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둘레-과천숲(천혜수)길

지하철4호선 과천역7번 출구를 빠져나오자마자 짙푸른 녹색차일길에 들게 된다. 관악산등정을 위해 과천향교를 향하는 외길은 인파와 차량의 북새통이다. 장마로 불어난 연주골짝물길이 피서인파를 부르고 사람 반 물 반의 골짝은 물소리와 아우성으로 좁은 산골이 터질 것만 같았다.

안산자락길 걷기가 고작인 아내와의 동행이라 오늘 연주봉엘 오를 수 있을까?하는 의아심을 떨칠 수 없는 발걸음이었다. 과천향교를 지나 KBS삭도장을 향하는 계단에서 아내가 멈춰 섰다. 얼마 전에 안산계단을 급히 내려오면서 삐끗한 다리통증이 도진 거였다.

우린 되돌아서 관악산둘레길3코스-천혜수탐방로를 트레킹하기로 했다. 천혜수탐방로는 과천향교-과천교회-천혜수쉼터-무당바위약수터-KBS삭도장-과천향교에 회귀하는 8.2km정도의 환상코스다. 과천향교주위에 즐비한 상가에 들려 진입로를 물어도 누구하나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 없고, 탑방안내소의 외국인직원도 안내도만 줄뿐 어디에서 진입해야 하는지 몰랐다.

안내소직원이야 외국인이어서 그런다손 처도 산악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향교주변상인들이 둘레길에 대해 무지하다는 건 참으로 한심했다. 우린 과천교회까지 차도를 따라가면서 진입로를 묻다가 돌아서 다시 향교로 되돌아왔. 아까 문의했던 향교 옆 주차장상가 쪽 어딘가에 진입로가 있을 것 같았고, 아니나 다를까 상가건물주차장 뒤로 난 진입로를 찾았을 땐 그들의 무신경을 이해할 수 없는 경멸자체였다.

둘레길진입로를 모르면서 산을 찾는 손님들을 상대로 장사를 한다는 무식(?)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교화를 위하여 태조 7년에 창건되었다는 향교를 끼고 생업을 하는 그들의 무신경 말이다. 울창한 참나무 숲길엔 소나무가 듬성듬성한데 바로 아래 과천향교계곡을 흐르는 물소리와 왁자지껄 사람소리가 줄곧 이어졌다.

녹음 짙은 천혜수탐방로에 본격 들어서자 매미울음이 귀청을 때리고 샛길도 여럿 새끼를 친다. 십분도 채 되지 않아 대도시 서울이 사라졌다. 걷는다는 건 주변풍정에 온몸을 던져 나를 잊혀가는 발걸음이다. 새로 마주치는 풍경의 신비나 아름다움은 자연의 날것에서 더욱 생동감 있게 다가선다.

숲길에의 처녀발길은 자연의 생경을 경외감에 젓게 한다. 고즈넉한 온온사담장을 끼고 돌다 경낼 들어섰다. 계곡물은 향교를 휘돌아 온온사(穩穩舍) 앞을 가로질러 양재천에서 몸을 푼다. 온온사는 입구에 600년 된 은행나무를 수문장세우고 녹색장원 속에 졸고 있었다.

정조는 매년 아버지의 탄신일 전후인 1,2월에 화성에 있는 현릉원(아버지 묘)을 찾았었다. 정조가 평생 그리움의 한이었던 아버지(사도세자)를 자신이 고른 길지에 천장하고 돌아오는 첫 번째 원행 때 이곳 과천에 머무르게 되었다. 앞엔 청계산, 뒤론 관악산, 서쪽에 수리산, 동쪽의 우면산으로 둘러싸인 온온사는 원행길의 정조의 마음을 어루만지기 딱 이였다.

정조가 하룻밤을 묵으면서 연모와 통한의 마음을 달랜 평안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온온사는 따가운 태양도 누그러뜨릴 것 같은 고요가 풍겼다. 자연은 마음을 내려놓고 보듬는 사람의 마음과 심미안에 따라 느낌의 세계가 다름이다. 정조는 평생 동안 한의 응어리였던 아버지를 천장한 효행의 길에 모처럼 깊은 휴식 속에 아늑한 평안을 얻었던가 싶다.

하여 정조는 객사 서헌을 온온사, 동헌을 부림헌(과천의 옛 이름이 부림)이라 명명 손수 현판을 썼다. 그 후 왕들이 온천행이나 사냥 나갈 때 이곳에서 잠시 쉬곤 했다. 손님이 머무는 집이란 뜻의 객사는 중앙관리가 지방출장 때 오가며 묵었던 숙소다. 온온사는 한양에서 삼남지역(충청, 전라, 경상)으로 통과하는 관문이었기에 이곳 현감자리는 타 지역현감과는 비교 안 될 막강한 권세를 가졌다.

 하여 나온 말이 현감이면 다 현감이냐 과천현감이 진짜 현감이지라는 말이 생겼던 것이다. 과천현감 눈에 들어야 한양세도가들을 접촉하는 바로미터라 과천은 정치적`지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매미울음소리에 파묻힌 온온사는 그지없게 적적했다.

여길 다녀가는 탐방객들이 기념스탬프를 찍을 부스도 손길이 끊긴지 오래여서 먼지가 쌓여 고금의 영화의 더께를 가늠케 했다. 객사 뜰도, 부도 밭도 푸른 잔디위로 웃자란 풀이 무성하다. 온온사를 나와 담장 뒤 숲길을 헤친다. 저만치 울창한 숲 사이로 첨탑교회십자가가 기웃거렸다.

 

우리내왼 쉼터에서 청계산자락이 품은 과천경마장과 서울대공원의 아련한 조망을 보물찾기 하듯 즐겼다. 장미축제가 열렸던 서울대공원을 올해는 미처 산책하질 못 했다. 아내가 그만 내려가잔다. 천혜수를 찾아 긴가민가한 숲길을 더듬어 무질러 하산한다. 바위동네에 들어서 잠시 숨을 고르면서 시야에 들어온 서울랜드를 헤집었다.

청계산자락이 참 아기자기하다. 아니다, 초록산자락에 휩싸인 서울은 하얀 보석을 박아놓은 듯하다. 서울처럼 자연 속에 파묻힌 수도가 세계에 몇이나 될까? 산수자명 속의 서울시민은 복 받은 사람들이란 생각이 절로 났다. 연주골짝물길에 동심에 빠져든 피서객들의 망중한이 행복해 보이는 소이다.

폭염 속에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피서처가 서울도심에서 한 시간이면 닿을 수 있어서다. 관악산둘레길을 빠져나온 울 내왼 과천중학교정 솔밭벤치서 해질녘까지 뭉그적댔다. 어찌 저렇게 휘청대며 넘어지지 않고 멋진교태로 몇 백 년을 살아올 수가 있을까?

과천향교와 온온사를 찾는 헤일 수 없을 길손들의 눈길을 즐겁게 했을 노송을 석양땅거미 속에 남긴 채 자리를 떴다. 2017. 08



출처: http://pepuppy.tistory.com/703 [깡 쌤의 내려놓고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