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판악의 새벽녘은 주절주절 내리는 비와
등산객들의 소란, 안내방송으로 북새통이었다
이놈의 비 때문에 등산시기를 잘 못 택했나하고 후회막급이었으나
여기까지 와서 소용없는 일..."
부산하게 비옷, 아이젠, 스패츠를 집사람까지 해주고 나니 일행들이
별로 보이지 않아 다급하게 산행을 시작하였다
낮은 경사의 오르막을 헉헉거리며 1시간 남짓 걷다 보니  어느새 빗줄기가 진눈깨비의 형태로 변하더니 눈으로 보이며 여명과 함께 서서히 나타나는 한라산의 설경이 문을 조금씩 열며 이방인을 맞는다
올해는 작년과 달리 전국에 별로 눈이 없었는데 여기에서 결국 눈을 보게되는구나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기분좋은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이 좋은 풍경을 그냥 기억에 의존한다면 잊어질 것 같아 연신 카메라로 설경을 담으면서
걷다 보니 사라대피소였다  설경에 들뜬 사람들의 북적거림은 정감있게  보인다
오늘따라 갈증이 심해 연신 생수로 목을 축이고 한라산의 신비속으로 걸음을 옮긴다
산행을 하면서 저마다 다른 생각으로 이 길을 가겠지
구부러진 길, 오르막길, 오솔 길, 너덜 길, 내리막 길, 좁은 길, 큰 길 ,눈길
그래! 우리는 함께 하고 있지만 따로 걷는 길이며
따로 걷지만 함께 가는 저마다 의 그 길은 인생의 여정과도 같겠지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이 인생길!
한라산의 나무의 특징은 겨울에도 푸름을 잃지 않는 구상나무가 유난히 많았다 
침엽수 위로 수북히 쌓인 설경과 고드름, 진달래, 철쭉 잔가지에 붙어있는 피어난 눈꽃들의 경관.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붙어있는 빙설을 구경하느라 발걸음을 더욱 늦어졌다
버스가 기다리는데 이러다가 도착시간이 너무 늦어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한라산이 생성된지는 과연 몇만년이 흘렀을까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 항상 그 자리에서 우리를 반기고 있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신의를 금새 저버리는 사람들을 비웃기나 하듯이
누구의 노래가사처럼 저 산은 우리 자자손손에게도 산의 노래를 들려주겠지
그 소리없는 소리와 비경을 본다는 게 우린 복 받은 사람이며 정말로 행운아다 생각해본다  이 장관을 하나도 빠트리지 않고 가져가고 싶어 디카 셔타를 눌렀다.
걷다보니 눈앞이 확트이며 진달래대피소가 나타났다
구조물처럼 터-억 도열해있는 구상나무들의 설경은 또 다른 운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곳에서 컵라면으로 요기를 하고 백록담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런데 이게 뭔가  발밑으로 펼쳐지는 운해의 광활함이란... 신비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미사여구가 생각나지 않았다 너무나 아름다웠고  백록담에 다다랐을 때
우리 주위로 자욱히 피어오르는 뭉게구름은 구름위에서 신선놀음을 한다할까
묘한 분위기였다
과학이 발전하여 우주를 넘보는 시대에 접어들었건만 누가 이런 아름다움을 만들 수 있을까 풀 한포기도 만들 수 없는 아둔한 사람들은 이 자연을 보면서 과연 기고만장할 수 있을까   천왕봉의 일출은 삼대 덕을 쌓아야 보여준다는데 이곳 백록담도 사철 언제나 뿌연 운무에 덮여 좀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산객들의 마음을 애타게 하건만
오늘은 그 태고적 신비를 드러내고 우릴 반겼다 그러면 누구의 덕일까?
하여간 혼자보기가 너무 아깝울 정도다
백록담의 뜻은 옛날 신선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백록(흰사슴)을 타고 놀았다해서 백록담이라 불려졌으며 둘레 약 2천여미터, 깊이가 약 100여 미터의 커다란 화산호인 백록담을 한 바퀴 돌고 나면 제주 섬 해안 도로를 다 돌아다닌 것이나 진배없단다
정상의 날씨도 겨울답지 않게 포근하여 보온도시락을 꺼내 식사를 하고 사방을 둘러본다
갈 길은 멀고 이 비경을 잠깐 보고 지나가기는 아깝고, 그러나 어쩔거나 관음사 방향으로 길을 잡고 발을 재촉한다 가파른 내리막 길은 아이젠을 착용하고도 미끄러져 넘어져도 즐겁기는 매한가지
백록담을 내려와 한참을 갔을까 갑자기 돌출된 삼각봉의 위용!
꼭 삼각형을 거꾸로 세워놓은 듯 뽀쪽한 모양이 지금까지 봤던 완만한 산의 이메지와는
또 다른 모습이였다 저 봉우리도 화산의 분출로 생성되었겠지 추측해본다
그나저나 관음사 주차장에는 2시30분까지 도착해야한다는데
너무 늦어진 것 같다
그래 언젠가는 다시 와 여유로운 산행을 하며 한라의 모습을 가슴에 담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