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2. 6(일)
ㅇ 코스 : 증심사지구식당주차장-바람재-임도-토끼등-동화사터-중봉-서석대- 입석대-장불재-중머리재-증심사(12km. 5시간40분)
ㅇ 찾아간길 : 경부고속도로-광주요금소-동광주 I.C-직진으로 4사거리2개지나-제2순환도로-학운I.C-좌회전


   남도 땅에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들으니 무등산을 찾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다. 폭설로 인하여 피해를 보신 분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였지만, 아내와 봉다리 회원 중 지리선녀, 제갈량과 함께 기어이 무등산행을 결행하고 만다.

  

   08시에 대전을 출발하여 약 2시간여만에 증심사지구에 도착하니, 차량이 많이 밀리고 수많은 등산객들이 길 양옆을 가득 메운 모습에 놀란다. 멀리서 오신 분들도 있겠지만 대부분 광주 시민들로 보이는 분들이 삼삼오오 산을 오르는 모습을 보니, 이 고장 사람들은 타지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등산을 사랑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결국 증심사 주차장까지 가지 못하고 길옆의 식당 하나를 골라 유료주차를 마친 후 등산길에 오른다.

  

   등산을 시작하는데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입장료가 없다는 것과 길 양옆의 식당에 먹거리가 풍부하다는 것이다. 무슨 무슨 기념품이다해서 비싸기만 한 가게들이 아니라 값싸고 맛나 보이는 음식들과 특히 보리밥집이 즐비하다. 시뻘건 포기김치에 돼지고지 한 점 싸서 시원한 막걸리와 한 잔 하고, 그 다양한 밑반찬의 보리밥을 쓱쓱 비벼 한 대접 먹고 싶은 마음이 산행초입의 발길을 자꾸만 붙들고 늘어진다. 하산길에 거하게 한잔하자! 애써 마음을 달래고 맨 침만 꿀꺽꿀꺽 삼킨 채, 바람재 길로 길을 잡고 본격적인 산행에 접어든다.

  

   바람재 오름길과 임도, 토끼등에서 동화사터 오름길에는 눈이 아직도 많이 쌓여 있어 아이젠을 하지 않고는 도저히 오르지 못한다. 눈이 온 지 며칠 지난지라 양지바른 곳과 나무 위에는 눈이 녹았지만, 응달 진 곳과 등산로에는 아직도 상당한 양의 눈이 쌓여 있고 미끄럽다. 이런 길을 봉다리 두 회원은 아이젠도 없이 잘도 오른다. 언제 보아도 참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게 하는 산우들임이 틀림없다.

  

   저 번 주 소백산 오름길에서 고생하였던 아내는 오늘도 역시 오름길에서 애를 먹는다. 그래도 매번 산에 오를 때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 다행이다. 약 2시간 30여분의 오름질 끝에 동화사터에 올라 점심을 먹는다.

  

   컵라면과 찬 밥 한 덩어리, 신김치 밖에 없지만 등산길에 먹는 점심은 언제나 맛이 있다. 곁들여 복분자주와 특별주 한 잔으로 건배를 하고 나니 힘들었던 오름의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봉다리 회원과 처음 산을 같이 한 아내도 점심을 먹고 나니 많이 친숙해진 느낌이다. 간간이 농담도 건넨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산이라는 것이 참 사람의 마음을 가깝게 해주고 있음을 오늘 산행을 통하여 다시 한번 느낀다.

  

   점심을 먹고 이제 중봉 가는 능선길에 들어서니 무등산의 줄기가 한 눈에 들어온다. 산의 능선줄기가 참 부드럽고 멋있구나 하는 것이 첫 느낌으로 다가온다. 우렁차게 솟아올랐다가 천천히 흘러내리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한줄기 곡선과 멀리서 보아도 뚜렷한 특이한 암봉들의 군락이 중봉 가는 길목의 발길을 바쁘게 한다. 아! 어서 빨리 저 서석대를 보고 싶다. 마음마저 급해진다. 모두들 발길을 서둘러 중봉에서 장불재 가는 길의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급경사 길을 치고 올라간다.

  

   이제까지의 오름길 중에 가장 급경사이고 눈이 가장 많이 쌓여 있는 서석대까지의 오름길. 많이 미끄럽고 가파르지만 서석대를 보고 싶은 마음에 아내도 잘도 오른다. 얼마쯤 올라갔을까 그런 길을, 바위 몇 개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거대한 바위절벽이 눈앞을 가로막고 선다. 아!!이곳이 서석대구나!! 제주도의 주상절리 같은 바위들이 시선 가득 펼쳐진다. 참 특이하고 멋이 있다. 주상절리의 바위들은 용암이 바다로 떨어지며 갑자기 식어 만들어 졌다는데 이 곳의 바위들은 그 주상절리의 바위들이 화산으로 솟아올라 이루어진 것인가? 커다란 건축물의 기둥들 같은 바위들이 볼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한참을 서석대를 바라보다 얼른 몇 걸음 더하여 서석대 정상 위에 올라선다. 천왕봉의 암봉과 서석대 주변의 암벽들, 지나온 중봉의 줄기들과 광주시가지가 한 눈에 들어온다. 멋있다. 광주시민들은 참 복 받은 사람들이구나. 이렇게 좋은 산을 진산으로 가지고 있다니--- 이 곳 저 곳을 배경으로 흐르는 시간을 멈추어 세운다.

  

   서석대의 아름다움에 취하여 일어설 줄을 모르는 동행인들을 이끌고 이제 천왕봉으로 향하려 하는데 철조망이 치어져 있어서 갈 수가 없다. 군사시설이 들어와 있어서 통행을 금지하고 있단다. 아니 아직도 광주의 하늘을 군대가 지배하고 있다니---도대체 광주하고 군대하고는 무슨 악연이 있기에 이토록 긴 세월을 함께 한단 말인가?

  

   아무리 국가안보가 중요하다고 하여도 저 아름다운 천왕봉의 주변을 마치 금기의 땅처럼 둘러치고 있는 군사시설을 보니 불쾌하기 그지없다. 이 빛고을의 땅에서 일어난 한줄기 빛이 결국은 이 땅의 독재를 무너트렸듯, 어서 빨리 저 군사시설이 없어지고 무등산을 광주시민들의 품에 안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하게 인다.

  

   몇 번을 천왕봉과 철조망을 번갈아 가며 바라보다 천천히 아쉬운 마음을 안고 이제 하산길로 접어든다. 장불재로 향하는 길목. 넓고 완만하고 아기자기한 암릉들이 눈을 즐겁게 해주는가 했더니, 갑자기 앞서가던 봉다리 두 회원이 입을 벌리고 서 있다. 무엇 때문에 그래. 나도 얼른 그들이 보고 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아! 나도 모르게 입을 벌리고 만다.

  

   입석대다. 서석대와 같은 종류의 바위지만 가까이서 보는 입석대의 바위들은 가히 장관이다. 특히 약간 앞으로 떨어져 나와 있는 커다란 바위기둥 하나. 중간에 금이 간 채 얹혀 있는 모습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도대체 아름다움에 대한 자연의 표현능력은 얼마나 되는 것인지? 자연 앞에 설수록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초라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장불재를 지나 중머리재, 증심사로 향하는 본격적인 하산길에 접어든다. 역시 아내는 하산길의 명수다. 봉다리 회원들도 잘 따라오지 못한다. 눈이 녹기 시작하여 질퍽질퍽하거나, 응달지어 미끌미끌한 길을 잘도 내려온다. 그러다 결국 엉덩방아 한방. 그래도 마냥 즐겁고 신나는가 보다. 이번에도 잘 해냈다는, 자꾸자꾸 좋아지고 있다는, 혼자서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산행을 남편과 함께 하였다는---즐거움.

  

   보리밥과 막걸리로 하산을 마무리한다. 20여가지가 넘는 반찬과 시원한 막걸리 한 잔. 평소 술을 즐기지 않던 아내가 막걸리 한 잔을 다 마시며 맛있어 한다. 자기가 선택한 고통에 대한 자신의 축배-하산주. 이제 하산주의 맛도 알고---아내와의 산행이 점점 부담이 적어지고 즐거워진다.

  

   무등산행을 마치고 귀가를 하는데 전인권의 신곡이 계속하여 마음을 울린다. '지나 간 것은 지나간 데로 그런 의미가 있지---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을 해'.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하여 고생하신 님들이여. 오늘은 어느새 지리산만큼이나 큰산이 되어버린 무등산을 다녀오며 잠시 당신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때의 그 치열함. 그 가슴 아픔. 그 몸부림치던 역사적 죄의식은 어느새 다 희미해졌는데--- 지금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인가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말을-해----   새-로-운- 꿈-을 꾸겠다-말을-해----

  
 

(중봉가는 능선길에 본 천왕봉)

  

 

(서석대 밑의 암봉과 중봉능선)


 

(서석대)


 

(서석대 밑의 바위들)


 

(서석대에서 본 천왕봉)


 

(서석대에서 본 암벽들)


 

(철조망 속의 천왕봉)


 

(하산길의 능선들)


 

(장불재 가는 길)


 

(장불재 가는 길의 암봉)


 

(입석대-장불재 하산길에서 본 모습)


 

(입석대-정면에서 올려다 본 모습)


 

(입석대-약간 측면-조금 앞에 나와 있는 바위기둥을 중심으로)


 

(장불재 가는 길에 본 서석대(좌)와 입석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