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山 이야기 (성혈을 찾아서)

계족산~우술산~당산~우성이산~화봉산~적오산~금병산

산행일자---2005년1월23일,일요일,맑음

산행시간---9시간35분(점심35분, 휴식포함)

산행인원---뫼꿈이님,신샘님,느낌표!,강건너덕배님(우성이산부터)

 <산행후기>

야산과 성혈---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열면 바로 바라보이는곳,쉬는 날이면 지게를 지고 올라 묘잔등에 모이자고 약속은 안했어도 나무지게 받쳐놓고  칼싸움 놀이에 정신이 팔려 시간가는 줄 도 모르고 해가 떨어지고나서야 엎어지면서 집으로 향하던곳,산이라는 개념보다 고단한 삶을 영위해가던 터전 이기에 그 흔적또한 우리 가까이에 남아 있다.

아버지가 멀리 일을 나가시면 어머니는 장독대나 부뚜막 한곁에 정한수 한그릇을 떠 놓고 두손을 모았던 그 정성,이웃 마을을 갈라치면 넘어야 했던 서낭당 고개,돌하나를 얺져 놓고 두손을 모으던 그 정성과 간절한 소망이 바위위에 담겨져 있으니 우리는 그것을 성혈이라 부른다.

바위구멍 이라 불리는 성혈은 어떤 물체나 형상을 구체적으로 그려낸 회화적인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쉽게 그 의미를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그러므로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분분하다.별자리를 상징하는 천문학,태양숭배,다산과풍요등 여러 각도로 이해할 수 있다.어려운 해석을 뒤로하고 추억과 삶의 애환이 담겨져 있는 야산을 따라 성혈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아침 8시가 되어 송촌동 선비마을 4단지앞 버스승강장서 택시에서 내리는 뫼꿈이님을 만나 고속도로 지하통로로 향할쯤 차에서 내리는 너른숲님을 만나 인사를 나눈다.덕유산 산행이 있단다.신샘님께 전화를 하니 택시를 타고 비래사까지 올라 갔단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면 왼편으로 논가장자리에 2기의 고인돌과 안내판이 있다.수많은 사람들이 계족산을 오고가고 하지만 고인돌이 있는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비래사 입구 고인돌 성혈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로 비파형 청동검 1점 석촉3점 홍도1점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란다.중요한 것은 고인돌 위에 새겨진 성혈이다.2개의 고인돌 위에 25개정도 성혈이 있다.청동기 시대것이라 하니 그 옛날 사람들은 무슨 맘을 먹고 이 무덤위에 이것들을 새겼을까 망자 가 이승에 못다한 소망을 저승에서 이루어 지길 빌었을까? 그 간절했던 소망이 25개의 성혈에 담겨져 있는 듯 하다.

송준길의 친필이라는 "초연물외(超然物外)"

2구루의 보호수를 지나 신샘님을 만나 비래사에 도착한다.비래사 하면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지었다는 옥류각(玉溜閣)과 옥류각 앞 암벽에 친필로 새겼다는 "초연물외(超然物外)"라고 음각된 글씨로 유명한 곳이다.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이 지은 옥류각(玉溜閣)

산수 절경을 이루고 옥같이 맑은 물이 흐르는 옥류각에 앉아 물외(物外)에서 초연하게 학문하고 수양하는 자세를 가다듬었던 당대의 상류 양반 석학(우암 송시열,송애 김경애,창주 김익희)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곳이다.잠시 학문을 떠나 계급사회 양반과 서민을 의미해 본다.

비래사 마당 한가운데 향나무 보호수가 있다.대전에 노거수라 불리우는 137구루의 보호수들이 있는데 나무에서 향이 난다는 향나무는 이 비래사에 있는 것이 단 한구루 뿐이다.비래사를 뒤로 절고개를 거쳐 계족산 정상에 도착한다.

대전 137구루의 보호수중 유일한 향나무 보호수

노을이 아름다워 대전8경에 들어가는 계족산,계룡산등 대전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정상 가까운 거리에 봉황정과 같이 있는 정상에는 표지석과 묘가 있다.표지석 뒤 바위면에 3개의 성혈이 있다.

계족산 정상의 성혈

무덤돌도 아닌 이 정상바위에 무슨 소망이 있었길레 정성으로 갈았던 흔적이 남아 있을까?뒤 돌아 보니 계족산성이 눈앞에 펼쳐진다.뒤 늦게 얻은 외동 아들을 전쟁터에  보내고,늙은 노모가 힘든 발걸음을 이끌고 이 높은 곳을 마다하지 않고 올라와 동쪽을 바라보고  피눈물을 섞어가며 무사하게 돌아와 주길 빌 었던 흔적이 아닐까?잠시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 봉황정을 거쳐 연화사로 내려간다.

우술산으로 향하며....

연화사을 거쳐 회덕정수장 앞을 지나 대전과 신탄진을 잇는 17번 도로를 넘어 싱그린 골프연습장 입구 왼편으로 나있는 홈통길을 따라 싱그린 연습장 철책선을 따라 우술산 우술성에 도착한다.

우술성--신라의 북서진을 방어하기위한 산성으로써 신라 문무왕당시 계족산성을 포위하고 대책을 태워 버려 수 천명을 참살하고 항복받았다이어 신라의 상주총관 품일등이 군사를 이끌고 우술성을 공격해 와서 우술성의 부흥군 천여명이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이때 달솔 조복과 함께 우술성에 남아 있던 은솔 파가는 남은 무리를 거느리고 할 수 없이 신라에 항복하였다. 이에 문무왕은 파가에게 급손의 관등과 전택 및 의물을 하사 하였다.

우술성

비롯 작고 하잘 것 없이 보이는 산과 성이지만 대전의 수 많은 산성중 이렇게 자료가 남아있는 성도 드물다.나라와조국이 무엇인지? 패망한 나라을 되찾고자 목숨을 던진 그내들의 소중한 여망은 물거품 되었지만 그들의 넋은 아직도 이 우술성에 남아 그 날의 교훈을 말해 주는 듯하다.

우술성을 뒤로 경부선 터널위을 지나(철길 하수구 통로로 통과해도됨)당집이 있어 당산이라 했던 당산에 도착한다.정상에는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다.정상에서 원촌교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바위지대에 둥그런 장수 바위가 있다.옛날 계족산 장군과 계룡산 장군이 싸우기 위해 이곳에서 만났는데,늦게온 계룡산 장군이 화가 나서 바위를 주먹으로 내리쳐 바위가 움푹파였다 한다.

당산의 장군 바위--계룡산 장군이 주먹으로 쳐서 움푹파였다고...

장군 바위를 뒤로 주유소가 있는 원촌교 방향으로 내려가다 마을 끝자락 바위에 새겨진 성혈에 도착한다.옛날에는 배가 드나들었던 포구 란다.원촌교 맞은편 숭현서원이 있는 곳은 서원진 나루터였다 한다.

나루터을 바라보고 서있는 바위위에 새겨진 성혈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처 자식을 위해 배를 타고 멀리 타향살이 하러간 낭군님을 그리며 소원을 빌었지 않았을까? 아니면 천민으로 태어난 신분을 한탄하며 이상의 세계를 소망하는 정성을 이곳에 담지 않았을까?

당산의 성혈

애틋한 마음을 뒤로 바로 내려서면 배배골 입구 바위벽면에< 縣監韓公聖輔(洗,溪)世一>-현감한공성보(세,계)세일-이라 적혀 있는데 세자인지 계자인지 구별하기가 어렵다.회덕현감 시절 공덕을 기리기 위한 것 같다.한팔 사이을 두고 성혈과바위벽면 공덕비라~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것은 무슨까닭인지 모르겠다.

당산 배배골 입구의 비

신대전 공업사와 원촌주유소 앞을 지나 원촌교을 건너 숭현서원에 도착한다.배향된 인물을 열거해보면 정광필(영의정),김정(형조판서),송인수(이조판서),김장생(영의정),송준길(영의정),송시열(영의정),이시직(이조판서),송시영(좌참찬) 이 8분을 모셨다 해서 8현묘라고도 한다.숭현서원을 둘러보고 우성이산으로 향한다.

숭현서원

원촌정보산업학교앞에서 강건너덕배님을 만나 대전mbc 뒷편 진주강씨 제실앞으로 해서 우성이산의 도룡정으로 올라간다.도룡정에서 재넘이님이 점심을 준비하고 기다린다.따근한 라면국물과 함께 하는 점심은 행복한 점심 시간이다.

가은제

화봉산 정상의 휴게실

재넘이님과 작별인사를 하고 화봉산을 지나고 화암네거리를 건너 적오산 정상에 도착한다.일명 성태산이라고도 불리우는 산으로 산성이 있는데 동남쪽으로 우술성과 계족성으로 연결 되어 있는 성으로 계족산성의 자성역활을 하였다 한다.북면에 정교하게 쌓여진 성벽을 보고 성 중앙에 있는 말바위를 확인한다.

적오산성

적오산 말바위--옛날에 적오산 꼭대기에 무쇠로 만들어진 말이 바위위에 놓여져 있었다.이 말머리가 덕진마을로 향해있으면 호랑이가 덕진마을의 개를 물어갔다한다.지금은 무쇠로 만들었던 말은 없어졌고 그 말이 세워져 있었던 바위만이 남아 있다.무쇠말이 서있던 바위를 "말바위"라 한다.

적오산 말바위

적오산 말바위을 뒤로 서낭당 고개를 지나 금병산 12봉중 첫 번째 봉우리인 옥련봉(玉輦峰)에 도착한다.옥련봉에는 새로 정자가 세워져 있다.자운대와 대전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금병산 옥련봉(玉輦峰)

금병산 12봉 표지석을 확인해 가며 진행한다.제2봉인,일광봉,공덕봉,도덕봉,옥단봉,연화봉,운수봉을 지나 출세봉으로 올라가는중"혹시 시경계 하시는 분들이 아니십니까?"깜짝 놀란다.시경계 산행을 아시는 분이 있다니.군에 계시는 분인데 대충산사를 알고 시경계 산행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단다.시경계 산행을 개척하신 분이 뫼꿈이님이라고 소개를 하니 무척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금병산 노루봉에서 자운대 아파트 중간능선의 성혈

출세봉 표지석을 확인하고 감찰,현덕,대법,창덕봉(노루봉)을 거쳐 자운대 해군아파트로 내려가는 중간 너럭바위에 성혈이 있다.조망 없는 이 외진 산골중턱 바위에서 어떤 소망을 빌었을까? 몸져 누운 낭군님 건강을 위해,아니면 자식없는 어떤 부부가 정붙이고 살아갈 피붙이 하나 점지 해 달라고 천지신명께 간절히 갈구 했던 흔적이 아닐런지?

금병산 노루봉에서 자운대 아파트 중간능선의 성혈

성혈의 흔적을 확인하고 해군아파트을 거쳐 자운대 골프장 고인돌에 도착한다.자운대 골프장 공사를 하다 바위위에 새겨져 있는 성혈을 보고 고인돌임을 알았다 한다.

금병산 12폭 비단병풍 같은 아늑한 자리에 잡고 있는 고인돌,그 위에 수없이 새겨져 있는 성혈은 무엇을 의미함일까? 성혈의 크기는 등급과 서열을 나타내며 그외 주위의 성혈들은 그 가족 구성원 수와 연관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부족의 풍요함을 기원함일까?상상의 날개을 달은 정성과소망이 자운대 고인돌 위 성혈에서 떠날줄을 모른다.

자운대 골프장의 고인돌 성혈

날이 어두워 지기 시작하니 금세 쌀쌀해 진다.자운대에서 180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와 감자탕집에서 내가살고 있는 내고장 야산을 따라 성혈을 찾아나선 의미있는 산행을 마무리 한다.

감사합니다.

시간별 산행코스---08:15(비래사 입구 고인돌)-08:30(비래사)-08:10(절고개)-09:05(임도삼거리)-09:30(계족산 정상)-10:10(대한통운마트뒤 싱그린 골프연습장 입구)-10:25(우술산 우술성)-10:45(경부선)-11:10(당산)-11:20(당산 성혈)-11:40(원촌교)-11:15(숭현서원)-12:15(mbc,진주강씨제실 입구)-12:45(도룡정)-점심-13:20(도룡정 출발)-13:45(화봉산)-14:25(화암네거리)-15:00(적오산정상)-15:25(서낭당 고개)-15:55(금병산 옥련봉)-16:50(금병산 운수봉)-17:10(창덕봉,노루봉)-17:20(너럭바위 성혈)-17:30(자운대 해군아파트)-17:50(자운대 골프장 고인돌)

가는길---715번 버스,송촌동 선비마을 4단지-경부고속도로 지하통로-보호수(고인돌)-비래사

오는길---자운대 버스 180번 버스와 마을버스(유성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