'인터넷 옵션' 을 선택하고
'고급' 을 선택합니다.
그럼 뭐가 쫘악 뜨는데,
'URL을 항상 UTF-8롤 보냄' 항목 앞을 보시면 박스 안에 체크가 되 있을 겁니다.

그 체크를 클릭해서 지우세요.
그다음 '적용' 버튼을 누르고 시스템을 다시 시작합니다.

재 부팅후 익스플로러를 실행시켜 열어 보시면 사진이 보이실 겁니다.
제 사진 주소에 한글명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인데 다음부터는 영어로만 해서 이런 불편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래도 아니되시는 분은 okmountain.com 에 들어가셔서 "미시령에서 대간령까지 온종일 눈밭에서"를 보세요.

좋은 나날 되시길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