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05. 1. 30
목적산 : 부산 금정산(801.5m)
위 치 : 부산직할시 동래구, 북구, 금정구, 경남 양산시 동면
코 스 : 호포역-호포농원-임도-능선-좌측골짜기-마애여래입상-철탑-정상-금샘-북문-원효암-범어사(4시간)
누구랑 : 집사람과
날 씨 : 흐림


개요

부산과 양산의 접경지역에 솟아있는 금정산은 부산의 진산으로 서쪽으로 낙동강 어구를 끼고 남으로 뻗어면서 원효봉, 의상봉, 미륵봉, 파류봉, 상계봉 등의 준봉을 일구어 놓고 있다.
전체면적 약 1천3백만평에 이르는 금정산은 경주 남산의 석질과 같은 화강암으로 8천5백만년전에 지하 8km에서 생성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에는 평탄한 지형에서 솟아나 수직과 수평으로 절리가 형성되어 기기묘묘한 바위가 봉우리마다 자리를 잡고 있다.
금정산이란 이름의 유래는 ‘동국여지승람’ ‘동래부지’ 등에 기록된 전설에 의하면 산정에 돌이 있어 높이가 3장 가량이고 물이 늘 차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금빛이 있으므로 금색어가 다섯빛깔의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샘에서 놀았으므로 금정산이라고 일컬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범어사

금정산 동쪽 자락에 자리한 범어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4교구 본사로서 범어사란 명칭의 유래는 동국의 남산에 명산이 있어서 그 산정에 높이 50여척의 거암이 있고 그 바위 가운데 샘이 있으며 그 물빛은 금색에다 범천(梵天)의 고기가 놀았다 하여 산명을 금정산(金井山)이라 하고 절을 범어사라 하였다고 한다.
양산의 통도사와 합천의 해인사와 더불어 경남의 3대 사찰이기도 한 범어사는 창건이후 변천에 관한 기록이나 전설이 전혀 남아있지 않는데 그 이유는 임진왜란 당시에 최대 격전지였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동래성의 함락과 함께 범어사 역시 방화와 약탈로 전소되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범어사가 이렇게 철저하게 파괴된 것은 범어사가 군사적 기반과 관련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범어사의 창건연대에 관해서는 신라 문무왕 18년(678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하고 또 한편으로는 1세기 반 이후인 신라 흥덕왕 10년(835년)에 창건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그런데 신라 문무왕 당시의 석조유물 등이 전혀 없고 의상단계의 화엄종에서는 비로자나불이 출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의문으로 남는다고 한다
그리하여 아직도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후세인의 숙제로 남아 있다.
범어사에는 보물 제434호인 대웅전과 보물 제 250호인 3층석탑 외에 유형문화재 등 많은 유물들이 보존되어 관리되고 있다


지도 (클릭하면 큰 지도를 볼 수 있습니다)




산행기

오늘은 직장일로 아침 일찍 회사에 나갔다가 일을 끝내고 나니 12시가 채 안되어 급조된 산행을 생각하다가 지하철을 이용하여 호포역에서 오르기로 하고 집사람에게 산행준비 하라고 급히 연락을 취합니다.
집에 도착하여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호포역에 도착하니 13시가 넘었습니다. 호포역에서 우측방향으로 나가면 아래와 같은 굴다리가 보이는데 여기서 굴다리를 통과하면 등산로가 시작됩니다. 늦은 시간이라 산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합니다.


13시 09분, 등산로 입구



세멘트길을 따라 오르면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정상으로 향하는 길도 있지만 오늘은 바로 직진을 합니다. 조금 오르면 우측 다리건너 음식점 등 반듯한 집이 몇 채 보이지만 다리를 건너지 말고 다리 입구에서 좌측길을 따르면 호포농원 입구로 이어지고 등산로는 호포농원 입구에서 다시 좌측으로 열려 있습니다.


13시 27분, 호포농원 입구



조금 오르면 좌측으로 조그마한 못이 보이고 옛날 밭이 었었던 듯한 길을 지나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길 왼쪽에 옛날 집이 있은 듯한 터가 나타나고 돌담과 계단, 연못 등의 흔적들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서는 오래전에 제법 큰 절이 있은 곳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13시 50분, 옛날에 큰 절이 있은 듯



절터를 지나 조금 오르니 생각지도 못한 임도를 만납니다. 등산로를 찾아 임도를 따라 좌측으로 100m정도 가니 우측으로 오르는 길이 보입니다.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에서 하산하는 산님을 만납니다.
마애불 가는 길을 물어보니 능선에서 좌측 계곡으로 내려서면 다시 우측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고 상세히도 가르쳐 주며 눈이 많아 위험하다고 조심할 것을 당부합니다. 산님이 가르쳐 준대로 능선을 넘어 좌측으로 내려선 다음 계곡길을 따라 오르니 내린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어 매우 미끄럽습니다.


14시 03분, 임도



14시 35분, 눈길 시작






기도처에 도착하니 비와 추위를 피할 수 있는 가건물이 지어져 있고 사람들이 그 곳을 드나듭니다. 바로 뒤에는 화강암의 거대한 자연석벽이 둘러쳐져 있어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는 곳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깊게 조각되지 않아서인지 그 흔적들이 희미해져 가고 있고 경주남산의 석불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것 같습니다.


14시 54분, 마애여래입상 기도처



마애여래입상



마애여래입상 안내문



마애여래입상이 새겨져 있는 암벽



기암



낙동강과 김해 신어산 방향



마애불을 지나 조금 오르니 장군봉에서 오는 길과 만납니다. 철탑에서 고당봉으로 오르는 길은 빙판으로 매우 미끄럽습니다. 하산하는 사람들은 아예 발을 붙일 수가 없어서 우회를 하는데 오르는 사람들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어 겨우 정상으로 오릅니다.


15시 13분, 철탑부근에서 바라보는 금정산 정상



날씨가 흐리고 손은 시리지만 사방의 조망은 막힘이 없어 가슴까지 후련합니다. 정상에서 거의 340도 정도로 파노라마 촬영을 합니다.


15시 47분, 금정산 주봉인 고당봉 정상



파노라마 (금정산 정상에서)





오륜대와 해운대 앞바다 방향



장군봉쪽 능선과 천성산 방향



오봉산과 토곡산 방향



금정산 주 능선과 부산항 방향



금샘이 있는 방향(우측 멀리 있는 바위가 금샘이 있는 곳임)



그 동안 금정산을 다녔어도 금샘을 보지 못했는데 오늘은 꼭 보고야 말겠다는 각오로 고모영신당을 거쳐 금샘으로 향합니다.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금정산 산신각인 고모영신당



구름 낀 서낙동강 방향



아래 북문과 금정산 주 능선



정상 아래 토굴



우물 부근에서 금샘 이정표를 만났는데 여기서 부터는 길이 여러갈래라서 몇 번을 왔다갔다 하다가 두번째 이정표를 보고 다시 찾아 가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한참을 헤메다 겨우 찾고보니 큰 바위 뒤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잘 보이지 않거니와 숲이 우거져 있을 때에는 찾기가 더욱 어려울 것 같습니다. 더욱이 그 부근에서는 이정표도 없기 때문입니다.


금샘 이정표


드디어 금샘을 찾았습니다. 큰 바위 아래에 있어서 잘 보지 않으면 찾지 못할 것 같습니다.  바위인데도 사시사철 물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겨울철이라 조금 있는 물이 얼어 있습니다.


16시 19분, 금샘






금샘을 보고 북문쪽으로 돌아 나오니 산성을 만나고 고당봉 오르는 길과 만납니다. 그러니까 금샘을 가장 쉽게 찾는 길은 북문에서 식수대를 지나 고당봉을 오르다가 우측으로 산성이 보이면서 산성위로 길이 열려 있는데 이 길을 약 300m 곧장 가면 바로 금샘에 도달합니다. 금샘부근에는 안내표시가 없기 때문에 위의 사진을 참조하시면 위치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북문으로 내려오니 시간상으로는 아직 해가 있겠지만 구름이 끼어서 어둑어둑해지고 등산로변의 노점상들은 벌써 철수가 한창입니다.


16시 43분, 북문



북문을 지나 범어사로 바로 내려오지 않고 계단도 많이 없고 길이 부드러운 우측 오솔길을 따라 원효암 방향으로 우회를 합니다. 원효암은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곳으로 일반인이나 등산객들의 출입을 금하는 곳이라서 입구를 지나갑니다.


16시 57분, 원효암 입구



다시 북문 오르는 길과 만난 후 범어사 경내로 들어섭니다.


17시 11분, 범어사 경내 풍경



보물 제434호인 대웅전



보물 제250호인 삼층석탑






일주문



오늘 하루 늦게 시작한 오후의 산행이지만 마애여래입상, 금샘, 그리고 범어사 등을 모두 둘러 보았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의 일정을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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