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 장가계 여행기

*중국이란 나라




세상에서 제일 큰 나라를 순서로 말하면 러시아(1.707만 5,400)가 제일 크고, 다음이 캐나다(997만6,139)이고, 중국(959만7,00)이 세계에서 3 번째로 넓은 나라로 한반도의 44배, 남한의 약 100배나 되는 큰 나라다.

우리 나라 땅은 동고서저(東高西底)라서 강물이 대개 황해로 흐르지만, 중국의 땅은 서고동저(西高東底)라서 양자강과 황하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양자강이라 부르는 창강(長江)은 나일강과 아마존강, 미시시피강 다음으로 세계에서 4번째로 긴 강으로 5,464km를 흐른다.

중국의 인구는 12억 9,000만(2004)으로 이 인구가 한국에 와서 동시에 발을 구르면 한반도가 지진이 난 듯 흔들리고, 일본에 가서 동시에 오줌을 누면 일본 열도의 대부분의 도시가 물에 잠겨 버릴 거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그래서 중국 정부는 그 94%에 해당하는 한족(漢族)에게 1가구 1자녀의 정책을 써왔다. 그러나 중국인들도 우리 나라처럼 남아 선호 사상이 깊어서 농촌에서는 딸을 낳으면 호적에 올리지 않고 감추어 키우기도 한다. 이런 아이를 중국인들은 '허하이츠(黑核子)'라 부르고 있다.

대부분의 중국인 가정은 외동딸이고 외아들이어서 자식들을 나라님처럼 떠받들어 키운다 하여 이런 자식을 '샤오황띠(小皇帝)'이라 한다. 세계에는 해발 7,000m가 되는 산이 19개가 있다. 그 중 7개가 중국에 있다. 세계 최고봉인 8,8848m인 에베레스트산이 있는 히말리아 산맥도 중국의 자치지구 티벳에 있다.

중국의 본명은 중화민국인민공화국이다. 중화(中華)란 가운데 중(中) 빛날 화(華), 가운데서 반짝반짝 빛나는 나라라는 것이다. 서융(西戎), 북적(北狄), 남만(南蠻), 동이(東夷) 가운데서 동쪽 우리 나라를 저들의 눈으로 보면 동녘 '동(東)' 오랑캐 '이(夷)' 오랑캐에 지나지 않았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의 '동이(東夷) '가 바로 우리 나라였다.

중국을 영어로는 ,China라 한다. 지금의 중국은 미국과 일본과 한국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차이나는 나라다. 그래서 '차이나'라 한다고 되받아 주고 싶어진다.



중국의 국기는 붉은 바탕에 노랑별이 다섯이 있다. 붉은 색 바탕은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것이고, 큰별은 공산당, 작은 별 4은 인민계급, 노동자와 농민, 도시소자산과 민족자선 계급을 상징한다. 중국인들은 우리의 서울을 서울이라 하지 않고 한성(漢城)이라 부른다. 지금 한창인 한류 열풍으로 알게 된 우리 나라 배우 이름도 자기네식으로 읽는다. 金喜善을 진시산, 安在旭을 안짜이쉬, 張東健을 장둥젠 이런식이다.

이런 건 우리들도 마찬가지다. 張家界는 원음으로는 장가제, 廈門은 샤먼, 武陵源을 우링위안이라 하는데 한국인은 우리식으로 장가계 하문 무릉원으로 읽으니 말이다.

*. 장가계 '와와' 관광

이처럼 거대한 땅에 33%가 산악지대여서 그 절승을 자랑하는 곳곳에 아름다운 산이 숨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내가 가고 있는 장가계다. 우리를 태운 중국 비행기는 2시간 40분 황해를 건너 샤먼(廈門)에 왔다. 샤먼(廈門)에서 하루 저녁을 유하고 가는 호남성 장가계까지는 비행기로 2시간이 걸렸다. 호남성은 중국에서 제일 크다는 동정호(洞庭湖)의 남쪽에 있어서 호남성(湖南省)이라 이름하였다.



땅거미가 막 질 무렵 도착한 장가계 공항에서 아내와 나는 넋을 잃고 말았다. 아,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세상 아름다운 곳을 찾아 국내는 물론 5대주를두루 찾아 다닌 우리 눈에도 이렇게 황홀한 것은 처음이다. 능선이 봉을 이루어 오르다가 다시 봉을 이루며 내려가가다 다시 오르는데 한곳은 수석처럼 구멍이 펑- 뚫리어 투석(透石)이 되어 있다. 그런 바위 능선이 다시 오르락 내리락하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 공항을 병풍처럼 둘러 싸고 있다.

이래서 장가계를 UNESCO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것이었구나. 장가계 여행을 '와와' 여행이라 한다. 상상을 초월한 산수의 진수 앞에서 자기도 모르게 '와와'하는 탄성을 발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진 찍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내도 이 두려울 정도의 천하 제일의 아름다움 앞에서는 포즈를 취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장가계(張家界)는 장씨('張') 집안('家') 들이 많이 사는 땅 '계(界)'이라서 장가계라 한 것 같다. 원가계(袁家界)도 원씨(袁)들이 많이 사는 집성촌이라서 원가계라 이름하였으리라. 지금으로부터 3억8천만년 전에는 이곳은 망망한 바다였던 것이 지구의 지각 운동으로 해저가 융기되어 육지로 변하면서 물에서 녹을 것은 다 녹아버린 데다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수많은 세월을 두고 다듬어 이렇게 아름다운 산수를 빚어 놓은 것이다.

장가계(張家界)는 옛날에는 대용(大庸)이라 하다가 1994년에 국무원이 장가계로 승격시킨 것이다. 장가계시는 인구 153만이 사는 도시로 시내인 영정구와 무릉원구로 가르고 무릉원구는 다시 북에 천자산자연보호구(天子山自然保護區), 서남쪽에 장가계국가삼림공원(張家界國家森林公園), 동쪽에 삭계곡자연보호구(索溪自然保護球) 셋으로 나눈다.

장가계 넓이가 369제곱 km이니 약 400제곱km인 금강산보다는 작고 설악산국립공원과는 거의 비슷한 크기다. 거기다가 주위에 개발을 서두르고 있는 동굴 내에 구멍이 9개가 뚫려 있다는 구천동(九天洞), 팔대공산(八大公山), 서왕뢰(西王雷) ,장가계 공항에서 보던 비행기 넉 대가 지나 갔다는 뻥 뚫린 천문산(天門山), 모암하(茅岩河) 5대경구가 더 있다. 경구(景區)란 우리 나라 국립공원에 해당하는 말이다.

세계자연유산, 중국제일국가삼림공원, 중국여행승지40가(佳), 국가 AAAA급풍구. 전국문명풍경구라는 말은 장가계 풍경구인 무릉원(武陵源:우링위안)을 말하는 것이다.

*. 금편계곡(金鞭계)의 행복

중국의 호텔은 유럽에 비하여 안락한 시설이었다. 물도 사 먹지 않을 만큼 준비되어 있었고 치약 칫솔은 물론 슬리퍼와 1회용 머리빗까지 갖추어 있었다. 해외여행에서 호텔이 어떠하냐 하는 것은 아침 호텔식과도 관계있는 것이어서 걱정을 했는데-. 빵과 우유에 소시지뿐인 간단한 서구식 식사와 달리 중국의 음식은 같은 동양인이라서인지 입에 맞았다.

 

준비해간 술을 드는 데도 자유로웠다. 우리는 20분이면 장가계(장가제) 삼립국립공원에 도착할 수 있는 해발 600m의 투가족(土家族)이 사는 장가계촌 가까이 있는 호남비파계빈관(湖南琵금琶溪賓官: 파파시)에서 이틀을 묵는다.

팸플릿을 보니 장가계 3일의 일정으로는 제1일: 황룡동, 보봉호, 제2일: 천자산 원가계 제3일 황석채, 금편계인데 이틀의 우리의 일정으로 현지 가이드는 우리를 어떤 곳을 어떻게 안내하려나?

 

 

무릉원국가중점풍경명승지(武陵源國家重點風景名勝地)라는 장가계국립삼림공원 입구에 서니 확 눈에 들어오는 기봉(奇峰)과 좌우에 보이는 요란한 간판들이 눈을 황홀하게 한다.

이곳은 무릉원의 핵심 부분으로 130만km평방㎢로 삼림이 97.7%나 된다. 옛날에는 청암산(靑岩山)으로 불리던 3천여 개의 기봉(奇峰)이 우후죽순처럼 솟아 있는데 그 봉의 모습도 각양각색이다. 그 입구에 부부암(夫妻岩)이 있어 눈 코 머리카락까지 분명하다는데 불행히도 우리의 조선족 가이드는 아주 침착하고 유머가 풍부하며 지적 수준은 높은 능력 있는 사람인 듯한데, 알고 있는 것을 말해 주기를 퍽 아까와 하는 냉정한 사람이었다.

무얼 물으면 "그건 전에 말씀 드렸는데요." 그뿐 더 이상 말이 없다. 가이드가 되어서 질문을 귀찮아한다면 관광객이나 본인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주위에 마이크를 들고 열심히 설명하고 다니는 중국인 가이드들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요란한 간판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는 것이 '人間仙境桃花源(인간 선경 도화원)'이란 간판이었다.

인간(人間)은 사람이 아니라 글자 원 뜻 그대로 세상(世上)이고, 도화원(桃花源)은 서양인들이 추구하는 유토피아와 같은 뜻의 동양의 무릉도원(武陵挑源)을 말한다. 무릉도원(武陵挑源)이란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상향으로 도연명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는 그 곳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땅은 평평하고 집은 튼튼하며 기름진 밭과 아름다운 연못 그리고 뽕나무 대나무 등이 있었다. 논두렁이 사방으로 통하고 새와 개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속에 왔다 갔다 하며 씨 뿌리고 밭가는 남녀들이 입은 옷은 모두 바깥사람들과 같았다.' 이것이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나오는 도연명의 세계다.

'나는 오두미(五斗米)를 위하여 향리의 소인배(小人輩))에게 허리를 굽힐 수 없다'고, 벼슬을 버리고 41세에 향리에 돌아와 스스로 괭이를 들고 농경생활을 하면서 가난과 질병과 싸우면서 63세를 살다간 도연명의 세계인 것이다. 나는 비록 무명의 시인묵객이지만 살아 있는 도연명이 되어 그 거만한 중국인들이 국가4A급풍경구라고 극찬하고 있고, 유네스코마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그 무릉도원 앞에 행복하게도 아내와 함께 서 있다.



카메라를 갖고 다니다 보면 횡재를 할 때가 있다. 요 상점 앞에서 거리의 사진사가 증명사진을 요란히 찍고 있는 모습이 그런 것이다. 한 사람은 뒤 배경을 만들고 사진사는 사진을 찍는데 맞추어 같은 또래의 구경꾼들의 웃음이 있다. 얼마나 재미있는 장면인가.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가 퐁퐁 솟아 나온다. 인간은 이렇게 자연보다 더 아름다울 때가 있다.

아름다움을 소유하려면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우리는 노 옵션, 노 팁으로 싸구려 관광을 왔으니 최소한의 구경만 시켜주어도 말할 수 없는 입장이니 걱정이 자꾸 앞선다. 삼림공원 입장 카드는 158위엔(2만4천원)으로 이천유효(二天有效)다. 하루를 중국인들은 '天(천)'이라 하니까 이틀이 유효한 티켓이었다. 이 카드를 기계에 넣고 엄지지문을 찍고 나서서야 우리는 무릉원의 경내에 들어섰다.



지금 우리는 금편계(金鞭溪) 계곡을 가고 있다. 금편계(金鞭溪)란 쇠 '金(금)', 책찍 鞭(편) 노란 색깔의 쇠책찍 같은 모양의 금편암이 있는 한 줄기 깊으나 완만한 계곡을 말한다. 이 물은 서쪽으로는 비파계(琵琶溪)로 모여 들고, 동쪽으로는 삭계(索溪)로 흘러가는데 그 계곡을 끼고 뱀처럼 꼬불꼬불한 돌길이 양쪽으로 병풍 같이 둘러선 1천여의 기봉(奇峰) 사이를 노마만(老磨灣)에서 시작하여 수요사문(水繞四門)까지 7.5km를 걷게 된다.

돌이 많은 고장이라 그 돌을 직사각형으로 잘라서 만든 길은 아스팔트보다 멋있고 운치 있는 것이, 깊은 산속인데도 가파른 계단 없는 길이 2시간 30분이나 계속된다. 일행 중 76세의 할아버지 내외는 가마를 탔다. 가마는 대나무로 만들어 흔들흔들 자동적으로 쿠숀이 되어 안락해 보이는데 2만원, 2만원 하며 계속 따라 붙던 가마꾼이 1만원으로 낮추어 부를 때다. 이 사람들에게 주의할 점은 분명 1 만원이라고 해도 2만원을 내게 된다. 한 사람씩 따지는 저들의 계산법 때문이다.



금편계(金鞭溪)가 시작되기 전까지 계곡 우측에 이 곳을 다녀간 시인 묵객들이 써놓은 비석 40여 개가 있는데 그 비석중에 하나가 장가계를 소개할 때 인용하는 비석이다. 그 비명에 하였으되 '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인생부도장가계, 백세기능칭노옹)이라 쓰여 있다. 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를 보지 않으면 100세가 되더라도 어찌 늙은이라 하겠는가. 이런 비석들을 거의 하나도 빠짐없이 찍다 보니 우리 일행이 보이지 않는다.

산길의 오름 길에서도 사진 한 컷 찍는데 보통 5m나 뒤지던데 이곳은 평지 길이니 더 차이가 났다. 앞선 일행은 야속하게도 경보(競步)나 하듯이 가이드 따라 가버린지 오래다. 그래도 남편이 걱정 되어 아내는 남들에게 욕먹는다고 재촉을 하며 계단을 두 단계씩 건너면서 앞서 달려간다. 쫓아 가다 보니아내의 뒷모습이 보인다. 일행 중 어떤 이는 단체 행동에서는 개인행동에서는 삼가야 한다고 민망스럽게도 언성을 높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금편계에서 어느 누구보다 행복하였다.

생각해보라. 가마를 타고 갈 나이에 이 천하제일 기봉이라는 것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빠질세라 카메라의 눈을 활짝 열고 기를 쓰고 찍으면서 달려가던 이 사람을. 여기가 아무리 아열대 지방이라고 하나, 그래도 가을이 오는 서늘한 깊은 계곡 길을 온몸을 땀으로 흠뻑 적시면서도 불평 없이 미안하기만 했던 이 사람을. 이러한 때 나는 즐겁고 행복하다.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아름다웠다. 자연을 탐하여 이 순간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하는 이 몸부림을 어느 누가, 무슨 기준으로 탓할 수 있으랴. 금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1,000여 기암 기봉이 물끄러미 나무 사이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런 아침나절이었다.

그러나 아뿔싸 서둘러 먹는 밥에 첸다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어두운 계곡에서 클로즈업으로 찍은 시인묵객들의 시비 사진들은 거의가 흔들려 있다. 앞선 사람을 따라잡기 위해서 기다릴 촌각의 여유가 그렇게 없었던 것이다. 내가 그렇게 혹(惑)했던 그 경치를 더 말해 무엇 하랴.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하니. 그때 찍은 금편계의 사진을 보시라. 흔들림은 당시 서둘러야했던 이 사람의 행복한 고생의 흔적이이라 생각하시고.





한 번 걸으면 십년이 더 젊어진다 해서 '신선의 계곡'이라고하는 금편계곡의 기봉(奇峰)들이 다투어 그 빼어남을 경쟁이라도 하듯이 도열하여 있는 사잇길을 열심히 가고 있지만 처진 끝은 항상 혼자라서 누구 하나 여기가 어디라고 설명해 줄 이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그 유명하다는 금편암은 알겠지만 계곡을 밝혀준다는 쌍촛대바위, 자줏빛 자초가 물에 비친다는 자초담, 손오공, 저팔계, 삼장법사 바위나 천시상회 등을 긴가민가하며 지나면서 나의 카메라에는 이를 노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지만 혹시나 그냥 지나치지 않았나 걱정이 되었다.



어디서인가 피리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갑자기 천원, 이천 원을 외쳐 대는 시끌법적 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그런 곳이면 어김없이 거기가 절경이던데, 사람들이 놀라며 바라보는 것을 보니 이곳이 금편계곡이 끝난다는 수요사문(水繞四門)인가 보다. 네 개의 계곡물이 모여 드는 곳이요, 그 물이 달팽이 모양으로 돌아아간다고 해서 수요사문(水繞四門))이라 한다.

가는 도중에 인력거가 즐비하게 있고, 혹은 투가족 여인이 고운 붉은 전통의상을 입고 물레방아 위에 앉아 '안녕하세요.'하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사진의 모델이 되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이들과 사진을 함께 찍은 이는 천 원 한 장을 줘야 한다.

어떤 이는 만원 짜리로 바꿔달라고 조른다. 장가계 광광객의 90%이상이 한국인이어서 장가계에서는 한국돈이 그대로 통용되어서 장가계를 오는 사람들은 누구나 1,000원짜리로 바꾸어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거기서 아내는 장가계를 수놓은 가방 다섯을 1,000원 씩 주고 샀다. 슬그머니 공항에서 2,000을 깎아준다고 해서5,000원 주고 산 '장가계훙광촬영집' 한국판을 물으니 3,000원이라지만 2,000원에도 팔 것 같다. 장가계 관광을 '와와 관광' 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한국 여행객이 많아서이기도 하다는데 왜 그럴까? 가까워서인가. 아니면 아름다움을 좋아하는 민족성 때문인가.

*. 굽어 보는 천자산 무릉도원



여기서부터는 십리화랑(十里畵廊)이 시작되는 곳이어서 그 5km를 우리는 모노레일[궤도열차]을 이용하여 구수한 가이드의 안내 설명 따라 왕복한다. 십리화랑(十里畵廊)이란 계곡 따라 십리에 걸쳐서 펼쳐지는 양쪽에 욱어진 수풀과 각양각색의 석영사암으로 이루어져 끝이 날카롭고 기이한 봉우리가 만들어낸 풍경들이 화랑에 전시된 그림 같이 아름답다 하여 생긴 이름이다.

그러나 개발은 얻는 것이 있듯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보봉호인가 댐을 인공적으로 막았더니 흐르던 계곡물이 감쪽같이 사라져 버려서 물 없는 십리화랑 계곡이라는 오명을 갖게 된 것이다. 장가계가 화가가 이곳의 그림을 그려 발표한 것으로 인하여 세상에 알려 졌듯이 중국 시인 려성명이 쓴 시가십리화랑을 빛내고 있다.

기봉이 다투어 하늘을 보려하니/ 천태만상이 화폭을 이루도다.
수곡천계가 십리라. /사람들은 십리 속을 거니노라.
여기서 눈설미가 있고 총기가 있는 사람은 전각루, 수영영빈, 양면신 등을 볼 수가 있다.



현지식으로 점심을 하고 우리는 무릉원 서북쪽에 있는 천자산(天子山)을 6인승 케이블카(요금 상행 52위엔/ 하행 42위엔)를 타고 10여분만에 주봉이라는 곤륜봉(해발 1,262m)을 올랐다. 금편계와 십리화랑에서의 경치가 올려다보는 경치라면 천자산의 풍경은 천하제일 기봉들을 한 눈에 내려다보는 경치다.

 

 

 





이곳은 중국의 4대명관이라는 구름(雲濤), 달(月輝), 노을(霞日), 눈(冬雪)의 변화무쌍한 것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요, 동, 남, 서 3면에서 하늘을 받쳐 들고 있는 웅장한 봉우리들의 기이함과 수려함이 깃든 야성미의 삼위일체를 경험해 볼 수 있는 포인트다.

장가계를 일러서 ‘대자연의 미궁(迷宮)’, ‘지구의 기념물(記念物)’, ‘확대된 풍경 화분(花盆)’, ‘축소된 선경(仙境’), ‘중국산수화의 원본(原本)’ 이라는 곳의 하일라이트 천자산의 조망은 명실상부라, 이 진경 앞에서 감탄이란 감탄사를 다 써도 부족하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가장 좋고 중요한 곳에서는 사단이 나는 법인지, 이 천하의 절경을 흥분 속에 카메라에 담으려 하였더니 준비한 바데리 4통을 다 써버린 것 같다. 체념하고 감상만 하다가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라 디지털카메라에서 필름에 해당하는 후레쉬카드 512 MB를 다 써버린 것이었다. 케이블카로 올라오면서 이 절승을 놓칠세라 동화상을 찍어 대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천자산의 절경을 아깝게도 좋쳐버리고 꿩 대신 닭이라 시의 힘을 빌어 나의 감회를 끄적여 봤다.

올려다 볼 땐 봉우리가 하늘을 가리더니 내려다보니 기봉(奇峰)이 구름 속에 솟아 있네. 여기가 무릉도원인가 속세가 아니로구나.

-천자산에서




서산대사가 한국의 명산을 평하기를 금강산은 수이부장(秀而不壯)이요, 빼어나지만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이불수(壯而不秀)이나, 웅장하지만 빼어나지 못하지만, 묘향산은 역장역수(亦壯亦秀)라, 또한 웅장하고 또한 빼어나다고 하였다. 당송8대가의 한 사람인 소동파도 我願生高麗國見金剛山(아원생고려국견금강산)이라 하여 고려국에 태어나서 금강산 보기를 소원하였다 한다.

일행 중에는 장가계와 비교하면 계림(桂林)은 저리 가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다. 계림의 아름다움이 있고, 금강산의 아름다움이 있는 것이지 그 미에 우열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계림은 여성적인 산으로 그래서 이 지방에서 선비가 많이 배출 되었다면, 장가계는 남성적인 산으로 장군과 위인이 많이 배출 되었다고는 한다.

외국여행을 다녀와서 우리강산이 금수강산(錦繡江山)이라고 극찬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아름다움의 하나이지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는 말이니 삼가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물을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금수강산(金水江山)인 것만은 분명하다. 천자산(天子山)에서는 기이한 봉우리가 다투어 빼어남을 뽐내고 있고 그 미가 역장역수(亦壯亦秀)라 할 정도로 빼어나고 웅장하다.

정상에 어인 건물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날렵한 지붕의 천자각(天子閣)나 주위 경치를 바라 볼 수 있는 점장대(点將臺), 장군암, 신병취합(神兵聚合)이 있는 것을 보면 천자산(天子山)의 이름에 대한 유래가 전설 아닌 사실인 것 같다.

명 나라 홍무왕(洪武王) 시절 이 곳에 사는 투가족(土家族) 중에 향왕천자(向王天子, 向大坤)가 있었다. 큰 뜻을 품고 명(明) 나라에 항거하기 위해서 의병을 모아 이곳에서 훈련을 하였다. 그래서 후세 사람들이 옛이름 청암산(靑岩山)이란 이름을 버리고 천자산(天子山)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천자산의 멋은 탁 트인 시야에 전개되는 웅장한 산세다. 그 주에 제1경치는 뭐니 뭐니 해도 어필봉(御筆峯) 이다. 사력(寫歷) 40년에 이런 경치를 찍어본 경험이 없기에 하는 말이다. 어필봉 3 봉우리는 날렵한 ' I '자 몸매로 구름을 뚫고 나와 하늘을 바치고 있는데 그 뒤로 이어지는 구름에 싸인 연봉 뒤에 계속되는 연봉은 필설로 표현할 수 없는 세계인데, 흙이 하나도 없을 듯한 봉우리 틈새를 비집고 봉우리마다 소나무가 청청하다.

전설에 의하면 전쟁에 진 천자에게 던진 황제가 쓰던 붓이 거꾸로 박혀 그대로 봉우리가 되어서 임금 어(御) 붓 필(筆) 어필봉(御筆峯)이 되었다 한다.

 

 

여기는 선녀산화대(仙女散花臺)다. 봄이면 산 아래와 산 허리에 야생꽃이 만발하고 여름이면 청풍이 불어온다. 그러면 안개 같은 구름의 모습이 꽃에 어울려 선녀가 꽃을 뿌리는 것 같다하여 생긴 이름이다.

산 위에 왠 바다인가 하며 서해(西海) 전망대 앞에 서니 수많은 바위 봉우리가 운무 속에 파도치듯 펼쳐 있었다. 이러한 절경에 빠질 수 있겠는가. 왠 소년들이 카메라폰을 우리들 하나하나에 들이대며 사진을 찍고 있다가 사라지더니 우리 얼굴이 담긴 열쇠고리를 들고 와서 천원을 외쳐댄다. 아애 것과 내것 둘을 천원에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난다. 이 조용한 산중에서 웬 호루라기 소리일까. 우리 30대 초반의 조선족 가이드가 빨리 가자고 아버지 또래의 우리팀을 부르는 소리다. 중국에서는 자기 아버지도 호르라기로 부르는가. 장가계 여행이란 游山玩山水看洞(유산완산수간동)이라. 유유자적으로 산을 노닐면서 산수을 희롱하는 것이라는데 천하 절경인 천자산에 와서 왜 이리 바쁘게 서두루는가.

*. 원가계(猿家界)

꽃밭에는 꽃들이 모여 살듯이 아름다움도 함께 몰려 사는 것일까. 세계의 음악가나 유명한 문인들을 보아도 같은 세대에 태어나는 경우가 많다. 갑천하 계림이, 하노이의 하롱베이의 그 멋진 수천 수만의 봉우리가 그렇더니 여기 장가계의 풍광 또한 가까이 몰려 있다.



장가계 삼림공원 경내에 들어와서 20여분 가면 만나게 되는 이정표에 황석채(黃石寨), 금편계(金鞭溪), 학자색(鶴子寨) ,삭도(索道)의 갈림 길이 있는 것을 보면 무릉원이란 이름으로 한데 모여 어울려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여행사들이 장가계 여행에 원가계가 따로 있는 것처럼 소개하고 있는 것은 그릇된 일이다. 무릉원의 하나가 원가계(猿家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가계 경치를 태산의 웅장함〔泰山之雄〕과 계림의 빼어남〔桂林之秀 〕과 황산의 기이함〔黃山之奇〕과 화산의 험준함〔華山之險) 〕을 한데 모아 놓은 산이라고 하는 것이다.



옛사람이 달에게 물었다.(猿人問月) 문을 열고 보는 산이(開門見山) 천하 제일교인가.(天下第一橋) 하늘이 스스로 만든 다리인가.(天生橋)



기적 중에 기적이라는 천하제일교는 300m의 바위 둘이 길이 20m, 넓이 2m의 자연석을 받치고 있는 천연적인 다리인데 그 아래는 천길 절벽. 그 다리 위를 거닐면 구름 위 오작교를 거니는 듯할 터인데 관광객의 안전을 위함인가 출입금지다.

그 다리 끝에 정자 두 채가 있는데 거기서 다시 또 위로 오르는 층계는 천국을 오르는 계단 같다. 그런데 이건 무언가. 이 다리 입구 난간에 수백 개 수천 개가 넘는 잠을 쇠가 굳게 잠겨 있다.



사랑하는 우리 이름으로 잠을 쇠를 굳게 잠그고 열쇠를 힘껏 던져 버리자. 우리들 사랑 깊이까지. 그 열쇠 찾고 나서야 이별이 가능하다니. -언약



나도 아내에게 비록 지키지 못할 언약이나마 여기서만이라도 하여 주고 싶다. '자기가 건강하다고 아내가 아파도 무관심 하고, 형제보다 자기를 괄시한다고, 둘째 며느리로 시집 와서 큰 며느리 역할 시킨다고, 남한테는 잘하면서 자기한테는 고약하다고, 술만 먹고 다닌다고, 잔소리 대학 잔소리과 전교 수석 졸업생이라고 자기를 거시기 한다고, 죽어서는 당신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고- ' 늘 푸념하는 아내에게 원가계 절승 앞에서, 굳게 언약하는 수많은 굳게 잠긴 잠을 쇠 약속 앞에서 시 한 수를 아내에게 바치고 싶어진다.



다음 세상 또 있다면 다시 부부(婦夫) 되고 싶다 아내는 내가 되고, 당신은 남편 되어 녹발(綠髮)이 백발(白髮)이 되도록 우리로 살고 싶다.

잔소리 않는 아내 당신에게 되어주고 아내만 위해 사는 나의 남편 당신 되어 저 세상 부부(婦夫)가 되어 지금처럼 살고 싶다. -부부(婦夫)







천하제일교 거기서 조금 내려온 곳에 미혼대(迷魂臺)가 있다. 미혹(惑)할 미(迷). 넋 혼(魂)이니 미온대는 넋을 잃을 정도로 혹(惑)하는 곳이라는데, 우리는 천자산과 어필봉에서, 원가계 천하제일교에서도 넋을 벌써 잃었는데 여기서 또 무엇을 잃으란 말인가.

미혼대란 반어법으로 그 잃은 넋을 여기서 찾아가라는 곳이 바로 미혼대(迷魂臺)인 모양이다. 공불이색(空不異色)요 색불이공(色不異空)인 불가의 화두(話頭)처럼.





우리는 백룡(白龍) 엘리베이터를 타고 산정 호수 보봉호(寶峰湖)를 간다. 백룡엘리베이터는 3대가 동시에 수직으로 327m를 내려오는데 171m까지는 절벽에 붙인 수직 강철 구조물을 이용하여 유리창을 통하여 수려한 밖을 내보며 내려오다가 다음 156m는 컴컴한 동굴 속을 고속으로 내려오는 세계에서 제일 높고 크고 속도가 빠르다는 관광 전용 엘리베이터다.

*. 황석채에 오르지 않고 장가계를 말하지 말라



황석채는 장가계 절경 중에 절경이어서 늦으면 오르내리는데 기다린다고 서둘러 식사하고 호텔을 나섰다. 황석채 가는 길은 어제 지문을 찍고 들어갔던 국립삼림공원으로 가다가 곧장 가면 금편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간다. 여기도 힘든 코스가 있는지 가마꾼들이 달려 든다. 조금 오르니 엘리베이터 승강장이었다. 이 엘리베이터는 특이하게도 세 개의 노란승강기가 동시에 산정을 오르내리는 것이다.

황석채에 오르지 않고 장가계를 말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장가계의 명승지가 아무리 가까이 모여 있다 하지만 크게 장가계국가삼림공원, 천자산자연보호구, 삭계욕자연보호구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 드넓은 장가계의 경치를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보듯이 황석채에서는 한 눈으로 내려다 볼 수 있다는 말이다. 황석채는 장가계 5경구에 속하는 곳이다.

그러니까 무릉원이라는 장가계 일원의 면적이 264제곱 km으로 미 개발된 5대 경구를 모두 합한다면 500제곱km라니 이 얼마나 부러운 이야기인가. 장가계는 일년에 200일 이상이 비가 오는 날씨라. 우리나라 지리산 천왕봉에서 3대에 덕을 쌓지 않으며 못 본다는 일출처럼 장가계 날씨도 행운이 아니고서는 오늘보다 선명한 경치를 기대할 수가 없다 한다.

동양의 그랜드캐년이라는 이 장가계를 내려다보면서 나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찍는다고 찍었으나 일행을 뒤따라 뛰어가면서 이삼 분 이내로 찍은 사진이라서 마음에 드는 것은 몇 컷뿐이다. 정일한 촬영을 해야하는 파노라마 촬영은 더욱 어려웠다.

일언이폐지하고 보시라, 황석채에서 본 장가계의 위용을-.

북경(北京)은 발로 하는 관광이요, 서안(西安)은 귀로 하는 관광이다. 계림(桂林)은 눈으로 하는 관광이라면, 장가계는 몸과 발과 눈으로 하는 여행이라 한다. 그러니 장가계는 나주 늙기 전 다리 힘에 조금이라도 자신이 있을 때 와야 제대로 볼 수 있는 관광이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