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백운산 도솔봉(1,123m)에서 형제봉(961m)까지

 

산행일 : 2005. 1. 28(금). 대체로 맑음.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 성불사 

  ☞ 도솔봉 

  ☞ 형제봉 

  성불사 

총 산행시간 :  약 6 시간 (사진 찍느라 거북이 산행)

산행지도


 

산행기

  요즘 우리집 컴퓨터가 바이러스 때문인지 완전히 망가져서 완전복구 CD로 포맷 후 완전복구를 실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백운산의 산행사진 200여장이 날아가 버렸다. 멋진 사진이 많아서(특히 지리 주능선을 찍으려고 삼각대까지 갖고 올라가 천왕봉, 노고단, 반야봉, 백운산 상봉, 억불봉등 기막힌 사진을 많이 찍었었는데...)속이 상하지만 순전히 아둔한 이놈 잘못이니 누구한테 하소연도 못하고 있다.

  다른 자료는 모두 백업을 받았는데 백운산 사진만 백업을 받지 않았다. 물론 백업을 받은 줄 알고 포맷을 하였기 때문이다.

 

  성불사 일주문 지나 오른쪽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성불사로 계단을 올라간다. 오른쪽 계곡 옆으로 오르면 좋은데 그 길은 오래전부터 철문으로 막아놓았다.

고풍스런 건물은 없고 신축건물만이 즐비한 절이다.

대웅전 오른쪽 아래 두 건물사이에 나무구조물로 막아놓은 곳을 옆으로 비켜서 지나가면 계곡이 나오고 여기가 산행들머리이다.

그러니까 성불계곡으로해서 도솔봉 오르는 산행들머리를 성불사에서 두 군데 모두 막아놓은 셈이다.

백운산이 성불사 사유지인지는 모르겠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계곡을 건너 계곡 오른쪽으로 산길은 이어진다.

계곡으로 내려가 사진을 찍으며 한동안 계곡을 따라 올라간다. 이때 백운산님으로부터 내일 곡성 동악산에 가자는 전화가 온다. 비만 안오면(내일 전국적으로 눈이나 비가 온다는 예보가 있었다.) 무조건 수락.

 

  계곡이 갈라지는 곳에서 다시 오른쪽 등산로로 치고 올라간다. 다시 한 번 계곡이 갈라지고 계곡을 건넌다. 얼마인가를 오르니 너덜지대로 가야할 길을 누군가 큰 나뭇가지로 막아놓았다. 그리고 왼쪽으로 최근에 새로 개척한 길이 나있다.

 

  그러니까 만 2년 전 2003년 1월 10일. 

아들 녀석(당시 초등 3학년)과 같이 성불사에서 왼쪽 능선을 따라 올라 삼거리(형제봉과 도솔봉가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도솔봉으로 올라가는데 많은 눈으로 무척 고생을 하며 도솔봉에 올랐었다.

                  

                                            2년 전 사진. 형제봉과 도솔봉 중간쯤에서

 

도솔봉 정상에서 잠시 사진촬영과 휴식을 취한 부자는 성불계곡으로 곧바로 하산을 시작하였다.

                         

               2년 전 사진. 2003년 1월 10일 도솔봉 정상. 그 당시에는 위 사진처럼 삼각점밖에 없었는데,

               이번에 가보니 산행지도와 이정표까지 세워져 있었다. 뒤에 지리산 주능선이 보인다.

               맨 왼쪽이 반야봉, 오른쪽 뾰족한 봉이 천왕봉

 

  도솔봉에서 성불계곡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하산 길은 아무도 내려가지 않아 어렴풋이 보이는 길을 러셀을 하며 내려가고 있었다. 물론 이길은 초행이었다.

얼마인가를 내려가자 엄청 넓은 눈 덮인 너덜지대가 끝없이 펼쳐진다. 여기서부터 길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죽을 고생을 하며 내려간다. 바위사이로 다리가 빠지고, 끼이고, 미끄러지고...

나야 이런 일을 가끔 겪는다 치더라도 아들 녀석은 처음 겪어보는 일인지라 거의 울상을 지으며 따라온다.

도솔봉으로 올라가자니 내려온 게 아깝고, 계속 내려가자니 길은 안보이고 그 흔한 리본하나 보이질 않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라도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올라가서 도솔봉에서

능선 따라 성불사로 내려가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었다. 왜냐하면 도솔봉에서 형제봉쪽으로는 거의가 내리막길이니까 올라올 때보다 쉽게 내려갈 수가 있을 테니 말이다.

 

  조금만 내려가면 너덜지대가 끝나겠지, 길이 나오겠지 하며 아들을 격려하면서 내려가지만 길은 나오질 않는다. 시간은 오후 네 시를 훌쩍 넘어 양쪽이 꽉 막힌 골짜기는 일찍이 어둠이 찾아오고 있었다. 서서히 겁이 나기 시작한다. 만약에 대비해서 조금 남은 식수도 아끼며 먹느라 갈증만 더해간다. 고도는 좀처럼 낮아지지도 않는다. 지도를 보니 아직도 성불사는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다.

  휴대전화도 꺼버렸다. 마지막에는 119라도 불러야하니까...

5시면 컴컴해지는데 그 안에 내려갈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너덜지대, 시간은 멈추질 않고 흘러만 가고, 길은 나타날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두 시간 가량을 너덜지대에서 헤매면서 내려가다 보니 갑자기 너덜지대가 끝이 나고 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얼마나 기쁘던지 아들 녀석을 꼬옥 껴안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제 살았다.’는 말이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다. 작은 계곡의 물이 그렇게도 고마울 수가 없었다. 수통에 물을 가득 담아 원 없이 마셨으니까...

                        

                    2년 전 사진. 모진 고생을 끝내고 계곡에 내려와서. 너덜지대와 성불사 중간쯤인데,

                    더워서 모자를 벗어버렸다.
 

  그렇게 힘들게 내려왔던 더덜지대 등산로를 누군가가 고맙게도 폐쇄하고 왼쪽으로 능선 길을 새로 개척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능선길 너무 가파르다. 저 위 도솔봉에서는 산님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도솔봉은 평일에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산인데, 이제는 많이 알려졌는가 보다.

주능선에 올라 오른쪽 도솔봉으로 올라가는 약 200m 구간은 눈 때문에 무척 미끄럽다. 도솔봉에는 창원 모 산악회에서 오신 산님들이 군데군데 모여앉아 점심을 들고 계셨다. 지리산 주능선과 천왕봉, 노고단, 반야봉, 백운산 정상, 억불봉등을 삼각대를 이용해 정성들여 사진을 찍었다.

 

  형제봉으로 내려가는 능선 길은 대부분이 눈이 녹지 않고 있어서 미끄럽다. 아이젠을 착용하니 내려가는 속도가 탄력이 붙어 거침없이 내려간다. 창원 팀들도 형제봉으로 가고 있었다.

형제봉 동봉에 올라 주위를 돌아보고 형제봉 서봉쪽으로 가려다가 1500산님의 반가운 표지기를 발견한다. 아마도 작년 가을에 다녀가신 것으로 추측된다.

서봉에 올랐다가 다시 동봉으로 돌아와 성불사 쪽으로 하산을 하는데 이길은 오늘 내려간 사람이 없다. 참나무 낙엽이 수북이 쌓인 하산로는 미끄럽고 푹신해서 몇 번인가 넘어질 뻔 했다.

하얀 표지기가 눈에 띄어 자세히 보니 이두영회장님의 새한솔산악회 표지기다.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둔다. 하지만 모든 사진이 날아가 버렸으니....

 

  성불계곡에 거의 다 이른 것 같은데 갑자기 길이 희미해지면서 계곡 다 내려와서는 길이 없어진다. 그래도 저 아래 계곡이 보이니까 걱정은 없다. 잡목도 별로 없고...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느라 벌써부터 고무호스를 꽂아놓은 곳도 있다.

계곡에 내려서니 수려한 성불계곡이 홀로산꾼을 반갑게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