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 2월 5일(토요일 맑음)

누구랑 : 오랜친구 2명과

어디로 : 관악산 (사당역 관음사 - 연주대 - 연주암 - 과천향교)

 

 

                                                                                                                       관악산 연주대

 

 

입춘이 막 지난 하늘은 순했다.   기후가 절기를 불러 오는지, 절기가 추위를 누그러 뜨리는지 절기는 어김이 없다.

매화의 소식이 남녘에서 전 해 졌고 봄은 이미 먼 따뜻한 나라에서 출발을 했다.

매화는 일생을 추위속에 살면서도 향을 팔지 않는다고, 옛 풍류객들이 기생의 치마폭에 梅一生寒不賣香을 써넣었을지

모르지만 그 자태는 얼마나 많이 팔아 먹었는가?     사군자로 찬사를 받으며.....

 

압구정

오후2시의 거리는 한산하다.   서둘러 시작된 설연휴는 귀향과는 무관한 압구정 거리를 일상보다도 더 텅비게 만들었다.

한명회의 권세와 그의 주변을 맴돌던 아첨꾼들이 흥에 겨워 막강한 세월을 보내던 정자의 흔적은 지하철역 모자익타일

벽화로 살아 남아있고 그 땅속을 전철은 쉼없이 달린다.

 

제 혼자 등산복차림인 나는 환승역의 위치도 파악하지 못한채 전철의 벌어진 입속으로 몸을 밀어 넣고 주위를 휘두른다.

젊은세대 대부분이 작은기계를 들고 주무르며 얘기하고 있으며 전철안 풍경을 중계라도 하는지 손가락이 분주한 사람도

많다.   그 작은 창속에서 더 작은 것들이 움직이며 주인의 비위를 맞추고 일정한 주인의 손놀림에 따라 명령에 복종한다.

 

경기가 나쁠수록 여인들의 치마길이가 짧아 진다던가?    잛은치마에 반스타킹을 신고 어그부츠를 신은 아가씨의 치마와

스타킹사이의 하얀살은 포인트가 되어 수컷의 눈에 꺼리낌없이 자리한다.    풍만한 상체에 쇼울을 걸쳐 미식축구처럼

부풀려진 상체는 아랑곳하지 않고 날씬한 다리를 뽐내고 싶어 짧은 치마를 입은 중년여인의 하이힐 굽이 애초롭다.

 

교대에서 환승을 한후에는 등산복차림의 산객들이 보이고 서로를 샅샅이 훑는다.   서쪽에서 날아온 이름들이 검은색의

복장에 희게 제 이름을 알리고 그것들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이어진다.   내 배낭에 매달린 한국의 산하패찰이 신기한지

산객들의 눈은 패찰에 고정된다.

 

사당

지방 단체산행을 할 때 마다 모이는 5번출구.   무시로 산객을 토해 냈으며 그 주변은 또 다른 산객을 맞이하는 산사랑방(?)

이었다.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한 나는 편의점에 들러 이슬이를 징발한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20년이 지나

처음으로 동반산행을 약속한 친구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들이 보이고 나이가 한두살 많은 친구들의 머리에도 세월이 비껴가지 않았는지 애년艾年이 가까이

있었다.   우리의 빛나던 젊은 시절의 흔적은 감추워 졌고 함께했던 시절의 추억은 영롱했다.

여수항에서 휘영청 밝은 보름달과 떨리던 별빛을 받으며 다도해를 더듬으며 상주로 향하던 여름날이 있었으며

여우같은 여자들에게 홀리어 차비까지 꿔주고 돌려받기로 한 부산역에서 기다리다 허기에 지쳐 바닥에 드러누워

한데잠을 자던 순진무구했던 시절도 있었다.

 

산행

일일 산행대장이 되어버린 나는 스트레칭을 하라고 권유하고 나도 종아리를 어루만지고 아킬레스건도 주물렀다.

관음사까지는 다들 아는 코스였지만 관음사를 뒤로하고 나서는 사당동에서 오래 살았던 친구는 초등학교시절

소풍으로 다녀왔다는 코스를 기억에서 살리지 못했다.

 

모임때마다 산행을 권유하고 무공을 자랑 해 오던 나는 의욕에 불타 있었으며 산꾼의 면모를 과시해야 했다.

비교적 산세가 부드러운 구간은 다른운동으로 단련된 친구들을 뒤로하고 선두를 맡기에는 버거웠다.

----- 에구 힘들어~

- 담배를 끊던지 해야지.   숨이 차서 큰일이야~

담배핑계를 대고 쉬어 보려 하였으나 쉴 기색이 없었다.

---- 아니 이것들이~

- 힘들지 않어? 쉬었다 갈까?

- 괜찮아 축구도 한게임 하고 왔는데 힘이 안드네~

----- 무어라(경악, 허탈)  이러다 대장체면 땅에 떨어 지겠네~

- 막걸리라도 한잔 하고 가자

- 더 올라가서 마시지 그래

말만 선두지 나는 그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껄렁한 산꾼에게도 얄팍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너른터에서 배낭을 내려 놓고 커피를 준 다음 쎈 척을 한다.    카페인은 근육을 이완 시키기 때문에 산행중에 마시면 좋다고

일러주고 철조망이 개방된지 얼마 안되는 직벽을 가리키며 저 코스로 올라 갈거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시켰다.

사당동에 살았던 친구는 저기말고도 코스가 있는것 같다고 하였으나 나는 지름길이라고 말한뒤 서둘러 출발을 하였다.

- 손을 뻗어 먼저 잡고 발디딜 곳을 확보하고 난 다음 올라 가는거야 이렇게~

- 야 처음부터 너무 빡센코스아냐~

- 이거는 아무것도 아냐

선두에서 기어 오르던 내 허벅지는 야속하게도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운동을 꾸준히 한 친구는 친구의 배낭까지 짊어 지고

무서운 기세로 나를 추격한다.    범인에 쫓기는 형사꼴이 되어 버린 나.....

확보할 곳이 없는 급경사 구간을 당당히 걸어서 오른 후에야 거리를 두고 정상에 안착 한 다음 다시 내려가 친구들의 손을

잡아 줌으로써 힘든 판정승을 억지로 쟁취 하였다.(어휴~ 다리가 얼마나 후들거리던지~)

 

급경사 구간이라 고도는 순식간에 높혀 졌으며 발아래 서울이 보기 좋았다.   오랜만에 산행을 한 친구들은 탄성을 자아 냈으며

꼼수로 선두를 쟁취한 나를 우러렀다.(음~ 굿~)

- 저 작은 발아래 세상에서 아둥바둥 살고 있다니~

- 자주 산에들 다녀~

- 소주 한잔 하고 가야지?

- 조금 더 가서 마시자

----- 우이씨~ 아직 허벅지 경련도 가라앉지 않았는데.....

거북이가 하늘향해 머리를 치켜든 바위를 지나고 돌문을 지나서야 자리를 펴고 이슬이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

 

친구들은 말은 안했지만 거친숨을 고르고 있었다.   수컷들은 쓸데 없는데 승부거는 걸 좋아하는 하등한 동물??!!!

_ 연주대가 도대체 어디야 보이지도 않네

- 다 왔는데 산에 가려 안 보이는 거야   다들 산 잘 타네~

숨이 골라지고 다리가 풀린 나는 대장다운 산행을 하기 시작했다.  거친 된 비알을 릿지로 통과하고 나서야 친구들은

지친 기색을 보였다.    이미 승부를 포기하고 백기투항한 그들에게 나는 한없이 인자한 대장이 되어 그들을 보듬었다.

 

마지막 힘든 구간을 로프를 붙잡고 통과하고 나니 바로 정상.    그들의 이마에도 땀이 흐르고 흡족한 미소는 얼굴전체로

퍼져 소년의 얼굴처럼 발그스레 홍조를 띠고 있었다.   

 

연주대

깍아지른 절벽위에 까치집같이 암자는 걸려 있다.   스텐레스파이프의 차가운감촉을 느끼며 내려서니 응진전 세글자가

암자를 말해주고 그 안의 보살님들은 머리는 부처님을 향했으며 궁뎅이는 저 멀리 맞은편 청계산의 매봉을 향해 열려있다.

암석이 주는 작용을 터득하여 암반위에 위태롭게 걸려있는 암자는 신자들에게 영험하다고 널리 알려 졌을것이며 그 신기한

모양새도 신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해서 포교에 적지않은 도움을 주었을것이다.

중세의 대성당 건축이 천정을  높게 하고 높은곳에 있는 좁은 창의 스테인드 글래스를 통해 빛을 오색찬란하게 비추고

사제의 뒤편으로 신도들은 볼 수 없는 측창에서 들어 오는 빛이 비추면 빛은 한층 더 성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며

거기에 신도들 뒷편 높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는 성당을 온전한 신의 공간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신이 주재하는 작은 공간 연주대는 푸른하늘에 맞닿았고 빛은 여전히 정결하고 부드럽다.

 

연주암 툇마루에서 우리는 간식과 커피를 마시고 신도들은 하산을 위해 스님께 합장한다.   진품인지 모사본인지 완당의 멋스런 글씨는

추녀 깊숙한 곳에 걸려 있고 고목의 느티나무위 까치집에는 아직도 까치는 돌아 오지 않았다.   그늘의 하산길은 잔설이 녹지 않아

미끄럽고 위풍당당하던 친구들은 거북이 걸음을 하고 이제서야 쥐가 내리는지 모양이 수상하다.    스틱을 쥐어 주고 심하면 파스를

뿌려 주겠다고 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오래 전 여름 우리가족이 놀러 와서 딸을 팬티만 입혀 물에서 놀게 하고 흐뭇하게 바라보던 곳이 나오고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질무렵

관악산은 검어 졌다.   과천향교의 완고함은 어둠에 묻히고 그옆 골프 연습장의 불빛은 빛다워진다.

아파트단지 사잇길을 걸어 감자탕집에 도착하고, 힘들었던 친구들은  들어가 있고 오줌누러 가는 길에 바라본 관악산은 느티나무

잔가지가 필터링되어 시야에 들어 오고 송신탑 꼭대기에서는 빨간 불빛이 제 위치를 알리느라 깜박인다.

 

커다란 돼지뼈에 속속들이 박혀있는 살과 통감자, 들깨가루, 매운양념들이 어울린 감자탕은 아직 끓지도 않았는데 몇 순배 술이

돌고 관악산은 우리 술자리에서 사당부터 다시 시작되고 젊은시절의 기억은 다시 돌아와 중년의 기름진 아랫배에 스며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