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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  2005년 2월20일 일요일
(산행지)  강원도 대관령 선자령
(날  씨)  가는 겨울이 그 실체를 보여주려는 듯 맹추위를 퍼붓는다.
      서울지방 영하 9도
      강원도 선자령 영하 15도, 체감온도는 영하 25도
      주일내내 쏟아져 쌓인 적설량이 70cm나..
      허리까지 묻히는 하얀눈의 세계..
      난생 처음 대하는 대 설원의 장관...
      온몸을 날려버릴 듯한 칼바람 이는 능선... 미끄러져 내려오는 비료푸대 눈썰매....
 
 (산행코스)  대관령북부영업소-국사서낭당-정부시설물-새봉-선자령-초막골-초막교(4시간40분))

(참가자)다음까페" 도봉에서 관악까지" http://cafe.daum.net/db2003 회원 31명
 
눈 쌓인 겨울 산-!
그것은
순수한 영혼의 드넓은 가슴이었다.
그것은
불타는 열정의 숨소리였다.
아무렇게나 흩뿌려 만들었지만
더이상 어떻게 꾸밀 수 없는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하이얀 순수 속에 파묻혀
스치는 바람소리만을 듣고 있어도
진실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고
맑아져 오는 영혼을 느낄 수 있었다.
하이얀 설원에 발자욱을 찍는 일은
흡사
처녀의 가슴에 입술을 대는 것만큼이나
가슴 벅차면서도 미안스러운 마음이다.
언제까지고
저런 모습으로 곁에 두고 살고픈 마음이었다.

바람에 묻혀날리는 설원의 상큼한 향기가
살면서 한번도 꺼내보지 못했던
내재된 희열을 흔들어 깨웠다.
사랑의 감정이 이러하겠지.
가식의 두꺼운 껍질을 뚫고
순수로 부화하는 우리들이 되었던 하루...

하이얀 순백의 살점 속으로
마냥마냥 파묻혀 들어가
선자령의 심장 소리를 캐내어 들었던 하루...
태백의 준령을 흔들며 포효하던 바람소리 속에서
나 또한 포효를 실어날리는 바람이 되었던 하루...

그런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되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핸펀을 날린다.
떡은?
국은?
그 밖의 집기들은?
새벽 점검을 했다.

아뿔싸~!
맞춰놓은 떡이 문제가 생겼다.
방앗간 사람들이 실수로 늦잠을 잤단다.
큰일이다.
황급히 이집저집을 훑어
겨우 한 김밥집에서 황급히
35개의 김밥을 말았다.
그 바람에 20분전까지 차를 대기시키려던 계획은 차질이 생겼고
겨우 3분 전에야 차를 도착 시켰다.

전날
유비와 더불어
할인마트에서
회원 숫자를 감안하여
이것저것을 궁리하며 챙겼다.

걱정하는 야생화님과 수번의 통화 끝에
대충 메뉴를 짜고 집행에 들어 간 것.
무엇을 얼만큼 준비해야만 할까?
이거다 하고 정했다간
다시 수정...
그리고 또 수정..
고기를 삶을까?
김밥을 맞출까?
빵으로 할까?
불고기로 할까?
소주는 몇병?
맥주는 또?
마른 안주는 무엇으로?
과일은 얼만큼?...

금요일 오전
솔님에게 핸펀... 어라 통화를 못했다.
여행자 보험을 써비스로 가입해 주겠다던 솔님인데..
할수없이
내가 늘 거래하는 현대해상 김선미님에게 연락..
메일을 주고받고,
fax도 보내고 받고...
일차로 26명 가입..
아차차차
누락된 3명 추가 가입..
그러나 또 2명의 신상정보가 뒤늦게 도착,
또 추가로 2인을 급하게 가입시켰다.
그 바람에 보험료를 조금은 비싸게 지불해야만 했다.

관광회사와 수차례 통화..
배차되는 기사와 일정과 집결지 조율..

동부지방 산림관리청에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입산통제 여부를 문의...

회원명부와 연락처를 작성...
인쇄를 하고..
산행도도 복사...
좌석배치도도 챙기고...

그리고 최근 목요일
눈 펑펑 쏟아지는 날
선자령 산행에 다녀온 꽃뱀과 통화..
그날은 결국 입산통제되어
산행을 못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지막으로
강릉의 맑은공기님과 통화...
상황에 따라
주문진에서 회를 긴급히 조달해 보자는 약속과 더불어
초막교에서의 국거리 조리를 부탁을 했다..


불안하지만
이제와 어쩌랴..
한국등산연합회 산하,
몇개의 산악회가 우리와 똑 같이
20일에 선자령 산행을 계획하고 있었고
다음카페 내의 몇몇 산악까페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가는데 뭐...
일단은 자위를 하고.....

어묵을 몇시간이고 팍팍 끓인 후
식혀서 물통에 챙기는 일은
유비와 그의 안식구가 책임을 지기로 했고
장 보는 일은 유비와 내가 했다.

회비거출및 지출은 야생화,
최종 인원 점검은 총무인
인왕산에게 맡겼다.

부산한 산행 준비는 대충 이렇게 마무리 되어졌고
차는
부릉부릉 시동을 걸고
드디어 산행길의 첫 액셀을 밟는다.

멀리 산마다 하이얀 눈들이 쌓여 있었다.

강원도로 접어 들면서
그 눈의 양은 한결 많아져 보였다.

맑은 공기님의 긴급전화가 온다.

친지 분의 갑작스런 유고로 인하여
참가를 못하겠다는 전언..
조리를 부탁했었는데....
그러타면
비상 대책을 강구 할 수 밖에 없었다.
유비에게 초 고속 산행으로 먼저 하산케 하여
조리를 하고 있으라고 부탁...

이제 모든 건 이렇게 준비되어져 갔다.

성애가 잔뜩 낀 차창을 닦아내고 밖을 봤다.

수북수북 쌓인 눈들을 도로변으로 제설해 놓은 흔적들이 보였다.

도착 직전
버스 안에서 모두 스패츠를 착용하고
안면 마스크에
장갑이며, 기타 장비들을 꺼내 완전무장을 했다.

대관령 북부 휴게소에 내려서자
수많은 차량들과 산행인들이
북석댄다.
눈쌓인 산행을 갈구하던 우리와 마찬가지로
저들도 이 절호의 기회를 만끽하려는 듯
엄청도 많은 인파들이 몰려 들었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솔개님을 선두로 인왕산 총무를 최 후미로 배치하고
31명의 도관 전사들은 대망의 설산 장도에 올랐다.

그러나
처음부터 문제가 생겼다.

일렬로 늘어서서 산을 오르는 무리들 때문에
정체현상이 벌어져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조금은 짜증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허지만 어쩌랴..

모두들
겨울산을 즐기려는 동호인들인데...
천천히 따라 올라 능선길로 접어들자 조금씩 속도가 나기 시작했다.

앞뒤를 보니
줄줄이 따라 걷는 산행인들의 능선에 길게 늘어서진 모습이
흡사 만리장성처럼 보인다.
펼쳐져 보이는 모습은 인간으로 쌓은 성이었다

긴 만리장성이
조금씩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차차 고도를 높혀가자
이번엔 세찬 강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북서풍의 강한 바람이 해발 1000미터의 태백의 준령위에서
사나운 맹수처럼 포효한다.

다져진 산길을 조금만 벗어나도 허리까지 빠지는 눈.
한번 빠지면 누구의 도움 없이는 빠져나올 수도 없다.

다행이도
바람을 등지고 걸었다.

얼굴의 옆면을 때려대는 강한 바람...
정말 조금만 긴장을 풀어도 날아갈 것만 같은
초강풍이 잠시도 멈춤없이 온몸에 부딪쳐 온다.

겨울 산행의 진미를 비로서 느낄 수 있었다.

등허리엔 땀이 송글송글 솟고 있었지만
얼굴은 차가운 자연 앞에 노출되어
모진 시련에 시달리고 있었다.

준비를 소홀히 한 몇몇 회원들은
비로서
산행장비의 중요함을 깨닫을 수 있었다.

스패츠 착용을 미처 못한 회원은
바지가랭이 속으로 눈이 날려 들었고
신발 속으로 눈이 스며드는 고통을 느껴야했다.

얇은 장갑만을 준비했던 회원은
심한 손시림에 고통스러워 해야만 했다.

50키로 이하의 체중을 가진 이는 참가치 말라던
나의 유모가
유모가 아닌 실제상황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아름다운 얼굴을 박살이라도 내려는 듯
바람은 조금의 사정도 보아주지 않고
양볼과 콧잔등을 때려댔다.

날려 쌓인 눈언덕이 키를 넘는 곳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쾌청한 날씨 덕분에
가시거리는 넓어
저 산 아래 강릉 시내와 동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왔다.

자칫 중심을 잃기라도 하는 날에는
온몸이 바람에 날려
저 강릉까지 날아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어려운 눈보라 속을 헤매기 2시간 30분

드디어 정상에 이른다.

기념사진이라도 한컷 찍으려 했지만
모두를 날려버릴 듯한 바람에
촬영은 포기하고
산아래
구석진 곳에서 겨우 바람을 피하여
간단하게 요기들을 해결했다.

배고픔이고 뭐고
다만
이 고통스런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 뿐이었다.

서둘러 초막교 쪽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능선의 동쪽이라 바람은 없었다.

허지만 이번엔
급경사의 하산길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저마다 준비해간 비닐포대를 꺼내
엉덩이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신나는 동심의 세계로 빠져들어간다.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피어난다.
급경사를 미끄러져 내려오며
미처 제동을 못한 회원들의 즐거운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타고타고 또 타고...
눈 속에 온몸을 던져
눈과 하나가 되어
눈송이처럼 미끄러지고 구르며
아래로아래로 내려간다.

잠시 전까지의 악몽같은
바람과 추위에대한 생각은 잊은 채
엉덩이 썰매에 열중이다.

체면도
공포도,
나이도,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다만 즐거울 뿐이었다.

몇몇 회원은 눈속에 감추어진
툭 불거진 돌덩이나 나무뿌리에
엉치뼈를 부딪쳐 아파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즐거운 웃음을 지었다.

10시 40분에 시작한 산행은
15시20분이나 되어서야 마칠 수 있었다.

초막교에 내려서자
벌써 도착해 있었던 유비가
커다란 들통 하나가득
어묵을 펄펄 끓이고 있었다.

추위와 허기에 지친 회원들이
김이 펄펄나는 뜨거운 국물들을 한그릇씩 받아들고
아이들처럼 좋아한다.

다른 산악팀들이
이러한 우리들의 광경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염치에 강하고
배짱 두둑한 어떤이들은
어묵 동냥을 온다.

그래 너도 한그릇
나도 한그릇
이렇게 나누는 게
우리 산악동호인들의 진정한 사랑이 아니더냐...

남아돌 것만 같던 어묵은 어느새 동이나고
우리는 귀경을 해야할 시간을 맞았다.

앞서간 이가
눈 위에 찍고 간 발자욱 위로
바람은 순식간에 불어와 그 흔적을 지웠고
지운 그 흔적 위로
또 다시 발자욱을 남기면
또 다른 바람이 그것을 지우는
언제나 새것만을 허락하던 선자령...

너희들이
감히 자연을 정복하겠다고 나섰느냐며
엄하게 호령하는 듯하던
매서운 광풍도,
살을 에일 듯
조금의 사정도 보아주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의 얼굴을 때려대던 눈보라도....

선자령에 찍고온 우리들의 발자욱 만큼이나
모두모두
우리들의 가슴 안에
아름다운 추억의 자욱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이다.


도봉에서 관악까지라는 이름아래
선자령의 아름다운 겨울산행에
함께했던
31명의
사랑하는 우리 회원님들...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