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년 버리고 새 년 맞으러 찿아간"

파주 감악산 송년 산행길(사진)

  

 

 

 

등산로 코스 안내판

 

 

세심 / 마음도 정신도 모두 이곳에서 깨끗이 닦으시길...

 

개요

紺岳山 1)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남면(南面), 연천군(漣川郡) 전곡면(全谷面), 파주시(坡州市) 적성면(積城面)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75m. 《신지비기(神誌秘記)》에 의하면 감악산이 서울의 주산인 삼각산(三角山)을 뒷받침하여 수성, 곧 수덕(水德)을 이루어서 서울의 땅기운을 북돋워주어 서울의 번영을 크게 하였다고 한다. 1982년에는 비의 형식이 북한산비(北漢山碑)와 흡사하여 또 하나의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로 추정되는 감악산신라고비(紺岳山新羅古碑)가 발견되었다.


2) 충청북도 제천시(堤川市) 봉양면(鳳陽面) 명암리(明岩里)와 원주시(原州市) 신림면(神林面) 황둔리(黃屯里)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966m. 일출봉(日出峰)과 월출봉(月出峰)이 있으며, 꼭대기에 둘레 3만 2600척의 돌로 쌓은 성터가 있고, 하늘에 제사 지내던 배향대(陪向臺)와 금수탕(金水湯)·은수탕(銀水湯) 등의 석대(石臺)와 약수가 있다.

 

또한 감악산의 가장 대표적인 명소가 산   중턱의 운계폭포이다.  예로부터 개성 송악산, 가평 화악산, 과천 관악산, 포천 운악산과 함께 경기 5악으로 꼽혀온 감악산은 휴전선과 약 4km 밖에 안떨어져 있어 정  상(675m)에 오르면 개성의 송악산까 지 살펴볼 수 있다.


산세가 수려하고, 설마천을 끼고 있는 아기자기한 계곡, 높이 20m의 운계폭포(은계폭포, 비룡폭포라고도 함)가 이곳의 자랑거리이다.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운계폭포는 겨울 빙벽훈련에도 이용된다. 


신라때 사찰인 법륜사가 있고, 산 정상에는 비뚤대왕비(비스듬히 서있는 석비로 설인귀비라고도 함)가 있다. 또한 임꺽정이 은거했다는 임꺽정굴이 있다. 


인근 봉암저수지에서 바라본 감악산 정상의 암봉 또한 일품이다.  설마리쪽으로 내려오 다보면 감악산입구에 있는 '영국군전투비' 를 볼 수 있다. 이 전투비는 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설마리계곡에서 북한군과 교전중에 전사한 영국군 글로스터셔 연대의 제1대대와 제170경 박격포대 장병들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것이다.

 

 

2004:12:25 10:18:21

 

산행일시:2004년 12월 25일 (토요일)

산행지:경기도 양주군(楊州郡) 남면(南面), 연천군(漣川郡) 전곡면(全谷面), 파주시(坡州市) 적

     성 면(積城面)의 경계에 있는 산. 675미터

산행코스:미타암 = 비룡약수 = 정상 = 임꺽정봉 = 임꺽정굴 = 반환코스

산행시간:4시간(점심시간 포함)

산행인원:먼동산우회 8명

 

산행기

내가 운영하는 독서실이 사실은 지난 12월 18일 셋째주 토요일이가정기 휴일인데 마침 그때가 기말고사 기간이라 나 하나 편하자고 쉬는것 보다는 우리 독서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의 시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휴일을 쉬지 않고 학생들 기말고사가 완전히 끝이 나고 또한 마침 12월 25일이 크리스 마스날이라 학생들이 사실은 공부에 신경을 덜 쓰는 날이라

 

12월 25일을 독서실 정기휴일로 한주 미루어놓고 보니 모처럼 다리 쭉 폇고 신경쓰지 않으며 하루를 만끽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주어진다 그런데 마침 파주 적성에서 은잔디 목장을 운영하고 있는 친구 부부가 배추 포기 김치랑 총각김치를 담그어 놓았으니 어느틈에 아내와 함께 와서 점심이라도 하고 가져가라고 몇번의 연락이 왔건만

 

그냥 갔다 먹으라는것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더니 친구 왈 그렇게 바쁘면 자기가 차에 싫고 가져다 주겠다고 하는 전화를 받고 나니 아무래도 내가 친구의 따뜻한 정성을 바쁘다는 핑계로 너무 소홀히 하지 않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 마침 이날은 공부를 하루 쉬는 아내에게 친구네 농장을 방문하자고 혔더니

 

아내 왈 단호히 안된다고 한다 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가 되어 무슨일이 있어도 교회를 다녀와야 한다는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교회도 좋치만 친구 부부의 정성을 우리가 너무 소홀하지 않은것 아니냐고 말을 하니 교회를 가기로 맘을 먹었던 아내도 아무래도 마음이 내키지를 않는지 함께 동행을 하겠다고 마음을 접고 나선다

 

그보다 앞서 나는 이미 아내가 만약 못가면 나 혼자만이라도 다녀오겠다는 계획을 사전 미리 결정을 하여 놓았고 평소 늘 마음에 존경하는 한국의 산하가 맺어준 인연 일만 성철용 선생님에게 선생님 12월 25일 저와 함께 감악산 등산을 하신후 적성 두지리에서 맛있는 메기 매운탕이나 하시고 오시자고 전활 드리니 선생님 좋지요 청파가 권하는데 내가 안가면 안되지하고 흔쾌히 승락을 합니다

 

또한 평소 나와는 친형제 이상으로 40여년 이상을 정을 나누며 지내고 있는 (승안,용섭,성호님 부부)와 35년 전우 김봉묵 친구와 또 그리구 내평생 초딩 동창생 김동환 친구에게 감악산 산행길 동행을 권유하니 사람좋은 아우와 친구들 나의 제언에 모두들 흔쾌히 약속을 하니 옛날 속담처럼 "님도 보고 뽕도 따고" 가재잡고 도랑치고" 정말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모처럼 즐거운 산행길이 시작 된다

 

그러다 보니 아내를 포함하여 일행들이 9명이나 되니 눈치빠른 성호 아우가 차를 한대 동원을 하고 목구멍 속에서는 이렇게 좋은 일행들과의 산행길에 쐐주 한 잔 함께 나누지 못하게 될것이 다소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왕복 3000여리길을 오고가는 길이고 보면 어쩔 수 없이 아쉽지만 내 애마를 몰고 우리 일행들은 우리 손자 아이 도영이의 말처럼 가자  "말방울 울리는 내 고향으로"...하는 힘찬 구호와 함께 자동차의 페달을 힘차게 부 ~ 웅 밟는다

 

참고로 나의 손자 아이 도영이는 할아버지가 자전차가 되었던 승용차가 되었던 태우고 놀이방을 가기 위하여 출발을 하면 이제 4살짜리 손자녀석 할아버가 한 말 잊지도 않고 아침마다 가자 "말 방울 울리는 내고향으로"하면선 주먹을 불끈쥐고 하늘을 향해 주먹을 뻗지요 이렇게 시작되는 나의 하루는 그 아이가 있기에 행복하지요

 

손자 자랑하다 본론을 벗어났네 그리고 우리들은 한국의 아웃토반이라 이름 부리우는 확트인 자유로를 한강과 임진강의 시원한 바람과 공기를 가르며 우리 일행들이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객현리 미타사가 있는 산행길 들머리에 도착을 하니 어느덧 10시 20분이 지나고 있다 그럭저럭 중간에서 만나고 챙기고 그러다 보니 2시간여에 걸처서 감악산 산행길 들머리에 도착을 한것이다

 

 

들머리 구간에 세워지 이정표 감악산 2.2킬로 미터

 

 

정화보호구역 안내판 아니 근디 파주군이 시로 승격을 한지도 어언 6~7년여가 되는데 아직도 파주군? 이보슈! 파주시청 나리님들 위에 등산로 이정표 새로 세우면서 이 간판을 그냥두다니... 쯔쯔즈 아무리 고향 이라하여도 이런건 정말 너무 하는거 아닌가 생각 합니다 이게 뭽니까? 파주 시장님 당장 바꾸어 세워 주세요 죄송합니다 아니 시장님이 뭔 죄 있습니까 해당 부서 임직원님들이 잘 하셔야지요

 

 

한때는 군 부대 통제 구역이었던 문을 들어서는 들머리 구간

 

 

들머리를 들어서니 실개천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있고

 

 

얼음속으론 물이 흐른다 마치 봄이 오듯이...

 

 

평소 내가 살고 있는 인천지역 기후와 이곳 감악산 기후는 5도정도 차이가 난다

일행들이 모두 등산복을 꼭 깃을 여미고 산행길이 시작이된다 엇! 추워

 

 

 

 

옷길을 여미고 한참을 오르다보니 이젠 제법 땀이난다 그런데 이미 나의 농장 친구 부인께서는 이미 내가 감악산을 오른다는 전갈을 들으시고 감악산을 오르셨다가 친구분과 다시 하산을 하고 계시다 나와 만나게 된다 그러면서 왜 도영이 할머니는 안올라 오느냐고 하기에 옛날에 무릎을 크게 다친 아내는 적성시내 찜질방에 내려두고 왔다고 하니 아주머니는 그길로 하산을 하여 나의 아내가 있는 찜질방으로 향하시고...

 

 

2004:12:25 10:57:26

 

들머리 구간 반 시간여를 오르고 보니 어느새 땀이 난다 일만 선생님께서 땀을 닥으시며 잠시 산행로에 걸터 앉으시니 내친김에 좀 이르긴 하지만 배낭에 넣어간 막걸리가 나오고 일행들은 시원한 막걸리를 주욱 한 두 잔씩 들여 마시고 보니 평소 마음에 드는 지인들과의 산행길이 내내 웃음소리와 농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날 산행길은 절대로 속보 산행은 피하려 하며 느긋하게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나누며 일만 선생님의 고견을 들으며 이어지고 있으니 정말 이렇게 좋을 수 가 없다 게다가 가볍게 취기까지 오르고 보니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진한 정담들이 이어지고 글구 배꼽 잡는 산행길이 이어지고 있다

 

 

 

 

왕 너덜길도 지나며...

 

 

우리들을 앞서서 산행을 하시는 일만 선생님의 노익장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우리들은 간다 감악산 정상을 향하여 ...

 

 

 

 

가다가 힘에 부치면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이어지는 낙엽쌓인 산행로를 지나기도 하며...

 

 

때론 얕으막한 계단길도 지나고

 

 

그러다보니 그렇게도 물맛이 좋다는 비룡약수에 도착을 하지만

 

 

날씨 탓인지 아무도 약수를 자시는 사람은 없다

 

 

어떤땐 다래 넝쿨길도 지나고

 

 

등산로 막마지엔 감악산 망루탑을 지키며 우리의 영공을 감시하는 군부대 정문 앞에서

 

 

우리들은 새로 정돈된 등산로 이정표를 따라 좌측길로 들어선다

 

 

정상에 다을 쯤 이정표 앞에서 (일만선생님, 그리고 나, 성호 아우와 함께)찰칵

 

 

첨 오는 분들은 좀 으시시할것 같은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서 ...

 

 

감악산 정상 가는길은 이어지고 있다

 

 

 

 

 

정상에 거의 다달을 즈음 왼편을 바라보면 성모 마리아상이 있는것이 특이하다

북녁하늘을 응시하고 있으신 성모 마리아님께서 북쪽 세상의 평화를 기도 하시는듯...

 

 

무성하던 수목이 가을과 겨울을 지나며 낙엽이 지고나니 이렇게 군사시설도 노출인된다

 

 

드디어 우리들은 산행길 들머리에서 1시간 30여분만에

감악산 정상에 올라  [설인귀비]앞에 기념사진을 찍는다

 

 

2004:12:25 11:54:21

 

정상에 세워진 설인귀비에 대한 안내판

 

 

임진강 지역의 수해경보를 감식하는 측우기도 보이고

 

높이솟은 망루엔 대공경계를 서고있는 초병 2사람이 쌀쌀한 날씨에 유리로 제작된 망루탑에서 경계를 서고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산행길 떠나기전 피자라도 한판시켜 배낭에 넣어 가지고 와서 전달을 하여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 하였지만 군기와 관련된 사안이 되어 마음만 먹었다 그냥왔다 그들을 보니 마치 지금은 모두다 전역을 한 두 아들들의 면회를 다닐때 생각이난다

 

후배 승안이의 배낭에 넣어온 밀감봉지를 꺼내어 두 초병에게 밀감을 전하니 조금은 망설이다 사다리 계단을 내려와 밀감을 받으며 고맙습니다 하고 돌아서는 초병의 모습이 안스러워 나는 사병들의 고향 부모 생각이나서 휴대폰을 건네며 고향이 어디인지 부모님게 전화를 드리라고 휴대폰을 건네니 초병 아닙니다 요즘은 부대내에도 전화 사정이 좋아서 수시로 전활 드리고 있습니다 하고 사양을 하며 망루탑으로 올라간다

 

내가 일년에도 대여섯 번 씩이나 이곳 감악산 정상을 자주 찿는 원인은 이곳에 나의 친구가 경영을 하는 농장도 있기 때문이지만 이곳은 35년여전 내가 현역시절 군복무를 하던 사단 사령부가 이곳 정상에서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신산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가면 아름드리 밤나무가 사령부내에 빽빽하게 심어져 있고 우리들은 가을이오면 밤나무 낙엽길을 다람쥐 체바퀴돌듯 하며 오가고 했는데 ... 아 ! 그리운 나의 친정같은 25사여...

 

 

잠시 지난 시절의 추억에 잠겨있는 사이 일행들은 각자 배낭에서 정상주를 꺼내는데 세상에 "성호 연꽃님"부부께선 칠면조 고기에 닭 후라이드치킨에 생굴회에 골뱅이 무침에 김치전에 김밥까지 진수 성찬을 준비하여 벌려 놓으시니 일행들의 입에서 와! 하고 환호성이 터지고 ...

 

어디 이뿐이랴 배낭에서 장뢰주(산삼씨앗으로 심은 삼)를 3병 그리고 또 다른 아우들이 오가피주에 생전 보도 듣도 못하던 요상스런 술들을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내놓으니 나 처럼 소주나 지참하고 간 사람은 조금은 내놓키가 머쓱하여 진다

 

성호 연꽃님 부부의 성찬으로 안주좋고 술 좋고 게다가 산행길 마져도 가벼우니 선생님 한잔 드십시요 형님 한 잔 드십시요 오고가는 잔들이 마치 경주 포석정의 유래처럼 잔들이 저절로 잘도 돌아간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고향산에 올라 좋은 술과 아주를 상대로 판이 벌어졌으니

 

이 얼마나 사나이들의 우정이 곰살궂게 익어가는지 ... 게다가 정상인데도 바람 한 점 없으니 아마도 성모 마리아님게서 크리스마스날 감악산 정상에 오른 우리 일행들에게 메리 크리스마스를 선물로 주신것처럼 모두다 마음도 기분도 즐겁다

 

 

 

 

한 시간여에 걸친 걸찬 만찬을 끝내고 우리들은 다시 건너다 보이는 임꺽정봉을 향하여 배낭은 감악산 정상에 연꽃님이 남으신다기에 모두다 벗어두고 비 군장 상태로 임꺽정봉을 향하여 다시 산행을 시작한다

 

 

임꺽정봉 가는길 4거리 이정표 앞에서 우리들은 임꺽정봉으로 방향을 잡고 산행을 한다

 

 

바위인지 너덜인지 스릴있게 지나며 ...

 

 

간다 우리들은 임꺽정 헹님이 은둔하시며

이곳 양주지방에서 활략하시던 근거지를 찿아서...

 

 

아주 짤막한 암반길도 오르고

 

 

임꺽정봉에 대한 유래 안내판도 지나고,

 

 

드디어 임꺽정봉 (매봉재)에 오르면 멀리 신암리 저수지도 보이고

내가 현역시절 저 바라보이는 신암리 저수지에서 겨울이면 해가 지는줄도 모르고

이날 산행에 동참한 35년지기 친구와 스케이트를 타던 시절이 엇그제 같은데... 아 그리운 옛날이여...

 

 

좌우로 내려다 보이는 암릉 산행길이 우리들이 올라온 산행길보다 훨씬 험악한 모습으로 나를 유혹을 한다 음! 다음번 산행길엔 내 꼭 저 험한 산행길 코스로 이곳에 오르고 말리라 마음에 다짐을 해본다

 

 

 

 

다시 우리 일행은 임꺽정 굴을 향하여 산 허리를 돌아 아래로 내려서는데...

 

 

 

 

와! 이래서 임꺽정 헹님이 이곳에 은둔 하시며 서민 보호를 위하여 의적 활동무대로 사용을 하시던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들며 이곳 지형의 험난함에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그러고 보면 요지음처럼 난세에 임꺽정 헹님같은 어른이 생존하여 계신다면 매번 선거때만 되면 입에 침이 마르도록 손바닥을 비벼대며 서민들의 대변자가 되어 몸과 맘을 바쳐 활동 봉사를 하겠다고 철썩같이 장담을 하고 의원님들이 되시어 여의도에 입성만 하면

 

내 언제 그런 약속했었냐는 식으로 몰으쇄 작전으로 일관하며 서민 생활안정은 커녕 지놈들 밥그릇 싸움질로 대갈통이 터지도록 싸움질만 하시는 패륜 한량님들 한 놈 두 놈씩 끓어다 이곳 임꺽정 형님 암굴에 가두어놓고 새사람 만들어 국회로 보내는 의적 활동 하셨으면 좋았을텐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 하시던 꺽정이 형님이 눈부신 활동이 이시대에 정말 꼭 필요한데 헹님  넘넘 분하고 원통합니다 그런데 내가 오늘 감악산에 왔다가 형님의 은신처에 방문을하니 마치 꺽정이 형님의 체온이 와 닿는 듯한 전율을 느끼고 돌아갑니다 하오니 헹님의 영혼이라도 찿아 주시어 우리나라 이 난세의 못난이 한량님들 제발 제 정신좀 들게 혼쭐좀 내 주세요 헹님...

 

 

 

 

임꺽정굴을 보기 위하여서는 바위로 이루어진 내리막길을 조심조심 내려서야 볼 수 가 있다 그런데 한가지 꼭 유의할 사항은 절대로 술취한 상태이거나 고소공포증이 있으신분들은 이곳을 방문할때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큰 피해를 보기 안성마춤이다 그 만큼 지형이 험하고 위험하다는 이야기이다 깍아지른 절벽이 그림에서 처럼 수십미터가 넘게 까마득하게 내려다 보인다

 

 

2004:12:25 13:03:32

 

 

임꺽정 굴속에는 정말 몇 사람은 은신하고 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 공간이 있으며 아래로 내려가기 위하여서는 로프를 잡고 내려가야 하는듯 로프가 매어져 있다 아마도 전문 암반산행 유경험자가 아니면 절대로 이곳에 내려서서는 안될것이다

 

 

 

 

임꺽정굴 앞의 지형 산세 풍경(아래로 수십미터의 수직 암반구간이 형성되어있다)그러데 꺽정이 형님은 어떻게 이곳을 맨손으로 오르내리셨는지 아마 그시절에도 헹님께선 릿지 산행을 엄청이나 잘 하셨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여보며 우리들은 다시 하산을 위하여 감악산 정상으로 빽코스 산행을 지속한다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지형이 양주골로 이어지는 골짜기 이다

 

 

임꺽정굴을 지난곳에 있는 날카로운 칼 바위 암벽

 

 

그 위에 나의 35년지기 전우가 감악산 왼편에 성모마리아 상이 있으면 동편엔 자신의 [성부 베들레헴상]이 있다고 하며 마치 예수의 십자가 형상을하고 차라리 이곳에 석고가 되어 버릴까 부다고 나를 웃기며 안내려 가겠다고 엄포를 논다 어이! 친구 조심혀 여기가 타이타닉호 인줄 알어? ㅋㅋㅋ

 

 

내가 군대생활 쫄병 생활을 할때 나의 동기들이 들통을 지고 다니며 땀흘려 만든 LMG진지들이 나를 추억속으로 젖어들게 한다 그시절 이 진지를 구축하기 위하여 나의 동기들이 얼마나 무더운 여름에 피땀을 흘렸는데 ... 동기들의 땀방울의 결정체인 벙커를 보니 다시 푸른제복의 그 시절이 그리워진다 그때 그 시절 재섭인 그리고 최명규 병장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의 동기 재섭아 그리고 최병장님 그립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내버린 양심들 ...

 

이런 인격의 소유자들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겠다고 산행길을 나서 바리바리 싸들고 감악산엘 찿았다가 좋은것은 다 먹어 버리고 쓰레기는 이렇게 양심도 없이 보이지 않은곳에 처박아 버리고 다니는 인격의 소유자들이 그래도 집에가서는 감악산 산행을 하고 돌아왔다고 자랑을 하며 자녀들에게는 착한사람되라고 한 소릴 해대고 있겠지 ... 에이 몹쓸 사람들 그런 부모의 교훈밑에 과연 자식들은 그 부모보다 더 훌륭하여 질 수 있을까?

 

 

내 버린 양심들의 흔적을 보면서 맘상해 일행들보다 한발 앞서서 하산을 하고있는 나의 뒤를 따르며 감악산 하산길 쓰레기 줍기 작업을 하던 아우 용섭이가 하는말 형님 나 이제는 말 할것입니다 하면서 나의 가는길 옆으로 서며

 

형님 잘못했습니다 하며 나에게 간절한 눈빛으로 사과를 한다 나는 속으로 별 미친놈 다봤네 나이가 먹고 년말 송년 산행을 하면서 한 잔도 혔걷다 기분이 업되니 아마 지나온 날들에 엉아에게 소홀했다는것을 말하려는것이겠지 하면서 뭔데 그려 하고 되 물으니...

 

형님 사실은 1960년대 말 그 시절은 우리 마을은 물론 전국의 농촌 마을 어디도 모두가 대부분 전기도 안들어 오던 시절에 내가 전국적인 농촌 운동 활동을 하면서 우리마을 에는 그시절에 전국 마을 문고 연합회와 대학생 농촌봉사활동 단원들의 지원을 받아

 

우리 마을에 장서 2000여권의 마을문고를 기증받아 전국농촌에서는 보기 드물게 농촌도서 보급운동에 앞장서 무지한 농민들과 그 자녀들을 일깨우려 노력하였던 그 시절에 저녁이면 석유등불 밝혀놓고 마을 주민들에게 책을 빌려 주어

 

주민들은 물론 파주지역 사회에서 선망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마을로 인정이 되었던 그시절에... 어느날 저녁에 임시로 빌려쓰고 있는 마을주민의 사랑방에 설치된 마을문고방을 들어서니 세상에 내가 그리도 정성들였던 마을문고 장서 함 유리창이 깨어진채 수십권의 책이 없어진것이다

 

그 시절엔 정말 얼마나 황당하고 얼마나 가슴이 아펐었는데 오늘 용섭이 아우가 형님 사실은 그때 마을문고 장서함 유리를 깨고 책을 훔처간 장본인이 저 였었습니다 하고 속죄의 사과말을 한다 나는 이미 42~3년전의 일이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그때 제가 훔처간 책들의 이름을 줄줄이 이름을 나열을 하면서 그때읽은 펄벅의 대지와 어머니 그리고 상록수 같은 소설들에 빠져들어 오늘날 까지도 책을 좋아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형님 정말 죽을죄를 젔다고 잘못을 사과를 한다

 

세상에 나쁜놈 내가 어려서 부터 절 얼마나 사랑하고 좋아 혔는데...그 믿었던 놈이 내 마음을 그리도 아리게한 용섭이라니...생각하면 몸서리처지게 끔찍한 도둑놈 이었는데 이날 감악산 산행하산길에 단둘이만 있는곳에서 그것도 한 손엔 감악산 산행길에 버려진 쓰레기를 열심히 주으며 사과를 하고 있으니...

 

이 눔을 용설 혀야 하는겨 아니면 성을 내야 하는겨... 정말 분별이 되지 않치만 왜 그러런지 그런 용섭이 마음이 더더욱 가상하게 생각이 드는것은 왜 일까? 얼마나 그동안 가슴에 닫아놓고 번뇌를 하였으면 53세 나이의 가는해를 몇일남겨 두고서 마음에 사과를 할까?

 

용섭아! 지금 너와 나 사이에 그시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죄에 대한 사과가 무시기 소용이 있을것이며 나 또한 무슨 사과를 받을 자격이 있단 말이냐 그 책 도둑 기회를 통하여 너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그리고 오늘날 너와 내가 이렇게 함께하는 사랑의 마음으로 살고 있는데...

 

하면서 용섭이의 속죄를 더 큰 마음으로 받아 들이며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만이라도 우리들 지금처럼 변치말고 살아가자고 말을 하니 형님 하면서 목이 메인다 그리고 난 더 이상 그의 얼굴을 바라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보지 않아도 그 큰 눈에서 주먹만한 눔물을 흘리고 있을것을 알기때문에 말이다

 

용섭인 그렇게 눔물이 많은 사람이다

 

 

 

책 도둑님 용섭이 모습 / 도둑도 변하면 무섭게 착한사람으로 변하더라 ㅋㅋㅋ

 

 

 

 

용섭이와 나와 있었던 이야기들에 전혀 알지못하는 승안이 35년지기 친구는

 

 

까닭도 모르고 저희들끼리 앞서가면서 쓰레기 많이 주어 상받을려구 애쓴다며

 

 

배신자라하네 ... ㅋㅋㅋ ㅎㅎㅎ

 

 

모르면 잠자고나 있지 그러면 중간이나 가지 그러다 보니 이날 감악산 산행길

우리가 코스로 잡은 구간의 쓰레기는 깨끗하게 두봉지나 주우며 하산을 한다

 

 

앞장서 하산을 하고계신 일만 선생님 청파의 친구들

참 선한 사람들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으신다 / 선생님 감사합니다

 

 

심지어 깊은 웅덩이에 빠지 쓰레기도 건지고...

 

 

너덜기 구석구석 쓰레기 찿아 삼만리를 찿아다니다 보니 ...

 

 

2004.12.25.14:25

 

어느덧 우리들의 날머리 구간 미타사가 보인다 / 어이 아우들 정말 오늘 감악산 산행은 정말 의미있는 뜻깊은 산행길이어씁니다 우리 모두 일만 선생님의 말씀처럼 가는해 "헌년 과감하게 버리고 그리고 앞으로 닥아올 새년" 기쁘게 맞이하자고 약속을 한다

 

 

마치 한폭의 그림같은 모습으로 아스라히 서있는 미타사 전경

 

 

산행을 하며 수도없이 큰 사찰만 보아온 사람들의 눈엔

미타사가 볼거리없는 사찰로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작아서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사찰의 그림이 이다

 

 

위성 안태나와 부처님

 

 

추녀 와 하늘과 이세상

 

 

이곳에서 무엇을 원하고 바랄것인가/ 그져 시원한 바람과 맑은 공기와 대자연 밖에는...

 

 

추녀와 암벽

 

 

성호 아운 누굴위하여 저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지...

내가 부처가되어 그의 소원을 모두다 들어주고 싶다

 

 

풍경소리

 

 

생명 / 깨어졌어도 아름답다

 

 

우리 일행들 산행길에 특별 먹거리를 제공하여준 성호 아우와 연꽃님 부부의 모습

어이 아우 고마워 글구 연꽃님 그 맘도 닉처럼 넘넘 이뻐요 행복하세요

 

 

미타사 극락전과 장독대 (2004:12:25 14:33:51)

 

 

2004:12:25 15:53:12

 

미타사 관람을 서둘러 마치고 우리들은 다시 차를몰아 적성면 두지리에 있는 메기 메운탕집으로 달려가 점심겸 산행길 뒷풀이를 나의 농장친구와 또 한분의 농장 가족을 모시고 조촐하게 송년 뒷풀이를 한다

 

 

그러다 보니 가랑비에 옷 젖는다더니 일행들 모두가 장뢰주와 오가피주 글그 이슬이 세례로 마음도 기분도 촉촉히 젖어들어 나의 35년지기 칭군 코 맹맹이 소리로 어이 윤도균하고 날 지목을 하더니 헬렐레 해지면서 아니 형님하고 다시 정정을 하더니 오늘 너무 기분좋은 산행길이었다고 말을하며 끝 마무리도 다 하지 않고 하 하 하 소리로 대신을 한다

 

서둘러 자리를 정리를 하고 나더러 술을 마시라하고 자신은 매운탕만 자신 초딩 부랄칭군 나의 아내와 함께 친구의 농장으로 김장김치를 싫러 간사이 임진강 강변길을 달려 적성 시장 인근에 도착하여 잠시 소피들을 보는데 ...

 

 

2004:12:25 17:03:53

 

아직은 오후 5시인데도 벌써 낮 달이 우리의 갈길을 재촉을 하며 어둠이 깔리고 있다

 

 

2004:12:25 17:23:12

 

적성 시장을 지나다 일행들이 일만 선생님 모시고 헤어지기전 한 잔 더 하자는 바람에 못잊은척하고 찿아들어간 포장마차 속에는 한 무리의 사병들이 외출 외박을 나와 조촐하게 크리스마스 회포를 풀고있다 자리가 협소하여 우리 일행들은 그냥 선채로 닭꼬치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되박을마시고 계산을 하고 나오려다 다시보니 

 

아 내가 군 시절 3년간이나 달고 다니던 25사 마크가 나를 잡는다 내친김에 그리고 한잔 한김에 아저씨도 35년전 25사단을 전역하였고 우리 아들들도 둘다 군 전역을 하였다고 말을 하며 늠늠한 사병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칭찬을 하며 부모님께 열심히 편지하고 전화도 드리라고 후렴을 하고 

 

포장마차 주인장에게 혈기왕성한 아름다운 아들같은 사병들이 먹은 비용이 얼마냐고 물으니 이만원 미만이라 한다 얼릉 주머니에서 사병들의 술값을 지불하고 나니 이 친구들 화이팅 아저씨 만세를 외친다 허참 나 이런 공치사 들으러 한 일 아닌데 조금은 겸연쩍은 마음이 들어 이들에게 답례인사를 하고 나왔는데 

 

세상에 이번엔 책 도둑님 용섭이 아우가 이 사병들에게 한잔 더들 하고 가라고 2차 비용까지 지불을 하였단다 먼저나와 이 소리를 들은 나의 마음엔 정말 올 년말 송년 산행길은 뜻깊은 산행길이 었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한결 가볍고 기쁘기 그지없다

 

 

25사 장병 화이팅 / 글구 애인들도 화이팅!!

 

 

 

사병들과 함게 한 시간이 즐겁고 유익한 시간 이었습니다 (일만선생님 산행기에서 발췌사진)

 

 

 

 

 

2004:12:25 19:13:13

 

김포대교에서 바라본 야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