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 산행기

ㅇ 일시 : 2005. 1. 30(일)
ㅇ 코스 : 삼가리매표소-비로사-비로봉-주목군락지-천동리(15km,  5시간 30분)
ㅇ 찾아간 길 : 중부고속도로 증평I.C-단양방향-중앙고속도로-풍기


   소백산을 다녀와서 산행기를 쓰려고 하는데 산행기가 잘 쓰여지지가 않는다. 아무래도 소백산 정상에서 맞은 칼바람 때문에 아직도 정신이 얼얼한가 보다. 아니 쾌청한 날씨와 멋진 설경, 소백산의 아름다운 능선에 빼앗긴 마음을 내 미천한 글재주로 그려내려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하는 말인가 보다. 뜸들이고 뜸들이다 일단 글을 시작하고 본다.

  

   이번 주 산행지로 소백산을 택하였는데 덕유산 설경에 마음을 한번 빼앗긴 아내가 흔쾌히 따라 나선단다. 이제 등산을 시작한지 4-5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가능할는지 약간 걱정은 되었지만 부쩍부쩍 늘고 있는 아내의 등산 실력을 믿기에 같이 동행하기로 한다.

  

   삼가리 매표소에서 비로봉으로 오르는 코스를 택하였다. 비로사를 지나 긴 오름질을 시작하는데 아내가 무척 힘들어한다. 이쪽 길에는 눈도 별로 없어서 산행의 재미를 더욱 못느끼는지 조금 오르다 쉬고 조금 오르다 쉬고---찬찬히 아내를 다독여 보지만 내심 걱정이 되기 시작한다.

  

   등산을 하다보면 아내는 특히 오름질에 약하다. 평지에서는 누구보다도 잘 걷는데, 아마도 오름질에 강한 근육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5km가 넘는 긴 오름질 동안 아내는 자신의 취약한 부분과 극한 싸움을 한다. 그래도 참 대견하다. 처음 등산을 시작할 때에는 동네 뒷산도 올라가지 못하였는데 어느덧 이 긴 오름질을 하고 있다니---

  

   약 3시간이 조금 넘는 오름질 끝에 비로소 비로봉에 오른다. 비로봉에 오르자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엄청난 바람이다. 능선의 굴곡이 아름다운 국망봉의 줄기도, 장엄하기 그지없는 연화봉의 줄기도 바람에 흩날려 눈에 들어오지를 못한다. 아내가 기념사진을 한 장 찍으려는데 손이 흔들려서 찍지를 못한다.

  

   소백산의 칼바람을 맞자마자 오름질에 대한 고통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어서 빨리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정상에서 이대로 10여분만 있으면 얼어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이지 삶의 긴장이 필요한 사람. 무엇인가 심한 채찍이 필요한 사람은 이 칼바람을 조금만 맞아도 정신이 번쩍 들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그런가 뼈 속까지 파고드는 추위만큼이나 소백산의 아름다운 능선들이 머릿속에 강하게 새겨진다. 약 20여분 동안 바라본 풍경이 한 20여년은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비로봉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는 능선길. 단순한 선 하나가 만들어 내는 라인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도 있는 것인지---어쩜, 영원히 잊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비로봉에서의 추위와 바람을 피하여 이제 주목군락지로 들어온다. 추위와 바람이 일순간 사라지며 온통 세상이 눈꽃 천지로 변한다. 수 백년 된 주목들 위에 피어난 화려한 눈꽃들. 무슨 말이 필요할까! 그저 와 와 소리만 지르며 그 황홀한 동굴을 통과한다. 그래 이 맛이야! 그래 이 맛 때문에 그 고생을 하는 거야! 오름의 고통은 잊어버리고 그저 눈꽃의 아름다움에 빠져버리는 아내. 이제 아내도 산중독의 초기 단계에 들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목군락지에서 눈꽃을 함빡 안고 있는 나무들을 보자 황홀하다는 느낌과 함께 문득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다. 놀라운 나무들의 생명력이다. 나무들 손끝마다에도 분명히 습기가 있고 그 습기는 영하의 온도에 얼기 마련인데, 왜 나무들의 손끝은 얼지 않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습기의 순도를 바꾸어 어는점을 낮추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러기 위하여 나무들이 겪는 고통은 어떠할까! 어떻게 그런 적응력을 터득하였을까! 생각할수록 자연에 대한 적응력은 모든 생명체마다 경이롭고 참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에 대한 적응력은 무엇일까? 지혜? 문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갈등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갈등만이 우리가 영위할 수 있는 가장 영원하고 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한다. 이삭을 안고 가던 아브라함의 고통과 같은---키에르케고르적인 고통. 산행길도 저 인간의 고통을 반복적으로 되풀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 하산길로 접어든다. 긴 하산길이다. 평지 걷기에 장점인 아내의 특기를 살려 속도를 낸다. 오름길에는 같이 한 회원들 중 제일 늦게 올랐던 것 같은데, 하산을 하고 보니 중간 정도 하였다. 무엇보다도 아내가 기뻐한다. 자신이 건강해짐에 대한 기쁨. 해냈다는 성취에 대한 기쁨. 귀가하는 차량에서 뿌듯한 얼굴로 잠이 든 아내의 얼굴이 보기 좋다.

  

   다음주에는 지리산 갈까? 그러지 뭐!!!


 

(비로봉 오름길에 본 국망봉)


 

(비로봉에서 본 연화봉쪽 주능선)


 

(비로봉에서 본 국망봉쪽 주능선)


 

(비로봉에서 본 국망봉 가는 길)


 

(하산길에 본 비로봉)


 

(하산길에 본 비로봉 능선)


  

(비로봉 하산길의 설화)


 

(비로산장)



  

(주목군락지 설화)


  

(주목군락지의 설화)


 

(주목군락지의 설화)


 

(주목군락지의 설화)


 

(주목군락지 설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