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종주기

 

 

                                    *산행일자:2004.10.10일
                                    *소재지  :강원 평창/ 홍천
                                    *산높이  :오대산 1,563미터/동대산 1,434미터
                                    *산행코스:오대대피소-동대산-두로봉-상왕봉-비로봉-상원사(20키로)
                                    *산행시간:7시45분-16시45분(9시간)

 

 

오대산의 가을은 깊었습니다.
이 산 특유의 냉랭함이 초록의 나뭇잎을 재촉하여 만든 단풍이 3부 능선까지 내려와 가을의 깊이를 더해주었고, 때 맞춰 내린

빗줄기가 나무가지로 부터 그 잎들을 떨구어 내 가을마무리가 이미 능선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눈으로 붉게

물든 단풍을 바라보며, 두 발로 능선 길을  덮기 시작한 낙엽을 밟고, 가슴을 데우고 따뜻하게 살라는 이 가을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바람을 가슴으로 맞이하며 온 몸으로 오대산의 가을을 체감하고 돌아왔습니다.

 

제가 어제 오대산을 찾은 것은 32년 전에 시도했던 종주를 해보고 싶어서였습니다.
1972년 10월 의기투합한 산형과 함께 강원도 평창의 오대산을 다녀왔습니다. 10월 유신이 선포된 지 나흘 후인 10월 21일  공무원의

무단이석을 금한 포고령을 어기고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던 교육공무원인 제가, 마침 군 체육대회와

유엔(U.N)의 날 공휴일로 수업은 없었다지만, 학교를 비우고  3박4일로 오대산 종주 길에 나선 것은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짓이고

결코 칭찬 받을 일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당시의 살벌했던 분위기에서 탈출하고 싶었고, 그 해 봄 첫 발령을 받은 햇병아리 교사

였기에 뭘 모르고 저지른 만용이 아니었겠나 생각해봅니다.

 

32년 전에 오른 오대산 산행기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산행 첫날은 민박촌에서 출발하여 상원사를 거쳐 비로봉을 오른 후 상왕봉으로 옮겨 두로령으로 내려섰습니다. 여기서 두로봉으로

오르고자 했으나 날이 어두워 다음날로 미루고 임도를 따라 하산하다 북대사를 발견, 스님에 간청하여 선방에서 스님들과 함께

하룻밤을 묵었습니다. 둘째 날은 이른 새벽4시에 기상하여 스님들과 함께 새벽 예불을 올리고 아침 식사를 들었습니다. 아침 늦게

북대사를 출발하여 두로령을 거쳐 두로봉까지 올랐으나 동대산 길이 제대로 나있지 않아 동대산을 거쳐 월정사로 하산하겠다는

꿈을 접고 북대사로 되돌아 왔습니다. 저희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해주신 주지스님의 열정에 감복하여  2시간 넘게 계속된

강론시간 중 흐트러짐 없이 반가부좌의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3박4일 일정중 산을 오르내리느라 이틀을 보냈고 교통편이 불편하여

오가는데 나머지 이틀을 썼습니다.

 

어제 새벽 2시를 넘어서 강릉에 도착, 찜질 방에서 2시간 가량 눈을 붙였다 일어나 아침 6시20분에 터미널을 출발하는 시외버스를

타고 진부로 옮겼습니다.  산행시간을 충분히 확보하고자 진부에서 2만원에 택시를 잡아타 오대대피소에서 내렸습니다.

 

7시45분 두 병의 페트병에 물을 가득 채우고 오대대피소를 출발했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상원사에서 대규모의 불교행사가 있어 복잡할 것 같다는 택시 기사 분의 얘기대로 아침 이른 시간에 상원사로 올라

가는 승용차가 줄을 이었습니다.

 

7시56분 연화교를 조금 지나 동대산으로 이어지는 들머리를 찾아 계곡으로 들어섰습니다.
일기예보대로 먹구름이 하늘을 덮어 바로라도 큰 비가 내릴 것 같아 계곡산행이 은근히 걱정되었습니다. 다행히도 바위길이

미끄럽지 않고 경사도 심하지 않아 15분 가까이 계속된 계곡 길을 그리 힘들이지 않고  통과했습니다. 들머리를 출발한지 30분

후 해발 960미터의 고개 마루에 올라서자 기다렸다는 듯이 태고의 음향을 재현한 바람이 거칠게 불어댔습니다.  바람에 날릴까

염려되어 모자를 세게 눌러 쓰고 선 채로 잠시 숨을 고르고 능선에 조금 비껴 서있는 나무들을 불사르는 새빨간 단풍들을

감상하고 나자 때맞춰 이곳 오대산에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9시13분 해발 1,260미터대의 능선에서 첫 쉼을 가졌습니다.
능선 길을 오르는 동안 언뜻 짐승소리와 비슷한 소리가 들려 바짝 긴장을 했는데 확인해 보니 고목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였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 뚜껑 보고 놀란다고 지난 9월 덕유산 능선에서 으르렁대는 짐승소리에 하도 놀라 이번에도 섬뜩

했습니다. 대구에서 오셨다는 부부 두 분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대구에서 몰고 온 승용차를 동피골야영장에 주차시키고 저와

같은 코스로 해서 다시 야영장으로 돌아가겠다는 두 분의 발걸음이 힘찼고 저보다 훨씬 빨랐습니다.

 

9시34분 대피소에서 3.5키로를 걸어올라 해발 1,434미터의 동대산 정상인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정상도착 2분전에 진고개 행

갈림길에서 백두대간에 올라섰습니다.. 내년에는 반드시 종주를 해내겠다는 결심을 굳힌 터라 짧은 코스지만 두로봉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을 정성스레 밟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깜박하고 카메라를 집에 두고 와 사진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지만 덕분에

산행속도를 낼 수 있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안위했습니다. 한 떼의 산악회회원분 들이 출발하자 동대산 정상은 다시 조용해져

잠시 다리를 펴고 숨을 돌렸습니다.

 

9시45분 동대산을 출발, 7키로의 두로봉행 첫 걸음을 내 딛었습니다.
계곡을 타고 산마루로 오르는 가파른 길에 비하면 대부분의  능선 길은 잘 닦인 페이브멘트인데 이 대간 길 또한 걷기에 편안해

4 키로를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해발 1,230미터의 고지에 자리잡은 차돌머리의 암반이 능선 길가 곳곳에서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의

흰 줄기와 백색의 선명도 경쟁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민족의 시원 점인 바이칼호에서 자생하는 자작나무는 한반도 최남단인

제주도까지 퍼져 있어 아주 친숙한 나무로 그 줄기가 희어 일명 백화수라고도 불리는데 여기 오대산의 자작나무가 더욱 하얗게

보였습니다. 그리고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대부분의 회색의 암반들과는 확실히 구별되는 이렇게 큰 차돌바위를 지금껏 본적이

없는데 이 높은 곳에서 맑디맑은 규암의 차돌머리를 볼 수 있다니 신비로웠습니다.

 

10시59분 해발 1,220미터대의 능선에서 4키로를 계속해 걸어 꺼진 배를 채우고자 김밥을 꺼내 들었습니다. 통이 큰 활엽수들 밑에서

자라고 있는 아주 작은 전나무 몇 그루가 활엽수의 텃세에 밀리지 않고 끝까지 무탈하게 잘 자라기를 기원했습니다. 간헐적으로

내리는 비와 나무줄기를 흔들어대는 바람에 못 견딘 나뭇잎이 계속해 떨어져 서서히 끝나 가는 가을의 깊이를 가늠하게 했습니다.

11시 8분 짐을 챙겨 다시 두로봉을 향해 뛰었습니다.


이 산중에서 몸놀림이 바쁜 것은 저 만이 아니었습니다. 구름과 바람도 바쁘게 움직여 태양의 길 나섬을 가로막곤 했습니다만,

그 세가 약해져 햇살의 따사로움을  느끼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습니다. 고도를 낮추어 1,100미터대의  안부에 내려서자 널 다란

작은 평원에 떼를 이루어 식생하고 있는 자작나무로  주위가 하얗게 느껴졌습니다. 안부에서 계속되는 오름 길은 동대산-두로봉

코스 중에서 가장 가파른 깔딱고개였습니다. 고개를 다 올랐다 싶으면 평지길이 펼쳐지다 바로 또 하나의 비탈길이 나타나기를

몇 번이나 되풀이되었습니다.

 

12시 25분 두로봉에 다다랐습니다.
이곳 두로봉에서 신배령까지 길이 위험하여 출입을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서 있었지만 백두대간을 뛰는 산악인들의 열정을 가로

막지는 못해 여기에서 종주를 멈췄다는 얘기를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먼저 도착한 많은 분들로 쉴 자리를 찾지 못해

두로령으로 5분을 내려가 주목나무 밑에다 자리를 잡고 떡을 들며 피로를 풀었습니다. 각기 다른 모습의 아름드리 주목 7그루가

진면목을 아낌없이 보여주었는데 카메라에 옮겨 담을 수 없어 못내 아쉬웠습니다.

 

12시 45분 상왕봉을 향하여 길을 나섰습니다.
제우스신의  힘이 다한 듯 맥없이 밀려난 구름에 뒤이어 하늘을 차지한 태양이 한껏 무르익은 만추의 오대산을 속속들이 비추어

주었습니다. 해발 1,360미터의 두로령에 내려서자  1972년 가을 이 산을 함께 올랐던 산형이 생각났습니다.

 

14시6분 두로봉에서 3.5키로를 걸어 해발 1,491미터의 상왕봉에 올랐습니다.
32년 전 이곳을 지날 때 짖어대던 까마귀의 울음소리는 이번에도 여전했습니다. 학습을 통해 대를 이어 정확하게 울음소리를

전수받은 까마귀의 기억력은 교육학자들의 테스트결과 13까지 셀 수 있는 것으로 밝혀져 하늘을 나는 새들 중 가장 뛰어나다니

까마귀고기를 구워먹어 머리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근거 없는 낭설이 되겠습니다.  그 간 하도 많은 분들이 이 오대산을 올라

능선길이 많이 훼손되었고  그래서 안내판과 철조망을 설치해 남아있는 주목들을 보호하고자 노력하는 공원관리사무소에 박수를

보냅니다만 이 바람직하지 못한 변화를 통해 32년이라는 세월의 두께를 실감하게 되어 씁쓰름했습니다.. 상왕봉에서 북서쪽으로 

구룡령을 넘어서 나있는 넓은 길이 잘 보였고 두로봉-동대산의 능선 길을 뛰어 넘어 노인봉이 분명하게 눈에 들어 왔습니다.

오전 내내 바람과 싸우며 걸어 온 백두대간도 한 눈에 잡혔습니다.

 

15시2분 오대산 정상인 해발 1,563미터의 비로봉에 올라섰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중 길가에 죽어 서있는 주목의 고사목이 내보이는 붉은 줄기에서 죽어서도 천년을 더 산다는 주목의 끈질김을

보았습니다. 대피소에서 두로봉까지는 그리 많은 분들을 만나지 않아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는데 두로령부터는 단풍맞이 나들이를

온 분들이 많아 등산로가 많이 붐볐습니다. 평지 길은 뛰고 가파른 오름 길도 쉬지 않고 내달렸지만 속도를 낼 수 없어 생각보다

늦게 비로봉에 도착했습니다. 오대산의 마지막 다섯째 봉인 호령봉을 오르고자 잠시 쉬며 지도를 꺼내보았는데 아무래도 해가

지기 전에 상원사에 도착하기에는 힘들 것 같았습니다. 고민 끝에 호룡봉은 한강지맥 종주 시 오르기로 하고 이번에는 상원사로

바로 내려가 17시 20분 발 진부 행 버스를 타기로 하고 모처럼 긴 시간을 쉬었습니다.

 

15시24분 비로봉을 출발, 상원사로 내려가는 하산 길에 들어섰습니다.
산행시간이 짧아 그리 지치지는 않았지만 두 다리를 보호하고자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덕분에 일상사를 잊고 오대산의 깊은

가을에 빠져들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하산 길에 서서히 시작된 어둠이 상원사에 이르러 짙어졌습니다. 산행을 끝낸 터라 걱정할 일이

아니었고 호룡봉 행을 잘 포기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로봉을 출발, 1시간 21분 동안 3.3키로의 길을 내려와 16시 45분 상원사 주차장에 다다라 종주산행을 마쳤습니다. 서울에 올라가면

32년 전에 함께 오른 산형에 그 때 못 이룬 오대산 종주를  9시간 동안 20키로의 산길을 오르내려 성공적으로 끝냈다고 보고하고자

합니다. 비록 마지막 봉우리인 호령봉을  오르지 못해 미완의 종주이기는 하지만, 그 때는 애당초 호령봉에 오를 계획이 없었기에

종주에 성공했다고  보고해도 괜찮을 듯 싶습니다.

 

시내버스로 진부로 옮겨 바로 우등고속을 타고 과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주말 연휴 이틀동안 칼봉산-매봉에 이어서 오대산을 오르느라 진을 빼서인지 머리 속으로 산행기를 요약하고자 눈을 감자마자

바로 잠이 들어 꿈속에 빠져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