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잔뜩 먹음은 고향에서 시산제

서울에서 유일하게 고향사람들이 모이는 백제산악회 시산제에 참석하기위해 우리부부는 전철 3호선 동대입구역으로 향했다. 백제산악회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에서 매년 고향 산에서 시산제를 지낸다. 금년도 부여에 명산이라 할 수 있는 부소산(扶蘇山)에서 시산제를 올리기로 하여 기쁜 마음으로 참석키로 하였다.

동대입구역에 도착을 하니 조금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막 관광버스에 오르니 낯익은 고향사람이 눈에 띄어 반가이 악수를 하며 정겨운 인사를 나누웠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향 사람들이 모이니 고향 냄새가 물씬 풍기는 특유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서로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고향인 듯 느껴진다. 예정시간이 되어 차는 출발하여 서울 톨게이트를 벗어나 경부고속도를 달리는 버스는 고향 가는 길이라 그런지 초등학교 때 소풍가는 기분이다.

오전에 부여 관광버스 주차장에 도착을 하여 총무가 입장권을 끊으려니 매표하는 사람이 고향 분들이니 그냥 입장하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일행은 고향의 훈훈한 인심을 맛보며 영일 루 길로 향했다. 집행부는 1시 반까지 시산제 지낼 곳으로 모이라고 하여 모이기로 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영일 루를 지나며 그 옛날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소풍 왔던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곳곳이 쌓여있는 정이 흠뻑 먹은 곳이다.

중장년이 되며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한없는 행복감을 느끼며 거닐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영일 루를 거쳐 군창 지(軍倉 址)를 지나며 반월 루(半月 樓)에 도착을 해서 누각에 오르니 백제의 육백년의 도읍지 부여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가지뿐만 아니다 백제의 폐망의 슬픔이 배어 있는 백마강이 백제의 도읍지를 에워싸고 휘돌아 흐르며 백제 삼천궁녀의 충절의 죽음을 전하고 있다.

다시 광장을 향하여 발길을 옮기려니 옛날에 궁녀사당 가는 길에 태자 골이 있다. 우리는 광장에서 사자 루(泗자 樓)를 향하는 길에 군청에서 지정해준 기념품가게가 있으나 겨울이라 전부 철시하여 쓸쓸하기만 하다. 그래도 역사의 유적지라 가족들과 젊은 아베크족들이 가끔씩 눈이 뜨인다. 사자 루에 올라서니 백마강 너머로 백제재현단지 축조건물이 선조들의 화려했던 문화가 재현되는 모습이 내 고장의 자랑이다. 건설 중인 이곳을 작년 시산제때 시공사의 배려로 관람을 하고 간바있다.

사자 루에서 잠시 고희를 넘긴 이 사람의 젊은 시절 추억들이 뇌리를 스쳐지나간다. 다시낙화암(落花巖)으로 발길을 옮기려니 옛날 길은 막고 옆으로 길을 따라 발길을 옮기였다. 길은 젊어서 내가 걷든 옛길이 아니고 보도 불럭으로 잘 정돈된길이라 낯설어 보인다. 낙화암에 도착을 하니 백화 정(百花 亭) 누각은 단청이 많이 퇴색된 그대로고향의 냄새가 내 코끝을 자극하는 듯했다.

낙화암 절벽 앞에 내려서니 저 멀리서 굽이쳐 흐르는 백마강에게 삼천궁녀 충절의 죽음을 아느냐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낙화암에서 발길을 고란사(皐蘭寺)로 옮겨가는데 돌계단 한 개 한 개가 젊어서 발아서 내 발길이 살아 숨 쉬는 것을 느낀다. 고란사는 백제시대의 건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곳은 고란초의 얽인 이야기가. 백제의 왕이 고란사 약수를 떠올 때 물에다가 고란초를 띄워 와야 고란사 약수로 인정을 했다는 얘기가 존재한다.

그 고란초가 기후변화로 지금은 멸종위기이고 관사에는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일행은 고란사 관광을 맞히고 바로 영일 루 시산제 장소로 떠났으나 나는 조룡대(釣龍臺)를 들리기로 했다. 조룡대(釣龍臺)은 나당연합군에 백제를 침공할 때 백마강 물속의 용이 큰 물너울을 일으켜 침공을 방해하니 나당연합군 소정방이가 어느 도사의 조언을 얻어 말고기로 그 용을 낚았다 하여 지금도 고란사 옆 강가에 가면 조룡대란 큰 바위에 용을 끌어올렸다는 자욱이 선명히 남아있다. 백마강은 젊어서 낚시질을 하던 추억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조룡대를 뒤로하고 언제 또다시 이곳을 올지 기약할 수 없이 발길을 나도 시산제 장소인 영일 루로 옮긴다.

시산제 장소에 도착을 하니 재경부여 산악인들이 온다고 하니 고향에 선후배 지인들이 많이 와있어 정이 듬뿍 담긴 인사를 나누며 반가워했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선거에 출마할 예정자인 선배들도 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시산제를 무사히 맞히고 시내에 후배가 운영하는 장군회관에서 오리매운탕으로 점심을 잘 먹고 임천면(林川面)에 있는 성흥성지(聖興山城)로 길을 잡았다.

성흥산성는 사적 제 4호로 백제의 수도 부여를 수호하기위해 금강하류 대안에 축조된 가장중요한 산성의 하나이다. 이 성홍산성은 501년에 축조되었다고 하며 성주는 약 600m이고 당시 우물터도 3군데 있고 건물터도 현존하고 있다. 이곳을 도착하여 성흥산성을 오르니 금강의 끝인 장항과 군산만이 한눈에 보인다. 부여에 고향을 두었지만 나는 이곳을 한 번 와보고 이번이 두 번째이다. 부여에 살고 있을 때 왔을 때에는 역사의 깊이를 몰랐는데. 이번에 오면서 백제에 수도에 주요한 요충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성흥산성을 오면서 임천면에 고향을 둔 분들이 정성으로 임천면 산악회원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임천면 산악회원들은 재경 백제산악회 회원들을 위해 정성스러운 음식. 고향 냄새가 듬뿍 담긴 막걸리와 손수 빗은 도토리묵과 딱은 한 어묵국물의 맛이 온 몸이 고향의 향기로 가득 채우고 아쉬운 환송을 받으며. 성흥산성에 황혼을 먹음은 것을 보며 그 곳을 떠났다. 오늘 하루는 일 년 365일의 산행에 무사안녕을 빌어서며 고희의 나이로 고향산천에서 하루를 추억에 젖고 향수에 젖고 정에 묻혀 잊어지지 않을 하루였다.
                                                                                                     2008. 2. 26
                                                                                                      초립동(조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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