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 閑談 7

일석삼조 산행의 맛을 아시나요

 

 

 

 화사한 봄꽃이 만발하는 봄날에 그리움이 살며시 찾아들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 일상탈출을 시도한다. 도저히 주체할 수 없는 상춘의 욕구가 솟구치기 때문이다. 가슴 깊은 곳에 가득 쌓인 뜨거운 열기를 몽땅 뿜어버리고 감전되는 듯한 알 수 없는 짜릿한 충동감에 휩싸이고 싶어 훌쩍 떠나보련다.

 

 차타고 배타고 산타는 일석삼조의 묘미를 맛보기 위해 여수시 남면에 속해있는 금오도 매봉산을 찾아간다. 여수항에서 그리 멀지 않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금오도에 있는 산이다. "한국의 산하" 와 "여수시청 홈페이지"「명산소개」란에는 매봉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나 현지에서는 대부산이라 부른다고 하니 하루빨리 통일되어야 혼란스럽지 않을 것 같다. 
 

 섬의 모습이 자라를 닮았다고 해서 금오도라 부른다고 한다. 관광객 유치를 위하여 여수시 남면사무소에서 함구미에서 우학리까지 약 14km에 이르는 등산로를 정비하여 동호인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어 지금은 꽤 많은 사람들이 섬을 찾는다고 한다. 
 

 모처럼 직장산악회의 이벤트 산행이라서 그런지 많은 동호인들이 가족동반으로 몰려들어 버스 2대가 부족해 몇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가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웰빙 열풍인지 요즘에는 많은 동호인들이 산악회에 참석한다고 옆자리에 앉은 오랜 친구인 산악회장이 귀띔한다.
 

 차창 밖으로 연분홍 복사꽃이 군데군데 피어있는 고속도로를 달려 여수 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기점인 금오도 함구미로 떠나는 배는 10시에 중앙부두에서 출발한다. 산행 종점인 면사무소가 있는 우학리로 가는 배는 10시 20분에 있다. 우리 일행은 함구미로 출항하는 배에 승선하기로 예약되어 있었으나 인원이 초과되어 일부는 20분 늦게 출발하는 배에 승선토록 조치하고 먼저 떠난다. 
 

 승객전용 여객선이 아니고 자동차 전용 철부선이라서 그런지 왠지 어색하다. 그러나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미끄러지듯 헤쳐 나가는 갑판 위에 서니 마음은 한 마리 새가 되어 바다 위를 훨훨 나른다. 시원한 갯바람과 오랜만에 맡아보는 바다 냄새가 기분을 한껏 고조시켜 흥겹기 그지없다. 1시간 30여분이 지나 뱃머리에서 바라보니 앞에 우뚝 솟은 산이 금오도 매봉산(대부산)이라고 한다.
 

“오늘 산행할 산이 저것이여 별것 아닌 것 같네”

“쉬엄쉬엄 올라갔다가 점심이나 먹고 내려오지”
 

 많은 사람들이 내릴 준비를 하면서 오늘 산행에 대한 소견을 한마디씩 피력한다. 산행기점인 함구미에 도착하니 우리보다 늦게 출발한 일행들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다. 뒤에 출발한 배는 직통으로 우학리로 가기 때문에 몇 군데 들렸던 우리보다 더 빨리 도착해서 자동차로 이동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오가 다될 무렵 산행 안내판 아래 모여서 길라잡이로부터 산행코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서둘러 출발한다. 마을 옆으로 난 길은 옛날부터 다니던 길인지 곰삭은 맛이 배어나 운치를 더해준다. 돌로 가지런하게 다듬어진 길로 오르니 웬만큼 나이 들어 보이는 비자나무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서있다. 이곳 갈림길에서 표지판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가니 고풍스런 돌담길로 이어진다. 그러나 많은 집들이 폐가로 방치되어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억새밭이 나오는 길목에서 땀을 훔치며 뒤돌아보니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는 동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며 사위가 훤히 조망된다. 새롭게 움트는 생명의 숲속에서 싱그러운 신록의 내음에 취해 능선에 도달하니 또다시 좌측으로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부지런히 40여분을 오르니 정상에 도달한다. 소사나무 군락에 휩싸인 정상은 볼품없어 무심코 지나치련만 이곳이 정상임을 안내판이 알려준다. 그러나 정상에서 몇 걸음 더 품을 파니 조망 좋은 곳에 편히 쉴 수 있는 쉼터를 만들어 놓은 것이 퍽 인상적이다. 조그마한 배려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감동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내친김에 점심식사 장소로 정해진 문바위까지 가기로 작정하고 발길을 서두른다. 바다를 한 눈에 바라보면서 걸어가는 능선길은 환상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산길을 걸어보기란 여간해서는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아 오늘 산행에 참가한 것이 더 없이 보람되어 가슴이 뿌듯하다.

 

 바위 두개가 대문처럼 생긴 문바위 부근에는 첫 배로 들어온 산행객들이 먼저 판을 벌리고 있다. 조금 더 가면 넓은 바위가 있다고 해서 서로 인사만 나누고 지나친다. 양쪽으로 바다를 바라보며 걸으니 마치 바다 위를 걸어가는 듯하기에 발걸음이 너무 상쾌해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배고픔마저 잊게 한다. 
 

 널찍한 바위 위에 짐을 푼다.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들러 앉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한쪽으로는 깎아지는 듯한 천길 낭떠러지 밑에 짙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오밀조밀한 다도해 모습이 너무나 정겨워 보이고 저 멀리 아스라이 팔영산의 자태가 드러나 보인다. 이처럼 낭만적인 곳에서 풍류를 벗 삼아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운치는 다시는 맛볼 수 없는 묘취가 아닐 수 없다. 
 

 이곳 금오도는 사삼 등 많은 약초들이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조선시대는 왕실의 사슴 방목장로 활용되어 일반인들의 출입을 철저히 금지시킨 금단의 땅이었다고 한다. 당시 사슴 방책인 듯한 돌담이 성처럼 쌓여있는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산행하려면 몇 군데 있는 갈림길로 내려가서 자동차로 선착장 까지 이동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종주하려면 오후 4시 30분에 배가 출항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걸어야한다고 서두르기에 식사가 끝나자마자 출발한다. 곳곳에 취나물이 돋아나 향기를 뿜어대지만 그 유혹을 물리치고 발길을 재촉한다. 
 

 금방이라도 쪽빛 바다에 첨벙 빠지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는 자극적인 길을 따라 걸어간다. 소사나무 군락지를 벗어나니 짙푸른 상록수림이 우거진 숲길로 들어선다.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수복하게 떨어진 동백 숲에서 잠시 목을 축인다. 
 

 시뻘건 동백꽃이 고단한 삶에 찌든 길손을 말없이 반겨준다. 무슨 한이 그리도 쌓였기에 피멍울을 가슴에 안고 처연하게 울고만 있을까. 동백꽃은 모진 겨울을 감내하며 타는 듯 붉은 꽃을 피워댄다. 그러나 따사로운 봄이 오면 봉우리 째 뚝 떨어지기에 애절함 그 자체다. 구차스럽게 구걸하지 않고 의연하게 살다가 미련 없이 돌아서는 동백꽃은 또 다른 의미의 메시지를 우리들에게 던져준다. 
 

 칼이봉에서 느진목을 거쳐 옥녀봉으로 향하는 길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거닐고 싶은 서정적인 풍취가 묻어나는 길로 이어진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봄꽃들이 만개하여 길손과의 조우를 기다리고 있다. 그 누가 돌보지 않아도 모진 풍파를 이겨내고 고운 빛깔로 피어나는 야생화의 향연에 젖어들고 싶지만 나그네는 무정하게 발길을 옮겨버린다. 
 

 점심을 먹고 꽤 빠른 걸음으로 1시간 20여분 걸으니 옥녀봉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광은 진정 잊을 수 없는 추억거리를 엮어내는 장관을 연출한다.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하고 베를 짜면서 살았다는 슬픈 전설이 서려있는 옥녀봉을 뒤로하고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밤자갈이 너절하게 깔려있어 자만했다가는 미끄러질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검바위를 거쳐 동백 숲을 지나니 말끔하게 포장된 도로가 나오면서 아쉬운 산행이 종료된다. 산행시간은 점심식사 시간을 포함해서 4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이곳에서 선착장까지는 10분~20분 정도 더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자동차를 대기시켰기에 선착장까지 이동할 수 있어 다시 품을 팔지 않아 다행스럽다. 
 

 산악회에서 선창 부근의 가정집에 뒤풀이 음식을 준비해 놓았다. 출항하는 배 시간이 임박해 서둘러서 먹고 승선하니 온몸이 노곤해 스르르 눈이 감긴다. 오랜만에 차도 타고 배도 타고 산도 타는 감칠맛이 우러나는 특색 있는 산행을 마쳤으니 어찌 밀물처럼 밀려오는 피로감에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묘미를 즐기려고 일상탈출을 꾀하나 봅니다.(끝)


《 산행 코스 》

        함구미 →(1.6)← 정상 →(2.1 ← 문바위 →(1.9)← 칼이봉 →(1.3)← 느진목 →(2.1)←

        옥녀봉 →(1.9)← 검바위 →(1.0)← 선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