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지리산 왕시루봉 戀書(연서).

 

_산행 일시: 2005.1.20.

-산행구간: 구만리- 왕시루봉- 노고단- 형제봉- 월령봉- 구만리

-함께한 사람:초생달님과.

 

 <반야의 하늘에 흰구름이 가는 세월만큼이나 빨리 움직이는데......>

 

 

지리산을 찾을 때마다

그곳을 스칠 때마다

언제 한번 찾을 수 있을까?

정녕,

그곳은 갈수 없는 또 하나의 지리산으로 남겨둬야 할까?

왕시루봉!

항상 나에게 흠모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그것은 아마 침범하지 못할 이국의 땅이 되어버렸듯이

지정과 비지정의 이분법적인 잣대를 드리운 채

왕시루봉은 그렇게 멀어져만 갔었다.

 

 

새벽 3시

일상을 벗어나는 특이한 계획만 있으면 난,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 버릇이 생겼다. 어제 저녁 11시 밤에 잠자리에 들었건만 새벽 1시부터 시작되는 눈꺼풀의 상하운동은 깨어나지 못한 자신의 몸을 의식해서 인지, 아니면 못다한 수면의 보상을 받고 싶어서 인지 자는 채 하면서 몇 번이고 시계를 쳐다보다가 이내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만다. 아내 몰래 일어났는데도 언제 일어났는지 항상 해오던 버릇처럼 가스레인지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평소에 잘 마시지 않은 커피까지 챙겨주면서......

 

 

새벽6시 이곳 단산마을에 도착한 우리는 부실한 아침을 보충할 요량으로 쓰디쓴 커피한잔을 들이킨다. 그리고 언젠가 이곳에 와서 초입을 알아둔 기억을 되찾아 렌턴불을 쫓아 나선다. 그런데 아뿔싸! 길다란 임도와 마주하면서 가야 할 위치를 찾을 수 없었다. 사거리를 찾기 위해 임도 왼쪽을 향하여 한참 내려갔으나……그냥 희미한 능선 길을 따라 붙었다. 이곳을 올라가면 언젠가 합류점이 나오리라 생각하고…… 그러나 이 길은 결국 사라지고 만다. 왔던 길 다시 내려와 임도의 반대편을 따라 내려가다가 아침 운동하는 사람과 마주친다. 비 지정이라 물어볼 수 없지만 불편해 하는 나의 행동을 훔쳐본 그가 먼저 위치를 알린다.

 

 (왕시루봉 오르기 직전에)

 

(반야봉 불무장등능선과 지리의주능)

 

-07:00 산행 시작

언제부턴가 나의 산행에 한두 번의 알바는 이제 필수가 되어버렸다. 지리산은 가면 갈수록 모르겠다는 不知(부지)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거리를 찾은 나는 또다시 배낭을 고쳐 메고 왠만큼의 추위는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자켓도 집어넣었다. 이윽고 임도를 따라 어느 정도 올라갔을 때 바위에 새겨진 왕시루봉의 이정표가 나타난다. 이제 지금부터 등산로에 접어 들면서부터 중간중간의 길이 나타나 합류되지만 능선을 향하여 계속 오름은 이어진다.

 

 

 

 (광양 백운의 자태와 섬진강과 오산)

 

 

-08:15 전나무와 억세 밭에서

어느덧 해는 솟았는지 소나무 사이사이로 비춰주는 강한 태양빛이 아름다움의 스펙트럼이 되어 눈을 부시기를 여러 차례, 1시간 15분 산행 후에 닿는 곳이 이곳 전나무 군락지다.  아름다운 전나무 숲들이 군락을 이룬 이곳은 인위적으로 잘 가꿔진 모습 그대로 이고, 잠시 후 억세 밭의 헬기장에 도착한 우리는 너무도 아름다운 섬진강의 모습에 갈길 몰라 주저앉고 말았다. 멀리 오산 일대와 구례 평야와 오른쪽으로는 구례 읍이 내려다 보인다. 그사이로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섬진강의 모습과 더 멀리는 광양의 백운자락이 자태를 뽐내고 서있다.

 

 

 

 

 (외국인 별장과 수영장의모습)

 

 

-08:55 외국인 별장에서

1920년대 당시 한국에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선교사들이 들어와 있었는데 이질이나 말라리아 같은 풍토병이 심하여 선교사 자녀 중 9명이 사망했다.  이 수인성 질병을 막는 방법이 6.7.8월 기온이 서늘한 고온지대를 생각한 것이 적격지로 노고단을 택했던 것이다. 그 후 1948년 여순사건 저항 근거지가 되었다가 6.25이후 토벌작전 시 노고단 폭격으로 훼손되고 1962년 지금의 왕시루봉으로 옮겨 12동이 현재까지 이어 오고 있다.

 

 

 

 

 

 

외국인 별장

정확한 이름은 ‘한국 주재 선교사 수양관 촌’ 이다. 지리산 노고단 남쪽 왕시루봉 턱밑에 자리한 이곳을 이 지역사람들은 외국인 별장이라 부른다. 이윽고 왕시루봉 못 미쳐 외국인 별장으로 향하는 뻔뻔한 길이 열려있다. 잘 다듬어진 소나무 한 그루가 마중 나와 위병처럼 서 있다. 교회 건물 마당 앞에는 구상나무가 반듯하게 서있고 수영장 넘어 언덕 베기 아래 숲 속에서 숨바꼭질 하듯 여러 채의 건물들이 늘어져 있다. 안을 들여다 봤으나 완전히 폐허가 되어있고, 수영장 또한 이미 자기역할을 마친 것 같았다. 1920년대 외국인 별장이 들어설 때 우리는 어떠했겠는가? 일제의 암흑기에서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하면 눈물로 호소할 때 그들은 이곳에 별장을 짓고, 테니스 치며 음악을 즐겼단 말인가? 이러한 과정에서 볼 때 우리 조국 산하 지리산은 얼마나 많은 시련의 과정을 겪었겠는가? 최근 들어 한국 기독교 총 연합회는 페허된채 남아있는 지리산 노고단과 왕시루봉의 외국인 휴양소를 유적지로 복원해 미국 장로 교회 한국 선교역사 현장으로 보유하고 교육의 장으로 삼겠단다.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곳이 순례지가 된다면 개발이란 미명아래 우리의 지리산은 또 다른 미래가 없을 것이다.

 

 

 

 

 

 (왕시루봉의 정상과 지리 어디에서나 천왕이 기준점이 되었다)

 

 

-왕시루봉과 전망대

왕시루봉 정상에 서있다. 이곳 조망은 별로이지만 조금만 더 가면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지리산 남부 3대 능선을 조망한다. 촛대봉과 칠선봉 사이의 영신봉에서 시작하여 삼신봉. 성재봉으로 이어지는 남부능선과 삼도봉. 불무장등. 통꼭봉. 황장산. 화개로 떨어지는 불무장등 능선 그리고 내가 서있는 왕시루봉 능선.

항상 어디에서든 천왕이 기준점이 되듯이 오늘은 노고단을 기준점으로 삼고 싶다.

 

(노고단 그리고 반야봉)

 

 (종석대와 노고단의 조화) 

 

-9:40 느진목재 (990m) (좌:문수암/우:남산마을)

전망대를 지나면서 제법 고도를 낮춰야 한다. 잠시 후 수직절벽의 바위가 병풍에 둘러친듯한 느낌이 들어온다. 이윽고 느진목재에 다 달았다. 해발 1000m도 안된 이곳 느진목재에서 본전은 다 털리고 이제 새롭게 고도를 높여 가야 할 생각을 하니 겁부터 난다.

 

 

 

 (문바우등과 싸리샘)

 

 

-질매재 (11:05) (노고단4.5/왕시루봉6.0/피아골0.7)

싸리샘에서 잠시 쉬기로 한다. 한번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왔었다. 모처럼의 여유를 부리고 싶어 물 한 모금 마셔본다. 차가운 겨울 날씨인데도 물맛의 차가움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따뜻한 기분이다. 잠시 문바우등을 우회하여 잘록한 능선안부의 질매재에 이른다. 마치 질매(길마)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피아골과 문수리 계곡으로 길이 훤히 나있는 사거리 이다. 질매재에서 오르막은 또다시 시작된다 우측 사면 불무장등에서 몰아치는 거센 바람은 금방이라도 나를 떠밀어 날릴 기세다. 이왕 이럴 바에 차라리 노고단까지 날려갔으며 하는 심정이다.

 

 (왕시루봉 능선에서 처음 맞이하는 이정표)

 

 (불무장등능선)

 

 (엉뚱하게 찾아온 암봉)

 

 (암봉에서 이동통신탑과 노고단을 바라보며: 저 멀리 희미하게 돌탑이)

 

 

 -또 다른 알바

고도 1200을 넘긴 뒤로부터는 바람과 싸워야 한다. 더군다나 북쪽에서 몰아치는 한파는 눈이 녹지 않아 고개 숙인 산죽을 스틱으로 쳐가면서 길을 가고 있다. 가다 끊어진 등로를 뒤돌아 확인하고 또 확인하지만 이윽고 쓰러진 고사목 앞에서 길이 없어지고 말았다. 없어진 길이 아니라 눈 속에 묻혀 찾지 못한 길이리라. 문수대를 가기 위해서는 분명히 좌측으로 빠져야 할 텐데 하면서도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 그냥 직진하기로 하였다. 왠걸, 문수대가 아닌 이동통신탑옆 암 봉에 도착하였다. 어쨌든 이곳 조망은 끝내준다. 우측에 펼쳐지는 돼지령부터 시작된 지리산 주 능선 조망이 한눈에 들어오고 반야의 모습이 힘차게 솟아있다.

 

 

 

 

 

 (노고단에서 돌탑과 정상석 그리고 이어지는 지리의 주능: 저 멀리 천왕이)

 

 

 -13:10 노고단

이곳 암봉에서 노고단은 엎드리면 코 닿는 곳인데도 내린 눈들이 바람에 실려 허리춤까지 차고 들어온다. 스패츠를 하기 귀찮아 그냥 갔었는데 차가움이 금새 전해와 스패츠를 하기로 하고 러셀을 하여 가면서 노고단으로 향한다. 노고단!

생각 치도 않게 이곳 노고단에 올라섰다. 문수대를 찾지 못한 보너스의 기쁨일까. 노고단 산장까지는 수 없이 와 봤지만 정녕 이곳은 오늘에서야 정상의 기쁨을 맛보게 되었다. 주 능선의 웅대한 자태와 함께 내가 걸어온 왕시루봉과 가야 할 형제봉 능선을 바라보며 또한 섬진강의 물줄기가 희뿌연 연무에 곡선을 그리는 모습이 한 폭의 산수화의 모습이다. 반야의 하늘에 흰구름이 가는 세월만큼이나 빨리 움직이며 갈길 바쁜 나를 몰아 세운다.

  

 (걸어온 왕시루봉능선)

 

 (형제봉 월령봉 능선 초입에서 노고단을 바라보며)

 

 

<형제봉- 월령봉 능선을 찾아>

현재시간 13:40 문수대를 찾지 못한 아쉬움으로 혹시나 문수대를 찾아볼까 하여 원추리 군락지를 돌고 돌아 녹슨 철조망을 넘어본다. 문수대의 들머리라도 확인하고 싶었지만 더 이상의 시간이 허락치안아 아쉬운 마음을 접기로 하고 형제봉-월령봉 능선의 초입으로 흡입되어 들어간다. 노고단 전망대에서 콘크리트 포장 길을 내려오다가 사진 속의 들머리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길은 어지럽게 나 있었지만 잠시의 암릉구간을 걸치면 저 밑의 형제봉과 월령봉의 모습을 보고 계속 능선을 따라 길은 이어진다.

 

 

 

 

 

 (노고단과 운해 그리고 나무사이로 형제봉과 섬진강)

 

 

<능선의 길은 계속 이어지고……>

 부드러운 능선 길과 우량측정시설의 2군데를 거친 나는 여유로움에 힘을 얻는다. 끝까지 찾지 못한 문수대를 멀리에서 그 흔적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에서 자신과 멀어져 간 노고단의 모습을 가다 서다 반복하여 뒤 돌아본다. 마치, 부모 곁을 떠난 자식을 모습을 보기라도 하듯이…… 왕시루봉 능선 길에서는 우측의 피아골과 좌측의 문수리 계곡을 봐 왔지만, 이곳에서 봐온 또 다른 문수리 계곡은 어떤 양면성의 모습과 같아 새로운 느낌을 찾을 수 있었다. 우측으로는 화엄사 계곡이 있으며 그 위로 펼쳐지는 또 하나의 능선 차일봉능선……

앞으로 펼쳐지는 섬진강의 물결이 햇빛에 반사되어 유리거울로 변신된다. 그 넘어 쑥스런 오산이 나를 보고 어서 오라 넙죽 절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산 섬진강 그리고 구만들)

 

 

-16:05 형제봉과 월령봉  

아! 아름다운 五美里.

이곳에서 또 다르게 펼쳐지는 구만들과 아름다운 오미리와 오산은 어떤 연관과 조화가 있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하지만 분명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다섯 가지의 아름다움을 갖췄다는 오미리이다. 그래서 예부터 이곳을 금환락지라 하지 않았던가.

지리산 선녀가 노고단에서 섬진강 물에 엎드려 머리를 감다가 금 가락지를 떨어 뜨려서 금가락지를 풀어놓아 금환락지라 한다. 한반도의 형세를 꿇어앉은 미인이라 치면 이곳 구례는 표현하기 좀 거시기 하지만 음부에 해당된다. 마르지 않는 곳,

금환락지는 곧 풍요 생산 부귀영화가 샘물처럼 흐른다는 것이다.  <퍼온글>

그래서 유독 이도 이곳 토지면 오미리 일대에 많은 사람들이 명당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든 이유가 아닌가 싶다.

 

(형제봉 능선에서 바라본 왕시루봉과 느진목재)

 

 (형제봉/월령봉능선)

 

 

<아름다운 송림 숲을 거닐며>

형제봉과 월령봉을 지나면서는 또 다른 아늑한 송림길이 이어진다. 천박한 자연환경을 이기는 강인한 생명력의 상징인 소나무가 이곳에는 지천으로 널려있다. 언젠가 신문에서 봤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멕시코 최고봉인 피코 데오리사바(해발 5647m) 의 소나무를 화성에 옮겨 심는 계획을 그만두고라도 생존에 위협 받고 있는 우리의 소나무를 활엽수 세력과 병충해와 환경으로서 구제하고 싶은 마음이다.

이곳 능선에도 벌써 어둠이 오기 시작한다. 요 앞의 시멘트 임도가 아침에 당신이 찾던 그 길이요 하면서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우리 누님의 앞 가르마처럼……

  

  <에필로그>

언제부터 풀어야 할 숙제를 풀고 난 지금은 아쉬운 마음이 앞선다. 외국인 별장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는 또 다른 우리의 숙제가 아닌가 싶다. 다만, 분명한 건 지리의 원래 모습을 파괴하는 것은 우리는 용납이 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오늘 산행하면서도 비 지정 산행을 하게 된 자신을 모른 바는 아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구차한 변명도 하고 싶지 않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있는 그대로 다녀왔을 뿐이며 조심스럽게 이 글을 올림이다. 장장 11시간의 산행 중에서 풀지 못한 숙제는 또 다음으로 미루기로 하고 지리산 왕시루봉 능선 산행을 마친다.

  

                                2005. 1. 25. 

                                         전   치   옥 씀.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지리의 모습 그대로 간직하자)

 

-코스별 시간.

07:00 산행 시작.

08:16~08:25 전나무 군락지와 헬기장.

08:55 외국인 별장.

09:10 왕시루봉.

09:40 느진목재.

10:00 싸리샘.

11:05 질매재.

12:35 노고단옆 이동통신탑 암봉.

13:10 노고단정상(1507)

13:40 형제봉-월령봉 들머리.

14:50 1090고지(전망대).

15:40 밤재 사거리(790).

16:05 형제봉.

16:45 월령봉.

17:00 삼각점(740).

18:05 오미리(산행종료).

  

-산행거리: 도상 24km(실제거리:약 32km).

-산행 시간: 11시간05분.