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이산에서 부른 아내의 노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Mt. 0511  月伊山(551.4m) - 충북 옥천군 이원면. 영동군 심천면

 

산 행 일 : 2005년 2월 25일 금요일
산의날씨 : 흐리고 추움
산행횟수 : 초행
동 행 인 : 처형과 우리 부부
산행시간 : 2시간 22분 (휴식14분포함)

 

            

 

                                                빙폭이 된 옥계폭포

 

작년 10월 장모님 생신 때는 처가에 도착하기 전 부담 없이 서대산을 찾았으나 환갑 전에 유명을
달리하신 처남 첫 기일에 참석하는 길이어서 내심 말은 하지 못했으나 등산복은 챙겼다.
느긋하게 순천을 출발하여 처가에 도착하니 인천과 서울에 살고 있는 둘째와 막내 처남 식구들은
아직 오지 안했고 오랜만에 만난 여인들끼리 즐겁게 수다떠는데 나는 온 몸이 근질거린다.
 

 

                                                    옥계폭포 상단부 소

 

전을 부치는 아내 눈치를 힐끔힐끔 봤으나 눈길 한 번 안 주더니 "피곤할 텐데 한 숨 주무세요"
많이 생각한 체하지만 콩밭에 나가있는 꿩 마음이니 "대낮에 무슨 잠을 자... 날씨가 풀려야 모레
호남정맥을 무사히 종주 할텐데 따뜻해지겠지?" 속 들여다보는 말이라 낯뜨겁다.

 

           

 

                              얼음 기둥속으로 쏟아지는 물줄기가 가관이었다.

 

"참. 당신은 할 일 없으니 장룡산이나 월이산을 다녀오면 되겠네" 은근히 응원해주자 쾌재가 절로
나나 "이런 날 산은 무슨... 처남들이나 얼른 왔으면 좋겠다" 점잖은 척 한다.
"아참. 전만 부쳐놓고 셋이 갔다오면 되겠다" 얼씨구! 처형까지 거들고 나서자 상쾌, 유쾌, 통쾌,
장모님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 없이 그냥 빙긋이 웃으신다.

 

                                                 

                                                  옥계포포 표지석과 폭포

지루하긴 했지만 꽤 긴 시간을 잘 참아 접근하기 좋은 옥천과 영동 경계를 이룬 월이산을 산행지
로 삼고, 장조카가 퇴근해서 옥계폭포에 도착하려면 여섯 시가 넘을 듯 싶은데 시간 내에 산을
벗어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여인들 등산복이 없다.
다행히 아내 등산화는 차에 있고 내 양말은 한 켤레를 예비로 갖고 다녀 우선 해결되었고 처형은
집에 있는 운동화를 찾아 신었다.

 

 

                                    원동마을에서 현남마을로 이어진 서리재

 

4번 국도 이원소재지에서 영동으로 가는 도로 오른편 원동 마을 서리재 산길 들머리에 닿아 '월
이산 등산 안내도'가 있어 살펴보니 정상∼투구봉∼서재마을∼옥계폭포 구간이 4.5km라고 표기되
었는데 좌측 능선으로 길이 없는지 폭포 물 발원지로부터 물줄기를 따라야 되는 모양이다.

 

 

                                                 서리재의 등산 안내도

 

15 : 29 날씨가 몹시 쌀쌀하나 초입부터 가파른 잡목 사이 길을 오르니 금새 열이 난다.
숯가마 골로 이어지는 갈림길에 이르자 표지기들이 보이고 옥계폭포로 내려가기까지 충청과 영남
권 도회지 산악회 표지기가 많이 걸렸으며 길도 아주 좋았다.
쌍묘 봉 앞으로 돌아 오르며 좌측 높이 솟은 봉우리가 월이산인 것 같다.
정상이 가까우니 치고 오르기가 힘들지만 울창한 송림이 머릿속을 맑게 해준다.

 

 

                                  나무사이로 보이는 봉우리가 월이산인 것 같은데
  
15 : 46 305봉에 오르니 2004. 12. 옥천문화원과 (사)옥천 향토사 연구회에서 세운 월이산 봉수대
안내표지가 있고 내용은 대충 '봉돌로 쌓은 타원형 외벽둘레 53m, 중앙 지름이 19m로 기와편, 봉
돌, 주춧돌 등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어찌 보다 높은 정상이 아닌 낮은 곳에 봉수대를 만들었는
지 이해가 안된다.

 

 

                                     월이산 봉수대. 우측 작은 판이 정지용의 시

 

나와 달리 맞은편에 있는 정지용의 시 '고향' 팻말을 물끄러미 보는 아내 심정이 헤아려져 "늦을
지 모르니 얼른 가자"고 재촉했으나 '...어린 시절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
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라는 대목이 내 마음마저도 착잡하게

만들어 버린다.

 

 

 

                                                      봉수대  안내표지

 

15 : 59 앞 봉 우측 사면을 돌아 오르면 승정부인 밀양 박씨 무덤이 있고 3분 후 다른 무덤 좌우
로 길이 갈리는데 우측 길은 미동리로 내려가는 듯 싶으며 정상은 직진인 능선을 타고 오른다.
멀리서 보면 흡사 두꺼비와 같아 두꺼비 바위로 이름 지어졌다는 바위 절벽을 살펴보고 미끄러지
기 십상인 아주 작은 돌멩이가 깔린 경사를 극복하자 무덤이 나오면서 우측으로 급하게 꺾는다.

 

 

                                                      두꺼비 바위 벼랑

 

16 : 23 작은 헬기장 모서리에 '월이산 해발551M. 숯가마골(원동리) 1.5km ↔ 옥계폭포 3.0km'라
새긴 옥천군에서 세운 정상표지석이 있으며 뒷면에는 '이 표지석은 2001년 9월 1일 산림청 헬기
의 도움으로 이곳에 옮겨왔음'이라 되었고 정점은 유인 밀양 박씨 무덤이 차지하고 있으며 '이원
21 1983재설' 삼각점은 무덤 뒤에 있다.

 

 

                                                         월이산 삼각점
 
☞ 월이산은 순 우리말로 달이산이라고 부르는데 이 이름은 달이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이다. 산
의 형태는 둥근 모양이며 순하고 단아하며 가장 큰 특징은 비단 폭 같은 금강을 굽어보는 외유내
강의 산이라 하겠고 산의 정상부근은 기암괴석으로 이뤄졌다. 전체적인 산세는 정상을 중심으로
H자 형태로 정상의 서쪽 편에는 투구처럼 생긴 투구봉과 연이어 서봉이 있고 주봉과 서봉에서
각각 남쪽으로 내달린 남쪽 등성이 아래에는 옥계폭포가 자리잡고 있다.

 

 

                                              월이산 정상표지석과 자매

 

옛날에 이 동네에 살던 월이 총각은 힘이 장사라서 동네 사람들이 멀리하여 항상 외롭게 지냈는
데, 하루는 같은 마을의 일향 처녀가 개울가에서 노는 총각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의 순박하고
믿음직한 모습에 반해 남의 눈을 피해가며 사랑을 꽃피우는 중에, 이 사실을 전해들은 처녀 부모
가 바깥출입을 금지하자 처녀는 집안에 갇힌 채 눈물과 한숨으로 지내다 소나무에 목을 매어 자
결하고 말았는데, 뒤늦게 이 소식을 전해들은 총각은 폐인이 되어 세상을 뜨게 되었다는 유래담
에 월이산, 일향산 등으로 부르고 있다.

 

 

                                                          서대산

 

흐린 가운데도 그런 대로 조망이 트여 서쪽으로 대성산∼장룡산 줄기 너머로 서대산이 보이는데
진땀 흘리며 내려서던 북쪽 절벽이 역시 엄청 높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한국의 산하, 넷 상에서 알게된 분들이 의기투합하여 한산협 발기 산행을
했었던 천태산이 보여 왠지 착잡한 마음이 들고 멀리 눈으로 인해 하얗게 보이는 민주지산 그리
고 이름 모를 산들이 사방으로 펼쳐진다.
굽이쳐 흐르는 금강과 쏜살같이 내달리는 고속열차도 눈에 자주 띈다.

 

 

                                              굽이 굽이 흐르는 금강

 

 

                                 멀리 하늘금을 긋고 있는 것이 민주지산 줄기 같다.

 

16 : 30 너무 추워 오래 머물지 못하고 투구봉 쪽이 아닌 좌측 능선으로도 뚜렷한 길이 있어 서
슴없이 들어서 부지런히 걷는다.


16 : 51 앞에 보이는 봉우리(×430) 우사면을 빙돌아 능선을 타고 오르니 '← 천모산'이라 쓴 허름
한 판때기가 나무에 기댔는데 좌측을 의미하는 것 같아 다가가 보니 봉우리가 없이 금강으로 쳐
박히고 진행해야할 방향으로 봉우리가 보이나 어떤 봉우리를 말하는지 모르겠다.
울창하던 송림이 참나무 등의 잡목으로 바뀌는 능선을 한동안 따라간다.

 

                                                     천모산이라 쓴 판때기

17 : 08 다시 짧은 솔밭 길을 지나 오른 봉우리를 지나 2분을 가면 금새 잡목길이 나오고 돌탑이
세워진 곳(×450)을 지나면 본격적인 내리막이 전개된다.

 

 

                                        돌탑이 있는 곳을 지나면 내리막이다.

 

작은 바위들이 심심찮게 모습을 나타내고 경사가 급격히 가팔라지면서 밧줄이 늘여져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아래를 바라보니 옥계폭포 물을 받아 가둔 작은 저수지가 파랗다.

 

 

                                                밧줄을 타고 내리는 자매


 

                                                    급경사길의 바위들

 

17 : 31 T자 갈림길에 이르렀다.
좌측이 옥계폭포로 내려가는 길이 분명하나 우측에 바위 절벽이 보여 20여m 쯤 나아가니 서재
마을에서 내려오는 계곡으로 옥계폭포 상류가 되는 지점이다.
작은 폭포 윗 부분이어서 다시 되돌아 나와 바위 밑을 돌아 접근하다 밟은 낙엽이 갑자기 푹 꺼
지는 바람에 오른쪽 발이 물 속에 빠지고 말았다.
처형과 아내는 곧장 내려가고 없어서 망정이지 이런 꼴을 봤더라면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무명폭 상단부

 

 

                                                            무명폭

 

                 

 

                                          무명폭 좌측에도 실폭포가

 

17 : 40 천화원 프랭카드가 걸린 작은 콘크리트 다리를 건넌 골짜기가 낯설지 않다.
맞다! 수 년전 옥계폭포를 찾았을 때 상단부를 보려고 올랐던 곳이다.
꽁꽁 얼은 가장자리를 엉금엉금 기어 폭포 상단부 시퍼런 작은 바위 소(沼)위에 이르니 발바닥이
간지러워 20여m 폭포 하단부는 바라볼 수 없다.

 

 

                                                  옥계폭포 상단부(2)

 

17 : 44 다시 되돌아 능선으로 오르니 10여기의 목장승이 서있고 순서는 바뀌었지만 '이곳에서 크
게 한 번 웃어주세요'라는 팻말이 나무에 매달렸으며 파이프를 박고 밧줄을 늘여놓은 벼랑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처형과 아내가 개미만 하다.

 

 

                                                                 목장승

 


                                              폭포 앞의 자매가 개미만하다.
   
17 : 51 폭포 입구 다리 옆으로 내려서면 '신선마을 천화원 오솔길 1.2km'란 표지가 있는데 천화
원이 뭣을 하는 곳인지 모르겠고 빙폭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하는 아내 곁으로 가 폭포를 올
려다보는 나 또한 같은 입장이 되고 말았다.
뚫린 얼음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어찌 글로 표현하겠는가?

 

         

 

                                                      폭포 소도 얼었다.
     
☞ 옥계폭포는 높이가 20m가 넘는데 옥계(玉溪)라는 이름 그대로 옥구슬 같은 물줄기가 하늘나
라에서 지상으로 떨어지는 듯 깨끗하고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폭포이며 폭포 아래에는 큰 소(沼)
를 이루고 있어 물이 항상 넘쳐흐르고 폭포 속으로 커다란 홈이 파여 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소리와 물안개가 뿜어져 나오면서 얼굴을 살포시 적시면 몸과 마음이 하늘속 신선이 되는 느낌
이 든다.

 

        

 

                                                      폭포와 자매

거문고의 왕산악, 가야금의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일컫는 난계 박연(1378∼1458)의 고향이 심
천으로, 즐겨 찾은 폭포여서 일명 박연폭포라고도 한다.

 

 

                                              아쉬워서 되돌아 본 모습

 

하늘에 계신 처남 덕에 월이산과 옥계폭포를 찾아봤으니 복 받은 것에 진배없다.
18 : 00 아쉬워도 발길을 돌려야 했고 아직 오지 않은 조카에게 전화를 하려고 하는데 계곡이 깊
어선 지 먹통이다.

저수지를 지나 정답게 걸어가는 자매중 아내의 뒷모습을 보니 산도 설고 물도 설은 먼 남도까지
날 따라와 고생 고생한 것에 짠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월이산 자락에 세워놓은 정지용 님의 시 '고향'은 아내가 가슴으로 부른 노래와 진배없으리라 여
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