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가 가을 들머리인 입추였습니다. 그리고 산행기를 쓰고 있는 오늘이 말복입니다.
이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간절한 기도처럼 포도 알을 알알이 영글게 할 마지막 이틀의 태양이 아쉬운 여름의 끝자리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마지막 여름에 과천시 산악연맹의 대원들은 신임회장의 취임을 축하하고자 어제(2004. 8. 8일) 충북 괴산군에 자리잡은 해발

778미터의 칠보산을 올랐습니다. 70명 가까운 대 인원이 버스 2대에 나누어 타고 과천을 출발, 구비구비 몇 고개를 넘어 골짜기를

헤집고 찾아 들어선 곳이 칠보산 정상에서 서쪽으로 내 뻗은 산줄기가 가라 앉은 떡 바위였습니다.

 

요즘처럼 찌는 듯한 복더위에 산을 찾는 분들이 주로 머무르는 곳은 정상이 아닌 계곡입니다. 계곡에는 땡볕을 가려줄 나무가 있고,

때로는 여울져 흐르는가 하면 급작스레 낮은 곳으로 내리 꽂아 폭포를 이루기도 하고 힘들면 웅덩이에서 잠시 숨을 고른 후 유유히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이 있기에 더위를 즐기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을 듯 싶습니다. 그러기에 이곳 쌍곡 계곡의 곳곳에 자리잡은

수많은 사람들이 몰고 온 차들이 도로변에 꽉 들어찼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돌아가는 차들로 귀경 길이 전쟁을 방불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습니다.

 

10시30분 떡바위를 출발, 계곡을 건너 쉽게 들머리를 찾았습니다.
문수암골을 따라 5분 가까이 오르다 오른 쪽으로 꺾어 산등성이를 치고 오르느라 온 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제 1봉의

리지를 마친 후 안부에서 첫 번째 쉼을 가졌습니다. 한시간을 걷고 5분을 쉬는 나름대로의 산행리듬을 지키지 못하고 출발 40분

만에 휴식을 취한 것은 그제 한북정맥을 종주하느라 8시간 반동안  산행을 해 피로가 덜 풀리기도 했지만, 30도를 훨씬 넘어선

날씨 때문에 더위를 먹을까 염려되어서였습니다.

 

2-3-4봉을 왼쪽으로 트레파스하며 그늘 길을 걷는 동안 1봉까지 오르느라 쌓인 피로를 모두 떨구었습니다. 능선을 따라 5봉을

얼마큼 오르다 정상 조금 못 미쳐서 트래파스를 끝내고 잠시 숨을 돌린 후 계속 전진했습니다. 1봉에서부터 살살 아파 오던 배가

설사로 발전한 것 같아 6-7봉 안부에다 짐을 내려놓고  몸을 가릴 만한 곳을 찾아 뱃속을 비웠는데,  실로 오랜만에 대자연에서

카타르시스의 쾌감을 느꼈습니다. 12시 5분 안부를 출발하여 7-8봉을 왼쪽으로 트레파스를 한 후 로프를 잡고 8-9봉사이의  안부에

내려서 다시 숨을 골랐습니다. 12시 40분 마지막 봉우리인 정상을 향해 안부를 출발했습니다.


바로 눈앞에 정상이 보여 쉽게 오르리라 생각했는데 안부에서 산마루로 올라선 후에도 한참을 걷고 나서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13시 10분 떡바위를 출발한지 2시간 40분만에 해발 778미터의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쌍곡계곡을 따라 길을 낸 포장도로를 제외

하고는 보이는 것은 모두가 산이었습니다. 여기 정상에 이르기까지 높게 솟은 암봉들과 멋드러지게 휘어진 소나무들을 간간이

사진으로 남겼는데, 정상에서 바라다 본  먼발치의 산들 또한 그 산세가 웅장하고 수려해 모두 카메라에 옮겨 담은 후 같이 오른

몇 분들의 땀흘린 모습들도 표지석과 함께 담았습니다.

 

13시 21분 나무계단 길로 내려서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마당바위를 지나 얼마고 내려가다 만난 청주에 사신다는 부부로부터 길 안내를 받은 대로 오른쪽 길로 들어서  내려갔습니다. 그

분들 말씀대로 이곳 칠보산도 국립공원 속리산의 한 자락이기에 꺾임 길에 세워진 표지 목에 속리 09-03 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어

속리산의 산자락이 꽤나 넓음을 느꼈습니다. 내리막의 경사가 조금 급한 길을 걸어 내려오며 메모를 하느라 저 혼자 뒤 처졌기에

길섶의 나무들과 교유하며 하산할 수 있었습니다.

 

13시 56분 절말을 3.6키로 남겨 놓은 지점을 지났습니다.
살구나무골에 이르기까지 20여분간을 아주  편한 길을 걸어 내려왔습니다. 갈림길에서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어 15분 가량 내려

오다 계곡에서 쉬고 있는 일행들을 만나 오랜만에 발을 닦았습니다. 지난 5월 5일 이후에는 틈나는 대로 한북정맥을 종주하느라

고개에서 시작하여 고개에서 산행을 끝내 계곡 길을 거의 걷지 못했기에 그 동안 탁족의 즐거움을 잊고 있었습니다.

 

14시 37분 계곡에서 달디단 쉼을 끝내고 쌍곡휴게소로 내달렸습니다.
낮은 키의 산죽 길이 그 푸르름만큼 시원하게 느껴졌습니다. 쌍곡폭포를 지나 10분 가까이 걸어 15시20분  계곡 옆의 과천시산악

연맹의 회식장소에 다다랐습니다. 떡바위를 출발한지 5시간이 다 되어서 하루산행을 마무리하고 몇 몇분들이 산에도 함께 오르지

못하고 정성들여 준비한 점심을 맛있게 들었습니다.

 

남자분들에는 보신탕이, 이런 저런 이유로 마다하는 분들에는 닭고기가 준비되었는데 저는 단연 보신탕을 들었습니다. 프랑스의

여배우 브리지도 바르도가 목청높여 비난하는 보신탕을 든 것은 제가 그녀에게서 비난받을 만큼 미개해서가 아니고  불포화

지방산을 다량 함유하고 있는 보신탕이 더위에 더 할 수 없는 영양식이라는 학문적 믿음 때문이었습다. 그녀가 미개인으로

힐난하는 논리적 근거는 사람이 어떻게 애완 동물을 먹이 감으로 삼느냐 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녀는 우리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몰이해를 스스로 부끄러워 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개는 전통적으로 애완동물(PET)이 아니고 소나 돼지 같은

가축(CATTLE)이었기에 말입니다. 쥐를 잡는 고양이는 방안에서 재우며 애완 동물로 키워 왔기에 우리나라의 어느 누구도

고양이를 고기로 취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제가 든 보신탕은  애완용으로 키우는 앙증맞은 강아지가 아니고 식용으로 키운

황견으로 만든 것임을 밝혀 둡니다.

 

16시 45분 쌍곡휴게소를 출발, 20시경에 과천으로 되돌아왔습니다.
다행히도 귀경 길의 교통대란이 없어 생각보다 빨리 과천에 도착했습니다.

 

어제는 피서를 뛰어 넘어 극서를 했습니다.
5시간 가까이 땀을 뻘뻘 흘리며 오르내린 칠보산에서 찾아 낸  보물은 한마디로 청정하고 수려한 산수와 더불어 극서를 무사히

끝낸 건강한 몸과 마음이었음을 보고드리며 산행기를 맺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