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산 산행기

                                                            *산행일자:2005.1.9일
                                                            *소재지  :강원 횡성/원주
                                                            *산높이  :1,084미터
                                                            *산행코스:전재-매화산정상-헬기장-치악유스호스텔
                                                            *산행시간:9시25분-14시15분(4시간50분)  

어제는 눈길을 원 없이 밟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 부풀어 강원도 횡성의 매화산을 찾았습니다. 1년 반 동안 신은 등산화가 너무

헤져 고어텍스 등산화를 새로 장만해 설산 산행에 대비했습니다. 과천시 산악연맹의 2005년도 첫 산행지로 선정된 매화산은 치악산

최고봉인 비로봉에서 동북쪽에 자리 잡은  해발 1,084미터의 봉우리로 신선봉으로 불리기도 하는 치악산의 말산입니다.  제가 처음

 치악산을 접한 것은 근대소설의 효시인 "혈의 누 "의 작가 이인직의 "치악산"을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읽고 나서였습니다. 요즈음

같아서는  이완용의 비서를 지낸 그의 글이 교과서에 실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인데 60년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산세가

급해 치를 떨고 오르기에 치악산으로 명명되었다는 우스개 소리처럼 치악산이 남성의 산이라면 그 반대로 매화산은  여성적인

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9시25분 횡성의 우치면과 안흥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전재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동리에 들어서자 어귀에 철선을 쳐 놓아 외부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었습니다. 한우를 기르고 있는 목장이 들어서 있어 혹시라도

외부인들이 무단출입 시 구제역이 다시 발생하지 않을 가 염려해서 취해진 조치인 듯 싶어 우측으로 난 희미한 비탈길을 따라

곧바로 산마루로 올라섰습니다.

10시21분 해발 880미터의 헬기장에 올라 숨을 골랐습니다.
전재에서 헬기장에 오르기까지 3-4센티 정도의 눈이 길을 덮어 눈길을 걷는 동안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곧게

치솟은 낙엽송들이 등산로 옆의 등 굽은 소나무 군과  대조되어 자연의 조화를 읽을 수 있었습니다. 헬기장에 오르기 직전의

20여분간은  된비알의 고바위 길을 오르느라 진땀을 흘렸는데 어느 중년의 남자 한 분이 틀어 놓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뽕짝

소리가  귀에 거슬렸습니다. 제가 산을 즐겨 찾는 것은 자연의 청음을 듣고자 함이지 산중으로 옮겨 놓은 세속의 소음을 듣고자

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10시30분 해발 1,084미터의 매화산 정상에 올라섰습니다.
헬기장에서 고도를 100미터 가량 낮추었다가 20분 여 산 오름을 계속해 다다른 정상에 어느 분의 묘지가 자리잡고 있었는데 이

높은 곳에 묘자리를 쓴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해발 1,600미터대의 지리산 덕평봉에는 선비샘 위에 묘지가

있었다합니다. 살아 생전 자식들로부터 절을 제대로 못 받은 어느 한 선비가 과객들로부터라도 절을 받고자 자식들에 선비샘

위에다 묘자리를 잡으라고 유언을 했는데, 그 자식들이 유언을 따른 결과 그 선비가 지금도 선비샘에서 물을 퍼 마시는 많은

등산객들로부터 절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서였습ㄴ니다.. 작년 1월 올랐던 동남쪽의 구룡산과 덴불데기산이 눈에 들어

왔고 그 위 동쪽으로 눈밭을 러셀링해가면서 오른 백덕산이 자리잡고 있었으며 서남쪽으로는 치악산의 비로봉이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11시18분 정상을 출발, 몇 몇 분들만이 한다리골로 하산하고자 수레너미재로 내려갔고, 대부분 오른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매섭도록 차가와 귀가 얼지 않도록 벙테기 모자로 귀를 가리고 산행을 했습니다. 정상 출발 10여분 후 다다른

해발 1,010미터대의 넓은 공터에 짐을 풀고 많은 분들이 복분자 술을 마셔 정상주를 가름했습니다. 이 곳이 정상보다 훨씬 햇살이

따사로웠고, 산악회장께서 준비한 더덕을 안주로 했기에 모두에 술맛이 일품이었을 것입니다.

12시5분 하산 길에 접어들었습니다.
아이젠과 스틱의 도움으로 엉덩방아 한번 찧지 않고 30분 여 내리막길을 조심스레 내려와 해발 800미터대의 헬기장에 도착했습니다.

헬기장 도착 직전 능선 길을 지키고 있는 십수 그루의 순 토종인 아름드리 소나무를 보고 강원도의 힘을 읽었습니다.

12시47분 안부에서 좌회전하여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따라 하산을 계속했습니다.
해발 550미터 대부터는 낙엽송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는데 한여름 하늘을 가렸을 낙엽송들이 지금은 벌거벗은 나목으로 이 겨울을

나고있어 더욱 춥게 느껴졌습니다. 안부출발 40분 후 수레너미재에서 하산하는 길과 만났습니다. 이 주위에 숲을 이루고 있는

잣나무의 푸르름이 겨울산의 건강을 이어가는 듯 싶었습니다. 합류점에서 우측으로 꺾어 얼마고 하산하다 아이젠을 풀었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 한 짝이 사라져 나머지 한 짝만 챙겼습니다. 한다리골의 계곡을 건너며 바위사이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니

어느새 이 겨울이 봄을 잉태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4시15분 치악유스호스텔 옆의 자동차 전용극장 주차장에 도착해 따끈한 찌개를 맛있게 들었습니다. 매화산 산상에 눈이 별로

쌓이지 않아 눈길 한번 원 없이 걸어보겠다는 작은 꿈이 무산된 데다, 귀로의 버스에서 절제되지 않은 언어의 횡포로 마음이

언짢아 져 속으로 안도현님의 "우리가 눈발이라면"라는 시를 읊으며 마음을 달랬습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 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살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