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시작

영각사-남덕유산-무룡산-동업령-북덕유-무주구천동-백련사


자, 이제 시작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덕유산 겨울산행을 지금 시작하는 것이다.

덕유산에 인사라도 하듯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무리 중간에 우리일행과 함께 그 첫발을 내딛었다.


렌턴을 굳이 켜지 않고 걸어도 될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만큼 달은 밝았다.

모두들 마음속에는 무사히 종주를 마치기를 기원하면서 한국의 히말라야인 덕유산의 설경을 모두 담아가리라 생각하며 영각사 매표소를 지나쳤다.


매표소는 썰렁했다.

영각사 매표소 출입구는 우리 일행을 집어삼키며 덕유산의 첫테이프를 2시 50분에 통과했다.

산행로 좌우로는 눈이 쌓여있기는 했으나, 그리 많지는 않았다.

등과 이마에서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숨소리가 고요한 산의 적막을 울리기 시작한지 약 30분이 지났을까..

웩~ 웩~ 탁 ~ 탁...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들어 보니, 산악회 일행중 육십령휴게소에서 먹었던 김치찌개가 문제인지, 힘겹게 토해내고 있었다.

등을 두들겨 주고 있는 일행은 너무 많은 식사량과 불과 30여분이 체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가파른 길을 오르게 되어 그렇 것 같다고 말하며 동료를 위로하고 있었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나도 사실 그 모습을 보기전부터 속이 많이 부담스렀으니까.

부디 다 토해내고 함께한 일행들과 함께 산행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우리 일행은 다시 발길을 제촉했다.


산행이 그리 많지 않은 그 선배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 바로 내 뒤에서 따로 오는 것 같은데, 자꾸 뒤로 쳐지는 것 같다.

조금 오르고 숨을 고르고 있으려니, 땀으로 범벅이 된채로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잠시 쉬고 있는 우리를 보면 반가움과 얼마나 더 가야해 라는 물음이 얼굴에 비쳐진다.

“괜찮어?” 라는 물음을 하니 씩 웃으면서 하는말이“괜찮겠냐!”라고 한다.


함께한 산악회 무리의 중간쯤에서 우리는 산행을 시작했고 앞과 뒤로 조그만 불빛이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반딧불처럼 보인다.


바람이 점점 세지는 것 같다. 뺨을 스치는 바람이 칼날처럼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심상치 않다.

하늘에 떠있는 달은 점점더 밝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남덕유산 정상이 가까이 오는 것 같다.

약 2시간이 좀 지났을까 드디어 그 공포의 철계단이 나왔다.

이 철계단을 오르면 1차 관문은 통과하는 구나라고 생각하며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올랐다.


우리일행중 산행경험이 많은 나의 동료는 저 만치 앞서가고 있어 보이지가 않았다.

남덕유 정상에 올랐다. 이정표를 보니 영각사로부터 3.4Km 였다.


 

정상은 그리 넓지 않았다. 몇몇 분들이 분주히 땀을 닦아내면서 카메라를 들고 남덕유정상 푯말이 있는 곳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배낭을 바위옆에 내려놓고 뒤따르는 2명의 일행을 기다리며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정말 장관이었다.


손을 들어 별을 가리키면 그별이 내손에 들어올 것 같았고, 하늘의 달은 정말로 밝았다.

렌턴에 비친 몇 발자국 앞만을 바라보다 1차 관문인 남덕유 정상, 그것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어두운 밤(?)에 달빛을 그대로 받고 서있는 남덕유의 정상은 그렇게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땀이 어느새 멎고 약간 싸늘함이 느껴지는 시작하니 마지막 우리의 일행이 올라왔다.

지친 기색이 보이기는 하지만, 정상에 올랐다라는 만족감과 달빛에 비춰지는 주위의 경관이 긴 호흡뒤에 더할 수없는 성취감을 주는 듯 보였다.

자 이제 큰 고비 하나를 넘겼으니, 남은 여정도 잘 할 것이라고 힘을 북돋아 주었다.

너무 긴시간이었을까 5분정도가.. 최종 후미 등반대장이 도착한 후 우리는 다음목적지를 향해 발을 돌려야 했다.


남덕유 정상을 지나 다음목적지로 가는 길은 힘들다기 보다는 까다롭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한발 한발 내려놓을 곳을 신중히 선택하며 고개를 들어 산저편의 철계단을 오르고 있는 반딧불을 보니 마치 영화 “반지의제왕”에서 나오는 영화의 한 장면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멋있다. 위험할 수도 있다. 발 하나를 잘못 디디면 바로 아래로 떨어 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길을 놓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길은 전문 산악인이 아니면 오를 수없을 것으로 보였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중에 하나가 지금부터 삿갓재 대피소까지 여정이다.

멋있는 장관도 잠시, 새벽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바람은 점점더 강해지는 것 같다.

시간은 5시를 넘어서고 있고 월성재(치)를 넘어서고 있고, 우리 일행은 좀 더 서두르기 시작했다.

남덕유까지 오르는 동안 많은 에너지를 쏟은 것일까, 배도 고파지는 것 같고 어느정도 몸이 적응을 한 것일까,

힘겨움 보다는 추위가 엄습해오고 있어서 일 것이다.

아이젠을 끼지 않으면 안되는 것 같다. 눈과 얼음이 내리막길에서는 중심을 흐트려 놓고 있다. 배낭에 꺼낸 아이젠을 서둘러 등산화에 채운 후 한결 나은 발걸음으로 내리막길을 내려올 수있었다.

어둠이 거치고 있었다. 머리로부터 눈위에 비치는 불빛이 그리 밝지가 않다. 건전지가 다되었다 싶어서 손을 가져가 보니 아직 생생하다. 아,,, 날이 밝아오면서 어둠이 거치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현상이었다.

아, 예정된 목표시간보다 약 10여분 늦게 삿갓재대피소에 도착할 것 같다.

0.5KM 라는 이정표를 보는 순간 허기짐을 느꼈다.


삿갓재 대피소 7시 15분 도착

삿갓재대피소는 아담했다.

나보다 앞서간 일행은 간이의자에 배낭을 벗어 놓고 샘터로 내려가는 쪽으로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아마도 일출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것 같다.

나를 보면서 던지는 말은 배고파 죽겠다. 밥먹자...

얼굴을 보니 정말 그러해 보였다. 4시간30분정도의 왔으니 배고프지...나도 예전 설악산에서의 그 배고품을 기억하며 서둘러 코펠과 버너를 꺼내 취사장으로 갔다.

취사장에는 이미 선두 그룹의 일행들이 삼삼오오 모여 밥을 먹고 있었으며, 그중에는 선두그룹을 리드하고 있는 대장도 보였다. 휴~~ 안심이다.

꽤 많이 뒤쳐졌을 것으로 보였는데, 밥먹는 상황을 보니 이제 막 준비가 끝나서 먹고 있는 듯 해보였다.

우리도 서두르자..

취사장 밖으로 나가보니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동료와 아직 도착하지 않은 2명중 1명이 대피소에 막 도착 하고있었다.

잠깐 숨을 돌린 후 취사장으로 안내를 했고, 뒤이어 사진을 다찍은 동료가 취사장으로 들어왔다.

준비해 온 라면과 햇반을 꺼내 물이 끓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왠지 버너가 이상하다.

화력이 약하다. 등반대장과 주위에서 식사를 하는 분들의 버너는 다르다. 화력이 너무 좋은 것이다 그것도 소리까지 강력하게 내뿜으면서..

옆에 있던 등반대장이 식사를 다 마쳤는지, 겨울산에는 휘발유 버너를 사용한다고 하면서 급한데로 자신들이 쓰던 버너를 빌려줘 금새 물을 끓일 수있었다.

거기서 한마디 더 곁들여 주는 것은 산에서 라면을 끓일 때는 물과 라면 스프를 모두함께 넣고 끓이면 불지도 않고 빨리 라면을 끓일 수 있다고 한다.

오우 감사합니다. 좋은 가르침 너무 감사합니다. 라고 하며 아침 먹을 준비를 서둘렀다.

마지막으로 1명의 우리 동료가 도착했다.

기진맥진, 얼굴이 말이 아니다. 그 뒤로 후미등반대장이 도착하고, 왠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우리는 모두 괜찮아? 어때 할만해? 라며 상황을 묻고 있었다.

그 선배의 한마디는 안돼겠다. 나 탈출해야 겠다.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무어라 말을 할 수없었다. 처음부터 무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해 낼 수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왔는데, 중간에 포기한다고 하니 아쉬움과 다음 일정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걱정이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밥을 먹으면서 생각하기로 하고 라면을 건넸다.

난, 자 많이 먹고 힘내봐. 배고파서 그럴 수도 있으니, 많이 먹고 나면 달라질 거야라며 몇마디 건넸으나,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옆에서 후미등반대장이 한마디 건낸다. 체력이 안되는 것 같다. 여기서부터 중봉까지는 선수들도 힘들어하는 구간이니, 다시한번 잘 생각해서 신중히 판단을 하라고 한다.

그 선배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긴 한숨과 함께 탈출로를 선택한다.

다행히 2명의 일행이 함께 탈출로로 간다고 하여 3명이서 하산하여 삼공리 매표서 차량이 서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우리는 일행 한명을 돌려보낸다는 생각이 마음에 걸리는지 밥 먹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다.

그러나 어쩌리, 아직 삼분의 일정도 왔고 분위기상 제대로 밥을 먹을 수있는 여건은 하산후에나 가능할 것 같아 남아있는 라면과 밥을 서둘러 먹고 정리를 마쳤다.


시간이 많이 지체됐다. 아침준비와 일행의 중도 포기결정 때문에 후미그룹에 속하게 됐고, 후미등반대장은 서둘러 줄것을 요청하며 우리와 함께 후미그룹에 속한 서너명과 함께 대피소를 빠져나왔다.

 

[3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