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가는 가을 지리산.
- 빛 그리고 색-

 
04 - 10 - 24
체리가족 9명

 
산행 경력은 얼마 되지 않지만
산을 좋아 한 뒤로부터 열심히 산을 찾아 나섰다.
맨 처음 산행은 나 홀로 산행이 한참동안 이어졌다.
홀로 산행은 이기주의 산행이라고
핀잔을 들어가면서 때로는 빨치산의 후예라는
비아냥거림 속에서도,,,
많은 생각과 대화 속에 자신이 점점 성숙되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정한 산행의 의미를 깨달았다면 너무 비약한 것일까?
이렇게 산행이 이어지면서 뒤 돌아서면
잊혀져가는 나의 행적들이 아쉬워 글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운 지리에서 -
 
추색 물결이 지리의 골과 지능을 덮었다.
이미 산정은 겨울 채비에 들어갔지만
1000m 고지 이하에서는 가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었다.
누가 가을을 비련의 계절이라 했던가.
벌건 물이 툭툭 떨어져 내리는 단풍 터널 속을 걷노라면
속세의 시름 따위가 다 잊혀지고
허전한 지리의 길은 숲 속에서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들.
난 단지 살아 있음을 감사하고
지금 이곳에서 호흡 할 수 있음을 행운이라 여겼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빠져나온 이 시각에도
원색의 환영 속을 유영하고 있으니
우리가 꿈꾸고 우리가 가고픈 가을은
바로 그곳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 산 죽 -
 

 
 
산 행기를 쓴 뒤부터 많은 사람들의 산행기를
접해보고 봐 왔지만 항상 내 마음속에는
부부산행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아마 그것은 나 혼자만의 산행으로
허전한 공간을 채워보고 싶은 욕망이었는지 모른다.
우연한 기회에 카페를 찾아간 나는
정말 황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카페에 좋아하는 모든 분들이 그곳에 있었다.
그래서 오늘의 산행약속이 되었던 것이다.

 
-설레 이는 가슴을 안고-
산행약속을 정해 놓고
어린아이 마냥 소풍날을 기다리는 그런 기분이다.
설레 이는 가슴을 안고 마을로 향했다.
올 들어 몇 번이고 그곳에 가보았지만
오늘 떠나는 나는 더욱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윽고 노고단 못 미쳐 시암재에 돌아 설 때
짝궁인 집사람에게 넌지시 물어 보았다.
이곳에서 구례의 야경을 보겠느냐고..
노고단 이 길을 스쳐 지나 갈 때면 언제나
이곳에 들러 운무로 가득한 천상의 세계를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집사람도 그들과의 만남을
은근히 기뻐하고 설레 이는 마음은
내 마음과 같이 동요를 일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만남-
 
더디게도 달려 나가는 나의 애마가 달궁 쯤에 왔을 때
향적봉님께서 나의 손폰을 때리기 시작한다.
혹시나 약속 장소를 모를까 염려해서 보다 더 그쪽에서도
어떤 기다림과 만남을 의식하고 있으리라
19:20에 도착한 나는 누구누구의 소개도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손을 잡고 재미있는 이야기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넷 상에서만 몇 마디 이야기를 주고받고 그게 전부였지만
서로의 어떤 거부감이 없고 친밀해 질수 있다는 게
결국 그 가운데는 산 이라는 매개체로 하여금
우리의 만남이 이루어 진 것이다.
 

 
-대화-
카페가족 여러분들.. 그리고
업무 관계로 참석하지 못한 분들께도...
한잔씩의 샴페인을 치켜세우며 방장님의 선창아래
우리 카페의 무궁한 발전과 우리 회원들의 건강을 위하여
건배 삼창을 하고 서로가 준비한 음식으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 하였다.
또한 이곳 지리에서 어울리지 않은 생선회에 양주잔을
기울인다는 게 좀 어색해보이지만 술을 먹지 못한
산죽님과 나였지만 이내 분위기에 흡입되어
산 이란 주제를 놓고 열변을 토 한다.
이렇게 이곳 지리의 밤은 깊어만 가고 있었다.
 

 
바깥공기를 맡을 요량으로 밖에 나오더니 이내 한기를 느끼고 만다.
두꺼운 옷은 입었는데 마음으로 불어드는
스산한 바람이 느껴지는 이 가을밤 공연히
가슴한쪽에 공허해지고 있는 모습은 왜 일까?
돌이켜보면 어리석고 교만한 20-30대의 나는
시간의 흐름이 지독히도 더디는 것 인줄만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 지리멸렬한 청춘의 시간이 지속 될 거라고
착각했던 시간들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러한 아쉬움들의 가슴에 안긴 지금
삶을 살아가는 일들이 만만치 않음을 이제야 깨닫고
시간의 속도가 실감나게 나에게 다가옴이
두려움으로 느껴진다.
 

 
이른 아침에 새벽 5시 모두들 일어났는데
구재삭님이 보이질 않는다. 어디 갔을까.
어제 저녁 우리들의 얘기 속에서도 아랑곳없이
머리를 방바닥에 대자 말자 따발총을 쏘시더니
새벽 콧노래는 어디에서 즐겨야 할까.
우리 모두는 부부간의 사랑을 찾아 짝궁 곁으로 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추운 줄도 모르고 차안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닌가.
 
-산행은 시작되고-
지다람님의 지리에 대한 유래와 역사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스산한 아침 바람을 맞으며 긴 여정은 시작된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마을 들길을
따라 나서면서 신이 우리에게 주는
생명의 고귀함과 경이로움에 찬사를 올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이 잔디밭을 망칠 줄 알았던
우거진 잡초에서도 무질서하게 자라나는
환경 속에서도 생명의 신비를 찾을 수 있었다.
똑같은 사물을 내가 봤을 때와 그 무엇을 발견하고
찍어대는 향적봉. 산죽님의 사진은 무엇을 의미할까.
결국, 아름다움이란 특별한곳. 특별한 사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의 열린 마음과
눈에 있다는 것을 깨달게 한다.
 

 
양탄자를 깔아놓은 듯한 푹신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이따금씩 미끄러지는 모습에서 산행의 진미를 더할 수 있어 좋다.
능선 자락에서 전망바위까지는 사위가 막혀있어
조금은 답답함을 느낄 수 있지만 전망바위로 올라서면
비로소 계곡이 어렴풋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곳을 지나면 수직직하의 암릉을 우회하여 된비알의 연속이다.
 
 
--그리운 지리에서--
지리에서 산을 만났습니다.
그 산을 통해 인생을 보았습니다.
난 산을 인생이라 여기는
그리고 숙명이라 말할 수 있는
이 삶이 무지하게 좋습니다.
하루를 보내는 동안 단 한번이라도
산을 잊은 적이 없었습니다.
내 갈망의 끝에는
내 상념의 중심에는
언제나 산이 있었습니다.
그 고귀한 산 안에서
난 또 소중함을 얻었습니다.
내 인생과 닮은 또 다른 인생들....
산이 맺어준 인연이기에
큰 기쁨으로 날 행복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산죽-
 

 
우람한 산세와 빼어난 가을 지리산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탄사의 그 자체이다.
용틀임 한 듯한 능선은 빨강. 노랑. 단풍잎 속에
까만 점을 찍어놓은 바위의 암릉의 모습과
동쪽멀리 능선으로 뻗은 웅석봉과 달뜨기 능선은
내 마음의 풍요를 느끼게 한다.
올 여름 태극종주때 지독히도 안개와 운무로 인한
조망을 못한 한 풀이를 결국 오늘 이곳에서 만끽하고 있다.
아~ 누가 알겠는가. 이 산행의 묘미를
겪어보지 못한 진정한 의미를 말이다.
오늘 함께하지 못한 손영조님. 펜님. jjk님
그리고 회원 여러분을 대신하여
지리산의 정기와 이곳 가을의 풍경을 흠뻑 담아가겠습니다.

 
 
 
산정에서 이런 일이....
우리 일행은 펼쳐지는 파노라마의 연속에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체리님의 유머에 한참동안 배꼽을 잡고
(지금도 웃고 있음. 참석치 못한 회원님들 다음을 기대하시라 )
가져온 주먹밥과 과일 맛은 어디에 견줄 수 있겠는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좀처럼 지리에서 찾아볼 수 없는 장쾌한
능선의 파노라마를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은 발걸음을 향하여 능선으로 달려간다.
이곳 능선은 시원한 조망을 할 수 있어
지루한 산행의 느낌을 느낄 수가 없다.
능선 곳곳에 벼랑으로 우뚝 솟아
노송과 어우러짐은 아마 지리의 비경을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이 마냥 확 트인 시야의 암릉에서
한참이나 깊은 사색을 할라치면 또 다른 숲길에서는
빨강 노랑 단풍이 어서 오라 손짓을 한다.
 
 
 
-능선에서-
지다람님의 해박한 지리산 정보를 쏟아내기라도 하듯
골과 능선의 사면 갈림길의 위치며 등등을 설명하지만
듣고 나면 잊어버리는 것을.
결국은 몸소 실천으로 얻어 내야 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낀다.
이쯤에 와서야 구재삭님의 웃음이 점점 멀어지는 것은 왜일까.
하봉까지는 그런대로 필이 자주와 사진을 찍어대더니만
아이비님과 뒤 처지는 이유는
은밀한 사랑의 밀어를 나누려는 요량이었던가요.
향적봉. 산죽님은 둘이서 시기라도 하듯
계속 눌러대는 샷타가 바쁘게 움직여지고,
체리. 블랙님은 지친 기색 없이 산행의 묘미를 즐기고 있으며,
혹시나 무릎이 아파올까 여기 올 때부터 걱정을 했었던
우리 마누라는 그래도 종종 걸음으로 잘 따라주고 있었다.
무릎보호대의 효과인지 몰라도 정말 다행이다.
 
 
푸른 구상나무를 거쳐
암벽사이를 끼고 도는 노송 그룹을 지나 유난히도 가을하늘이
파랗게 멍들어버리는 단풍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형형색색 오색의 자태 속에 무릇 현실의 생활을 발견한다.
벌래먹어 구멍 뚫린 낙엽 속에
악착같이 줄기에 매달린 잎에서는
상처 입은 한 부분 이지만 나의 소중한 삶 전체를
포기할 수없다는 진정한 의지를 배운다.
 
-하산하며-
몇 번의 암릉 구간을
로프를 타고 오르내리고 각각의 전망바위에서
토해내는 지리의 전경에 취하는 사이 벌써 도착하였다.
무엇보다 더 일행 9명이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는 안도감과
아름다운 추억과 함께 가는 가을 지리산의 비경을
맛보았다는 포만감을 가득안고 내려왔다.
 

 
서로서로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위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오늘의 피로가 가시고 파전으로 뒤풀이하고
산채비빔밥으로 허기진 배을 채우며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하며 이별의 잔을 기울인다.
체리부부 카페회원 여러분 항상
즐겁고 건강한 산행이 되 시길 간절히 빕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04. 10. 26.
전 치 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