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海印象牙長稜의 절경에 말문이 닫히고)

2003년 11/3일 필자는 가야산으로 갔다. 가을이 가는 계절의 길목에서 가야산에 대한 나의 향수는 이때 쯤이면 방황 버릇이 되어 어김없이 찾아온다. 이른 아침에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섰다.

이번 산행은 가야면 치인리의 해인사 일주문에서 출발하여 좌편 홍제암의 사립문을 지나 잔대밭골의 수려한 계곡의 절경를 탐승하고, 두리봉 동쪽안부로 올라서 부박령을 거쳐, 가야산 상왕봉 정상을 올라 정상 동쪽 안부에서 서성재 방향으로 내려와서, 가야산성의 너덜바위 지대를 지나고, 다시 서성재에서 가야산 남동능선 해인상아장릉의 기암봉의 경관을 맛보고 백연암 서쪽 능선을 타고 불족봉으로 내려와 해인사 큰절 일주문에 도착하는 원점회귀 산행코스를 택했다. 홍류동천 계류의 황갈색 단풍과 청록빛 물결이 조화로운 가야천변에는 하늘을 가린 노송이 처마가 되어 터널을 이루고 있었다. 지나가는 선경에 마음을 빼앗긴 일순간 차는 어느새 해인사 성보박물관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직 인적이 드문 산문의 길, 해인사의 산책로에 들어서니 천년을 딛고 살아온 노송이 나를 반기고, 조금은 빛 바랜 늦은단풍이 산사의 가을을 재촉 한다. 해동제일도량 해인사 일주문 왼쪽 돌확에서 식수를 채우고, 곧장(08:00경) 가야산 산행길에 올랐다. 가야산 등산로 이정표가 가리키는 전면의 용탑선원길 주등산로가 아닌 서쪽 방향의 홍제암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홍제암에는 이 암자에 주석한 사명대사 비가 있다. 허균이 지은 비문은 평생을 왜놈과 싸운 사명당 유정스님의 간절한 나라사랑으로 승화된 배왜사상이 담겨 있다. 열 십자 네조각이 나있는 이 비석은 일제 강점기의 민족수난사가 고스란히 녹여 있다.

홍제암 서쪽 사립문을 지나 잔대밭골로 방향을 잡았다. 가야산 정상 상왕봉의 수려한 멧줄기는 산정에서 남쪽으로 흘러 내린 물을 가두어 극락골, 토신골, 잔대밭골의 세 계곡을 만들어 해인사 앞을 흘러 나오다가, 또 다른 계류인 마령(서쪽)의 초막골, 장자골은 용문폭포의 비경을 빗고나서 단지봉의 치인골, 남산제일봉 서북면의 돼지골 물줄기와 신부락 마을에서 만나 동쪽으로 흘러나와, 해인사 상가단지 앞 영산교에서 합수되고, 세번째 물줄기인 남산제일봉 북동쪽 계곡에서 내려온 물과 합류하여 천하절경 홍류동천의 선경을 만들고, 가야천이 된다. 이름지어 부르기를 가야산 19경이라 했다.

등산로는 잔대밭골 우편으로 나있고 평탄한 길로 시작 된다. 왼편으로는 비봉산이 높이 솟아 있고, 동북쪽으론 상왕봉, 북서쪽의 두리봉으로 둘러싼 잔대밭골 계곡은 은밀하고도 깊은 심산유곡 이다. 아름드리 거목이 짙은 숲거늘을 이루는 길을 우편 골짜기로 20분쯤 올라가니 골짜기가 두갈래 길로 갈라진다. 계곡을 가로질러 상수원 취수장이 있는 왼편 오솔길로 나아 간다. 이제부터 전형적인 등산길 이다.

우편의 계곡가 나란히 오르는 등산로를 30분쯤 계속 오르면 또 계곡을 가로 지른다. 물푸레나무, 참나무, 잣나무으로 숲을 이룬 이곳은 산죽밭길 이다. 곳곳에 너럭바위와 폭포, 소를 담은 계곡은 산행의 흥미를 더욱 크게 한다. 정규 등산로가 아니어서, 사람의 발걸움도 뜸한 길인지라 간혹 표지기가 보이지만 등산로를 잘 살펴 올라야 한다.

계곡을 건너서 계곡의 오른쪽으로 난 길을 고도를 높여 한동안 걸어가면 산죽이 사람 키 높이 이상으로 자란 길이 나온다. 산죽길을 헤치고 나가 30분쯤 계속 오르면 두리봉 동쪽 안부에서 수도-가야산 종주능선과 만난다. 여기서 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면 가야산 정상 상왕봉에 도착한다. 홍제암에서 이곳 안부까지의 잔대밭골 길은 1시간30분쯤 걸린다.

이곳 안부에서 가야산정을 보면 우두봉임을 실감할수 있다. 가야산을 왜 우두봉이라 하는지 수 십차례 가야산을 등정했지만 그 비밀을 몰랐었는데, 98년 여름 청암사의 수도산에서 가야산 해인사로 종주산행을 하면서 우두봉의 비밀을 풀었다. 가야산 정상이 소머리 형상으로 동남쪽으로 고개를 들고 앉아있는 신비한 모습에 경탄을 금치 못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수도산에서 본 가야산이 한송이 연꽃 형상으로 솟아난 모습을 말이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한국제일경이라 하지 않았든가. 이곳 안부에서 30분쯤 봉우리를 오르고 내리고 또 오르면 부박령 마루에 도착한다. 일순간 가야산의 모습은 코끼리 형상으로 바뀌어 남동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을 볼수 있다. 얼마나 신비하고 놀라운 경관인가. 이전의 우두봉에서 상왕봉으로 가야산의 모습이 달라진 것이다. 북동쪽 방면에 검은 불꽃바위로 우뚝 치솟은 가야산 정상의 기암봉의 모양이 시시각각으로 우두봉과 상왕봉으로 교차되어 시야에 나타난다.

부박령 고개마루에서 정면의 커다란 바위지대 우편으로 나있는급경사의 비탈진 길을 오르면 가야산 정상부 대암능 지대를 만난다. 산사면을 비스듬히 가로 질러 1km쯤 가는 길이다. 정상밑 평평한 곳에서 바위지대를 왼쪽으로 끼고 철사다리 계단 길을 오르면 가야산 정상인 상왕봉이디. 정상부의 조금 평평한 곳에 삼각점이 있고 이곳에 ‘가야산의 명소’란 안내문을 가야산국립공원관리소에서 세워 두었다. 이 지점의 왼쪽으로 가야산 우두봉 정상표지석이 있고, 그 뒤에 솟은 돌출된 바위가 상왕봉 정상이다. 정상에서 동쪽 30m 지점의 평평한 너럭바위엔 가야산 19명소 중 제19경인 ‘우비정’이란 하늘샘이 있다.

산정에서의 경관은 일망무애의 지경이 펼쳐진다. 저 멀리 남서쪽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의 마루금은 서쪽의 덕유산 넘어 대덕산을 건너, 북서쪽의 추풍령을 지나 황악산으로 달린다. 백두대간의 원줄기에서 동쪽으로 슬쩍 비겨나와 영남 내륙으로 들어온 가야산의 위치는 정상에 오른 산꾼들에게 장쾌하게 사방으로 탁트인 조망의 즐거움을 덤으로 선물한다. 동쪽으로 보이는 대구시가지의 모습도 한결같다.

정상을 내려와 동쪽의 상왕봉 동쪽 바위지대로 난 등산로를 따라 뒷편 북사면으로 해서 철계단을 오르면 상왕봉 동쪽 암능지대의 안부에 닿고, 그 우편의 돌출된 곳에 칠불봉 표지석이 서 있다. (*필자 주: 성주군에서 자체 측량으로 1433m 표고점이 있으나, 국립지리원측의 확인에 의하면 1410.5m이며 또한 칠불봉이란 지명도 불확실 하다고 한다. 칠불봉이란 봉우리는 동쪽 400m의 독립된 암봉을 부르는 이름으로 지형도상에 표기 되어 있음.)

이곳에서 돌아와서 안부 왼쪽의 남사면 철계단길로 내려서서 급경사와 완경사가 반복되는 능선을 따르면 가야산성의 너덜지대를 만나고, 30분쯤 내려오면 평평한 안부의 삼거리에 이른다. 이곳 서성재에서 왼쪽을 내려가면 용기골로 해서 백운동으로 하산하는 길이다.

해인상아장릉 海印象牙長稜(*주: 필자는 가야산 정상 상왕봉 동쪽 안부에서 서성재,서장대,사자봉(1080봉),1054봉, 백연암,으로 내려온 가야산 남동능선의 비경을 상왕봉의 상아의 아름다움을 형상화 하여 해인상아장릉이라 명명해 보았다. 이 해인상아장릉의 아름다움은 가야산 기암봉중 백미이다.)을 타려면 등산로 아님 팻말의 남쪽 능선으로 가서, 서장대(상아덤)에 올라야 한다. 상아덤의 안내문엔 대가야국 창건설화가 게시되어 있다.

비탈진 오르막을 올라서면 기암봉을 만나는데 서장대라 이름한다. 이곳 서장대에서 남쪽으로 백연암까지 해인상아장릉의 기암봉의 비경이 장쾌하게 펼쳐지고, 동남쪽으로 만물상 능선이 갈라져 나가 신비한 모습을 보이는 이곳은 가야산 최고의 절경지로 능히 부를수 있는 곳이다.

해인상아장릉의 가야산 남부능선에서 북쪽의 가야산정을 보면 가야산 상왕봉은 피라미드 형태의 육중한 석주위에 검은 바위불꽃 모습으로 공중에 솟아 있다. 그 장엄미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지만, 이곳 서장대 암봉에서는 우측으로 돌아서 남사면 날등을 치고 내려가야 한다. 해인상아장릉은 기암봉의 연봉으로 계속 이어진다. 주로 능선의 우편으로 등산로는 나 있지만 등산의 묘미를 한껏 즐기려면 암봉의 날등을 타면된다. 적당한 크기와 간격으로 배열된 침봉은 때로는 오금을 졸이기도 하지만. 암봉을 넘는 묘미는 더 할수 없는 쾌감을 준다.

기묘한 형상의 바위가 닥아 오다가 어느새 지나가고,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일대 장관이다. 사자봉(1080봉)의 기막힌 경관에 무릎을 치고 돌아서면, 남쪽 산자락에 솟아 오른 남산제일봉의 형상에 또 한번 탄성을 지른다. 백연암 북쪽 백연봉(1054봉)까지 2시간쯤 산행하면 남쪽의 산비탈에 백연암이 보이고, 전망대 바위에서 서남방향의 가파른 능선길로 내려오면 부드러운 완경사의 능선길을 만나고, 30분쯤 내려와 능선안부에서 좌측 지능선을 따르면 앞이 탁 트이고 평평한 곳에 팔각전망대가 있다. 이 산중 전망대는 지족암 선승들이 참선하는 곳으로 생각된다. 이곳에서 보는 해인사 가람과 주변의 경치 또한 일품이었다.

조금 더 내려오면 두길 크기의 불족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위엔 부처의 족적이 음각되어 있다. 필자의 발로 그 크기를 가름해 보니 부처님의 족적은 2배쯤 된다. 불족바위 왼편길로 들어서니 발아래 산중 암자인 지족암이 있다. 암자앞의 계단길을 밟고 내려와서 길섶 양편으로 산죽이 부드럽게 자라 있고, 흙으로 잘 다진 정겨운 큰절로 가는 길이 나를 반긴다. 해인사 큰절로 나와 가람 뒤편 계단을 조용히 올라서 사립문으로 들어서니 대적광전이 눈앞에 있다.

산이 반이고 절이 반인 곳 가야산, 오늘 하루 나란 존재를 잊고 환희심에 젖게 한 산 가야산, 해탈문을 나와 아름드리 노송들이 우거져 하늘조차 가린 길을 걸어 산문을 나왔다. 장장 7시간의 산행을 마치고, 해동제일가람 현판이 달린 해인총림 일주문에 다시 섰다. 일주문 왼편 돌확에서 솟아나는 샘물로 목을 축인다.

(2004.1.4)

[가야산 등산지도]

(*필자 주: 위 등산지도를 보면 칠불봉의 위치가 성주군에서 주장하는 현재의 위치가 아닌 동쪽으로 400m의 암봉이 칠불봉임을 알수있습니다. 칠불봉이란 명칭이 성주군의 인위적으로 조작한것 임을 명확히 하는 증거입니다)


▣ 권경선 - 해인상아장릉...상아형상을 닮은 긴 능선인 듯 한데 무지한 저는 불심이 돈독하신 분의 산행기가 아닌가 짐작 해 봅니다. ( 무례를 므릅쓰고..) 오래 전 아내와 지리산에서 덕유산으로 향하던 중 잠시 해인사를 구경 하였습니다. 늦 가을의 가람은 고요하기만 하고 높은데서 떨어지는 물 소리만이 해인사를 말 해 주고 가야산은 미쳐 보지도 못 했습니다. 님 덕분에 가야산을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 自卿山人 - 가야산 자락에서 자란 사람으로 저에게 가야산은 아버지 산으로 기억됩니다. 이제 크서 종 횡으로 둘러보는 가야산 매니아가 되었군요. 가아산 정상 상왕봉에서 남쪽 백연암까지 뻗친 가야산남부능선(5km)의 기암단애의 절경이 설악산의 용아장성릉과 같기도 해서,해인사와 상왕봉의 의미를 담아 해인상아장릉으로 불러 보았습니다.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또 의견을 주시니 감사합니다.그리고 권경선님이 가야산에 오실때 도움이 되게 가야산 등산지도를 첨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