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지리종주(성삼재-세석-백무동)


1. 산행일자 : 2004.8.14(토) [흐리다 맑음]


2. 운행구간 : 성삼재-노고단-연하천-벽소령-세석-한신계곡-백무동


3. 운행거리 : 29Km 안팎


4. 산행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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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산행기

<여름 휴가다. 요번 휴가는 지리산에서 보내기로 맘먹는다.
화엄사 근처에 잘 아는 휴양시설이 있다.

와이프를 비롯한 가족들은 휴양시설에 맡겨두고(?)
청색시대님이랑 나랑은 당일 지리종주 계획을 세운다.

서울, 대전을 지나 총알처럼 쏘는 대진고속도로의 속도감을 만끽하고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남원으로 빠져나간다.

남원에서 구례로 가는 국도가 88고속도로보다 헐 낫다. 잘 빠진다.
구례 못미쳐 천은사 방향으로 좌회전. 여름더위가 훅훅한다.

몇주 전부터 세운 계획이라 날씨를 예의주시하였는데
날자가 다가오니 8.14일 일기예보는 흐리고 비란다. 이론..

어떡하나해서 청색시대님한테 이야기했더니
"무슨소리야 무조건 가야지" 하신다.
그 말에 용기 백배해가지고 나선 지리산 걸음이다>




(02:43) 성삼재 출발
와이프의 차량지원을 받아 성삼재까지 간다.
휴양시설에서 차로 20분 걸린다.

날이 훤하면 성삼재 가는 길도 볼만한데 사위가 깜깜하니
산길을 가는지 평지를 가는지 구분이 안간다.
고도계 1,100m에서 성삼재에 도착한다. 02:30분.

벌써 대형버스가 미리 와있고 산객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깜깜해서 도통 찍을 사진이 없다.

워낙 보이는게 없어 무박산행을 기피하지만 내 실력에 이러지 않고는
당일에 끝낼 수 없는 절박함이 있다.

원래는 화엄사로 오르려했으나 화엄사로 올라
당일 지리종주는 엄두가 안난다.

당일 지리 왕복종주하는 사람도 있는 거 보면
아직도 내공을 끊임없이 쌓아야 할 듯..

시작부터 좀 빠르게 쏘야한다는 강박관념이 계속 머리를 짓누른다.
첨에 진도가 쭈욱 나가야 나중에 좀 편할거 아닌가라는 생각.
이게 나중에 화를 자초할 줄이야..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 돌박힌 평평한 콘크리트길도
속도를 내니 땀이 난다.
비가 온다했으나 하늘에 드믄드믄 별이 보인다. 일단 안심이다.

포장길과 산길이 갈라지는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
여길 보니 문득 옛 생각이..

대학 초년시절로 기억된다.
지리산을 간답시고 텐트며 석유버너며 쌀에 감자에 잔뜩 짊어지고
화엄사로 올랐다. 무쟈게 힘들었다.

한 20분 가다 5분 쉬었나 그럴거다.
아침에 떠났는데 여기에 도착하니 점심 때가 되었다.

그냥 여기서 퍼져 점심을 해먹고(그 때 카레를 해먹었다)
노고단을 올랐다. 지금은 노고단이 통제구역이고 야영을 못하지만
그 때만해도 노고단 너른 벌판에 형형색색 텐트로 꽉찼었다.

하도 기진맥진해 더 못가고 그냥 노고단에서 야영을 했다.
담날 아침에 떠나 화개재까지 가다 중도 포기,
다시 피아골 삼거리로 백, 피아골로 내려왔다.

그 땐 아무 생각없이 산을 올랐다.
모랄까 산에 대한 애착이 지금보다 덜한 거 같았다.

그 때 하산길에 본 피아골의 물이 넘넘 고왔다.
벌써 25년전 일이 되었다.

(03:13) 노고단 대피소
여기저기 비박하는 분들이 보인다.
뒤따라 온 한무리의 산객들로 웅성웅성한다.

지리산은 심심하지 않을게다. 이 새벽에도 이처럼 사람이 붐비니.
그 분위기에 잠시 물한모금 먹고 노고단으로.

◎ 노고단 안내도 ▼





(03:24) 노고단
언제 그렇게들 올라왔는지 여기도 왁자지껄하다.
여기도 날만 훤하면 노고단 운해 서껀 볼만할텐데
뵈는게 없어 지체없이 임걸령으로 향한다.

(04:13) 피아골 삼거리
지리산 산길의 주종은 돌 같다. 너덜길.
육산임에도 불구하고 등로에는 왼통 돌이다.
등로가 패이지 말라고 돌을 일부러 갔다 놓건 아닐거고.

화엄사로 올라 이쪽 피아골로 떨어져도
비록 지리의 일부분이지만 지리를 느끼기에 괜찮을 거 같다.

◎ 피아골 삼거리 이정목 ▼





(04:21) 임걸령
텐트가 2동이 있고 여기저기 비박하는 산꾼들이 보인다.
몇 미터 아래로 내려가면 샘터가 있다.

임걸령의 물은 맛있고 무쟈게 시원하다.
가지고 온 얼음물이랑 찬 정도가 거의 비슷한 거 같다.

이처럼 지리주능선 상에는 몇몇 샘이 있다.
그것도 참 희안한 일이다.

산꼭대기 능선에 어떻게 물이 나오는지..
다른 산에서는 좀 보기 힘든 현상같다.

물이 수시로 나오기 때문에 물을 적게 가지고 다녀도 되는데
이상하게 물을 적게 가지고 가면 불안해서
난 4리터나 짊어지고 다녔다.

◎ 임걸령 이정목 ▼



◎ 임걸령 샘터(물을 받는 청색시대님) ▼





(05:09) 삼도봉
어슴프레 바위지대가 나오고 여기에도 몇몇 비박꾼들이 있다.
솔직히 난 이게 삼도봉인줄 몰랐다.

삼각뿔 모양이 있어 3개의 도를 표시한다던데 어두워서 못봤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바로나오는 삼도봉-화개재간 나무계단 안내판땜에 알았다.
여기도 날씨 좋은 주간에는 조망이 그럴듯 하게 생겼다.

◎ 삼도봉 이정목(컴컴하니 이정목만 찍는다) ▼





(05:32) 화개재(뱀사골 삼거리)
삼도봉을 지나니 길고 긴 나무계단이 나온다.
나무계단은 도봉산에서 많이 익숙한 터.
더구나 거저 먹는 내리막 계단길이다.

주위가 어둠에서 빛으로 전환되는 바로 경계점이다.
계단을 다 내려갈 무렵 뱀사골삼거리 화개재에 당도하여
어둠이 거의 다 가셨다. 그 전환의 모습이 아주 희안했다.

◎ 삼도봉-화개재간 나무계단 안내판 ▼



◎ 뱀사골 삼거리 ▼





(05:56) 토끼봉
화개재에서 25분 정도 땡기면 토끼봉이다. 오름경사다.
많은 등산객들이 간다.

운동화 신고 온 사람.
불루스타 휴대용 가스렌지 손으로 들고가는 사람.

컵을 배낭에 달고 다니는 사람.
바지밑단을 등산 스타킹에 접어 넣은 사람.

여기까지 한 3시간을 달려왔다.
여기서 참외를 먹고 좀 쉰다.

근데 왼쪽 무릅의 느낌이 상당히 기분 나쁘다.
전엔 없던 현상이다.
나중에 이게 발목을 잡을줄이야 꿈에도 생각 못했다.

◎ 토끼봉 ▼



◎ 해가 떠오른다 ▼





(06:59) 연하천
토끼봉에서 1시간 정도 가면 연하천이다.
길고 긴 지리산 여정에서 구간구간 대피소 보는 것도 재미나다.
이마저도 없다면 참 지리할 것이다.

연하천대피소 앞이 부산하다.
양치질 하는 사람, 쌀씻는 사람, 밥먹는 사람.
여기도 물이 참 풍부하다.

◎ 연하천 임박 계단길 ▼



◎ 연하천대피소 ▼





(08:35) 벽소령
연하천에서 벽소령 구간이 지리하다.
웬돌은 그리 많은지.
가뜩이나 고장난 무릅인대에 밟히는 돌이 계속 스트레스를 준다.

지리산 당일종주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고 본다.

첫째 배낭무게가 줄어 운행이 덜 힘들다.
둘째 대피소 예약문제에 대해 골머리 썩힐 필요가 없다.
예약을 못했을 경우 비박장비 등을 챙길 필요가 없다.

가뜩이나 땀으로 끈적한 몸에 샤워도 못하고 찝찝하게 잘 필요가 없다.
반면에 일부러 야영을 즐기는 분들도 있겠지만..

벽소령에서 아침을 한다.
시간이 아침시간이라 여기저기 아침을 먹는 산객들이 많다.

라면 끓여 먹는 사람, 커피 먹는 사람.
커피가 무쟈게 맛있게 보여 한잔 청할라했으나 그만뒀다.

◎ 지리 조망 ▼



◎ 지리산의 너덜길(거의 전 구간이..) ▼



◎ 벽소령대피소(1) ▼



◎ 벽소령대피소(2) ▼





(11:12) 칠선봉
벽소령 지나면서부터 무릅인대가 아주 맛이 갔다.
내가 산엘 안 다닌 것도 아니고

20Km정도면 늘 하던 산행 아닌가.
필시 빨리가야 한다는 그 강박관념이 부른 사고 같았다.

왼쪽 발을 지상에서 허벅지를 들어 무릅 아래부분을 움직일라치면
강한 전류가 쏘듯 찌리리하다. 그 찌리리한 잔영이 오래간다.

왼발을 강하게 밑으로 디디면 괜찮다.
내리막에서 먼저 오른발을 디디고 따라오는 왼발이

허공에서 놀다가 땅을 디디면 아주 자지러진다.
또한 왼발을 구부리지 않으면 괜찮다.

아니 이게 웬 변고란 말인가.
그 수없이 다녔던 동네산에서는 괜찮고

진짜 맘먹고 온 지리에서 탈이 나다니.
가는 날이 장날이란 말이 아주 딱 맞다.

진행이 어엄청 늦어진다.
하다못해 어리부리한 여성들한테도 추월당한다. 크..이 치욕을..

몸이 힘드니 자주 쉬게 된다.
청색시대님이 엄청 짱나셨겠다.

◎ 벽소령 근처에서 본 구름쌓인 지리(산이 엄청나게 크게 다가왔다) ▼



◎ 벽소령-세석 중간지점인 칠선봉 ▼



◎ 풍경 ▼



◎ 세석평전에 임박하여 ▼



◎ 다가오는 세석대피소 ▼





(12:20~13:00) 세석대피소
산객들로 어엄청 붐빈다.
여태까지 지나온 대피소중 젤로 사람이 많은 듯하다.
더구나 때가 점심시간인지라 사람들이 분주하다.

식탁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취사장 옆 벤치에서
점심을 한다.

직사광선이 내리쪼이는 곳에 있어도 그리 더운줄 모르겠다.
여름도 이제 다 간듯한 느낌이다.

내 다리 상태로 장터목으로 가긴 무리인듯 보인다.
갈려면야 갈 수 있겠지만 시간이 엄청 더딜 것이다.
결국 그냥 백무동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 세석대피소 ▼



◎ 왼쪽 백무동으로 하산 ▼





한신계곡쪽 백무동으로 하산길을 잡는다.
백무동까지 6.5km. 지리산 답다.

한신계곡쪽에서 올라오는 산객에게 물어보니
한신계곡의 물이 너무나도 기막히다 그런다.
자못 궁금하다.

계곡의 길이 계속 가파른 돌길로 이어진다.
계곡 상류는 졸졸 흐르는 물로 별볼일 없어 보였으나
하류로 내려가면서 지류의 물들이 계속 합류하여 물량이 점점 많아진다.

계곡의 규모가 점점 커진다.
여기저기 시퍼런 소에 물이 가득가득하다.

◎ 한신계곡의 물 ▼



◎ 이곳에서 알탕을 ▼



◎ 소에서 수영하는 사람 ▼





이외에도 장쾌한 5단 폭포며 완벽한 물의 향연에 입이 딱딱 벌어진다.
내 다리 탓도 있겠지만 장장 4시간 동안을 길게 내려온다.

◎ 백무동에서 장터목/세석 갈림길 ▼



◎ 백무동매표소 ▼





백무동 주차장에서 픽업나온 와이프 차로 휴양시설로 다시 돌아간다.
몸과 맘이 고로운 산행이었지만
지리의 느릿하고 둔중한 무심이 내 잠재의식에 깊이 아로 새겨질 것이다.

산행기 끝!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